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왕소봉(王小峰)
서덕량이 덕운사(德雲社)를 나온 것은 원래 큰 사건은 아니었다. 다만 계속 시비가 끊이지 않는 곽덕강이 연루되었기 때문에 공중사건이 되어 버렸다. 이 사건은 강호색채가 짙다. 처음에 쌍방은 서로 양보하지 않고 서로에게 심한 말을 해대더니, 그 후에는 서로 형제를 칭하고 상대방의 사업이 발전하기를 축원해주고 있다.
두 사람과 직접 대면하여 상황을 알아보니, 양쪽에서 듣는 말이 완전히 달랐다. 서덕량이 말한 수입이 너무 적고 존중받지 못하였다는 점에 대하여도, 곽덕강에게서 들으면 완전히 다른 버전이었다. 다만 최소한 한가지, 즉 서덕량이 덕운사를 시끄럽게 떠나면서 매체의 관심을 얻으려는 목적은 달성했다. 그러나, 곽덕강에 있어서 그에게 언론이 유리하건 불리하건, 아마도 2,3주가 지나면 조용해 질 것이다.
차루에 가서 상성을 듣거나 극을 구경하는 것은 이미 수십년은 중단된 것이다. 덕운사의 출현은 상성을 자기의 토지로 되돌렸고, 수십년간 형성된 국유문예연출단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곽덕강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이인전(二人轉)을 하는 사람들은 조본산(趙本山)에게 감사한다. 모든 상성을 하는 사람들은 곽덕강을 욕한다"
"이인전"은 국영단체의 길을 걸은 후에 극장으로 되돌아갔다. 상성과 다른 점이라면, 이인전은 십여년전부터 차례로 극장으로 되돌아갔다는 점이다. 조본산의 출현은 그저 이인전의 민간성을 공고히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가 나중에 유노근대무대(劉老根大舞臺)를 만들어, 심양과 장춘에서 고정적으로 연출했는데, 다시 한번 이인전의 시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조본산의 자신의 인격적 매력과 영향력을 이용하여, 동북각지의 극장에서 우수한 연기자를 발굴하고, 자기의 팀아래 끌어모았고,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하였다.
다만, 상성이 이인전과 다른 점은 먼저 문파(門派), 배분(輩分)의 전통이 우수한 통합을 가로막는다. 다음으로 최근 30년간, 상성인재의 결핍으로 뒤를 잇는 사람이 없어질 지경에 이르렀다. 조본산은 일찌기 곽덕강에게 일부 연기자를 새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몇몇 분점을 열도록 건의한 바 있다. 그러나 곽덕강은 상성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고, 유노근대무대와 같은 모델을 취하기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저 한명 한명 배양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그리하여, 곽덕강이 해야 할 일은 이전에 조본산이 했던 일보다 훨씬 많다. 어떤 의미에서, 곽덕강이 지금 하려는 것은 새로 상성을 보급하는 일이다.
곽덕강은 잘 알고 있다. 그는 반드시 하나의 "각아(角兒, 경극계의 유명한 연기자로 그를 중심으로 경극단이 구성되었음)"가 되어, 상성계에 자신의 깃발을 하나 꽂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그 다음 길을 개척하기가 쉽다.
인터뷰과정에서 곽덕강과 서덕량은 모두 문예단체의 체제문제를 언급했다. 곽덕강은 이렇게 말한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예술을 하면 바로 '각아책임제(角兒負責制)'를 해야 한다. 마련량(馬連良)의 극단은 마련량 한 사람이 결정하면 끝이다. 매극단(梅劇團)은 매란방(梅蘭芳)이 한마디 하면 끝이다. 우리는 현재 전문단체가 몰락하고 있는데, 바로 이것과 반대되게 가기 때문이다. 하나의 단체내에서 서로 내부에서 싸우고 있다. 15명의 서기, 20명의 예술총감이 있는데, 안싸우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니냐. 그들은 그저 정부에서 자금지원을 받기 때문에, 시간만 있으면 서로 싸우고, 음해하고, 헐뜯는다. 그들은 그래도 된다. 우리는 안된다. 돈이 있느냐 없느냐는 완전히 무대에서의 능력에 따라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의 몇몇 극반(劇班)과 비슷한 형편이다. 각아책임제가 절대적으로 좋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중국 희곡과 곡예가 잘나가던 시절에는 모두 각아책임제였다. 각아책임제를 없앤 후에는, 어느 새로운 희곡유파가 나타나기나 했는가? 그리고 어느 창이 '소삼리료홍동현(蘇三離了洪洞縣)'처럼 골목마다 들을 수 있었는가?"
서덕량은 이렇게 말한다: "현재의 영도책임제는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예를 들어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이끈다. 이는 예술의 법칙에 맞지 않는다. 또 다른 문제는 바로, 연기자가 영도에게 책임지게 된 것이고, 관중에게 책임지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예술수준이 올라가지 않는다. 그저 내려갈 뿐이다. 그것이 탄생한 초기에는 괜찮았다. 바로 예술품격에 있어서 민간에서 국영으로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영도에 대하여 책임지고, 규정에 따라 돈을 받아간다. 다만, 일부 관중의 저급한 취미에 영합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좋은 것들이 나올 수 있었다. 다만, 50여년의 발전을 거치면서, 이 길은 현재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문제를 낳았다. 그래서 덕운사가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는 적극적인 의미가 있다. 바로 예술에서 더욱 본질적인 것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덕운사의 상성이 재미있다는 것은 바로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는 바인데, 이러한 규율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밑바닥부터 기어서 올라온 곽덕강은 더더구나 전문의 정규적인 문예단체를 별볼일 없다고 여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체제는 무능한 자에게 보호막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덕운사는 우리의 의식부모는 바로 관중이다. 오늘 무대아래에 300명이 꽉차면 우리는 무대수입이 6000위안인 것이다. 이 300명이 오지 않으면, 우리는 오늘 6000위안이 부족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하여야 관중들이 우리를 좋아하게 할 수 있을까? 관중은 우리의 아버지이며 하느님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잘해야 한다. 그들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다만 우리가 전문단체라면, 우리는 관중을 신경쓸 필요가 없다. 우리의 관중은 그저 우리를 주관하는 부서의 그 책임자이다. 장단장, 왕단장 같은 사람들이다. 그저 이 사람들이 체포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일년경비는 거기서 나온다. 의식부모는 바로 그 한 사람이다. 덕운사의 의식부모는 사회일반백성이다. 전문단체는 국가의 돈을 들여서 다른 사람을 음해하고, 내부투쟁을 하고, 나중에 두 가지의 찬양일색인 아주 역겨운 아부성 프로그램을 넣으면 된다. 그러면 금년의 실적으로 괜찮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영원히 먹을 게 생긴다. 상성을 포함해서..나는 솔직히 말하는 것이다. 한가지 건의를 하고 싶다. 국가가 한 두개 상성단체를 남기고, 이들로 하여금 아부하고 찬양하게 맡겨라. 그리고 그들에게는 상업공연을 하도록 하지 말라. 그저 대상대회, 만회(晩會), 기층선전을 이들보고 하게 하라. 나머지 연기자들은 모두 사회로 내보내라. 능력있는 자는 일하고, 그걸로 밥을 먹고, 능력없는 자는 일찌감치 다른 분야로 전향하면 된다. 이렇게 해야 이 업종에 희망이 있다. 이것은 내가 여러해동안 얻은 결론이다."
현재 많은 곳에서 상성차관(相聲茶館)을 열고 있다. 어떤 곳은 식당에 열어서 소비금액이 일정이상이 되면 연출을 해준다. 어떤 경우는 쇼핑금액이 일정이상이 되면 상성을 들을 수 있다. 어떤 경우는 무상으로 듣게 해준다. 그러나, 곽덕강이 보기에, 이것들은 모두 기형적인 발전이다. "이들은 상성계의 죄인이다. 왜 그런가? 그들은 연출시장을 파괴하고, 시장가격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보기에, 덕운사같은 유형은 7,80년대부터 시작했고, 최근들어 더욱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아주 규범화된 회사식경영을 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덕운사는 상성을 제외하고도, 영화티비등 기타 분야의 사업도 있다. 현재는 엔터테인먼트회사처럼 보인다. 다만, 곽덕강은 이 점을 부정한다. 그의 뿌리깊은 "각아책임제"는 그가 오락산업을 경영하면서, 회사화된 경영을 회피하는 이유이다. "오늘의 시장과 과거의 시장은 다르지 않다. 너는 예술을 팔아먹는 것이다. 팔기 위해서는 사는 사람이 있으면 된다. 첫째 사람이 있어야 한다. 뒤에서 너를 위해 일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둘째 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바로 작품이다. 너 한 사람이 1백개의 작품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프로그램이 너무 많이 중복되어서는 곤란하다. 관중들도 그렇다. 오늘 왔더니 네가 이렇게 말했는데, 내일 와도 똑같이 말한다면, 너는 다시 와서 그 공연을 보겠는가? 셋째는 돈을 투자해야 한다. 아마도 3년이면 해낼 수도 있고, 5년만에 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숫자는 미지수이다. 아마도 다음 달에 바로 성공할 수도 있다. 다만 다음 달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어쩔 거냐. 그래서 세번째는 바로 함께 버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성예술의 구원이라는 각도에서 보자면, 곽덕강의 방식은 확실히 성공했다. 다만 민간단체를 경영한다는 각도에서 보면, 표면적으로는 곽덕강과 덕운사도 성공했지만, 서덕량이 떠난 것을 보면, 강호조직의 일부 방식은 확실히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분명히, 서덕량이 떠난 주요한 원인은 수입문제이다. 어떤 사람은 서덕량이 스스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수입문제를 빌미로 덕운사를 떠난 것이라고 한다. 쌍방의 갈등에 관하여 쌍방의 말을 들어보면 어느쪽이 맞고 어느쪽이 틀리는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과거 강호조직에는 "수야상(隨爺賞)"는 관례(行規)가 있다. 즉 네가 한 '각아'를 따라다니면서 밥을 먹을 때에는 '각아'가 너에게 얼마를 주면 얼마를 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예전에 마련량과 매란방의 극단도 이런 형식을 취했다. '각아'를 따르는 사람들은 자기가 받는 돈에 대하여 이런 저런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강호의 관례는 이렇게 이어져 왔다. 곽덕강이 실제로 채택한 방식은 바로 "수야상"의 방식이다. 덕운사는 비록 회사형식으로 등록되었지만, 전부 회사식으로 경영하지는 않았다. 세금이외에 다른 것은 여전히 과거의 강호규칙을 따랐던 것이다.
신중국성립초기에 북경의 계명상성차사의 수입분배방식은 "공의분(公議份)"이었다. 이것은 사람들이 가져가는 돈을 서로 협의하는 것이다. 1분(份)이 10푼(分)이다. 수준이 높으면 1분을 가져가고, 학생은 5푼을 가져간다. 과거에 상성에서는 하나의 약정이 있는데 바로 이렇게 나누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좋은 점은 매 개인의 수입이 투명하다는 것이고, 수입기준도 사람들이 협의해서 정한다는 것이다.
서덕량이 보기에, 곽덕강의 이런 "수야상"의 방식은 곽덕강과 다른 사람들간의 수입격차를 확대시키기만 했다. 이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다만, 곽덕강이 보기에, 이런 방식 이외에 더 좋은 방식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진정한 회사식 경영은 거부했다. 그는 말한다: "이 업종은 완비될 수가 없다. 공장과도 다르고, 다른 업종과도 다르다. 상성을 하는 사람들은 네가지가 있다: 아주 총명하고, 아주 간사하며, 아주 교활하고, 아주 비열하다. 이 업종에서 일하려면, 네가 무대에서 상성을 연기하려면, 반드시 많은 사람의 표정, 언어와 심리상태를 연구해야 한다. 그래서 이 업종은 네가 그것을 완비하려면, 오히려 그것이 너를 완비하려 할 것이다. 그래서 철저하게 완벽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말로 완비해버리면 이 업종은 끝장이다. 우리는 그저 동시에 모두 잘 지내면 좋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완비된 것이다"
아마도 서덕량은 덕운사를 이상화하려는 것같다. 그가 보기에 비록 "수야상"이지만, 오늘날 덕운사처럼 하여서는 안된다고 본다: "덕운사는 2년을 들여 영도책임제가 50년간 걸어온 길을 걸었다. 그리고 각아책임제로 되돌아갔다. 그것은 이익의 극대화, 효율의 극대화를 달성했을 뿐아니라, 동시에 갈등의 극대화, 헛점의 극대화도 이루었다. 바로 곽덕강이 너무 인기를 폭발적으로 얻었으므로 그 한 사람이 독보적으로 되어 버렸다."
곽덕강은 이렇게 생각한다: "집안에서 살아가는데 반드시 한마디하면 그만인 사람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계속 이러했다. 내가 프로그램을 안배하면서, 너는 이것을 말하면 안되고, 너는 그에게 이것을 말하라고 하고, 이 프로그램은 어떻게 연기하고, 그 프로그램은 어떻게 해야한다고 말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마련량의 극단에서도 마선생이 한마디 하면 끝이었다. 너는 아마도 내가 이 부분을 당초에 양보삼의 극단에 있을 때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양보삼의 극단으로 가라. 이건 아주 정상적인 일이다. 한 집안 사람들이 가족으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서덕량은 이렇게 말한다: "사실 과거에 이런 각아책임제는 아주 완벽하게 발전되었었다. 주연을 뽑고, 팀을 구성하는데, 이 반주(班主)의 말을 듣는다. 이것은 마치 자본가가 노동자를 대하는 것과 같다. 처음부터 자본가는 어떻게 노동자를 박해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다만 현재 우리는 노동자의 생활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이것은 모순이 해소되거나 완화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자본가들은 너에게 더 잘해주면서, 네가 다시 그를 위해 이익극대화를 해주도록 하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마련량, 매란방같은 경우는 자신의 2로, 3로에 대하여 아주 잘대했다. 이런 예를 들어보겠다. 어떤 사람이 매란방이나 마련량에게 외국으로 나가서 공연을 하면, 반년에 얼마를 주겠다고 제시했다고 치자. 그러면 그들은 미안하지만 나는 갈 수가 없다. 내가 반년이나 외국에 나가면, 나의 이 4,5십명이나 되는 단원들은 어떻게 되는가? 그들은 나를 믿고 일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과거의 예술가는 왜 그를 라오반(老板, Boss)이라고 불렀는가? 그들은 동시에 상업적인 마인드도 있었던 것이다. 마련량과 같은 경우 4기둥 4서까래가 모두 갖추어 있다. 일반적인 극단들이 따라올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많은 돈을 들여서, 자신의 2선, 3선연기자들을 아주 잘 돌봐주었던 것이다. 사실 이것은 모두 장기적인 목표이다. 단기간에 이룰 수는 없는 것이다. 마련량이라고 붙이면 성공하는 것이다. 바로 희극학교를 졸업한 단원이라고 성공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파는 것은 마련량이기 때문이다. 사실 현재 덕운사를 얘기하자면 바로 이런 문제이다. 모두 아이이고, 곽덕강이 팔리는 사람이라고 치더라고 표는 다 팔리고 좌석을 채운다. 그래서 곽덕강은 그 다음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현재 덕운사의 공연을 보면, 많은 관중들은 "아이구..뭐냐?"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곽덕강 자신이 어느때는 나오지 않고, 어느 정도 관광지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어쨌든 북경에 왔으면 덕운사의 공연이나 한번 보고 가자는 정도...왜 현재 덕운사의 핵심 팬들이 모두 프로그램의 수준이 날로 저하된다고 느낄까? 이것이 바로 문제이다."
서덕량의 문제제기에 대하여, 곽덕강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집안식구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우리 집에서는 소고기 양고기를 안먹는다면, 어쩔 수 없이 소고기, 양고기는 안먹어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네가 먹고 싶으면, 딴데가서 먹어야 한다. 우리는 속을 넣은 만두를 만든다, 너희 그쪽에는 만두에 속을 넣지 않는다. 내가 최대한 만두를 만들어서 내미는데, 네가 먹고 싶어하지 않고, 그릇을 집어던져 버리고, 떠난다면, 나는 어쩔 도리가 없다.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서덕량이 보기에, 만일 회사의 기준으로 놓고 보면, 덕운사는 장려와 격려메커니즘이 부족하다. 만일 강호조직의 기준으로 본다면, 곽덕강의 의리와 포용성이 부족하다: "그는 완전히 자기의 마음에 따라 결정한다. 네가 마음에 들면 20위안 올려준다. 너 요즘 왜이래 하면 바로 네번 출연을 정지시켜 버린다. 이외에 강호의 두목을 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강호의 우두머리라면 첫머리를 먹어서는 안된다. 마지막을 먹어야 한다. 형제들은 너를 위해 목숨을 걸고 있지 않은가? 네가 의리는 없고 돈만 있다면, 어떻게 사람들을 붙잡아둘 수 있겠는가?"
곽덕강은 말한다: "내가 의리를 중시하지 않았다면, 오늘까지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가 한마디 한마디 그의 말에 반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더이상 거짓말하지 말라. 우리 덕운사에 경영의 도리가 없고, 그리고 더욱 선진적인 것으로 관리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상성을 하는 것은 창,평,극과 모두 다르다. 그것은 하나의 독특한 세계이다. 국외에 많은 선진적인 대기업의 관리제도도 여기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조금도 적용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특이한 무리의 사람들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전문단체에서 있었고, 나중에 북경에 이렇게 오래 있었고, 다른 업종도 나는 해보았다, 영화티비이건 방송국이든 아니면 다른 소극단이건, 나는 모두 해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이런 생존상태로 되돌아온 것이다. 앞뒤를 비교하고 반복하여 생각한 끝에, 바로 현재의 이런 유일한 방법이 된 것이다. 만일 이 방법으로 계속해나갈 수 있다면, 이 업종을 흥성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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