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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사회

중국인은 왜 아는 사람을 찾아서 일을 처리하는가

by 중은우시 2008. 12. 12.

글: 북행검객(北行劍客)

 

공자는 일찌기 남자로서의 두 가지 바램을 은근히 표현한 바 이다. 그가 한 말을 그대로 하자면, "출칙사공경, 입칙사부형(出則事公卿, 入則事父兄, 집바깥에 나가서는 공경을 모시고, 집안에 들어와서는 부형을 모신다)"인데, 요즘 말로 고쳐서 하자면, 밖에서는 충신이 되고, 안에서는 효자가 되고 싶다는 말이다. 이 두가지 요구사항은 남자로서 당연히 부담해야할 책임이자 의무이다. 다만, 공자는 전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그의 후손들은 이 말을 왜곡해서 이해한다. 이 좋은 문구를 마음대로 바꾸어 버리는데, "재가고부모, 출외고붕우(在家父母, 出外朋友, 집에서는 부모에 의지하고, 밖에 나가서는 친구에 의지한다)"가 되어버린다. 순식간에 책임이 권리로 뒤바뀌어 버린 것이다. 이런 이념의 지도하에, 중국현대사회에는 두 종류의 무리가 돌연 나타나게 된다, 하나는 "컨라로족(老族, 부모에 빌붙어 사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카오여우족(友族, 친구에 빌붙어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요즘 "인맥(人脈)"이라는 말이 상당히 유행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한 사람의 인맥이 왕성한지 아닌지를 가지고, 그의 사회적 지위와 능력의 고저를 따지는 중요한 표지로 삼기도 한다. 그리하여, "아는 사람 문화(熟人文化)"는 사람들간의 교류에 있어어 아주 중시되고 숭배되는 일종의 문화가 되었다. 

 

중국인들은 왜 이렇게 아는 사람을 찾는데 열중할까? 그 원인을 따져보면, 아주 재미있다.

 

가장 표면적이고,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당연히 아는 사람이 있으면 일처리가 잘된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감정을 중시한다. 감정은 때로는 법보다 크고, 이치보다 강하다. 마찬가지의 한가지 일에 대하여,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완전히 다른 두 개의 기준으로 대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아는 사람을 가능한 한 찾아서 처리하고, 아는 사람이 도저히 없으면, 이리저리 연결해서라도 아는 사람을 찾아서 선을 놓도록 한다. 어떤 때는 결과가 완전히 같고, 아는 사람을 찾는 것이 일도 많아지고, 잘못될 경우도 있지만, 아는 사람을 찾지 않으면 마음 속으로 자신이 없어진다. 골치아픈 일이 생기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때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아는 사람을 찾아서 부탁해야 한다. 아는 사람 혹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까지 찾아야 한다. 그리하여 일을 해결해야 난관을 넘어갈 수 있다. 어려운 일에 닥쳐서 아는 사람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의 주변인물로 취급된다. 사회능력이 없고,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된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교통위반으로 경찰에 붙잡힌 경우에, 이치대로라면 위반을 인정하고 벌금을 내면 된다. 얘기할 것도 없다. 그러나, 자기가 보통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로 이렇게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경찰이 차를 세우면, 첫번째 반응은 바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는 것이 된다. 자기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같은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빠른 시간내에 말빨이 있는 사람을 찾게 된다면, 대사화소, 소사화료(大事化小, 小事化了, 큰 일은 작은 일로, 작은 일은 없던 일로)되어 버린다. 거의 모든 교통위반운전자들이 아는 사람을 통하여 부탁하기때문에 경찰들은 골치가 아파서, 차를 세운 후에 첫번째로 하는 일이 위반자의 핸드폰을 몰수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을 찾을래야 찾을 수없게 하는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이런 조치로 교통위반건수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아는 사람을 찾는 두번째 원인은 바로 체면때문이다. 어떤 일이 있을 때, 아는 사람을 찾지 않아도 일처리에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왜 어떤 사람은 그래도 아는 사람을 찾는가? 다른 게 아니다. 그저 자기의 인간관계를 자랑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병원에 진찰받으러 갈 때, 아는사람이 없어도 진찰받는데 문제는 없다. 그러나, 만일 아는 사람을 찾아서 데려가면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비록 똑같이 진찰을 받는 것이지만, 정신적인 만족감은 배가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 호텔에 가서 식사를 한다고 하면, 누가 가든 손님은 왕이다. 서비스기준도 똑같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가 특별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하여, 호텔의 지배인이나 매니저를 오라고 하여 술을 따르게 한다. 그 뜻은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봐라. 내 신분은 특수하다. 호텔의 지배인까지 술을 따라주지 않느냐'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상황하에서 사람들은 아는 사람을 더욱 찾기 마련이다. 이는 무슨 일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아는 사람을 통하여 자기가 대단하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원인이 있다. 바로 아는 사람이 없으면 안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아는사람 사회이다. 사람의 도덕관념도 기본적으로 아는 사람 사이의 개인적인 덕이다. 즉, 많은 사람에 있어서 도덕이라는 것은 그저 아는 사람에 대한 도덕이다. 예를 들어 신용이나 관심도 모두 그저 아는 사람에게만 해당한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도덕적 의무를 행할 의무가 없다. 한 사람이 만일 아는 사람을 사기치면, 마음에 꺼리는 점이 있고, 항상 불안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모르는 사람을 사기치면, 아예 미안한 마음조차 없을 것이고, 편안히 생활한다. 뒤집어 말하자면, 한 사람이 모르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 생활한다면, 아는 사람들 사이의 도덕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항상 자신이 모르는 사람에게 속지 않을까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낯선 곳에 가면, 첫번째로 하는 일이 가능한 한 동창, 고향관계를 찾는다. 자신의 아는사람무리를 신속히 만들어가는 것이다. 일단 아는사람무리가 만들어지면, 사회에 대하여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한 무리의 역량이 된다. 만일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군가가 손써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손써주는 것이다.

 

다만, 어찌되었던, 중국인들이 아는 사람을 찾아서 일처리를 하는 것은 바로 아는 사람이 없으면 확실히 "문도 통과하기 어렵고, 얼굴을 보기도 어렵고, 일을 처리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사회에 규범화된 질서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아는 사람을 찾아야만 비용을 낮추고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만일 일마다 확정된 기준이 정해져 있어서, 누가 가더라도 똑같이 처리된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더 이상 아는 사람을 찾아서 일처리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