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경제/중국의 기업

거란스(Galanz)의 실패한 변신

by 중은우시 2008. 12. 25.

글: 소동(蘇東)

 

양소현(梁昭賢, 거란스의 CEO)는 확실히 조금 긴장한 것같다. 그의 손바닥에는 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것을 감추려는 듯, 양소현은 일어나서 주방근처로 가더니 포도주를 한 병 꺼내와서 한 잔을 따랐다.

 

이런 긴장은 아마도 그가 내심으로 초조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거란스(格蘭仕, Galanz)가 소재한 순덕(順德) 용계진(容桂鎭)에서 가전업계에 있는 대다수 사람들의 평가는 "아들이 아버지만 못하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이러한 결론을 낸 근거는 두 가지이다: 일찌기 거란스의 패업에 혁혁한 공을 세운 바 있는 전자레인지의 시장점유율이 메이디에 추격당하고, 심지어 추월당할 위험까지 발생했다; 양소현이 심혈을 기울여 시작한 "에어컨왕국"의 꿈은 거란스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더구나 그가 일찌기 2005년에 다짐했던 거란스가 '세계공장'에서 '세계브랜드'로 성장하겠다는 전략적 전환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양소현은 거란스그룹의 집행총재이다. 그는 가족기업의 계승자이다. 부친대의 그림자 아래에서, 그는 거란스에 산업 업그레이드와 다원화 개혁을 시작했고, 이를 기반으로 가족기업의 운명을 바꾸어 보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나, 이런 담대한 실험, 약간은 모험적인 조급함이 거란스를 진흙탕에 빠트리지는 않았는가?

 

답안이 아직 나온 것은 아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낙관적이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아마도 연말에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양소현이 노력하고 근면하다는 점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양소현은 통상 매일 아침 7시에 회사에 출근한다. 밤 10시에야 사무실의 불이 꺼진다. 그는 한 때, 일주일간 매일 아침 7시에 고위경영진회의를 소집하기도 해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너는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는 고려해줘야 할 것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나만 버틸 수 있으면 된다. 왜냐하면 나는 매번 서로 다른 사람들과 회의하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

 

양소현은 일선으로 찾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매일 오후에 그는 생산일선을 돌아본다. 양소현은 "왕왕 일하면서 해답을 찾아내지 못할 때, 일선에 가서 현장에서 일하다보면 해답을 찾는 경우가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너와 거의 같다."

 

양소현은 계속하여 자신에게 압력을 가한다. 양소현의 해석은 "매일 눈을 뜨면, 나는 바로 거란스의 4만직원, 수백억위안의 판매와 직면해야 한다. 나는 반드시 언제 어느때건 전면으로 달려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매일 자신에게 압력을 가해서 가장 좋은 컨디션으로 기업을 끌어나가야 한다."

 

"이전에 우리의 조직은 대통일, 대공장, 대생산, 대판매의 중앙집권식 조직이었다. 제품라인은 갈수록 세분화되고, 기업규모든 갈수록 커지는 상황하에서, 이미 기업발전의 수요에 맞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리하여, 변혁의 핵심을 분권에 두었다. "새로운 소유자와 경영자의 관계를 건립하여 경영권을 충분히 아래로 내려보내고, 2급단위를 중심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양소현은 이렇게 하는 것이 "거란스의 향후 발전에 대하여 전략적인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야심만만하기는 하지만, 업적으로 보면, 양소현은 성공했다고 할 수가 없다. 그의 부친이자 거란스의 창업자인 양경덕(梁慶德)은 그에게 전혀 압력을 가하지도 않고, 그가 잘못했다고 지적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양소현은 어느 정도 바늘방석에 앉은 것같다. 그는 자신이 거란스를 변혁시키는 과정에서 너무 서둘렀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전에 우리는 항상 전자레인지를 하는 사고와 방법으로 에어컨을 했다. 예전의 방식을 쓰고 사람을 쓰면 시장에서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기초적인 일들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많은 시장공간과 기회를 놓쳐버렸다."

 

신구충돌

 

원래, 양소현은 거란스가 "가격도살자"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했다. 거란스 전자레인지는 가격전을 통하여 전세계 50%이상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윤율은 겨우 3%에 불과하다. 그러나, 거란스가 고급화를 지향한다고 결정했을 때, 마침 경쟁상대방에게 숨쉴 기회를 주게 되었고, 스스로에게 후환을 남기게 된다.

 

사실상, 거란스가 연속 여러해동안 가격전을 펼치자, 하이얼, 삼성등 가전브랜드는 2005년을 전후하여 전자레인지시장에서 퇴출하기로 결정한다. 가장 강경한 적수인 LG도 저급시장에서 퇴출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메이디의 동사장인 하향건(何享健)은 일찌기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만일 전자레인지가 계속 이렇게 결손을 낸다면, 메이디는 더 안하겠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거란스에게 거대한 시장공간을 넘겨주는 것이 된다. 그러나, 바로 이 해에 거란스는 가치노선을 걷기로 하고, 부분적으로 전통적인 가격전수단을 포기하게 된다.

 

메이디는 최대의 수혜자가 된다. 시장점유율은 급속히 상승했다. 일거에 이전에 결손을 보던 국면에서 벗어났다. 돌연 찾아온 좋은 운세로 메이디는 지금 거란스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 국내시장에서의 점유율이 거란스를 바짝 뒤쫓는다. 어떤 조사기관의 데이타에 따르면, 2007년 거란스의 전자레인지시장점유율은 이미 53%에서 46%로 떨어졌고, 메이디는 40%로 상승했다.

 

만일 거란스가 전자레인지분야에서 겨우 영지를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면, 거란스의 에어컨전략은 골치를 앓고 있다.

 

일찌기 2000년에 거란스를 넘겨받을 때, 에어컨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부르짖던 양소현은 이렇게 약속한 바 있다. 거란스를 에어컨에서 다시 한번 전자레인지 세계제일의 휘황을 누리게 하겠다고. 양소현이 취임한 4개월후에, 거란스의 제1차 에어컨이 생산되었으니, 그의 결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란스 에어컨의 시작은 아주 놀라웠다. 첫해에 국내판매량이 27만대에 달한다. 그러나, 양소현에게 의외의 사건이 발생한다. 2001년 춘란을 위시한 에어컨브랜드들이 솔선하여 가격을 내린 것이다. 상대방들이 거란스의 독문무공을 먼저 사용해버렸다. 자본의 대거진입으로 에어컨은 폭리사업에서 미리(微利)사업으로 바뀐다. 이것은 거란스에게 커다란 타격이었다. 아직 규모의 우세도 확립하지 못한 거란스에게, 돌연 찾아온 가격전에서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전자레인지의 소액이윤모델은 당시 에어컨 업계에서는 전혀 써먹을 수 없었다." 거란스의 한 경영진의 말이다. 거란스는 할 수없이 "대우회"전략을 채택한다. 국내시장을 피해, 가장 잘아는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해외시장의 활황은 거란스를 아주 난감한 국면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고, 양소현의 야심을 자극했다. "생산량부족은 거란스에어컨이 국내에서 발전하는데 큰 장애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양소현은 2003년말, 20억위안을 투자하여 전세계 최대의 에어컨생산기지를 건설하기로 결정한다. 이는 거란스의 거의 전부의 "재산"을 투입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외판매업무의 신속한 하락은 양소현으로 하여금 마케팅중심을 중국국내로 되돌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거란스는 내수시장에서 강력하고 완비된 에어컨판매체계를 갖추지 못하였다는 것이 또 하나의 문제로 등장한다. 양소현은 할 수없이 외부의 힘을 빌린다.

 

"거란스는 업계내의 전문가들을 여럿 초빙하였다. 그들은 거란스가 전문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다. 만일 그들이 담담한다면 내수는 300만대까지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거란스의 상무부총재인 유요창(兪堯昌)은 이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화를 삭이지 못했다. 그는 거란스의 중산에어컨생산기지가 막 생산개시하였으므로, 판매가 시급했다: "그래서 사장은 아주 기뻐했다. 당시에 그 사람들에게 각자 BMW를 한 대씩 주었다. 그들이 취임하자 우리 사람을 모두 내보냈다."

 

나쁜 결과는 곧 드러난다. "우리가 있을 때는 비수기의 판매수익금이 4.8억위안에 달했다. 그러나, 그들이 온 후에 채택한 것은 은행과의 3자결제방식이었다. 판매수익금은 겨우 2억위안정도였다. 안되는게 분명했다." 유요창의 말이다.

 

2005년, 거란스는 업계내에서 제일 먼저 칼라에어컨을 내놓는다. "이것은 중요한 혁신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고급품으로 팔고, 프로모션도 하지 않고, 가격인하도 하지 않았다. 칼라에어컨의 원가는 사실 원래 그다지 더 많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만일 칼라에어컨을 잘 팔려면, 대리점에 이익을 좀 더 나눠주어야 했다. 그랬다면 반전의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호기는 경쟁상대방의 뒤따라하기전략으로 헛되이 흘러갔다.

 

내수외에, 최근들어 거란스에어컨은 수출도 그다지 좋지 않다. 메이디(美的, Media), 거리(格力, Gree)등의 브랜드와 이미 상당한 차이가 생겼다. 유요창은 원인을 수출가격이 너무 높은데 돌렸다. "우리는 대당에어컨의 수출평균단가가 190여달러이다. 메이디는 겨우 140여달러이다" 유요창이 보기에, 이는 소위 전문가들에게 속은 것이다. 명백히 거란스의 규모와 가격으로 승리를 낚는 종전의 전략에 위배된다.

 

바로 이러하기 때문에, 그는 거란스의 에어컨에 효과적인 조치를 취하면, 즉, 대폭 제품가격을 내리면, 수출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제조와 원가통제측면에서 우리는 믿음이 있다. 비록 우리의 규모는 아주 크지 않지만, 우리는 산업체인집중측면에서는 업계내의 다른 기업들보다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제품은 절대다수가 자주생산인데, 이렇게 하여 원가총액에서 가장 앞설 수 있다."

 

나중에 낙하산부대들이 이직하고, 거란스에어컨의 직업경영진팀들이 무너졌다. 거란스는 할 수 없이 원래의 팀을 데려왔다. 그러나, 지금의 에어컨실적에 대하여, 한때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유요창은 "말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거란스에어컨의 판매숫자는 내부적으로 비밀이다. 수년전에, 거란스 에어컨의 내수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60만대에 달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40만대수준으로 떨어졌다(숫자는 소식통이 제공한 것이고 거란스의 확인은 받지 않았다. 거란스가 발표하는 수치와는 차이가 크다).

 

만일 숫자가 하락한 것이 아주 명확하지는 않은 정도라면, 더욱 큰 것은 결국 기회의 상실이다. 2003년까지, 거란스는 메이디, 거리와 그다지 차이가 크지 않았다. 지금은 몇개 기업의 상황은 이미 천양지차이다. 거리, 메이디의 에어컨판매는 모두 천만대를 넘어섰다. 총생산액도 각각 거란스의 수배이상이다. "이는 거란스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양소현은 여전히 에어컨에 집착한다: "다른 프로젝트를 또 성공하더라도, 거란스는 성공한 것이 아니다. 에어컨을 성공해야, 거란스는 진정으로 성공한 것이다." 양소현의 말이다.

 

가격전으로 되돌아가는가?

 

외부에서 보기에, 거란스의 변혁은 너무 빠르고, 이미 문제의 근원으로 되돌아갔다. "2005년이후, 거란스에어컨의 담당인원은 전혀 안정되지 않았다. 1년에도 여러번 사람을 바꾸었다." 한 익명의 업계인사가 한 말이다.

 

2005년 8월, 양소현은 호북거리의 동사장인 낭청(郞靑)으로 하여금 거란스에어컨판매회사의 총경리를 맡게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겨우 4개월후에, 랑청은 이직했다. 그 자리를 이어받은 공안지는 겨우 7개월만에 다시 이직한다. 그후 거란스의 원로인 진서명이 담당했다. 인사변동이 빈번한 것은 올해까지도 이어진다. 1년동안 에어컨판매의 실제담당자는 감건국, 장위영, 육해화등으로 계속 바뀌어 갔다.

 

인원조정에 부수된 것은 조직구조의 계속적인 조정이다. 종류에 따라 판매회사를 나누어만든 후, 2006년 11월, 거란스그룹은 다시 3개판매회사를 합병하여, 거란스중국시장판매총공사를 만든다. 그리고 한위가 총경리를 맡는다. 다만 2007년 9월 세 개를 하나로 합친 후 다시 해체한다. 각각 전자레인지, 에어컨, 생활가전의 2급자회사로 나누어, 생산,공급,판매의 일체화를 이룬다.

 

채널측면에서, 이전에 거란스는 분부에 마케팅센터를 두고, 다시 각지역에 판사처를 설립했다. 그런데, 산동을 한번 시찰한 후에 양소현은 아이디어를 얻어서, "판매플랫폼을 전방으로 이전한다. 이전의 간단한 마케팅센터, 판사처에서 판매회사를 만드는 것으로 바꾸어 시장반응을 빠르게 한다" 이후 전국에 52개의 판매회사를 만들고, 현지대리상으로 하여금 지분참여하게 하였다.

 

"이렇게 한 것은 생산과 판매를 나누는 것이다. 그리하여 반응속도가 느리게 되었다." 이외에, 각자 독립계산하다보니, 거란스생산부서는 제품을 판매부서에 파는 꼴이 되었다. 생산부서는 더 많은 이윤을 취득하기 위하여, 통상적으로 가격을 높였다. 이렇게 하여 판매부서에 도착할 때면 가격이 너무 높아져 있다. "많은 주문은 이것때문에 놓쳤다. 손실이 너무 컸다." 거란스에어컨회사 총경리 한위의 말이다.

 

유요창은 "이전에 우리는 확실히 일부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일부 생각에 홀렸다. 예를 들어, 반드시 고급으로 가야 한다든지, 반드시 고부가가치로 해야 한다든지, 고가로 팔아야 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현재 거란스는 다시 옛날로 되돌아왔고, 거란스의 원래의 경쟁전략을 쓰고 있다. 그리하여 충분히 원가통제능력을 실현하고, 가격대비고성능의 제품을 만들어낸다. " 업계는 유요창이 되돌아온 것을 가격전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신호로 보고 있다.

 

한위 본인은 그렇게 낙관적이지 못하다. "거란스에어컨의 문제는 하루이틀 쌓인 문제가 아니다. 단기간내에 효과를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에어컨판매와 전자레인지판매는 다르기 때문이고, 시스템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 한위는 채널이 계속 바뀜으로 인하여 대리상등의 충성도가 하락되었다. 세 회사를 하나로 합칠 때 합자판매회사의 상당한 인원은 자질이 떨어졌다. 그리하여 상당한 장애로 작용했다. 게다가 당초에 합차판매회사 계약체결시 많은 합자회사에서 거란스의 지분은 많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경영측면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전자레인지 제조는 고도의 국제화와 브랜드전략, 회사지배구조본토화와 맞지 않는다. 이것은 거란스의 드러난 문제이다" 한 업계인사의 말이다. "산업가치의 전략이전은 반드시 기업조직구조  및 상부구조의 변혁을 가져와야 한다. 이것이 아마도 거란스문제의 핵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