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경제/중국의 기업가

왕용칭(王永慶)의 사망과 포모사 플라스틱의 후계자

중은우시 2008. 10. 17. 14:58

 

 

 

1. 왕용칭과 포모사 플라스틱 그룹

 

    2008년 10월 16일 포모사 플라스틱(臺塑)그룹의 회장인 왕용칭이 심근경색으로 미국 뉴저지에서 사망한다. 향년 92세이다.

 

    왕용칭은 1916년 1월 타이페이시에서 태어났고, 15세에 공부를 그만두고 차원(茶園)의 잡일부터 배우고 나중에 쌀집에서 일을 한다. 16세때 부친으로부터 200위안을 빌려서 스스로 쌀집을 하나 열었다. 그 후, 정미소, 벽돌공장, 목재상, PVC 원료생산등으로 확장했다. 그리고 1954년에 포모사플라스틱을 창업한다.

 

    왕용경의 산하에는 "대소사보(臺塑四寶)"라고 불리우던 대소(臺塑), 남아(南亞), 대화(臺化), 대소화(臺塑化)의 네 개기업이 있었다. 나중에 복무(福懋)와 남과(南科), 화아과(華亞科)와 남전(南電)이 추가되어, 포모사플라스틱그룹의 상장회사는 "사보"에서 "육보", "팔보"로 늘어나게 된다. 2007년 대소승고과기와 복무과기가 추가되어 모두 10개기업으로 늘어난다. 포모사플라스틱그룹은 정유, 석유화학원료, 플라스틱가공, 섬유, 방직, 전자재료, 반도체, 자동차, 발전, 기계, 운수, 생물과기, 교육 및 의료사업등의 산업에 걸쳐 있고, 특히 석유화학분야에서는 원유수입, 운송, 제련, 분해, 가공제조에서 완성유소매까지 일체화된 완전한 산업체인을 장악하고 있다. 2006년의 제조총액은 2조대만달러에 이르러, 대만의 1년간 생산총액의 7%를 차지하였다.

 

    포모사 플라스틱 그룹은 이미 대만최대의 민영기업이다. 2007년도 영업수익이 1조 9674.38억대만달러이고, 자산총액은 2조4623.97억대만달러, 세후순이익이 2190.77억대만달러이다. 그는 "경영의 신", "세계 플라스틱의 왕"으로 불리웠고, 2008년 6월에 포브스에서는 왕용칭의 개인재산이 68억달러로 대만에서 2위라고 밝혔다.

 

2. 왕용칭의 부인과 자녀

 

    왕용칭은 3명의 부인을 두었고, 10명의 자녀를 낳았다.

 

    첫째부인 곽월란(郭月蘭)은 동양식(童養, 어릴 때 시집으로 와서 자라고 결혼하는 것)이다. 결혼후에 자녀를 두지 못했다. 그녀는 불경을 벗하고, 세상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둘째부인은 요교(廖嬌)인데, 2남 3녀를 두었다. 요교의 원래 성은 양(楊)씨이다. 어려서 다른 집에 양녀로 가서 성이 바뀌었는데, 말년에 그녀는 다시 원래의 성으로 회복하기를 원하여, 사람들은 그녀를 양교(楊嬌)라고 불렀다. 기독교에 독실한 그녀는 이미 미국으로 건너갔다. 행동이 불편하여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다.

    장남 왕문양(王文洋): 1951년 4월 2일생. 13살 때 두 누나 왕귀운, 왕설령을 따라 런던으로 공부하러 떠남. 17세에 런던대학 로얄칼리지에서 물리학을 공부함 20세에 대학졸업, 24세때 기업관리석사와 화공박사를 취득함. 그는 귀국한 후 그룹의 반도체사업을 주관했다. 원래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포모사 플라스틱의 후계자였다. 그러나, 1995년 스캔들(呂安사건)로 부친과 반목하면서 포모사 플라스틱 그룹에서 축출된다. 나중에 왕문양은 광저우를 기지로 하여 굉인(宏仁) 그룹을 창립한다. 사실상, 왕문양이 떠난 후에 왕씨 내부의 후계자다툼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차남 왕문상(王文祥): 그는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일을 했다. 현재 포모사 플라스틱의 미국JM Eagle 플라스틱회사의 총재를 맡고 있는데, 그의 성장과 생활환경에 대하여 외부에서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장녀 왕귀운(王貴雲): 영국유학을 하고 런던대학에서 화공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포모사플라스틱 남아의 이사이다.

    차녀 왕설령(王雪齡): 남편인 간명인(簡明仁)과 함께 대중컴퓨터그룹을 창업한다. 이는 이미 대만의 유명한 하이테크기업그룹으로 성장했다. 현재 대중컴퓨터그룹은 90여개 기업을 거느리고 있고, 자산총액과 영업수익이 모두 1천억대만달러를 넘어섰다. 다만 대중컴퓨터는 글로벌화과정에서 뒤쳐서서 점차 위축되고 있다.

    삼녀 왕설홍(王雪紅): 그녀는 1988년 주택대출금 500만대만달러를 가지고 위성(威盛)전자회사를 설립한다. 1992년 미국의 소형전자회사를 합병하여 점차 IC분야로 확장했다.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하이테크기업그룹으로 성장했다. 현재 위성그룹은 20여개 기업이 있고, 그 중 3개는 상장회사이다. 그룹의 영업수익은 650억대만달러를 넘어섰으며, 왕설홍은 현재 16개 기업의 동사장을 맡고 있다. 개인재산은 2001년도 대만기업가중 랭킹6위에 해당하였다. 나중에 위성은 쇠퇴하지만 그녀가 보유한 또 다른 기업 굉달전(宏達電)은 여전히 잘나가고 있다.

 

    셋째부인은 이보주(李寶珠). 왕용칭의 사업에 있어서 큰 도움을 준 여인. 타이페이시 박애로 흑미인대주점에서 인기있는 주녀(酒女)로 화명이 앵화(櫻花)였음. 이보주는 교제능력이 뛰어나 결혼후 왕용칭의 비서 겸 대외업무책임을 맡음.

    왕용칭이 60여세부터 그녀와 동거함. 모두 5명의 딸을 낳음

 

     왕서기(王瑞紀): 왕용칭의 소생이 아니고, 이보주의 전남편의 소생임. 그러나, 왕용칭은 친딸과 같이 대해주었다고 함.

     왕서화(王瑞華): 왕용칭이 사전에 정한 7명 후계자그룹의 멤버. 포모사그룹 산하의 장경생물과기공사 사장을 맡고 있으며, 의료, 생물과기사업과 미국투자사업을 관장하고 있다.

     왕서유(王瑞瑜): 용용칭이 사전에 정한 7명 후계자그룹의 멤버. 포모사그룹 총관리처주임을 맡고 있다. 그녀는 FTG Shopping 네트워크를 만들었고, 청결제를 생산하던 태화에서 십여종의 화장품을 개발하여 인터넷에서 판매하고 있다.

     왕서혜(王瑞惠): 장경의원 행정센터 부주임이다. 그녀의 남편인 유배삼은 영국의 건축학 박사이고, 대만TV 사장인 유간여의 아들이다. 그는 유배삼건축사사무소를 열었고, 포모사플라스틱그룹의 건축설계업무를 담당한다. 임구의 양생문화촌은 그의 작품이다.

     왕서용(王瑞容): 장경의원의 특별조리이면서 포모사플라스틱 미국회사의 재무책임자이다.

 

3. 포모사플라스틱의 후계구도

 

     왕용칭에게는 두 형제가 있다. 그중 하나는 결혼도 하기 전에 죽었다. 왕용자이(王永在)는 왕용칭보다 5살이 적다. 원래 포모사 플라스틱 그룹의 부동사장이다. 왕용칭과 함께한 시간이 가장 긴 사업파트너이다. 함께 힘든 생활을 겪었으므로, 형제간의 감정은 아주 좋다. '두 형제는 영원히 분가하지 않는다'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포모사플라스틱그룹이 분가하지 않는 것은 아마도 왕용칭, 왕용자이 형제의 위망이 있을 때에나 가능할 것이다. 아무리 주도면밀하게 짜더라도, 중국가족기업내부의 분리역량이 통합역량보다는 강하기 마련이다.

 

왕용자이의 후대는 비교적 간단하다. 포모사플라스틱 그룹내에서 일하는 두 아들이 있다: 왕문연(王文淵)과 왕문조(王文潮)이다. 장남 왕문연은 대화의 사장이며 현재는 포모사플라스틱그룹의 총재이다. 차남 왕문조는 대소석화의 총경리이다. 이 두 사람은 모두 7인의 후계자그룹의 멤버이다.

 

현재, 포모사 플라스틱 그룹의 경영은 "7인소조"에서 결정한다. 7인소조는 위에서 본 4명의 가족 즉, 왕문연, 왕문조, 왕서화, 왕서유를 제외하고, 3명의 전문경영인이 포함되어 있다. 대소 동사장 이지촌(李志村), 남아 동사장 오흠인(吳欽仁), 대소집단 총관리처 사장 양조린(楊兆麟)이 그들이다. "7인소조"는 '행정중심'을 구성하여 왕문연이 총재를, 왕서화가 부총재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