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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무역

차, 자기, 비단: 중국의 무역

by 중은우시 2008. 11. 12.

글: 주대가(朱大可)

 

차, 자기, 비단은 전형적인 화하제국의 제조품이다. "사대발명"과는 전혀 다르다. 이는 물리학원리에 기한 기술발견이 아니라, 3가지의 독립기술을 지닌 상품이고, 극동농업문명에 속한다. 그리고 한때는 전세계무역의 굳건한 핵심이기도 하였다. 정화(鄭和)의 선단은 나침반기술, 화포기술을 사용하여, <<열녀전>>과 <<역서>>와 같은 류의 인쇄물을 싣고 갔다. 비록 이들 기물은 모두 "사대발명"에서 기원하였지만 조공무역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차, 자기와 비단의 국제운송을 위하여 봉사하는 충성스런 종복이었다.

 

차는 일종의 자연음료이다. 존재의 상태를 바꾸는데 쓰이며 즉, 정신을 일깨우고, 사고를 촉발시키며, 동시에 내재적인 이성을 보유한다. 이 점이 술의 기능과 선명히 대비된다. 주신(酒神)의 짝으로서 차신(茶神)은 섬약한 모습을 가지고, 먼저 화하문명의 중심지에 나타났다. 동진 상거의 <<화양국지. 파지>>에 따르면, 주무왕(周武王, ? - 기원전1043년)이 주(紂)왕을 토벌할 때, 파촉의 나라에서 어(魚), 염(鹽), 동(銅), 철(鐵), 단(丹), 칠(漆), 차(茶), 밀(蜜)등의 공물을 받았다고 되어 있다. 그 글에서는 "원유방약향명(園有芳弱香茗, 茗은 차의 싹을 말함)"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이 인공적으로 차를 재배한 최초의 기록이라고 한다. 차신의 얼굴은 온화하고 편안하게 이때부터 극동민족의 일상생활로 걸어들어왔다.

 

차는 화하지구에서 전면적으로 흥성했다. 이것은 아마도 불교사원의 발달과 관련이 될 것이다. 당나라는 불법을 널리 퍼트렸는데, 스님계층이 대규모로 확장된다. 차는 선종(禪宗)에서 아주 숭상을 받았고, 밤새워 현학을 논하는데 필수도구가 되었다. 최초에는 그저 신경을 자극하는 약재로서, 스님들의 철학적사고와 대화를 더욱 자극하는 역할을 했지만, 나중에는 사대부의 고상한 취미로 자리잡아 문인정신의 상징으로 승화되었다. 시승인 교연(皎然)은 그의 <<음차가초최석사군>>이라는 시에서, "한잔을 마시면 우매함을 �고, 마음과 생각이 상쾌하게 된다; 두잔을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며, 돌연 비가 내려 먼지를 가라앉혀주는 것과 같다(飛雨灑輕塵); 세잔을 마시면 득도를 하니 걱정할게 무엇이랴. 번뇌를 깰 수 있다." 이것은 차를 마시는 것이 존재의 상태를 바꾼다는 증거이다. 사원의 종소리와 차향기는 지속적으로 스님, 관리, 문사의 영혼을 씻어주고, 그들은 청정영형(淸靜寧馨)의 상태로 들어가게 해준다.

 

차신은 명나라때 이미 선비들의 영혼에 완전히 들어앉았다. 그리하여 은일(隱逸)의 화신이 된다. 차도는 날로 성숙해져서, 독립한 하나의 준종교가 되어갔다. 차신의 정신은 전례없는 광휘를 드러내게 된다. 문인들이 쓴 차경(茶經)이 수십종에 이르게 되고, 차엽의 제조에서 보관, 물의 선택, 기물의 기능, 끓이는 방식, 찻집의 건축과 차를 맛보는 취미등의 측면에서 아주 정교하게 차의 위대한 길을 닦아주었다. 차도는 중국음식문화의 최고수준을 나타낸다.

 

차신은 내재적이고 함축적이다. 근는 일종의 절제된 초월을 의미한다; 빙청옥결(氷淸玉潔)의 찻잔을 넘어, 그녀는 이성의 담향(淡香)을 내뿜는다. 서위(徐渭)는 <<도학사팽차도>>에서 이렇게 찬미했다: "성음취초부증한, 인인환아작장전, 안능매경여도화, 벽수홍화자월단(醒吟醉草不曾閑, 人人喚我作張顚, 安能買景如圖畵, 碧樹紅花煮月團)". 이것은 기묘한 정신의 경지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아름다운 그림을 본다; 푸른 나무와 붉은 꽃의 사이에서 차를 순서에 맞게 끓이는 모습. 시를 읊고 글을 쓰고, 술에 취하고 다시 깨고, 미치는 것과 이성적인 것, 모든 대립하는 요소들이 차의 영역에서는 통일되어 나타난다. 서위는 하나의 문화사실을 드러내주었다. 즉, 차와 술의 윤번제도이다. 이것이 중국의 마시는 문화의 가장 큰 비밀이다. 문인들은 이 두 가지 음료를 교체해서 마시면서 맑음과 미침의 사이을 이러저리 왔다갔다하는 것이다. 이것은 분산구조이다. 대립하는 양극에서 출발하여 교묘하게 중국인의 심령을 조절해준다.

 

차신의 정신의 본질은 고독이다. 사대부의 신념에 기하여, 차는 시종 자신의 순결성을 굳건히 지켰고, 다른 물질과 섞이는 것을 거절했다. 이러한 정조는 바로 차신의 특징이다. 그리고 모든 취미와 신녕을 묶어주는 기초점이다. 바쁜 선비들이 차의 이 본성을 깨닫고, 수질, 기물과 조작절차등에서 이런 본성을 엮었다. 이는 차신정신의 보위전이다. 그것은 시정계급이 밀크티(茶)를 만들려는 충독을억제했고, 최종적으로는 동방인들의 궁국적인 사랑이 되었다.

 

유럽인들은 이것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녹차(綠茶)와 단차(團茶)에 대하여 흥미가 없었다. 그러나 19세기에 홍차(紅茶)의 매력을 발견한다. 포르투갈의 공주인 캐서린이 궁중에서 시범을 보임에 따라 홍차의 겸용성을 알게 되었다: 홍차는 우유나 설탕과 결합될 수 있다. 그리하여 향기가 짙은 밀크티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이전에 일찌기 13세기 혹은 그 이전에 달단인들은 이미 이런 동식물원료혼합의 매력을 깨달았다. 그런데, 빅토리아여왕시대에 이런 밀크티의 향기는 궁중과 귀족의 살롱에 가득차게 된고, 호화사치생활의 상징이 되며, 다시 평민들의 애프터눈티(下午茶) 활동으로 퍼져나갔다. 그것은 대영제국의 계몽전제군주하의 신식차도였는데, 신속히 교양있는 융중한 의식으로 승화되고, 제국신민의 일상생활을 풍부하게 해주었다.

 

영국이 찻잎을 수입하고 마시게 된 것은 하나의 이정표적인 사건이다. 그것은 중국수출무역의 비단본질을 뒤바꾸어 차, 자기, 비단의 삼위일체로 비약한다. 이 미친듯한 일방적인 무역관계에서 자기의 가치도 다시 높이 평가받는다. 그거은 차를 보관하고 담는 가장 뛰어난 용기였다. 정화시대와는 달리 그것은 단순히 쓸모없는 용기가 아니었다. 찻잎의 가장 친근한 짝이였던 것이다.

 

자기는 도기의 성숙된 형태이다. 도기와 마찬가지로 구운 면모를 유지하지만, 도기보다 더욱 정교하고 매끄럽고 빛이 나는 표피를 지니고 있다. 유약층은 고온하에서 변화가 발생하여 기이한 문양과 색깔을 나타낸다. 자기는 모든 기물중 변화가 가장 격렬한 일종이다. 유연한 흙이 강인하고 아름다운 물건으로 승화된다. 기나긴 세월 속에, 그것은 식도락민족의 전용용기였다. 경장(瓊漿)과 아름다운 음식을 담는 그릇이었다.

 

한나라때의 차기는 그저 탄로(爐, 화로), 탄협(鋏, 집게), 도차석요(搗茶石), 저(杵, 공이), 차병(茶餠), 도관(陶罐), 도완(陶碗)등 몇 가지에 불과했다. 그런데 명나라에 이르러서는, 기물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것은 자아번식의 과정을 거친다. 고렴의 <<준생팔전>>에 나열된 차구의 종류는 23가지에 이른다. 이미 번잡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것은 차잔과 차주전자의 두 가지이다.

 

명나라 찻잔은 검은유약이 변한 백자였다. 그리고 '첨백(甛白)'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것은 자기의 재질에 있어서 순백색의 부드러운 취향을 말해준다. 이때부터 경덕진의 청화(靑花) 및 의흥의 자사(紫)와 더불어 삼족정립의 국면을 형성한다. 다만 국제무역의 판도에서는 백자가 결국 청화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흰색바타에 파란색의 무늬가 있는 색상과 여러가지 기형은 북방만주족의 환영을 받았을 뿐아니라, 유럽 군주의 사랑도 널리 받았다.

 

명나라 영락제시대부터, 청화자기는 이미 경덕진 자기의 주류가 된다. 정화가 인도양에서 가지고 온 "소마리청(蘇麻靑)은 아름다운 파란색의 색채를 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꽃무늬에서 흑철정반을 나타낸다. 이것은 처음에는 공예상의 하자였지만, 나중에는 독특한 미학적인 표기로 인정받는다.

 

고대자기학 분야에서의 파탄이 나타났다는 것은 우리의 우려를 더해준다: 청화는 아마도 미학적으로 함축이 과장된 문양이다. 그것의 가치는 무역의 필요에 의하여 점점 더 올라간다. 현대영국과 일본의 본차이나와 비교하면, 청화자기는 원시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다. 다만 그것은 처음으로 백자에 그림을 그린 자기였고, 선명하게 극동회화예술의 품격을 보여준다. 자랑스럽게 그려진 행복한 생활의 정경은 하얀 백자위에서 푸른색으로 빛을 나타낸다. 이는 유럽인들에게 동양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했다.

 

찻물은 청화찻잔안에서 열기를 발산한다. 차신은 그 안에 서있다. 마치 투명의 여신과 같이. 청화자기는 이렇게 찻잎과 함께 기묘한 보완관계를 이룬다. 그것들은 서로 인증하는데, 마치 천연적인 한 쌍과도 같다. 청색은 홍차의 내력을 말해준다. 그것은 대자연의 색깔이다. 그리고 중화제국의 태기(胎記)이다. 마치 중국의 아이들이 엉덩이에 몽골반점을 가지고 태어나듯이. 유럽인들은 나중에 차를 보관하는 주석통과 철합을 발명했다. 가볍고 휴대하기 편하였으므로, 예전의 동방기물의 영광을 재현하기는 힘들었다.

 

찻잎과 청화자기의 위대한 결맹은 고대의 비단제도의 성원에 힘입은 것이다. 명,청시기에 전세계무역체계중에서 비단은 수천년의 세월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고귀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것은 옷을 만들고, 식탁보를 만들고, 찻수건을 만드는 원료였다. 호화스러운 차마시는 제도에 포함되어 일체화된 동양효과를 형성했다. 이는 사실 '차-자기-비단'의 삼위일체이다. 자기는 차의 용기이고, 비단은 그것의 부드러운 복식이다. 마치 하나의 호선과 S선으로 구성된 꿈과도 같이 로카이유(rocaille)형식에 비범한 영감을 불어넣어주었다. 자기-차-비단은 이외에도 명나라때의 가구 정자에도 포함되어 있다. 바로 유럽인들의 동양에 대한 환상의 핵심용어였다.

 

다만, 영국인들은 최종적으로 자기의 미학에 따라 청화자기를 개조한다. 우리는 이미 보고 있다. 아름다운 로얄 본차이나의 표면에 영국본토의 청색식물도상이 나타난다. 영국식 청화자기는 순은으로 된 차주전자, 찻숟갈, 레이스식탁보와 함께 새로운 기물의 팀을 구성한다. 그들은 빅토리아 풍격의 찻집으로 들어가서 신사와 숙녀들이 사방에서 얘기를 나누는 고아한 취미를 나타내준다. 이것은 중국의 유학자들이 차를 마시는 예의와 모종의 내재적인 호응을 이루는 것이다. 영국인들은 득의만면하여 선언한다. 이것은 바로 양종 문명의 위대한 결합이라고.

 

찻잎은 담배와 마찬가지로, 마시는 사람에게 심각한 의뢰심을 조장한다. 차은(茶)은 부드러운 구속이다. 비단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잔혹한 시장위기를 조성했다. 오랫동안, 서방은 귀금속으로 비단과 향료를 구매했다. 18세기중엽부터 말엽까지, 영국과 미국은 전세계 최대의 찻잎수입국가가 되었다. 1700년부터 1753년까지 영국상선은 청나라제국에 2천만냥의 백은을 지급했고, 전세계의 백은은 모두 찻잎무역으로 중국에 흘러들어왔다. 유럽에 심각한 백은위기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전세계 찻잎의 연쇄반응의 첫단추였다. 차의 평화로운 본질의 바깥에는 폭력이 대규모로 꿈틀대고 있었다. 백은비축을 유지하기 위하여, 영국인들은 아편과 찻잎을 교환하는 무역모델을 내놓는다. 아편이 대규모로 수입되자, 중국의 경제위기와 건강위기가 나타난다. 유학자들과 선비계급의 압력하에 도광황제는 영을 내려 저항해본다. 이런 황당한 무역의 국면을 끝내고자 한다. 그러나 영국은 전선을 파견하여 타격을 가한다. 흔들리던 하하제국은 거의 붕괴될 지경에 처한다.

 

이 전까지, 찻잎은 또 다른 무역전쟁을 일으킨 바 있다. 영국인들은 찻잎을 강제로 북미식민지에 수출했다. 그리고 고액의 백은세금을 거두었다. 그리하여 현지민중의 격렬한 반항에 부닥친다. 보스톤이민들은 영국상선의 찻잎을 바다에 버려버린다(Boston Tea Party, 1773), 이리하여 미국독립전쟁의 불꽃이 점화된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공화국이 탄생하고, 다른 한편으로 구제국이 쇠퇴한다. 대영제국이 일으킨 차전쟁은 두 개의 전혀 다른 결과를 불러온다. 이것은 농업문명의 종결을 의미하고, 또한 찻잎문명의 반성을 불어오게 하는 전환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