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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그림

<<야연도(夜宴圖)>>의 주인공 한희재(韓熙載)의 진실

by 중은우시 2008. 12. 28.

 

 

 

작자: 미상

 

<<신오대사>>를 읽다보니, 여러 곳에서 낯익은 이름이 보인다. 바로 한희재(韓熙載)이다. 이 한희재는 바로 지금까지 전해지는 전세명화 <<한희재야연도>>의 주인공이 아닌가?

 

오대의 대화가인 고굉중(顧閎中)의 이 <<야연도>>는 연환장권(連環長卷)의 방식으로 남당명신 한희재의 야연에서의 성대하고 종정성색(縱情聲色)의 장면을 그려냈다. 그림 속, 야연에 참가한 사십여명의 모습은 각각 다르고, 노래하는 얼굴과 웃는 모습이 모두 살아있는 것같다. 이리하여 야연의 성황은 아주 생생하게 그려낸 것이다.

 

이 한희재는 왜 이렇게 종정셩색, 취생몽사(醉生夢死)하였는가?

 

일설에는 남당의 후주 이욱(李煜)이 한희재등 북방에서 투항해온 관리들에게 의심을 품고 있어서, 한희재는 고의로 성색에 탐닉하고, 그저 세상을 즐기는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남당후주에게 자신이 아무런 정치적 야심이 없음을 보여줌으로써 스스로를 지키려 했다는 것이다.

 

이후주는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암중에 고굉중, 주문구(周文矩)의 두 신하를 보내어 한희재의 모습을 사실대로 그려오라고 시킨다. 한희재는 고굉중, 주문구가 온 의도를 알고는, 야연을 연출했다는 것이다. 고굉중은 놀라운 기억력에 의지하여 그림으로 그리는 재주가 있어, 이 야연의 성황을 그려냈다고 한다. 이후주는 이 그림을 보고난 후에 비로소 한희재등에 대하여 더 이상 경계하지 않았다고 한다.

 

상술한 전설은 역사적 사실과는 많이 다르다. 한희재가 종정성색한 것은 고의로 위장한 것은 맞다. 그러나, 또 다른 숨은 사정이 있다. 그는 이후주가 의심할 것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이후주가 자신을 중용할까봐 두려워한 것이다. 종정성색의 진실한 원인은 이후주가 자신을 재상으로 삼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한희재는 원래 큰 포부를 지닌 인물이다. 그의 재주로는 큰 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 후당(後唐) 동광년에 진사가 되며, 그의 문장과 서화는 한때 세상에 이름을 떨친다. 나중에 그의 부친(북해무장)이 사건에 휘말려 주살된다. 그리하여 한희재는 강남으로 도망쳐 남당에 의탁한 것이다.

 

<<신오대사>>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희재가 남으로 도망칙 전에 친한 친구 이곡(李谷)과 술을 거나하게 마시면서 이렇게 말한다: '강좌(江左, 강남)에서 나를 재상으로 삼으면, 나는 반드시 북으로 치고 들어와서 중원을 평정할 것이다." 그러자, 이곡은 "중원이 만일 나를 재상으로 삼으면, 나는 강남을 바로 취하겠다"고 한다. 이를 보면, 한희재가 강남으로 도망칠 때는 큰 일을 하고자 했었음을 알 수 있다.

 

나중에, 이곡은 장군이 되어 군대를 이끌고 회남을 공격하여 차지한다. 그러나, 한희재는 아무런 업적도 이루지 못한다. 한희재가 평범하고 무능한 것인가? 아니면 남당이 한희재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인가? 답안은 둘 다 아니라는 것이다!

 

한희재는 일찌기 남당중주(南唐中主) 이경(李璟)의 총애를 받았다. 후주 이욱이 즉위한 후에도 계속 그를 중용했다. 그를 이부시랑 겸 수국사에 임명했다. 오래지 않아 화폐를 바꾸는 문제로 한희재는 당시 재상 엄속과 어전에서 논쟁을 펼친다. 한희재는 엄정하게 반박하여 목소리가 조정을 진동시켰다.

 

이후주는 그가 예의에 어긋났다고 보고, 비서감을 맡겨서 도서관리를 하게 한다. 그러나, 1년도 되지 않아 다시 그를 중서시랑, 근정전학사에 임명한다. 이것은 한희재가 생전에 받은 가장 높은 관직이었다.

 

후주는 그의 두 아들을 청원공, 선성공에 임명한다. 이것을 보더라도 이후주가 그를 많이 아꼈음을 알 수 있다. 이후주는 심지어 한희재가 "충성스럽고, 직언을 잘하니, 그를 재상으로 삼고싶다"고 하였다. 당시, 이후주는 한희재를 재상으로 삼아, 조정의 대사를 맡기고자 했다.

 

문제는 이후주가 통치하던 시기의 남당은 이미 위기에 빠져 있었다. 한희재는 이후주가 도저히 가망없는 군주라는 것을 알았다. 남당의 쇠망은 필연적이고 한 사람의 힘으로 이를 되돌릴 수 없었다. 한희재는 평소에 직언을 많이 하여, 조정에 적이 많았다. 만일 재상의 자리에 오른다면, 아마도 정적의 암산을 받아 죽거나, 아니면 "망국지상(亡國之相)"이 될 것이었다.

 

<<남당서. 한희재전>>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당시의 한희재는 "중원왕조는 계속하여 강남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일단 진명천자가 출현하면, 남당은 아마도 갑옷을 벗을 시간조차 없을 것이다. 이런 때 재상의 자리를 받는다면, 어찌 천고의 우스개꺼리가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한 바 있다.

 

이때의 한희재는 이미 완전히 예전의 포부를 잃었다. "망국지상"이 되는 것보다는 종정성색이 낫다고 보았다. 오늘 술은 오늘 마시고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내심은 아마도 아주 괴로웠을 것이다. <<야연도>>에 나오는 한희재의 표정은 그다지 기뻐보이지 않고 마음이 침중한 것같다.

 

역사기록에 따르면, 한희재는 이후주가 그를 재상으로 삼으려 하자, 바로 집안에 가기(家妓) 40명을 들이고, 매일 친구들을 불러모아서, 밤에 연회를 베풀며 한껏 즐기고 놀았다. 나라가 망할 지경인데, 조정대신이 미색과 염무에 빠져 있으니, 곧바로 사람들로부터 탄핵을 받는다. 이후주는 아주 실망한다. 이렇게 된다면 한희재를 재상으로 삼기 힘들겠다고 생각한다.

 

이 "망국지상"은 피했다. 그러나, 태자우서자, 분사남도로 강등되어, 홍주에 유배된다. 한희재는 즉시 모든 가기를 내보내고 자기 혼자서 유배길에 오른다.

 

이후주는 그 사실을 듣고는 이 사람은 아직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즉시 그의 관직을 회복시키고 남겨둔다. 그러나, 좋은 세월은 오래 가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내보냈던 가기들을 하나 두 한희재가 불러들였다. 새로운 야연이 시작된 것이다...이후주는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나도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때부터 한희재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버린다.

 

한희재는 69세로 죽는다. 이후주는 탄식하면서, "나는 시종 한희재에게 재상의 자리를 주지 않았다"고 하면서 한희재를 평장사에 추증한다. 즉 재상의 직위를 내린 것이다.

 

한희재가 죽을 때는 이미 집안이 아주 가난했다. 관과 수의조차 이후주가 내려 주었다. 이후주는 그를 동진의 명신 사안(謝安)의 묘 곁에 묻어주게 한다. 그리고 남당의 유명한 문인 서현(徐鉉)으로 하여금 한희재의 묘지명을 쓰게 한다. 그리고 서현의 동생 서해는 그의 유고를 모아서 책으로 만든다. 이런 여러가지를 보면, 이후주는 한희재를 정말 아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