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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유통

B&Q(百安居)의 운명: 변화할 것인가, 변화당할 것인가?

by 중은우시 2008. 11. 17.

글: 섭문첨(葉文添)

 

B&Q는 소용돌이의 와중에 빠져들었다.

 

중국에 진입한지 9년째 되는 B&Q가 속속 점포를 폐쇄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B&Q가 공식적으로는 경영부진으로 점포를 폐쇄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건자재산업, 부동산업종이 불경기이므로, B&Q의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것은 명약관화하다.

 

중국에서 B&Q는 일찌기 많은 변화를 만들어 냈다. 그중 가장 가치이쓴 것이라면 솔선하여 건자재수퍼마켓, 유행가구의 이념을 중국에 도입하였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B&Q는 한때 급속히 확장하고 지역을 공략해 왔었다. 바로 이러한 충동때문에 B&Q는 현재의 위기를 맞았고, 공급상의 대금풍파, 그리고 소비자로부터의 불만과 호소는 모두 B&Q로 하여금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

 

상업주기가 바뀐 상황하에서 B&Q의 다음 번 행보는 어떻게 될 것인가?

 

"따스한 색조(暖色調)"와 "차가운 색조(冷色調)"

 

어떤 사람들은 웨이저(衛哲)를 그리워한다. 왜냐하면 그가 있었던 시절은 격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랫동안 B&Q의 이미지는 모두 웨이저의 모습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 활력이 충만하고, 힘이 넘쳤다.

 

2002년, 당시 31세된 웨이저는 B&Q의 중국지구 총재를 맡았다. 세계500대기업의 가장 젊은 중국총재였다. 웨이저라는 사람은 외모는 유아(儒雅)하고, 내심은 광야(狂野)였다. 그가 적극적으로 책동하여, B&Q는 중국시장에서 미친듯이 달렸다. 확장의 발걸음과 리듬은 거의 미친듯했다.

 

스타일이 독특하고, 자잘한데 구애받지 않는 웨이저는 매체의 총애를 받았다. 웨이저가 당시 한 말에 따르면, B&Q가 중국에서 점포를 개설하는 속도는 3단계를 거쳤다: 1999년, 2000년에는 매년 1개씩 개설했고, 2001년, 2002년은 매년 3개씩 개설했다; 2003년이 되어 점포는 7개나 개설했다; 소매업이 완전히 개방된 2005년에 B&Q는 전면적으로 속도를 내면서, OBI(歐倍德)을 인수했다. 이로써 중국건자재소매수퍼마켓에서 선도적인 브랜드로 떠오른다.

 

웨이저는 경험을 통해 배후고, 정교하게 계산하는데 능했다. 그의 장점은 복잡한 '문제'에서 해결방안을 찾아내는데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아마도 B&Q가 중국시장에 신속히 적응한 이유일 것이고, 안정적으로 확장한 원인일 것이다. B&Q는 중국에서 국면을 개척하는데, 웨이저는 돌연 회사를 떠난다. 2006년말, 웨이저는 순식간에 B&Q를 떠나서 알리바바로 들어간다. B&Q를 떠날 때, 웨이저는 "내가 알리바바에 가입하는 이유는 많다. 그러나 B&Q를 떠나는 이유는 찾지 못했다"

 

그 후, 폴란드인 마리우스(Mariusz Gliwinski)가 중국에 낙하산으로 내려온다. 사실상 마리우스는 B&Q의 모회사인 Kingfisher Group(翠豊集團)에 들어간지 이미 6년이 되었고,일찌기 Kingfisher 그룹의 폴란드와 대만자회사의 CEO를 맡았었다. 웨이저와는 달리, 마리우스는 조심스러운 사람이다. 특히 매체와 직접 만나기를 꺼렸다. 매체에 대하여 그는 일종의 회피하는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마리우스가 경영을 장악한 우후, B&Q의 급속한 확장속도는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전에, 웨이저의 계획은 2008년에 B&Q의 점포수를 100개로 늘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2008년말에 B&Q의 점포는 70여개에 불과했다. "마리우스는 생각이 조심스럽고, 1개 점포를 열때마다 반복해서 검토했다. 그는 개별점포의 이익을 아주 중시했다. 그리하여, 수량형의 확장은 옛날 말이 되어 버렸다" 한 B&Q의 내부인사의 말이다. 그 시기에 B&Q는 웨이저의 그람자를 지우는 작업을 하고, 마리우스식의 조심스럽고 조용한 분위기가 자리잡았다.

 

한 업계인사의 평가에 따르면, B&Q의 주색조인 오렌지색은 원래 "따스한 색조"인데, 이것은 웨이저시대에 더욱 적합했다. 격정적이고, 드러내기 좋아하고, 야심에 넘쳤다. 그라나 나중에는 "차가운 색조"의 시기인데 담담하고 냉정했다.

 

B&Q의 내부에서 마리우스의 변혁은 소리없이 추진되었다. B&Q에서 일한 적이 있는 한 인사에 따르면, 마리우스가 취임한 후, 일련의 철완개혁을 실시한다. 업무가 좋은지 아닌지에 따라 급여에 차이를 두는 새로운 급여시스템을 마련한다. 일부 실적이 좋지 않은 직원에 대하여는 연말 보너스를 지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매 단계마다 관리감독을 강화했다. "이것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적응을 못했었다. 어떤 사람은 아예 회사를 떠나버렸다"

 

"후삼국시대"의 B&Q

 

한 업계인사의 분석에 따르면, "웨이저시대"의 B&Q는 중국에서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다. 주로 세가지 이유때문이다. 먼저 글로벌화된 조달네트워크이다. B&Q의 모회사인 Kingfisher그룹은 중국에 상해, 심천과 홍콩을 통하여 대규모로 구매했다; 다음으로, B&Q는 계속하여 자체브랜드를 개발했다. 가격, 신용, 규모에 있어서 장점이 많았다; B&Q는 강대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었다. Kingfisher그룹의 지원하에 B&Q는 자금이 풍부했고, 융자가 손쉬었다

 

이 세 가지 무기를 손에 쥐고, B&Q는 한때 중국의 건재가구시장에서 적수를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OBI를 통합한 후, B&Q의 중국에서의 우세는 확연해졌다. B&Q와 마찬가지로 외자배경을 지닌 OBI는 건자재시장에서 랭킹 3위, 4위를 달렸고, B&Q는 23개의 점포를, OBI는 13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었다. OBI는 B&Q의 바로 뒤를 따라오는 건자재수퍼마켓이었다. 당시 거의 모든 업계인사는 두 회사의 경영이념, 기업문화에 천지차이가 있으므로, 통합이 성공할 것인지 여부가 B&Q의 중국전략의 승패를 가를 것으로 보았다.

 

"B&Q는 중국본토의 경쟁적수를 맞이했을 뿐아니라, 외작의 거두인 홈데포(HomeDepot, 家得寶), 이케아(IKEA, 宜家)와 경쟁해야 했다. 처지가 아주 미묘했다." B&Q를 떠난 인사의 말이다. 웨이저가 주도한 통합업무가 순조롭게 성공한다. 이후 B&Q의 중국에서의 발전은 가속도가 붙는다.

 

한때의 좋은 시절은 한번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2008년, B&Q가 중국에 개설한 점포는 겨우 4개에 불과하다. 전년도에 훨씬 못미친다. 금융쓰나미가 석권하자, 국내의 건자재,가구시장은 화를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B&Q는 중국의 여러 곳에 있는 점포에서 이익하락 내지는 결손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2008년 상반기에 B&Q의 중국에서의 판매는 19%가 하락했다. 이는 B&Q로 하여금 칭다오,푸저우, 선전등에 있는 여러개의 점포를 폐쇄하도록 하였다. 대외적으로 B&Q는 결손으로 점포를 폐쇄했다고 인정하지 않고 있다. B&Q 중국본사의 미디어담당자인 저우춍(周瓊)은 점포폐쇄는 '의외'의 원인으로 잠시 닫은 것이며, 어떤 경우는 업무통합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B&Q와 공급상이 2007년에 벌인 물건대금분쟁도 B&Q를 한때 진흙탕에 빠트린 바 있다. 야디얼(雅迪爾)을 위시한 중국주방위생기구생산기업은 공동으로 B&Q를 성토했다. 그 기세는 사상유례가 없는 정도였다. 야디얼의 고위층은 기자인터뷰를 통하여 은원은 웨이저시대부터 이미 심어졌다고 하였다. "지금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 마리우스와의 대화를 요청하게 되었다" 그후에 계속 주방기구생산업체들이 B&Q에 대한 보이코트를 선언했다. 그후 사태의 변화는 사람들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었다. 야디얼과 B&Q까 공동으로 성명을 발표하여 싸움은 끝났다고 선언한다. 야디얼이 물러선 후, 공급상으로부터의 반발은 점차 평정되었다. 마리우스의 위기처리수완이 빛을 발하였던 것이다.

 

웨이저는 기업을 수호지, 홍루몽, 삼국지와 서유기의 네 개의 발전단계로 비유했었다. "B&Q는 막 중국에 들어왔을 때 수호지의 상태였다.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모든 것에 부딛쳐가는 것이었다; 기업의 발전이 안정화된 후 홍루몽을 읽을 만하다. 어떻게 그 관료체계를 형성하느냐를 알 수 있다; 그 후에는 혼전의 삼국시대이다. 업계내에서 비록 선두이지만, 많은 경쟁자가 남아 있다; 서유기의 단계는 이미 천하통일을 이루고,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진 때이다. B&Q는 후삼국시대에 처해 있다."

 

"후삼국시대"의 B&Q는 아직도 겪어야 할 일이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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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B&Q China

 

B&Q의 본사는 영국 런던에 있다. 현재 세계 3위의 대형 인테리어건자재 그룹이며, 세계500대기업에 속한다. 1996년 아직 B&Q에 들어가지 않은 웨이저는 6인의 팀을 이끌고 6개월의 시간을 들여 B&Q을 위하여 자문을 해준다. 당시 웨이저는 B&Q에 중국에 진입하는 가장 좋은 시기를 3년후라고 건의했다. 1999년 6월 18일, 첫번째 연쇄점인 상해 호태점이 기업했다. 정식으로 "B&Q"를 브랜드로 하여, 성공적으로 상해에 상륙한 것이다. 이때부터 중국대륙에서의 발전의 길을 열었다. 2000년 웨이저는 B&Q중국회사의 CFO로 들어가고, 2002년에는 CEO를 맡는다. B&Q회사는 당시 5개의 연쇄점으로 확장하여 중국의 가구인테리어건자재분야에서 선두기업이 되어 있었다. 2001년 국무원의 비준을 받아, B&Q는 인테리어건재자업계의 첫번재 중외합자상업시범기업이 된다. 2003년 3월, 중국연쇄경영협회가 처음으로 발표한 "2002년 가구,건자재,인테리어' 연쇄기업의 판매랭킹에서 B&Q는 1위를 차지한다. 2006년말, B&Q중국 총재인 웨이저는 회사를 떠나고, B&Q의 모회사인 Kingfisher그룹은 마리우스를 후임자로 임명한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마리우스는 B&Q 중국총재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