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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남북조)

도연명(陶淵明)이 가난하다고 불평한 진짜 원인은?

by 중은우시 2009. 1. 6.

글: 하여재(夏余才)

 

도연명은 중국의 저명한 문학가, 전원시인, 사부가(詞賦家), 산문가이다. 인구에 회자되는 작품으로는 <<귀거래사(歸去來辭)>>, <<도화원기(桃花源記)>>, <<음주(飮酒)>>등이 있다. 그리고 그는 "다섯 말의 쌀때문에 허리를 굽히지 않겠다(不爲五斗米折腰)"라고 말하는 뼈대와 품격이 있어, 후세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도연명은 한 몰락한 관료가문에서 태어난다. 증조부 도간(陶侃)은 동진의 공신으로 관직이 대사마(大司馬)에까지 올랐다. 조부인 도무(陶茂)와 부친인 도일(陶逸)은 모두 태수(太守)를 지냈다. 나중에 도연명은 부친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가정형편이 하루하루 나빠지게 된다.

 

도연명은 부친의 영향을 받아서 명리를 분토(糞土)처럼 여겼다. 도연명의 "가난"은 거의 피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도연명은 자신의 작품에서 여러번 자신의 가난한 정황을 얘기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하일장포기, 한야무피면(夏日長抱饑, 寒夜無被眠)

 

여름 낮에 주린 배를 움켜쥐고, 추운 밤에 이불도 없이 잠에 든다

 

* * *

 

경포고궁절, 기한포소경(竟抱固窮節, 饑寒飽所更)

폐려교비풍, 황초몰전정(弊廬交悲風, 荒草沒前庭)

피갈수장야, 신계불긍명(披褐守長夜, 晨鷄不肯鳴)

 

끝내 가난하나 굳은 절개를 지키며, 배고품과 추위는 실컷 맛보았네.

낡은 집에 서글픈 바람이 불고, 앞뜰은 황량한 풀들로 뒤덮였네.

거친 옷만 걸치고 긴긴밤을 견디는데, 새벽닭은 울어주려고 하지도 않네

 

* * * * *

 

환도소연, 불폐풍일(環堵蕭然, 不蔽風日)

단갈천결, 단표루공(短褐穿結, 簞瓢屢空)

 

집은 사방에 벽만 있고 가재도구 하나도 없으며, 해와 바람도 가리지 못할 정도이다.

거칠고 낡은 옷에는 기운 자국이 가득하고, 밥그릇도 텅텅 비어 있다.

 

이를 보면, 도연명이 어느 정도 "가난"했는지는 충분히 짐작이 갈 것이다. 집안을 휘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사방의 벽 뿐이다. 그것마저도 해와 바람조차 막아줄 수가 없다. 먹는 것은 겨우 한끼 먹고 한끼 건너뛰는게 다반사이며, 입고 있는 옷도 남루하여 보잘 것이 없다. 그의 유명한 <<귀거래사>>를 보면, 제일 먼저 이런 말이 나온다.

 

여가빈, 경식부족이자급(余家貧, 耕植不足而自給)

유치영실, 병무저속(幼稚盈室, 缾無儲粟)

 

우리 집은 가난해서, 농사를 지어서 먹기에 부족했다.

어린자식은 방안에 가득한데, 독에는 곡식이 남아있지 않다.

 

이런 가난한 광경은 정말 탄식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런데, 도연명이 과연 자신이 글에서 말한대로 밥도 제대로 지어먹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을까? 도연명은 관료집안출신으로, 소지주계급에 속한다. 절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빈농이 아니다. 도연명은 <<귀원전거(歸園田居)>>에서는 "방택십여무, 초옥팔구간(方宅十餘畝, 草屋八九間)"이라고 읊었는데, 여기서, "십여무", "팔구간"은 실제로 그 숫자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지만, 도연명의 약간의 상황을 알려준다. 알수 있는 바는 도연명은 일정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 현재의 무주택자이거나 세입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동복환영, 치자후문(僮僕歡迎, 稚子候門).

삼경취황, 송국유존(三徑就荒, 松菊猶存),

휴유입실, 유주영준(携幼入室, 有酒盈罇)

 

어린 하인이 기뻐서 맞이하고, 어린 자식은 문에서 기다린다.

삼경(三徑, 뜰안의 세 길)은 황폐해지는데, 소나무와 국화는 남아 있다.

어린자식의 손을 잡고 방안에 들어가니, 술이 술통에 가득하다.

 

이 장면은 위에서 본 "단표루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집안에 하인도 있고, 마실 술도 있다. 그런데, 어찌 "단표루공"일 것인가? <<귀거래사>>를 보면 우리는 심지어 다음과 같은 문구도 볼 수 있다:

 

혹명건거, 혹도고주(或命巾車, 或棹孤舟)

어떤 때는 천을 드리운 수레를 준비하도록 명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홀로 배를 젓기도 하여..

 

이 문구를 보면 그는 "수레"도 있고, "배"도 있다. 최소한 자가용을 보유하고 있는 수준이다.

 

이외에, 그의 <<여자엄등소(與子儼等疏)>>를 보면, 우리가 도연명의 약간의 경제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글 속에서 자신의 다섯 아들이 모두 한 어머니의 소생이 아니라고 하고 있다. 형제 몇사람도 그다지 화목하지 않다고 하고 있다. 형제들이 화목하지 않은 원인은 바로 재산분배문제로 형제간에 다툼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보면, 도연명은 처가 있을 뿐아니라, 첩도 두고 있고, 집안에 하인이 있을 뿐아니라, 최소한 다섯 자식이 있다. 만일 도연명이 정말 자신의 시에서 쓴 것과 같이 가난했다면, 아마도 도연명은 스스로 먹고살기도 힘들 뿐아니라, 다섯자식과 처첩, 하인은 도저히 먹여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도연명은 63살까지 살았고, 그의 자식들은 하나도 굶어죽거나 얼어죽지 않았다. 나중에 당나라때 시인인 두보와 비교하자면 도연명의 생활은 여유있고 안정되었고 부족함이 없었으며, 다른 사람이 부러워할 만했다.

 

도연명의 일생을 살펴보면, 그는 가난에 찌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크게 부귀영화를 누린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자면, 그의 가정은 '소강(小康)'의 집안은 되었다. 빈곤하여 찌들은 자라면 첩을 두지도 못했을 것이고, 자주 술을 마시지도 못했을 것이다. "배고프면 먹는 것을 가리지 않으며, 가난하면 처를 얻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도연명은 이에 대하여 모두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공무원도 도연명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될 정도였다. 거취가 자유로웠다. 생활에 보장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도연명의 생활이 점차 곤경에 빠지게 된 것은 분명히 도연명이 술을 목숨보다 좋아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도연명이 술을 좋아한 것은 확실히 황당할 정도이다. 도연명이 보기에, 하루동안 밥을 먹지 않을 수는 있지만, 술이 없으면 안된다. 그가 팽택현령을 지낼 때, 공전(公田)에 무엇을 심을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일찌기 황당하게도 술을 만드는 고량을 심으라고 한 적이 있다. 나중에 그의 처가 계속 버티고 요구하여 절반은 고량을 싣고 나머지 절반은 쌀을 심었다. 이에 대하여 도연명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현처를 얻지 못했다고 원망한 적도 있다.

 

안연지(顔延之)는 도연명의 친구이다. 도연명이 술을 목숨보다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다. 안연지가 시안군수를 지낼 때, 자주 도연명의 집으로 가서 술을 마셨다. 그리고 두 사람은 취하지 않으면 끝내지 않았다. 안연지가 시안을 떠날 때, 떠나기 전에 특별히 도연명에게 2만전을 남긴다. 이 돈은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만일 이것을 가정생활에 잘 썼다면, 가정상황이 상당히 개선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연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이 돈을 전부 술집에 준다. 그리고 자기가 술을 사마시는데 사용했다.

 

도연명은 가난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가난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상당한 기간동안 부유하게 살았다. 그저 도연명의 성격이 진솔하여 그의 집에 찾아오는 사람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술을 대접했다. 매일 술을 마시고, 끼니마다 술을 마셨다. 심지어 술을 마시지 않는 때가 없을 정도였다. 술을 살 돈이 없으면, 자기가 술을 만들었다; 술을 만들 수 없으면, 친구집에 가서 얻어마셨다.

 

만일 도연명이 일생동안 마신 술값을 모두 모은다면, 그 숫자는 놀랄 정도일 것이다. 도연명은 술을 너무나 좋아해던 것이 도연명의 생활이 점차 가난한 지경에 처한 진정한 원인이다. 도연명은 자기의 작품에서 가난을 호소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술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술을 사 마실 돈이 없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다. 자연히 투덜거리게 된다. 마실 술만 있으면, 함께 마신다. 그리고는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유연하게 남산을 바라보고)", 결국은 "사거하소도(死去何所道, 죽어버리면 어디에 얘기하겠는가)"가 된다. 관료가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도연명, 천성이 소탈한 도연명이 관직을 갖는 것은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한 것이고, 관직을 버리는 것은 집안에 재산이 있기 때문이다. 바록 "농사가 잘 안되고" "집에 불이 나더라도" 도연명에게 있어서는 술만 있으면 바로 세계를 모두 가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