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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사상

"유토피아" 심리로 보편가치를 대하지 말자

by 중은우시 2008. 7. 18.

글: 정영년(鄭永年)

 

아주 유감스러운 것은, 개혁개방한지 삼십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유토피아"의 사고를 가지고 서방을 대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보편가치에 대한 판단이 포함된다.

 

문천대지진후, '보편가치'의 논쟁은 다시금 중국국내의 핫이슈가 되었다. 도대체 보편가치는 존재하는가? 중국정부가 지진과정에 보여준 것은 보편가치의 실천인가? 누가 보편가치를 해석하고 정의할 권리를 갖는가? 이러한 유형의 문제에 대하여, 국내의 일부 전문가들과 매체는 각양각색의 의견을 내놓았다.

 

필자의 생각으로,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답안을 찾으려면, 먼저, 감정적인 의사표현방법을 피해야 한다. 냉정하게 관찰해야 한다. 이외에 또한 그와 관련된 배경과 개념을 명확히 인직해야 한다. 하나의 가치로서 보편가치가 존재하느냐의 여부는 하나의 문제이고, 서방이 조직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보편가치를 추진하느냐는 것을 또 다른 하나의 문제이다. 이는 서로 다른 문제이다.

 

서방은 보편가치를 결정할 권리가 없다.

 

실제로, 보편가치는 당연히 존재한다. 그것은 사람 자체에 대하여 말하자면, 하나의 가치판단이다. 사람의 생활 사람의 권리등등 여러 분야에 미친다. 다만 객관적으로 말하면, 보편가치를 포함하여, 여하한 가치도 모두 인류사회가 존재할 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점진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우리는 보편가치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보편가치의 기준을 어느 한 나라가 규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사실상, 여하한 사회든 자신의 발전과정이 있고, 그들이 처한 경제 및 정치적 발전단계에 따라 서로 다른 가치와 서로 다른 권리가 탄생한다. 서방사회는 비교적 일찌감치 산업혁명을 시작했고, 개인권리와 생명자체에 대한 존중이 비교적 이르게 시작되었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서방은 보편가치의 존재를 인정하는 동시에, 다른 개발도상국가에 이러한 소위 "보편가치"를 실행하고자 하고 있는데 이 점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사실상, 그들은 보편가치를 인정할 권리도 없고, 다른 나라에서 추진할 권리도 없기 때문이다.

 

국내의 일부 사람들은 "보편가치"라는 말 자체를 싫어한다. 사실은 서방이 이를 빌미로 중국에 이런저런 요구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보편가치 자체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약간의 상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서방에서 추진하는 소위 "보편가치"가 상당한 부분은 진정으로 제3세계국가의 인민의 생명과 권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오히려 보편가치가 하나의 도구로 이용된다. 이 점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내의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보편가치"는 잠재의식중에서 서방을 따라하는 것이다. 다만, 보편가치 자체를 놓고 말하자면, 나는 그것이 이식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서방의 민주제도는 일찌기 '보편가치'를 실현하는 유일한 경로라고 인식되었었다. 다만, 이런 제도를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등 국가에 이식된 후, 민주제도가 보증되지 않을 뿐아니라, 인민의 다른 권리도 없어진 것을 보았다. 이는 충분히 설명해준다. 경제발전이 일정한 정도에 이르러야, 정치는 체제전환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자연의 발전이다. 이식하고 싶다고 이식되는 것이 아니다. 더더구나 수출할 수 있다고 수출하는 것이 아니다.

 

보편가치의 실천에는 서로 다른 경로가 있다.

 

중국은 지금까지 보편가치의 존재를 부인한 적이 없다. 다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이 가치를 실현하는데에는 서로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

 

문천지진이 발생한 후, 중국정부의 조치가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게 된 것은 심지어 중국을 반대하던 사람들 조차도 중국정부의 지진후의 조치를 긍정하게 된 것은 바로 지진재난구조과정에서 중국정부가 충분히 사람의 생명에 대한 존중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가치를 사상유례없이 높이 끌어올린 것은 바로 보편가치가 중국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서방(중국을 반대하는 사람 포함)이 지진후의 중국정부의 양호한 태도로 인하여 공산주의를 인정하게 된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저, 이런 제도하에서 마찬가지로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고 존중한다는 것을 본 것이다. 이것이 가장 좋은 증명이다. 왜 보편적인가? 사실 컨센서스가 이루어진 것이다. 반대로 미얀마정부는 태풍후의 조치가 국제사회의 비난을 초래했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문제를 처리하는데 잇어서 이런 기본적인 것을 무시했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현재를 말하자면, 서방은 보편가치의 발언권에서이건 보편가치를 추진할 능력에서이건, 모두 이전같지 못하다. 그들이 발언권을 장악했던 황금시기는 냉전이후였다. 자유민주제도가 역사상 최후의 정치체제라고 보았다. 다만,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와 중동에서의 실패를 맛본 후에, 서방의 발언권은 예전만 같지 못하다. 많은 서방인들은 반성해본다. 그들의 방식이 과연 맞는 것일까? 중국은 개혁개방이후, 경제가 계속 발전하였는데, 이것은 개인의 가치실현에 좋은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서방은 보편가치의 발언권에서 더욱 큰 곤혹에 부닥치게 되었다. 왜 그들은 '중국모델'을 두려워하는가? 핵심은 여기에 있다. 많은 개발도상국이 이미 중국의 발전모델을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이 이번 지진에서 보여준 단결정신, 그리고 우리가 평소에 말하던 "일방유난, 팔방지원(一方有難, 八方支援, 한 곳에 어려움이 있으면 나머지 다른 곳에서 지원한다)"이라는 것은 결국 일종의 보편가치이다. 인류가 서로 도우고 아끼는 자체가 동시에 서로 다른 제도에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서방을 관찰하여 '유토피아'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내의 일부 사람들은 서방의 소위 '보편가치'를 얘기하기를 종하한다. 나는 이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서방은 어떤 측면에서 확실히 중국보다 완비되고 선진적이다. 이 점을 중국이 부인할 수는 없다. 다만, 이해할 수 없는 점은, 국내의 일부인사들은 서방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일종의 '유토피아'라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저 책으로만 서방을 인식하고, 서방의 실제 생활과 업무경험은 없다. 그들은 서방의 이론을 인정한다. 다만, 서방의 행위와 이론은 실제로 차이가 크다. 국내의 일부 사람들은 이 차이를 보지 못한다. 이 점은 아주 유감이다. 개혁개방이 삼십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유토피아'사고를 가지고 서방을 대한다. 보편가치의 판단을 포함해서 맹목적으로 서방을 따라가려는 것이다.

 

왜 중국은 오랫동은 계속 계몽상태에 처했는가? 이는 역사적인 원인이 있다. 청나라말기에 쇠락상태일 때부터 시작하여, 많은 중국인들은 일종의 사고양식을 형성한다: 모든 것을 '전통'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모든 좋지 않은 것은 모두 전통적인 것이다. 좋은 것은 모두 서방의 것이다. 이런 가치판단에 기하여, 많은 중국인들은 서방을 논할 때 경험에 근거하여 관찰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이상화된 인식이 나타난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편가치에 대하여 보자면, 그들은 이것을 기초로 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많은 서방학자들과 현재의 중국 일부인사들의 견해는 일치한다. 즉, 중국의 정치체제와 경제체제는 서방과 다르다. 그러므도 당연히 이런 제도는 보편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다. 다만, 현재 일부 서방학자들은 이미 인식하고 있다. 이런 견해가 잘못되었다고. 즉, 단지 서방의 형식적인 것만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만, 적지 않은 중국인들의 두뇌는 아직 생각을 바꾸지 못했다. 결국 "서구화 서구화

만 부르짖는다. 실제로 그의 두뇌는 이미 서방에 의하여 제도화되어버렸다.

 

보편가치를 말하길 꺼릴 필요가 없다.

 

서방은 현재 하나의 잘못을 범하고 있다. 즉, "대국쇼비니즘"으로 개발도상국을 바라보는 것이다. 일종의 '구세주'의 심리상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전쟁까지 발동새서 다른 나라가 보편가치를 실현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고 떠들고 있다(예를 들어, 이라크전쟁). 이는 사실 비도덕적인 작태이다. 그들은 현재 이미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대화를 진행하고 있으며 천천히 자신들의 견해를 바꾸어가고 있다.

 

우리는 사람의 권리를 얘기하지만 사실 그것도 나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소위 제도 혹은 다른 것은 모두 인간의 권리로 형량할 수 있고, 인간의 권리를 실현하는 하나의 경로이고, 하나의 표현방식이다.

 

중국은 진왕조가 붕괴된 이래로, 먼저 추구한 것은 민주국가의 권리이다. 왜냐하며 ㄴ민주국가의 권리가 없으면 개인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개혁개방후, 우리는 먼저 개인의 경제자유를 추구했고, 다음 단계는 정치적인 권리이다.

 

현재 국내의 어떤 사람들은 보편가치를 얘기하는 것을 꺼린다.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보편가치는 서방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하한 사회제도하에서도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이 가치를 정면으로 직시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그것이 인류사회발전의 서로 다른 단계에서 내용이 계속 풍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