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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언어

중국 고인들의 언어예술

by 중은우시 2008. 10. 24.

글: 냉성금(冷成金)

 

중국인들은 역대로 언어의 예술을 즐겼다. 비록 "교언영색에 어지러운 경우가 드물다(巧言令色鮮仁矣)"라는 말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변론의 예술을 최대한 펼쳐왔다.

 

춘추전국시대의 명가(名家)의 변론술은 특히 발달했다. 그들은 언어의 헛점을 이용하여 개념을 뒤바꾸고, 변론의 논리를 혼란에 빠지게 하기도 하여,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들과 말로 싸울 수가 없었다. 사실, 명가가 변론에 능했을 뿐아니라, 일반인들도 말을 잘하면 황제나 상사의 총애를 받았다. 말하는 내용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진나라때 저명한 서예가인 종요(鍾繇)의 아들인 종육(鍾毓), 종회(鍾會)의 형제 둘은 어려서부터 유명하였다. 인물도 잘 생기고 재주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13살때,위문제(曹丕)가 이 말을 듣고, 그들의 부친 종요에게 "너의 두 아들을 데리고 오라"고 하게 된다. 그리하여 종육과 종회는 위문제를 알현하는데, 종육은 아주 긴장하여 얼굴에 땀이 줄줄 흘렀다. 위문제가 그에게 물었다: "너는 왜 얼굴에 그렇게 땀을 흘리는가?" 그러자 종육은 기지를 잃지 않고 바로 답변했다: "천자의 위엄에 마음이 긴장되어 땀이 비오듯 흐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종회는 태연자약하고 얼굴에 땀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위문제는 그는 땀을 흘리지 않는 것을 보고, 종회에게 물었다: "너는 왜 얼굴에 땀이 흐르지 않는가?" 그러자 중회도 교묘히 답변했다: "천자의 위엄에 마음이 긴장되어 땀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진무제가 막 등극했을 때, 가서 점을 쳐본적이 있다. 마음 속으로 진나라가 몇대나 이어질 수 있을지를 물어보았는데, 점의 결과는 "일(一)"이었다. 진무제는 기분이 영 좋지 않았고, 불길한 점괘라고 생각했다. 신하들도 대경실색하여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고, 아무도 나서서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 때 시중인 배해(裴楷)가 기지를 발휘해서 말했다: "제가 듣기로, 고인들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늘이 일(一)을 얻으면 맑고, 땅이 일을 얻으면 평안하고, 제후, 제왕이 일을 얻으면 안정된다." 진무제도 기뻐했고, 신하들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느 포정사가 안찰사를 불러 술자리를 열었다. 술좌석에서 포정사는 자기 아들이 너무 많아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안찰사는 아들이 하나밖에 없어서 너무 적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포정사의 한 수하가 옆에서 안찰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들이 좋으면 많을 필요가 없습니다(子好不須多)" 포정사가 옆에서 그 말을 듣고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아들이 많은데, 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느냐?" 그러자 그 수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들이 좋으면 많다고 걱정할 것도 없습니다(子好不愁多)". 두 사람은 모두 그 수하를 칭찬하고 같이 술을 들이켰다.

 

초형왕(楚荊王)때, 어떤 사람이 불사약을 바쳤다. 손님접대를 책임지는 관리가 그 소위 불사약을 들고 조당으로 들어왔다. 궁중의 숙위(宿衛)가 물었다: "이런 약도 먹을 수 있는가?" 관리가 대답했다: "당연히 먹을 수 있다" 그러자, 그 숙위는 두 말도 하지 않고 바로 불사약을 집어서 먹어버렸다. 초형왕은 화가나서, 그 숙위를 죽여버리려고 하였다. 숙위는 말잘하는 사람에게 청해서 초형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신은 접대를 책임진 관리에게 물었더니, 그가 먹어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은 약을 집어먹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신은 무죄입니다. 죄가 있는 것은 그 관리입니다. 그는 이 약을 먹어도 되는지 안되는지를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그 약은 불사약입니다. 신이 먹고나서 대왕에게 죽임을 당한다면, 이것은 사약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불사약이라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대왕께서 숙위를 죽인다면, 이게 모두 사기라는 것이 아닙니까. 차라리 그를 남겨두어서 도대체 불사약인지 아닌지를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리하여 초형왕은 그를 죽이지 않았다.

 

군웅회맹때, 진(秦)나라와 조(趙)나라는 서로 맹약을 했다: "오늘 이후, 진나라가 하고 싶어하는 일은 조나라가 도와주어야 하고, 조나라가 하고 싶어하는 일은 진나라가 도와주어야 한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진나라는 위(魏)나라를 공격하려고 했고, 조나라는 위나라를 도와주려고 했다. 진왕은 기분이 좋지 않아서 사람을 보내어 조나라에 말했다: "맹약에 따르면, 진나라가 하고 싶은 일을 조나라가 도와주어야 하는데, 현재 진나라는 위나라를 공격하고자 하는데, 조나라는 그를 도와주려고 하니, 이것은 맹약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조왕은 이 일을 평원군에게 말했다. 평원군은 다시 이 일을 공손룡(公孫龍)에게 말했다. 그러자 공손룡이 말했다: "조나라도 사신을 보내어 진나라를 질책하면 됩니다. 조나라가 하고자 하는 일은 위나라를 구해주려는 것인데, 진나라는 왜 조나라가 하려는 일을 도와주지 않는가? 이것은 맹약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공천(孔穿), 공손룡의 두 사람은 평원군의 거소에서 서로 변론을 펼쳤다. 말이 깊이가 있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공손룡은 양에게는 귀가 세 개 있다고 말했고, 아주 웅변적으로 논증했다. 공천은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고 조금 있다가 그냥 가버렸다. 다음 날, 공천이 조회에 나타나자 평원군은 공천에게 말했다: "어제, 공손룡은 아주 웅변적이었다." 그러자 공천이 말한다: "만습니다. 거의 양에게는 귀가 세 개 있도록 만들었으니,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게 어려운 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여쭤보겠습니다. 양에게 세 개의 귀가 있다는 것을 논증하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일 뿐아니라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양에게 두 개의 귀가 있다는 것을 논증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일 뿐아니라 사실에도 부합합니다. 손쉽고 사실에 부합하는 주장에 동의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어렵고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주장에 동의하시겠습니까?" 평원군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다음 날 그는 공손룡에게 더 이상 공천과 변론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송나라에 징자(澄子)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검은색 옷을 잃어버렸다. 길에서 찾다가 어떤 부녀가 검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붙잡고는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의 옷을 벗기려고 했다. "나는 검은색 옷을 잃어버렸다." 그러자 그 부녀가 말했다: "당신이 검은색 옷을 잃어버렸더라도, 이 옷은 내가 직접 만들어 입은 것입니다." 그러자 징자가 말했다: "넌 빨리 나에게 옷을 벗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비단으로 만든 검은 옷인데, 지금 네가 입고 있는 것은 삼베로 만든 검은 옷이다. 삼베로 만든 옷으로 비단으로 만든 옷을 대신하는데 네가 이익이 아니냐?"

 

혜자(惠子)는 위혜왕을 위하여 법령을 만들었다. 법령을 다 만든 후에, 이것을 군주에게 보여주었다. 군주는 좋다고 생각하여 적전(翟剪)에게 보여주었다. 적전은 "좋다"고 말한다. 위혜왕이, "시행할 수 있겠는가?"라고 묻자, 적전의 대답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위혜왕이 "좋지만 안된다니, 그건 무슨 이유에서인가?"라고 묻는다. 그러자 적전의 대답은 이러했다: "지금 나무를 들어옮기는 사람들이 앞에 있는 사람이 구호를 으이샤라고 외치면 뒤에 있는 사람들도 으이샤하고 따라합니다. 이런 구호는 나무를 들어옮기는데는 아주 좋습니다. 그러나, 정나라나 위나라의 음악과 비교하면 듣기가 좋습니까? 이는 그저 그러한 한 가지 경우에 적합할 뿐입니다. 이 법령이 비록 좋기는 하지만, 나무옮기는 사람들의 구호와 같이 적합한 경우에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북위고조(북위 효문제 원굉)는 아들들의 이름을 순(恂), 유(愉), 열(悅), 역()으로 지었다. 중서박사 최광(崔光)은 아들의 이름을 소(召+力), 욱(勖), 면(勉)으로 지었다. 효문제가 최광에게 말했다: "내 아들의 이름은 마음 심(心) 방을 쓰고, 네 아들은 힘 력(力)자 방을 쓰는구나" 그러자 최광이 이렇게 답했다: "이것이 바로 군자노심, 소인노력(君子勞心, 小人勞力)입니다"

 

양무제는 시중 왕빈에게 물었다: "나는 있는가? 없는가?" 왕빈의 대답은 이러했다: "폐하는 만물을 통치하시니 이것은 '있는' 것입니다; 또한 폐하는 가장 높은 이치를 깨달으셨으니, 그것은 '없는' 것입니다'

 

남조의 송문제가 천천지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하루종일 낚았지만 고기가 한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왕경은 바로 말했다: "이는 실로 낚시하는 사람의 마음이 너무 청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끼를 탐하는 물고기는 낚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위문후는 낙양을 파견하여 중산을 얻었다(기원전408년). 중산을 얻은 후, 중산을 자기 아들에게 준다. 사실, 문후 자신은 이 일을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마음이 불안했다. 그래서 신하들에게 물었다: "나는 어떤 군주인가?" 그러자 모두 대답했다: "인군(仁君, 어진 군주)입니다" 그러나 임좌(任座)만이 다른 신하들의 말에 따르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 "군왕이 중산을 얻었으면, 당연히 동생에게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굳이 아들에게 주었는데 어찌 인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위문후는 아주 화를 냈다. 임좌는 자기를 죽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도망쳐 버렸다. 위문후는 그를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그가 도망치자 마음이 허해졌다. 다시 적횡(翟橫)에게 물어본다. 적황도 그는 "인군"이라도 답변하낟. 문후는 그가 솔직하지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계속 추궁했다. "왜그렇게 말하는가?" 그러자 적횡은 이렇게 말한다: "군주가 인덕이 있으면 신하가 정직합니다. 방금 임좌의 말은 아주 강직했습니다. 이를 보면 당신은 인군입니다." 문후가 그 말을 듣고 아주 기뻐했다. 그리고 적횡을 보내어 임좌를 불러오게 하고, 친히 마당으로 내려가서 영접했고, 임좌를 상빈으로 대우해주었다.

 

왕변주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여러분은 비록 지름길로 관직을 얻었으나, 말은 좀 우아하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환현이 찬위했을 때 막 용상에 오르는데 바닥이 꺼졌다. 그때 은문중은 이렇게 말했다: '이는 성덕이 두텁고 깊기 때문입니다. 대지마저도 감당할 수가 없었나 봅니다'"

 

양무제가 즉위할 때, 맹호가 건강성으로 뛰어들었고, 코끼리가 강릉으로 난입했다. 무제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불길한 징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신하들에게 물어보았으나, 아무도 답하는 자가 없었다. 왕영이 이때 이렇게 답한다: "과거에 돌을 치고 때리며 백수를 이끌고 춤춘다'는 말이 있는데, 현재 폐하가 천명을 받아 등극하니 호랑이 코끼리까지도 축하하러 왔습니다" 이러한 아부의 말은 정말 역겨울 정도이다.

 

명세종은 꺼리는 것이 많았다. 당시 과거에 시제를 출제하는데, 반드시 좋은 말을 선택해야 했다. 예를 들어 이전에 <<논어>>에 나오는 "무위이치(無爲而治)"와 <<맹자>>의 "아비요순지도(我非堯舜之道)"의 두 문구를 출제했는데, 출제한 관리는 모두 견책당했다. 세종은 '무위'는 황상이 '유위지군(有爲之君, 성취가 있는 군주)'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나는 요순이 아니다'라는 것은 마치 비방하는 말과 같다는 것이었다: 명세종 가정초년, 강연관 고정신이 황상에게 <<맹자. 함구몽장>>의 "방훈조락(放勛落, 방훈은 요임금의 공적이 사방에 미쳤다는 뜻이고, 조락은 죽었다는 뜻이다)"을 언급하자 신하들이 대경실색을 했다. 황제의 싫어하는 부분을 건드린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고정신은 천천히 말했다: "당시 요임금은 이미 일백스무살이었습니다" 그러자 신하들은 마음을 놓았다.

 

명나라때 단도(丹徒)사람인 근귀(貴)는 관직이 무영전대학사에까지 올랐다. 그의 재혼부인은 30세도 되기 전에 과부가 되어 수절했다. 나중에 어떤 관리가 상소를 올려 그녀를 절부(節婦)로 상을 내릴 것을 요청했다. 이 일을 예부로 보냈다. 예부관리인 조랑은 근귀와 인척관계여서 최대한 그녀를 위하여 '절부'를 얻어내려고 하였다. 예부상서 오산(吳山)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의부절부(義夫節婦), 효자현손(孝子賢孫)으로 죽고나서 표창하는 것은 필부필부(匹夫匹婦)의 덕을 드높이기 위함이고, 양호한 풍속을 형성하기 위함이다. 사대부라면 누가 절의효순하지 않는 자가 있단 말인가? 근부인은 이미 생전에 특수한 영예와 은총을 받았는데, 하필 필부필부들이 죽은 후에 받는 명예까지 누리려고 한단 말인가?" 얼마후에 오산이 서원을 갔다가, 때마침 대학사 서개와 만났다. 서개도 근부인을 절부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자, 오산은 서개에게 정색을 하고 말한다: "설마 상공께서는 부인이 재혼할까봐 걱정하는 겁니까?" 그러자, 서개는 눈만 크게 뜨고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사실, 교묘한 말은 때를 가려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재앙이 되기도 한다. 송왕은 그의 재상인 당앙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는 사람을 적지 않게 죽였는데, 신하들은 나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이건 무슨 이유에서인가?" 그러자, 당앙은 이렇게 답한다: "폐하께서 처결하신 것은 죄를 지은 자로 나쁜 자들입니다. 폐하가 나쁜 자를 처결하니, 좋은 사람은 당연히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페하께서 신하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려면, 좋고 나쁘고를 가리지 말고, 아무렇게나 그들을 처벌하면 됩니다. 만일 그렇게 하면 신하들은 폐하에게 두려움은 느낄 것입니다." 얼마지나지 않아 송왕은 당앙을 죽인다. 당앙의 이번 대답은 하지 않은 것만 못했다. 당앙은 말잘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