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증영(曾潁)
오랜 친구인 아닝(阿寧)이 전화를 걸어왔다. 같이 차를 마시러 가자고 했다. 그건 원래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전화로 그럭저럭 핑계를 대고 사양했다. 전화를 내려놓고, 자신이 왜 그렇게 거절했는지에 대하여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거절한 것은, 아마도 거의 잠재의식의 반응이었던 것이다. 잠재의식 속에 아마도 아닝과 차를 마시는 것이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은 부담이 되어버렸나보다.
원래 나야 아닝과 경제적인 문제가 얽혀 있지도 않고, 무슨 이해충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둘은 많은 사회문제에 대하여 의견도 기본적으로 일치할 뿐아니라, 그가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몇개월간, 그가 끊임없이 투덜대는 원망들이 아마 내가 그와 차를 마시고 싶어하지 않는 원인이 된 것같다. 나는 정말로 나보다 급여가 배나 많고, 가정환경이 나보다 몇 배나 좋은 사람이 내 앞에서 사는게 힘들다고 투덜거리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다. 묘한 기분이 들고 어찌해야할 지를 모르겠다. 사실상 그에게 이런 걸 지적하기는 어렵지만, 조차담반(粗茶淡飯, 좋지않은 차와 식사)을 하고, 처자와 조용하고 편안한 생활을 보내고 있으면, 그게 원래 행복한 생활이 아닌가?
아닝은 잡지사의 부총편집인이다. 연말보너스와 이익배당을 제외하고 월급만 1만5천위안(한화약280만원)가량 된다. 그는 나보다 청두(成都)에 몇년 일찍 왔고, 일시불로 주택과 자가용을 구입했다. 몇년간 뉴스를 담당하면서, 일부 회사의 발기인주식을 샀는데, 그 주식들은 프리미엄만 최소한 10배에서 20배까지 붙었다. 그의 예쁜 처는 몇년전에 남녀쌍둥이를 낳았다. 그녀는 생활에서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여러 친구들이 부러워마지 않는다. 전혀 과장없이 말하더라도, 그는 확실한 중산계층이다. 그는 원래 즐겁고 편안한 생활을 지내야 한다.
그러나, 사실상 그는 즐겁지도 않고, 편안하지도 않다. 매번 만날 때면, 그는 발갛게 익은 쇠의자 위에 앉아있는 것같이 초조해하고 조급해하며 원망을 늘어놓는다. 그와 함께 자리한 사람들에게도 감염시킬 정도이다. 특히 최근 금융위기기간에 그는 엉덩이아래에 있는 불에 누군가가 석유라도 부은 것처럼 더욱 활활 타올랐다.
그는 쉬지도 않고 돈이 모자라고, 생활이 어렵고, 주식이 떨어졌고, 집값이 떨어졌고, 급여가 내려갔고, 직장의 광고가 줄었고, 나가서 기자회견하는데 받는 봉투가 얇아졌고, 이전에는 한무더기로 수수료를 받았는데, 지금은 한장씩 수수료를 받는다는 등의 탄식을 한다.
이것은 초조삼부곡의 제1곡이다. 억고(憶苦, 힘든 것을 생각하는 것). 이어지는 것은 제2곡이다: 사첨(思甛, 달콤했던 시절을 떠올리는 것). 현재상황에 대하여 힘들어 죽겠다는 말을 꺼집어 낸 후에는 바로 예전에 돈을 얼마나 벌기 좋았던지, 사회관계는 얼마나 잘 처리되었던지,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은 얼마나 순조로웠던지를 회고한다. 마치 다른 데서 살고 있는 것처럼. 무한히 그리워하며, 그 시절을 미화한다.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가 지금 떠올리는 그 시대의 달콤함은 그 당시에는 그가 이를 갈면서 통한해마지 않던 힘든일이었다는 것을.
초초삼부곡의 제3곡은 듣는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한다. 바로 "미래전망"이다. 이런 전망은 어떤 때는 그저 절반만 쓴 계획서이고; 어떤 때는 새벽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문득 떠올랐던 생각이며; 어떤 때는 모 상사 혹은 사장이 술자리에서 아무 생각없이 내뱉은 한마디 건의이고; 어떤 때는 아마도 뉴스를 보면서 역발상으로 생각해서 얻어낸 "발재비급(發財秘笈)"이다.
이들 계획은 술과 마찬가지로 그를 격동시켜 온 몸을 떨며, 온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되게 하지만, 술을 마시지 않은 방관자가 보기에는 난감하고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어떤 때는 그가 흥분하여 소리를 지르기도 하여, 곁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이상한 사람 다본다는 눈빛을 받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와 함께 앉아있기가 민망하여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다.
내가 보기에, 그의 이런 조급함은 원래 조급하지 않아야 할 것이었다. 금융위기상황하에서 그에게는 머나먼 풍경일 뿐이다. 주식시장이 폭락하여 70%가 되더라도, 그는 여전히 수혜자이다; 집값이 오르고 내려도 그와 같이 일시불로 완납한 주인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다. 급여가 800위안이 깍이더라도, 그저 십몇분의 1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쳐도 미디어업계에서는 그래도 높은 편이다. 그가 만일 자신의 수입지출현황을 낱낱이 기록해서 인터넷에 공개해버린다면, 아마도 가장 클릭수가 많은 페이지가 될 것이다. 졸지에 전국에 이름을 떨치지 않는게 이상할 것이다.
다만, 만사는 내 생각대로 되는게 아니다. 그의 초조함은 그가 해결해야 한다. 그의 말에 들어보면,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만일 그의 논리에 따라 그의 초조함을 본다면 내가 보는 것처럼 어리광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동정을 살만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그는 경제와 사회지위에 대하여 걱정하는데, 그는 적수공권에서 지금까지 헤쳐왔다. 그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전에 다 같이 힘들게 시작한 친구들과 비교하자면 당연히 조금 나은 편이지만, 그가 볼 수는 있고 다가갈 수는 없는 더욱 높은 곳의 생활과 비교하자면, 그는 수준이 다르다고 느끼고 있다. 이것은 마치 자동차경주와 같다. 꼴찌로 들어오는 사람은 1등으로 들어오면 얼마나 대단하게 환영받는지를 모르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빼앗아야겠다는 욕망도 안생기는 법이다. 그러나 중간에 들어오는 차들은 1등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보게 된다. 그리고 자기가 노력하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본다. 그리하여 그들은 더욱 노력하는 것이고, 죽어라 훈련하는 것이다. 그저 앞으로 나가고 진보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그 반대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사회에서, 이러한 길을 가는 통상적인 길을 상사이다. 그리하여 조심스러우면서도 억압되어 상사의 머리가 어디로 향하는지를 바라보는 것이 많은 중산계층의 선택이다. 상사가 웃으면, 그들도 즐겁다. 상사가 고민하면, 그들도 고민한다. 상사에게 맞추어가는 것이 위치를 보전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심리학이론중에서는 영합와 억압이 초조의 주요한 요소라고 한다.
이외에 중산계층은 자기의 신분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 초조함의 원천이다. 부자는 자기가 부자라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중산계층은 자신이 가난뱅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증명하는데는 표찰이 필요하다: 무슨 주택? 무슨 차? 아이는 무슨 학교? 무슨 브랜드의 옷? 어느 수준의 식당? 무슨 브랜드의 술? 이것들은 모두 사회의 양극단 부자와 가난뱅이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다. 중산계층에만 문제되는 것이다. 아닝은 자기의 생활품격을 드러내기 위하여, 자주 수천위안의 돈을 들여 시가를 사서 피운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때문이다.
아닝과 같은 중산층에게 있어서, 생활에 생활이외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 가운데 몇가지나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인가? 몇 가지는 불필요한 것인가? 아무도 확실히 구분지어 말해줄 수는 없다. 그러나 생활 자체로 되돌아가면, 엉덩이아래에 있는 그 불을 꺼버린다면, 알게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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