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경제/멜라민분유사건

산루(三鹿)사건이 드러나기까지의 숨겨진 10개월

중은우시 2009. 1. 9. 20:32

글: 심영(沈潁)

 

2008년 12월 31일 아침, 석가장 동대가로 신문가판대의 오씨는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신문이 이렇게 불티나게 팔리는지 몰랐다.

 

그는 신문 안쪽의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은 곳을 보다가 비로소 깜짝 놀라면서 깨달았다. 오늘이 산루의 동사장인 텐원화(田文華)의 재판날이었던 것이다.

 

이날, 이미 파산이 선고된 산루집단의 본사문앞에 있던 "산루'표지가 철거되었다. 멜라민분유사건이 폭발한 후, 삼개월만에 중국유업계의 거두 "세마리의 달리는 사슴(三鹿)"은 드디어 생명이 끊어졌다.

 

비록 현지매체는 이 사건에 대하여 조용하게 보도하고 있었지만, 그날 아침의 석가장시 중급인민법원은 경비가 삼엄하고, 문앞에는 이미 백명이상이 모여들었다. 수십개의 국내외매체기자, 산루직원, 일부 대리상, 환자가족, 시민등이었다.

 

6시 25분, 66세된 산루집단의 전 동사장 텐원화가 호송차에서 내려서 걸아갔다.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동시에 또 다른 호송차에서 기술을 담당하던 전 부총경리 왕위량(王玉良)이 사법경찰에 의하여 들것에 실려 내려왔다.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자, 더 이상 억제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이것은 그들이 강제조치를 당한 이후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텐원화는 아마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구속되기 전에, 왕위량은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려고 시도했었다는 것을. 그것때문에 다리뼈가 부러졌다는 것을.

 

텐원화등은 위열(僞劣)제품생산죄로 기소되었다. 이 사건은 31일아침부터 저녁 10시경까지 심리를 계속했다. 기나긴 14시간의 법정심리에서 산루의 사건이 일어난 경위를 개략 알아볼 수 있었다. 텐원화등 4명의 경영진은 여러번 이렇게 왜곡된 행위를 한 배후는 사실 소위 업계논리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설명하고자 하였다.

 

텐원화는 최후진술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죄를 뉘우쳤다. 그리고 법정에서 산루로 인하여 상해를 입은 환아(患兒)와 그 가족들 그리고 전국인민에게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텐원화는 그녀가 기소된 죄책을 모두 지겠다고 했다: "만일 환아의 건강과 바꿀 수만 있다면, 법률의 어떤 제재도 받아들이겠다"

 

그러나, 텐원화의 변호사는 법정에서 만일 국가감독의 결핍과 업계기풍의 잘못을 모조리 산루와 텐원화에게만 책임을 묻는다면 그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이는 보통재판이 아니다. 비감한 분위기가 넘쳐났다. 바로 이 재판에서 산루사건이 드러나기 전의 수수께끼와도 같았던 10개월이 밝혀졌다.

 

검사기관에 멜라민분유의 출처를 숨기다

 

2007년, 산루의 판매액은 103억위안에 달한다. 이미 외자를 도입한 산루는 다음 단계로 상장을 진행한다는데 아무런 의심도 없었다. 그러나, 바로 이 잘나가던 시기에,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재난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2007년 12월, 산루집단은 처음으로 소비자고발을 받는다. 일부 영유아가 먹는 산루집단의 영유아시리즈 분유를 먹은 후 오줌에서 붉은 색의 침전물이 나오는 등의 증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때는 2008년 9월, 멜라민분유사건이 전면적으로 드러나기 10개월 전이었다.

 

법정의 진술을 보면, 가장 먼저 분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기술, 신제품공법연구개발을 책임진 산루의 전 부총경리 왕위량이었다.

 

2008년 3월, 분유사업부는 이 사실을 알고난 후, 왕위량은 당시에 열이 오르는 등의 이유때문이라고 생각했다. 4월말이 되어서, 소비자들의 분유품질에 대한 투서가 갈수록 늘었다. 그제서야 분유에 품질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당시 산루집단의 동사장이던 텐원화는 5월 중순, 그녀는 처음으로 이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5월 12일, 그녀를 팀장으로 하는 품질문제조사팀을 만든다. 왕위량이 기술분야팀을 책임진다. 석사, 박사들로 구성된 팀원들은 술파닐아미드류, 아미노산, 퓨린등 오줌에 결정체를 나오게 할 수 있는 원소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검사했었지만 검사결과는 모두 합격이었다.

 

텐원화의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후 산루는 소비자와 공동으로 여러 성급 및 국가급의 검사센터에 의뢰하였다. "다만 아주 아쉬운 것은, 이들 검사를 맡긴 제품이 모조리 합격제품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권위있는 검사기관들이 제대로 작용을 하지 못한 배경에는 "멜라민"이 당시 아직 국가가 규정한 유제품에서 반드시 검사해야하는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이에 대한 검사기준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관한 검사기준은 2008년 10월 7일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만들게 된다. "사실 우리는 '합격'의 결과를 믿지 않았습니다. 시장에서는 계속 문제가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체적으로 조사를 계속했습니다." 왕위량의 말이다. 기술팀의 조사에서 약간의 진전을 보였다. 6월 19일, 왕위량은 산루가 생산한 영유아분유에 '비유단백질소"의 함량이 국내외 동종상품보다 1.5배내지 6배가 높았던 것이다.

 

왕위량은 당시는 안에 도대체 무엇이 포함되어 있는지는 몰랐다고 한다. 7월 24일 기업의 PR팀이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2007년 미국에 수출한 애완동물식품에서 멜라민오염이 발견되었다는 보도를 보았을 때, 비로소 그들이 생산한 분유가 멜라민에 오염되지 않았는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왕위량은 즉시 16차 영유아분유를 하북성 출입국검사검역국의 검사검역기술센터로 보내어 검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기술자들에게 전문적으로 멜라민의 지표를 검사해달라고 부탁했다.

 

법정에서의 진술에 따르면, 당시 제품의 명예문제를 생각하여, 검사물품을 보내면서, 산루는 그 검사센터에 그것이 자신들의 완제품이라고 설명하지 않았고, 그저 "시장에서 짝퉁으로 적발해낸 원료"라고 말하였다.

 

검찰측이 법정에서 제출한 증거에 따르면, 하북성출입국검사검역국 검사검역기술센터의 관련인원은 산루가 검사를 요청한 제품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런 제품이라면 가축이 먹어도 심각한 결과가 날 것이라는 것이었다. 기술자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서, 계속 산루에서 검사를 요청한 제품의 확실한 출처와 용도를 추궁했다. 대답해주지 않으면, 검사결과를 주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산루는 갖은 방법을 써서 비밀을 유지했다.

 

2008년 8월 1일 오후 4시, 검사결과는 놀라운 진상을 드러냈다. 16회차의 분유중에서 15회차의 분유에서 대량의 멜라민이 검출된 것이다.

 

산루의 멜라민 '원흉'은 장위쥔(張玉軍)이라는 하북 곡주현의 농민이다. 그는 2007년초부터 멜라민이 함유된 "단백분"을 팔아서 이익을 남기기 시작했다. 10개월동안 멜라민이 함유된 "단백분"을 775.6톤을 생산했고, 톤당 8000위안 내지 12000위안의 가격으로 판매했다. 합계 600여톤을 판매했으며, 판매금액은 683만여위안에 이르렀다.

 

그의 판매선인 장얜장(張彦章)은 산루를 포함한 여러곳의 유제품기업에 판매했다. 또 다른 합작파트너인 가오쥔제(高俊杰)는 스스로 "단백분"을 제조하여 고가에 팔았다. 다만, 가오쥔제는 법정에서, 자신과 3살짜리 딸도 산루의 분유를 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유독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더욱 사람들을 경악시킨 것은, 장위진의 변호사가 법정에서 아주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장위쥔이 생산한 700여톤의 "멜라민"중 겨우 15%만이 석가장주변으로 흘러들어가서 산루에 유입되었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장가구등에서 판매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곳에서는 산루가 우유를 수매하지 않는 곳이다. 그러므로 다른 유제품기업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다.

 

"A물질" 리콜 의사결정내막

 

8월 1일 오후 5시, 하북성출입국검사검역국 검사검역기술센터의 보고서가 그녀의 사무실 책상위에 올라왔다. "나는 사건이 중대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날 밤에 바로 그룹의  경영진을 소집하여 확대회의를 개최했다. 원래의 경리회의 참석자 이외에 각급 동사들도 모두 회의에 들어오도록 했다." 텐원화가 법정에서 한 말이다.

 

회의는 저녁 9시에 시작하여 새벽 4시까지 계속되었다. 바로 이 회의에서 형세를 잘못 판단하는 바람에, 일련의 결의를 통과시켰고, 이로부터 곤경에 빠지게 된다.

 

텐원화에 따르면, 외국측 합작파트너인 뉴질랜드 Fontera는 산루집단의 동사회에서 제품리콜을 요구했다. 그러나 중국측의 한 동사는 공개적으로 리콜하는 경우 명성에 심각한 손해가 올 수 있으니, "조용히 반품"받는 방식으로 처리해도 리콜과 동일한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방안은 다수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산루의 부총경리인 항즈치(杭志奇)는 법정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이 회의에서, 사람들은 형세를 검토한 후에 당시는 올림픽 바로 직전인데, 소식이 새어나가는 경우 산루의 명성에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리하여 유제품중 멜라민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대회의의 범위내에서만 알고 대외적으로 엄격하게 비밀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회사내부와 대외선전에서 산루는 멜라민이 검출된 사실을 은닉했다. 8월 1일 회의이후, 멜라민은 산루내부에서의 화학검사서에서 일련의 다른 명칭으로 기록되었다: "A물질", "B물질".

 

그후 며칠간, 산루집단의 품질검사센터는 멜라민을 검사해내는 방법을 만들어낸다. 기밀유지를 위하여, 산루그룹은 항즈치의 처에게 위탁하여 멜라민을 검측하는 설비를 대신 구매하도록 시켰다. 교육훈련받는 인원들도 멜라민의 구체적인 이름을 듣지 못했다.

 

텐원화의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회의가 끝난 후, 산루는 일련의 조치를 취하여 사태의 악화를 막았다. 즉시, 창고를 봉쇄하고, 창고안의 영유아분유가 시장으로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조치했다. 동시에 대리상에게 통지하여 멜라민이 함유되지 않은 제품으로 시장에 나가있는 문제의 영아분유를 교환하라고 통지했다; 사백여명의 검사인원을 각 우유수거소로 보내어, '사람이 수거소를 지키는' 방식으로 각 우유수거소를 감독하여, 원유의 품질을 확보했다.

 

8월 2일 생산중단후, 산루는 곧이어 멜라민을 검측하는 시제와 검사설비를 구매했고, 8월 6일 멜라민을 검사하는 방법을 찾아낸 후, 영유아분유의 생산을 재개했다. 그리고 이후에 생산된 영아분유는 검사를 통하여 멜라민이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법정의 증언에 따르면, 멜라민이 포함된 액체우유제품은 생산이 중단되지 않았고, 여전히 시장으로 계속 흘러들어갔다.

 

8월 3일, 산루의 총경리조리 우쥐셩(吳聚生)은 항즈치의 사무실을 찾아갔다가 지시를 받는다. 그가 "비유단백질소성분"검사에서 불합격하여 영유아분유를 생산하는 가공3공장에서 입고거절된 원유를 액체우유를 생산하는 2공장으로 보내라는 것이었다. 항즈치는 그저 그에게 원유에 "A물질"이 포함되었다고만 얘끼하고, 이 물질은 "비유단백질소성분"이라고만 밝혔다. 인체에 유해하기는 하지만, 액체우유에 섞는 것은 문제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후, 원료우유에 "멜라민"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산루는 원료우유의 수매때 멜라민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전면적으로 검사하는 조치를 취했고, 멜라민이 포함된 원료우유의 수매를 거절했다.

 

텐원화는 법정에서 강조했다. 원료우유의 구매량이 대폭 하락하여, 생산능력도 대폭 위축되었다. 시장의 거대한 수요로 인하여, 각 기업들의 원유구매경쟁은 치열한 상황이었다. 시장의 압력하에, 8월 13일, 산루는 경영진들이 다시 회의를 개최하여 "변통"방법을 강구한다.

 

이번 회의에서, 텐원화는 뉴질랜드 Fontera회사로부터 얻은 자료를 내놓는다. EU의 식품중 멜라민함유기준이었다. 이 기준은 사람의 체중에 따라서, 1킬로그램당 매일 먹어도 되는 멜라민은 0.5그램이다. 만일 영아의 체중으로 환산한다면, 1킬로그램에 20그램의 멜라민은 안전치이다.

 

왕위량은 말했다. 그는 회의에서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고. EU의 기준은 20그램인데, 신중하게 생각해서 EU의 기준에서 50%를 줄여야 더욱 안전할 것이라고. 그리하여 경영진은 이미 봉쇄했던 분유중에서, 멜라민함량이 10그램이하인 것들은 풀어서 팔았다. 그후,시장의 수요는 계속 증가했다. 이 기준은 다시 15그램으로 늘어났다.

 

회의에서는 또한 이렇게 결정했다: 멜라민함유량이 20g/Kg가량인 제품으로 멜라민함량이 더욱 높은 제품과 바꿔준다. 이렇게 하여 점진적으로 멜라민이 포함된 제품을 시장에서 철수시킨다.

 

텐원화는 9월 2일까지, 8월1일이전에 생산된 문제있는 것으로 검사된 제품은 기본적으로 모두 리콜했다고 한다. 명목은 올림픽을 위하여 분유의 품질을 제고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공개적으로 문제를 설명하지 않았으므로, 어떤 곳에서는 판매상들이 반품하지 않겠다고 고집하기도 했다"

 

산루가 여러번 정부에 보고한 내막

 

멜라민의 진상이 발견된 후, 텐원화는 각각 8월 2일과 8월 29일 석가장시정부에 두번의 서면보고를 냈다. 그녀는 이 점을 법정에서 반복하여 강조했다.

 

산루는 수천자에 이르는 서면보고에서 많은 부분을 사실대로 정부에 분유가 멜라민에 오염된 상황을 담았다. 동시에, "시정부가 나서서, 관련직능부분으로 하여금 이들 '멜라민'을 불법투입하는 불량축산농가와 원유수거소경영자를 조사해주기를 앙망한다"고 하였다.

 

텐원화의 변호사인 양자간(梁子侃)은 8월 2일, 석가장시정부는 산루의 보고를 받은 후, 아주 중시했고, 즉시 업무팀을 산루집단에 파견하여 관련문제를 처리하게 했다. 다만 기업에 생산중단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때, 석가장시정부에서 팀을 데리고 나온 책임자는 주관 부시장 자오신차오(趙新朝)였다.

 

산루는 직접 자오신차오에게 제출한 8월 29일자 서면보고서에서 1개월동인 새로 증가한 20여건의 발병사례를 보고하고, "다시한번 정부에서 원료우유에 멜라민을 섞는데 대하여 조사를 해줄 것을 간청"하였다.

 

서면보고서자료는 동시에, 산루가 8월초에 일찌감치 이리(伊利), 멍뉴(蒙牛), 성위안(聖元)등 기업도 멜라민에 오염된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번 서면보고서는 마지막으로 행간에서 산루는 마치 불길한 예감이 적중한 것처럼 걱정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그러므로 문제는 관련되는 분야가 넓다. 시정부에서 적당한 시기에 관련상황을 상부에 보고할지여부를 고려해달라. 그렇게 하여야 사태의 진전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여부에 대하여 지시해달라."

 

텐원화는 8월 2일과 29일의 사이에, 산루는 여러번 시정부의 간부들에게 구도로 보고했다.

 

8월 29일의 서면보고에서는 26일동안 산루의 모든 행동은 "정부의 지시에 따라서" 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여기에는 몰래 회수하는 전략도 포함된다. 1개월의 기간동안, 석가장시정부는 산루집단에대하여 공개적인 제품리콜을 하라고 하지도 않고, 생산중단을 시키지도 않았다. 그리고 상부에 보고하지도 않았다. 이는 중대식품안전사고를 보고하도록 한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이후, 외국당사자인 Fontera는 진상을 은닉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 일을 중국의 관련부서에 보고했고, 비로소 비밀이 공개된 것이다.

 

산루사건에서, 3월에 소비자들의 투서가 급증하면서부터, 9월 13일 국가가 중대식품안전사고 1급의 메커니즘을 발동하여 산루사건을 처리하도록 할 때까지 근 반년의 시간을 허송했고, 처리할 호기를 다 놓치고, 더 많은 환아를 양산했다.

 

그후, 석가장은 시위서기, 시장에서 부시장 자오신차오까지 여러 관원이 물러났다. 이것도 당연한 일이다.

 

"최우수위기로비기업"이 "위기로비"로 무너지다.

 

멜라민분유의 결과를 초래한 또 다른 원인은, 산루가 각종 수단을 동원하여 매체가 진상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것이다.

 

이 방면의 교훈은 작년 11월에 수정된 식품안전법 초안에서 이미 경험을 받아들여서, 총칙에서 명확히 규정했다. 신문매체는 식품안전법을 위반한 행위에 대하여 감독해야 한다고.

 

8월 2일 산루가 석가장시정부에 보낸 서면보고에서는 산루가 정부에 "매체에 대한 관리감독과 협조를 강화하여 기업이 문제제품을 리콜하는데 양호한 환경을 창조하고, 이 일을 부풀려서 사회에 일련의 불리한 영향이 미치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8월 29일, 산루는 석가장시정부에 서면보고를 내면서 다시한번, "매체보도를 유효하게 통제해달라"는 것을 최우선 우려사항으로 언급했다. 보고서에서는 정부가 "매체가 선전하고 부풀리는 것을 막음으로써 소비자들이 공황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유제품시장이 흔들려서 전체 업게에 일련의 불리한 영향이 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재판에서 나온 바에 따르면, 산루가 5월에 성립한 것은 기술팀뿐아니라, 또 다른 두 명의 부총리인 차이슈웨이(蔡樹維)와 장전링(張振嶺)으로 하여금 또 다른 두 개의 팀을 이끌게 하였다. 차이슈웨이는 소비자업무처리를 책임졌고, 장전링은 매체업무를 책임졌다.

 

장전링은 증언을 통하여, 후난, 후베이에서 발생한 문제가 비교적 많았다. 텐원화는 매체업무를 잘 하라고 요구했다. 그의 증언에서는 또한 산루가 광고를 싣는 것을 통하여, 매체로 하여금 이 사건에 대한 보도를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차이슈웨이는 주로 소비자들을 다독거리면서 그들이 매체에 알리지 않도록 하는 업무를 진행했다.

 

"매체업무팀은 주야로 일을 했다. 정보가 발견되면 즉시 처리했다. 지금은 사태가 비교적 안정되었다" 이것이 8월 29일, 산루가 정부에 보고한 서면자료이다.

 

산루의 자신감은 아마도 성공적인 위기로비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2004년 4월, 안휘부양의 '큰머리' 문제분유사건때, 산루가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산루집단은 '위기로비팀'을 만들어, 동사장 텐원화가 앞장서고, 부총경리 차이슈웨이가 멀리 부양까지 달려가서 결국 성공적으로 위기로비를 완성했다. 이로 인하여 산루는 그 당시 "최우수위기로비기업"이라는 칭호까지 얻었다.

 

다만, 당시의 텐원화는 아마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바로 4년전의 성공이 4년후의 치명적인 실패를 잉태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