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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외국의 중국관

"황화론(黃禍論)"의 유래

by 중은우시 2008. 12. 29.

 

 

 

글: 이본의(李本義)등 편집

 

유럽은 이전까지 몽골의 서정(西征)을 유사이래 최대의 황화(黃禍)라고 불렀었다. 그 후, 비록 당시 중국이 가난하고 힘이 없어서, 이런 저런 나라들에게 당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서방국가들은 주목을 하고 있었다. 특히, 나폴레옹은 중국을 "동방의 잠자는 사자"로 부르며, "중국이 일단 깨어나면 세계는 깜짝 놀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유럽인들은 중국이 강대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중국을 대표로 하는 황색인종이 구미의 백인종에 대하여 위해가 되고 위협이 된다는 내용을 그후 대거 선전하게 된다. "황화론"은 바로 이런 토양하에서 자생하고 만연하게 된 것이다. "황화론"은 실제로 일종의 중국에 대한 반동이론이다. 이를 처음 제기한 사람은 악명이 자자한 러시아 무정부주의자 바쿠닌(1814-1876)이다. 1873년에 그는 <<국가제도와 무정부상태>>라는 책을 출판하는데, 제일 먼저, 소위 "동방에서 오는 거대한 위험"에 대하여 대거 떠벌리며,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왜곡과 멸시의 내용을 답는다. 동방의 중국은 앞으로 제정러시아의 안전에 피할 수 없는 위협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 목적은 바로 제정러시아의 확장주의정책과 동방정복에 대하여 여론조성을 하는 것이었고, 세인의 이목을 가리기 위한 것이었다.

 

1890년대에 일부 서양인들의 반중국논조는 최고조에 달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지역에는 미국의 화교를 전문적으로 죽이고 박해하는 "사지당(沙地黨, Sandlots)"이 나타나고, 1882년에는 미국국회에서 <<배화법안>>을 통과시켜, 중국계를 대거 배척하게 된다. 카나다, 미국, 네덜란드등의 국가에서는 백인과 화인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률도 통과시킨다. 19세기 말이 되면서, "황화론"은 세계각지에서 대거 성행한다.

 

"황화론"을 고취시킨 대표적인 인물은 독일황제 빌헬름2세(Kaiser Wilhelm II)이다. 이는 1894년-1985년의 청일전쟁후, 서방제국주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방대한 중국용이 이미 서양화된 일본이 이끌어 함께 굴기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서방에 '황화론'이 대거 들고 일어난다. "황화"는 독일어로 Gelbe Gefahr라고 하였다. 빌헬름2세는 1895년 화가 Knackfuss를 시켜서 악명이 자자한 유화 <<황화도(黃禍圖)>>(일명: "세계 각민족이여, 너희의 가장 진귀한 재산을 보호하자")를 그려서 제정러시아황제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내고, 명령을 내려 이를 인쇄하여 널리 퍼트린다.

 

<<황화도>>의 화면은 노르만민족을 상징하는 천사가 섬광보검(閃光寶劍)을 들고있고, "황화"를 상징하는 부처(일본을 가리킴)가 화룡(중국을 가리킴)을 타고 검은 구름을 몰고 유럽으로 다가오고 있다. 천사는 유럽열강의 각 나라 수호신들에게 말하고 있다: "황화가 이미 다가오고 있다. 이에 대하여 유럽민족은 연합해서, 함께 '황화'를 막아내고, 자신의 신앙과 나라를 지켜야 한다."   이리하여, <<황화도>>는 졸지에 유명해지고, 황화론은 구미에서 아주 성행하게 된다. "황화론자"들은 중국을 대거 왜곡하고 추화하며, 중국인에 대하여 각종 욕을 해대며, 중국이 강대해지고, 각성하는 것을 겁낸다. 그들은 대거 "황화론"을 고취시켰는데, 이는 실질적으로는 열강이 중국을 나눠먹기 위한 여론조성이었고, 온갖 방법을 강구하여 중국이 독립, 통일, 강대해지는 것을 막고자 했다.

 

유럽작가 Mattew Phipps Shiel을 "황화"라는 명사를 사용했다. 그는 1898년에 발표된 단편소설집의 제목을 <<황화(The Yellow Peril")>>라고 하여 출판한다. Shiel은 원래 혼혈아인데, 이 소설집에서 중국에 대한 반감을 강력하게 표시하고, 이로써 명성을 얻는다. Shiel의 소설의 배경은 1897년에 두 독일선교사가 교주(청도)에서 피살되고, 당시 독일은 이를 빌미로 산동의 조차지를 얻어낸 때였다. 1899년에는 의화단의 난이 일어나, 이 사실이 유럽에 널리 보도된다. 그러면서 서방에서는 이를 적극 선동하여, 아시아민족 특히 중국에 대한 편견을 퍼트린다.

 

그러나, 제1차세계대전은 사실로 보여준다. "위해"를 가하는 것은 중국이 아니었다. 바로 선진문명을 표방한 서방강도들 자신이었다. 원래 극력 '황화론'을 고취시켰던 백인종인 독일과 러시아는 숙적이 된다. 그리고 이교도인 중국은 잠시 기독교국가인 영국, 미국, 프랑스, 미국, 러시아등과 맹방이 된다. 전쟁중에 베르됭전투, 베르사이유조약을 강제한 것은 모두 빌헬름2세의 백인형제들이었다. 이 모든 것은 빌헬름2세에 대한 절묘한 풍자일 뿐아니라, "황화론"은 그 자체로 근거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외에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걸쳐, 제국주의가 중국을 분할하고 있을 때, 중국사회는 점차 반식민지반봉건의 심연으로 빠져든다. 여기에 군벌혼전까지 겹쳐서 국가가 사분오열되고, 백성은 살기 힘들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어찌 서양열강에 위협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확실히 "황화론"은 서방인종주의자들의 인종차별과 식민주의자들의 침략의 필요에 따라 허구의 가설인 강도이론이다. 그들은 중국, 중국인, 중국민족, 중국문화에 대하여 선입견을 가지고 적대시하고 악의로 왜고가고 뿌리깊은 편견을 드러냈다. 그들은 중국을 분할하여 나누어가지고도, 오히려 중국을 "화의 근원"이라고 멸시했다. 그들은 중국인민을 압박하고 착취한 후에도 오히려 중국인이 "황화"라고 공격했다.

 

한가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이런 황당한 이론이 반세기간 성행했고, 게다가 지금까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매번 중국에 부흥의 기운이 보이기만 하면, 서방인들은 "황화"의 경고등을 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