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왕명삼(王銘三)
속담에 "끝나지 않는 잔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가까운 팀이라도 헤어질 때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가까운 부부라도 떨어질 때가 있는 법이다: 어느 부부가 아침 저녁으로 계속 붙어 있을 수 있는가?
두 사람이 공동의 이상, 공동의 지향, 공동의 사업을 함께 하고 이를 위하여 함께 분투하는 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연분(緣分)'이다. 어느 단계의 분투를 거쳐, 일정한 성과를 얻고, 일정한 목표를 실현한 후에, 전방에 갈라진 길이 나타나면 두 사람은 더욱 심층적인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할 수 없이 헤어져서 각자가 각자 정한 목표를 항하여 매진하게 된다.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연분이 끝났다'는 것이다.
'천하대세, 합구필분, 분구필합(天下大勢, 合久必分, 分久必合, 천하의 대세는 통일의 시대가 오래 가면 분열의 시대가 오고, 분열의 시대가 오래가면 통일의 시대가 온다)'. 모였다가 헤어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통상적인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것을 생사이별처럼 시끄럽게 구는 경우가 있다. 마치 천지가 갈라지는 것과 같이, 원래 고요한 바다를 휘저어서 풍랑이 하늘까지 솟게 만든다.
서덕량(徐德亮)이 덕운사(德雲社)를 떠나는 것은 조만간에 반드시 있을 일이었다. 최소한 그의 상성(相聲)은 곽덕강(郭德綱)의 상성과 차이가 크다. 하나의 유파라고 볼 수가 없다. 덕운사는 그에게 어느 정도 맞지 않는다. 그리하여, 서덕량은 자연스럽게 손인사를 하고 떠나면 되었다(당초에 덕운사에 참가할 때도 공개적으로 성명을 발표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그는 굳이 블로그에 정중하게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리하여 심심해하던 오락기자들이 힘을 발휘할 여지를 주게 되었다.
보통사람과 장애인의 두 올림픽이 전세계의 눈길을 끌고 있을 때, 오락계는 스스로 뒷자리로 물러나 있었다. 1달반여동안 폭발적인 뉴스가 없어서, 오락기자들은 정력과잉이 되었다. 돌연 '서덕량의 덕운사 퇴출'이라는 뉴스가 나오자 너무나 격동했다. 그리하여 서덕량을 인터뷰하고, 왕문림을 인터뷰하고, 곽덕강을 인터뷰했으며, 우겸을 방문하고, 덕운사를 방문하고, 브로커를 방문했다. 그리하여 문자로 녹화로 인터넷동영상으로 온 하늘과 땅을 뒤덮으며 난리를 치게 된 것이다.
집에서 요양중이던 장문순(張文順)도 참지를 못했다. 제자에게 위탁하여 헛점투성이인 성명을 발표했다. 왜 구두로 제자를 받았으면서, 왜 파지(擺枝, 스승으로 모시는 의식)은 하지 않았는지? 정식제자가 아니라면, 왜 그에게 덕량(德亮)이라고 배분에 따른 이름을 주었는지? 서덕량을 더 이상 제자로 인정하지 아니한다면 그가 어떤 예명을 쓰던 무슨 상관인지? 갈등이 나타나자 마자(폭로되자 마자), 곧바로 기다리지 못하고 한쪽을 지지하고 한쪽을 배척하는 것이 어른으로서, 선배로서, 원로로서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서덕량은 자신이 자연스럽게 떠나는 것을 '노라의 가출'처럼 만들어서는 안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서덕량이 덕운사를 떠나는 것을 내분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내분에는 승자가 없다는 것을 안다면, 쌍방이 모두 정도는 다르더라도 상처를 입을 것이다.
크게 보는 것이 좋다. 옛날에 함께 견지하였지만, 지금은 각자 발전하고, 나중에 공동으로 전진할 수있다면 뭐 나쁠 것이 있겠는가? 옛날 선배들이 갔던 길을 그대로 가야 한단 말인다: 강산이 안정되면 장수를 숙청할 것인가? 설마 마늘과도 같은 운명을 뒤따를 것인가 - 형제6,7명이, 평일에는 같이 끌어안고 있다가, 나이가 들어서 분가하려고 할 때는, 옷까지도 벗겨버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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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1]
<<서덕량, 왕문림의 북경덕운사 퇴출에 관한 성명>>
오늘부터, 서덕량, 왕문림은 북경덕운사를 퇴출합니다. 이에 성명으로 밝힙니다.
서덕량 왕문림
2008년 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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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2]
장덕무(張德武)가 은사 장문순(張文順)의 위탁을 받아 은사의 성명을 아래와 같이 발표합니다:
정중성명 - 북경덕운사 상성연기자 장문순
나는 덕운사 상성 연기자 장문순입니다. 신체건강문제로 무대에 올라서 여러 관중에게 연기를 보여드리지 못하여, 깊이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서량(덕량)이 덕운사를 퇴출한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는데, 아쉬운 마음의 끝에 일부 사정을 명확히 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량(덕량)은 일찌기 나와 구두로 맹세한 제자이지만, 계속하여 파기(스승으로 모시는 의식)는 행하지 않았습니다. 08년 구정에 서량이 우리 집으로 찾아왔는데, 덕운사를 떠난다는 말은 하지 않았고, 이후 9개월여간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중추절의 전날, 몇몇 열심인 관중들이 우리 집을 찾아왔고, 나는 비로소 서량이 덕운사를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늘 오전에 다시 그가 발표한 성명을 보았습니다.
나와 곽덕강 선생이 창립한 덕운사는 이 단체를 통하여 돈을 벌려는 의도가 아니었고, 그저 상성이 다시 번영하는 것을 보기를 희망했습니다. 현재 덕운사가 인기를 얻으니, 어떤 사람은 마음속으로 불만이거나, 떠나려고 하는 것도 정상으로 봅니다. 사람은 각자 뜻이 있으니, 억지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성명은 발표해야 겠습니다:
1. 서량의 사업선택을 존중한다.
2. 본인의 능력에 한계가 있어, 다시는 서량선생의 연기예술을 지도할 수가 없다.
3. "덕(德)"자는 본인 가문의 항열이니, 서량이 더이상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북경덕운사 상성연기자 장문순
2008.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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