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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궈메이 황광위 사건

중국제일갑부 황광유 형제에 대한 정부조사개시

by 중은우시 2006. 10. 30.

39세의 황준흠(黃俊欽)은 초창기의 대출에 관련된 정부조사를 받고 있다. 이 조사에는 그보다 훨씬 유명한 37세인 동생 황광유(黃光裕)도 관련되어 있다.

 

10월 30일자로 출판된 최근의 <<재경>>잡지에 따르면 황준흠 형제는 20여년전에 공동으로 국미전기(國美電器)를 창업하였다. 1993년 두 사람이 분가한 이후, 형인 황준흠은 부동산업으로 전업하며 "신항기(新恒基"계열을 이끌었고, 북경과 동북지방에 적지 않은 유명한 빌딩을 보유하고 있다. 동싱인 황광유는 "풍윤(豊潤)"계열을 이끌었다. 국미전기와 풍윤지산이 주요한 회사이다. 여러해동안 황준흠 형제의 거액재산에 대하여는 그 소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올해 국경절(10월 1일) 조금 전에, 공안부는 황준흠이 개인적으로 소유한 "신항기"계열에 대한 조사를 개시하였으며, 그의 모든 자산을 동결시켰다. 또한 황씨형제의 "신항기"계에서 최고위층으로 일했던 우성왕(于星旺)등의 사람들이 구속되었다. 이전에 은행감독위원회도 관련조사에 참여하였다. 조사의 목적은 "신항기"계열 및 황광유의 "풍윤"계열의 모든 은행대출 및 채무에 관한 것이었다. 황씨형제를 포함한 29인 및 두 계열 산하의 39개회사가 모두 조사대상에 포함되었다.

 

정부조사의 초보적인 결과에 의하면 민영의 "신항기"계열과 "풍윤"계열은 창업단계에서 위법 또는 중대한 위규방식으로 북경 중국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았다는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황준흠, 황광유 형제는 일찌기 창업단계에서 북경 중국은행에서 위법한 대출을 받았고, 그 후에 건물임대의 방식으로 북경 중국은행에서 1억위안이상의 임대료를 받아갔다는 것이고, 이후 허위 건물임대 및 차량리스로 관련금액이 합계 13억위안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런 대출은 풍윤과 신항기간의 밀접한 자금유동이 일어났고, 최종적으로 돈은 국외로 유출되었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자금은 이미 1990년대에 황준흠 형제가 창업하는데 필요한 첫번째 뭉칫돈이 되었다. 그리고 2000년이후 계속 유지, 확장하는데도 도움을 주었다. 이런 대출금이 북경중국은행에 대한 조사에서 핵심이다. 그리고 자금의 최종용도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황준흠 형제가 북경중국은행에서 10억여위안의 자금을 대출받았고 대부분은 이미 계속 완공되는 부동산 프로젝트와 관련이 있지만, 아직도 그들은 장기간 변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자금은 대량으로 국외에 유출되었으며, 아마도 주식투기 또는 선물투기 혹은 기타 투자에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금년 국경절 전날, 원 북경중국은행 행장 겸 중국은행 이사인 우충광(牛忠光)이 구속되었고, 황준흠 본인도 공안부의 감시범위에 들었다. 현재 62세인 우충광은 이미 은퇴하였고, 이전에 북경중국은행 신대처 처장, 행장, 중국은행본점 이사를 역임했고, 1999년에는 동방자산관리공사의 설립을 책임졌었다. 황준흠은 북경의 여상인인 뇌영을 통하여 우충광과 안면을 텄다. 뇌영도 이미 체포되었다.

 

형인 황준흠과 비교하여 동생인 황광유는 북경중국은행과 또 다른 인연이 있다. 1990년대 중반에 아직 30세가 되지 않았던 황광유는 북경중국으행의 젊은 여직원인 두견(杜鵑)을 사귀게 된다. 두견은 1999년을 전후하여 사직하고, 이후 황광유를 위하여 홍콩에서 업무를 처리하였으며, 장기간 상장회사인 국미전기의 집행동사를 맡았다. 두견은 1999년경에 황광유에게 시집을 갔고, 이때부터 남편인 황광유와 같이 일했다.

 

<<재경>>잡지에 따르면, 황광유 형제는 초기에 우충광등을 알아서 은행대출금을 불법으로 받았다. 이것은 중국 민영기업가들의 "원죄"이다. 1990년대에는 중국의 금융질서가 아직 완비되지 않았고, 민영기업의 발전도 아직 초기단계였기 때문에, 이런 원죄 모델은 시대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지금에 와서, 공안부에서 조사하는 범위에 황광유까지 미치는지는 아직 분명하지는 않고, 초기의 불법대출의 구체적인 상황이 어떤 것인지도 알 수는 없고, 얼마나 많은 채무를 남기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으며, 향후 "신항기"계열과 "풍윤"계열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황광유 형제는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은 분명하다. 두 사람이 최근에 급팽창하면서 "재부왕국"을 이루었는데, 이것이 정말 실력이 있는 것인지, "원죄"모델을 감당할만한 것인지가 시험대에 들었다.

 

<<재경>>잡지는 평론을 통하여 몇년전에 중국내에서 광범위하게 논의되었다가 흐지부지된 민영기업의 "원죄" 모델에 대하여 언급했다. 정부기구와 각급 관리들 및 사법기관은 "원죄"에 대하여 내심으로는 관용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이런 태도를 계속 유지하기는 힘들게 되었다. 가장 실질적이고 유효한 방법은 이러한 "원죄"모델에 대하여 엄격히 분류한 후, 그 정도에 따라 다르게 해결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것이다. 정의와 현실의 기초위에서 공통된 인식을 달성하고, 이후 법률과 법규에 따라 타당한 해결방안을 제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