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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문혁전)

중국은 한국전쟁 최대의 실패자이다

by 중은우시 2008. 12. 11.

글: 유빈부(劉斌夫)

 

만일 새장속에 갇힌 사람이 세상사람의 존중을 받는다면, 우리는 진정 잔혹한 역사와 진실을 직면하지 않아도 된다.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일정기간동안 모든 사람을 속일 수도 있고, 영원이 일부 사람을 속일 수는 있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정부에 있어서, 가장 원치 않는 일은 아시아에서 전쟁에 빠져들고 몸을 빼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1950년대초, 미국에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은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이었다. 미국 자신이 국가안보를 위하여, 미국은 유럽이 소련의 침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했다. 미국은 아시아를 위하여 유럽의 힘에 공백이 생기고, 소련이 빈틈을 파고드는 것을 원치 않았다. 모택동의 일부 전통을 보면 중국공산당의 고위층들도 스스로 미국이 중국을 침략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표는 미국이 압록강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이 만일 중국에 간여하고 싶었다면, 일찌감치 해방전쟁후기에 일을 벌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시급한 일은 병력을 휴식시키고 국력을 회복하는 것이며, 조선에 들어가는 것은 상책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나, 임표의 의견은 모택동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2차대전이 끝났을 때, 미국은 1250만의 현역군인이 있었고, 그중 750만이 해외에 주둔했다. 미국해군은 1200척의 대형군함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은 경제에 있어서 압도적인 세계1위였고, 미국에서 생산하는 각종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의 1/3이었다. 세계의 절반이상의 제조업생산량은 미국에서 이루어졌다. 소련은 아예 미국과 대항할 능력이 안되었다. 제공권, 제해권을 모두 미국이 장악하고 있었다. 미국은 어떤 국가, 어떤 장소에서도 진공할 수 있었다. 어떤 도시도 파괴시킬 수 있었다. 당시 소련, 중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등 모든 강대국들은 전쟁의 피해를 심각하게 입었다. 미국본토만이 전쟁의 상흔을 벗어날 수 있었다. 미국의 해군, 육군, 공군은 전투력이 최강인 최첨단부대였다. 그리고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자탄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세계에서 어느 국가도 미국에 대항할 수 없었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소련도 당시에 미국과 같은 체급의 적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미국은 2차대전승리후 대량으로 병력감축을 시행한다. 1950년 6월, 미국육군의 총병력은 겨우 591,000명에 이르고, 10개 작전사단에 불과하게 된다. 개략 36만명이 미국 본토에 분포하고, 231,000명이 미국대륙에 있었다. 병력이 이 정도로 단촐해졌다. 보병병력도 줄었지만, 훈련등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서유럽에 10만여명이 배치되고, 겨우 7000여명만이 태평양에 배치되었다. 일본의 4개사단은 2차대전때 쓰고 남은 장비를 사용했다. 그들 대부분은 경비업무를 담당했고, 각 부대는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 부대는 주로 일본군국주의의 부활을 방지하는 것이 업무였고, 그들을 전투부대라고 칭하는 것은 지나치게 과장된 점이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미제가 중국을 침략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무슨 순망치한인가? 이 주장은 절대로 헛소리이다. 북조선이 미국에 점령되면, 중국이 위험하고, 미국은 원공업기지 심지어 북경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도 한다. 이건 더더구나 말이 되지 않는다. 전혀 근거없는 말이다. 미국공군은 1944년 6월 15일 처음으로 청두(成都)기지에서 출발하여 일본본토를 공습하기 시작했고, 1945년 1월 6일에야 그만두었다. 매번 모두 40대 내지 80대의 편대로 출격했다. 청두에서도 일본본토를 공습할 수 있는데, 북경, 동북이야 더욱 가깝지 않은가? 이외에 미군 태평양 마리아나군도의 공군기지에서도 중국의 어느 곳이든 공습할 수 있다. 미국 B-29폭격기의 최대시속은 598킬로미터이고, 항행거리는 6600킬로미터이다. 최대탄약적재량은 10톤에 가깝다. 청수에서 일본까지 왕복하는데 겨우 8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항행시간은 20시간까지 가능하다. 남한에서, 일본에서, 항공모함에서, 심지어 미국본토의 미국공군도 중국을 공습하려면 할 수가 있다. 미국은 어디에서건 중국동북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것이다. 북조선은 손바닥만한 땅인데, 어찌 전쟁의 완충지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순망치한이라는게 말이 되는가? 만일 미국이 정말 중국을 치려고 했다면 당시 중국의 어느 해안선으로든 상륙이 가능했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은 중국소련의 공식문서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중국 소련 북한이 장기간 공동으로 한국전쟁을 모의했다는 것이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정식 건립된다. 이승만이 한국대통령이 된다. 26일후, 북조선도 정식 성립된다. 이것은 두 개의 정식국가이다. 이는 현재의 남북한과 마찬가지로 어느 쪽이 어느 쪽으로 진공하든 침략이다...조선공산당은 소련의 지원하에 남한으로 진공을 감행한다. 3일내에 남한의 수도를 차지했다. 미국은 유엔의 결의하에, 황급히 지원병력을 파견한다. 미국은 처음에는 중국에 무슨 위협이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북조선이 패배하고, 소련에 출병을 요청한다. 그러나 소련은 미국과 정면충돌하는데 겁을 먹는다. 그리하여 중국에 참전할 것을 요청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미국과 적국이 된다. 중국이 파병하여 참전한 것은 사실상 전세계를 적으로 삼은 것이었다. 1951년 1월 30일, 유엔총회 제1위원회는 44표의 찬성, 7표의 기권으로 중국을 침략자로 견책하는 결의를 통과시킨다. 5월 18일, 유엔은 다시 안건을 통과시켜,회원국이 중국에 대하여 엠바고를 시행하도록 요구한다. 이 두개의 결의는 국제사회의 한국전쟁에 대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 현재 세계인민은 모두 중국이 소련의 말을 따랐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선전하는 것처럼 유엔이 미국의 통제하에 있어서 그랬다고 하지 않는다. 현재 각국인민의 역사교과서에는 어떻게 쓰고 있는가? 유엔이 미국의 말을 듣고 한국전쟁을 일으켰다던가? 중국과 소련이 공동으로 모의하여 남한을 침략한 것이며, 중국은 소련의 앞잡이노릇을 한 것이다. 미국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국제적인 인도적의무를 이행한 것이다. 이 사실을 중국은 영원히 바꿀 수 없다. 이것은 영원히 중국의 치욕이다. 스스로를 속일 수는 있지만, 남을 속일 수는 없다. 정부는 자기 인민을 세뇌시킬 수는 있지만, 세계인민을 세뇌시킬 수는 없다.

 

한국전쟁은 국부전쟁이다. 미국은 전쟁확대를 아예 원하지 않았다. 더더구나 중국과 싸울 생각은 없었다. 미국이 일본보다 무서운 것은 이런 상식이 있기 때문일까? 중국은 남의 도움을 받아 일본과 8년간이나 싸웠다. 만일 미국이 일본과 같이 후안무치한 국가였다면, 중국은 미국과 몇해나 싸워야 했을까? 8년? 아니면 80년? 아마도 8년도 가지 못하지 않겠는가? 우리에게 당시 해군이 있었던가? 공군이 있었던가? 미사일방어능력이 있었던가? 우리가 원자탄을 막아낼 수 있었던가? 중국과 미국이 만일 전면적으로 전쟁을 벌였다면, 모택동은 아마도 유격전을 벌였을 것이다. 중국인민의 운명은 돌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브래들리가 한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적과 잘못된 전쟁을 치렀다"는 말을 지원군에게 졌다고 인정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브래들리의 당시 국회에서의 발언원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가소로운 점은 북한도 이 말을 가지고 인민군이 용감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한다는 점이다. 중국군대는 서울을 차지했다가 다시 38선으로 물러나지 않았던가? 그것은 바로 미국이 만일 물러나지 않으면 중국과 전력을 다해서 싸우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비록 뒤에서 큰형님이 중국의 뒤를 받쳐주고 있지만, 모택동은 미국과 진짜 해본다면 적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38선으로 물러난 것이다. 미국이 나중에 정말 중국을 두려워하였는가? 그것은 미국국내의 압력때문이다. 수만명이나 죽었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싸우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수십만명이 죽었다. 여기에는 북조선군대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중국인은 당연히 미국인보다 값이 싸다. 모주석은 몇명이 죽던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마지막에 정전을 하게 된 원인이다. 나중에 중국의 하나의 군(軍)이 미국의 하나의 연대를 포위하고도 이기지 못했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군수물자조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총알, 탄약도 모두 모자랐다. 1952년, 미국의 공습은 아주 무서웠다. 김일성은 정전을 원했다. 모택동은 계속 하자고 우겼다. 적들의 위협하에 어찌 그들의 조건을 받아들이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약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었다. 인명은 아무 것도 아니다. 중국에 충분히 많이 있다. 33개월의 한국전쟁중에, 지원군은 윤번제로 300여만명이 참전했다. 지원군이 처음에 북조선에 들어간 것은 30만이다. 증가된 후에는 77만이었다. 전쟁을 하면할수록 어려워졌는데, 그것을 사람수와 지리적인 우세로 버틴 것이다. 중국인이 얼마나 포로로 잡혔는지 아는가? 그리고 얼마나 대만으로 갔는지 아는가? 미국이 나중에 공세를 취하고, 중국이 수세를 취한 것을 아는가? 상감령을 아는가? 바로 동굴과 사람목숨으로 버틴 것이 아닌가? 한국전쟁 정전후에, 남한은 30분의 1의 면적을 더 얻었다. 한국전쟁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의 제8집단군 하나만 작전에 참전했다. 미국이 졌단 말인가?

 

일본이 다큐멘터리를 찍었는데, 아마도 공정하게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미국은 5만명이 죽었고, 중국은 50만명이 죽었다고 했다. 한반도 남북의 손실은 100만명에 이른다고 했다. 누가 이겼는가? 이번 전쟁은 누가 승리자인가? 전쟁전의 북조선, 소련은 남한을 삼키고자 했다. 전쟁후에 북조선, 소련은 이러한 기도를 실현하지 못했다. 여전히 전쟁전의 경계선으로 물러났다. 심지어 땅을 조금 넘겨주었다. 실패한 전쟁개시당사자라는 것에는 의문이 없다. 전쟁을 막아낸 측이 승리자인 것이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는 경우와 같이, 전쟁전에 미국은 한국에 군대주둔이나 군사기지가 없었다. 전쟁후에 미국은 남한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고정된 군사기지도 가졌다. 전쟁후에 미국은 아시아에서 군사역량 및 영향력을 이전보다 훨씬 확장했다. 미국이 어디 졌는가? 중국이 무슨 이익을 얻었는가? 무슨 좋은 점이 있었던가? 어디 이겼다고 할 수 있는가? 한국전쟁은 미국으로 하여금 이전에 적국이었던 일본의 경제를 부흥하도록 결심하게 해주었다. 미국과 일본은 미일연맹을 맺는다. 전쟁중에 미국은 일본에서 대량의 물자를 구매한다. 그리하여 일본은 많은 돈을 벌었다. 전쟁후 미국은 일본에 대량지원을 통하여 힘을 길러준다. 이것은 모두 일본이 새로 굴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한국전쟁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경제대국 일본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전쟁에서 가장 처참하게 패배한 것은 중국이다...

 

중국은 50만의 생명을 잃고나서 얻은 것이 미일동맹이다. 미국이 적국 일본을 도와주겠다고 결심하게 만들었다. 중국을 도와주었던 친구로 하여금 자기의 적군과 손을 잡게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