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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대륙과 대만

타이완의 병음대전(拼音大戰)

by 중은우시 2008. 10. 8.

글: 유종영(劉宗榮). <<국제선구도보>> 2008년 74기

 

타이페이(臺北)에서 충효동로(忠孝東路)는 예로부터 쇼핑천국이라는 아름다운 별칭으로 부리운다. 길가에는 수많은 백화점이 서 있을 뿐아니라, 골목길에는 각양각색의 특색상점들이 숨어있어, 많은 외지관광객과 쇼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관광객은 충효동로의 영문명이 한어병음(漢語音)인 "Zhongxiao E Rd."일지 아니면 통용병음(通用音)인 "Jhongsiao E Rd."일지 헷갈리게 된다.

 

최근 들어, 어느 병음시스템(영문표기시스템)을 쓸 것인가를 놓고 타이완 당국은 계속되는 논쟁에 시달렸다. 타이완내의 지명, 거리명 심지어 인명까지 통일된 영어표기방안이 없다. 그리하여 도로명칭의 영문표기는 아주 혼란스러웠다. 어떤 때는 같은 도로가 서로 다른 구간에서 서로 다르게 표기되기도 하였다. 심지어 각 현과 시에서 영어표기를 통일할 때, 카오슝(高雄)은 통용병음을 채택하고, 타이페이는 한어병음을 채택하는 식으로 나타났다.

 

2008년 9월 16일, 타이완당국의 "행정원각부회회의"에서는 주관부서의 제안에 따라 앞으로 중문영어표기정책을 '한어병음'에 따르는 것으로 확정하였고, 민진당정부가 6년전에 결정한 '통용병음'을 폐기하기로 하였다. 여러해동안 지속된 '병음대전'은 이로써 끝이 난 것이다.

 

"통용병음"의 폐기

 

"만일 한어병음을 모르면, 우리의 학생들이 공부하는데 아주 골치아프다" 타이완내의 왕모씨의 말이다. "나는 러시아어를 배우고 있는데, 나와 많은 친구들은 모두 중국대륙에서 만든 러-중전자사전을 쓴다. 다만 매번 중문으로 러시아어단어를 찾을 때마다 아주 머리아프다. 왜냐하면 중문입력을 반드시 한어병음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어병음은 아예 배워본 적이 없으므로 매번 그저 추측해서 입력하게 된다. 한번은 '모자(帽子)'에 해당하는 러시아어 단어를 찾는데, 한어병음이 뭔지를 몰라서 하루종일 이것저것 입력했지만 겨우 '묘(猫)'밖에 찾아내지 못했다."

 

확실히, 수십년동안, 한어병음은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 유엔에서 채용한 표준병음시스템일뿐아니라, 국제학술계에서 통용되는 병음시스템이기도 하다. 그러나, '통용병음'은 현지발음을 기초로 하였기 때문에 보급효과가 그다지 나타나지 않는다.

 

'통용병음'은 원래 타이완당국이 중문의 라틴화병음법의 사용을 건의하면서, '한어병음'의 개량판이라고 한 것이다. 타이완당국은 '통용병음'은 타이완의 환경과 본토화의 요청을 모두 고려하여 만든 것이므로, 타이완의 '본토모어'를 구현하면서, 한어병음과의 겸용성이 80%이상에 이른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타이완당국은 전면적으로 '통용병음'을 보급하였다.

 

'통용병음'과 '한어병음' 간에는 사실 3개의 음이 서로 다르다. 사용하는 부호의 차이는 겨우 15%이다. 다만 수소의 몇개 부호의 차이는 기하급수적인 차이를 나타낸다. 타이완 장경대학 이인원 교수는 단어데이타베이스를 통하여 얻어낸 수치를 보여주면서, 10만개의 단어중에서 48%가 다르게 나타난다고 한다. 결국 거의 절반의 중국어단어의 영문표기가 다르게 되는 것이다. 타이완의 저명한 언어인지심릭학학자이며, 전 교육부장관인 '증지랑'에 따르면, DNA단계의 1%차이는 인류와 고릴라의 차이가 되어 나타난다는 것을 예로 들면서 이런 현상을 설명했다.

 

예를 들어 "장(張)"씨성의 사람들은 양안에 많이 살고 있는데, 대륙의 여권에 쓰는 한어병음은 "Zhang"이다. 그러나, 타이완내의 '통용병음'에 따르면 "Jhang"으로 쓰게 된다. 이렇게 하다보니 분명히 한 성씨인데,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다른 성씨인 것처럼 보인다. 통용병음을 쓸 것인가, 한어병음을 쓸 것인가의 문제는 이미 거리이름을 어떻게 영문표기하여야 관광객이 불편하지 않겠느냐의 차원을 넘어섰고, 타이완의 초급언어교육, 자료소통 및 문화교류의 문제로까지 확대되었다.

 

일찌기 화문보집단의 언어고문을 맡았던 왕혜적은 싱가포르의 <<연합조보>>에 발표한 평론을 통하여, "통용병음이 도대체 통용되는가 아닌가? 내 생각에는 기껏해야 타이완에서 통용된다. 타이완내부의 민중끼리는 통용되지만, 타이완을 벗어나면 통용되지 않는다. 한어병음을 배운 외국인이 타이완에 들어가서, 통용병음을 보면, 도대체 뭔지를 알 수가 없다; 타이완에서 통용병음을 배운 외국인이 타이완을 벗어나면, 아무런 쓸모도 없다."

 

타이완에서는 길을 찾지 못한다.

 

통용병음이 가져온 곤혹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왕모씨에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그는 말한다: "한 러시아유학생이 나에게 타이페이 완화(萬華, Wanhua)의 유명한 용산사(龍山寺)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 그리하여 완화 기차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그 러시아 친구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어쩔 줄을 모르고 이리저리 휘둘러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뭘 찾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기차를 타고 있을 때는 방송에서 완화역에 도착했다고 들었는데, 기차역에서 나오니 이곳은 완화가 아니라 Manka였다는 것이다. 그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나를 보았다. 그는 나에게 어떻게 Manka에 와 있느냐고 물었다.

 

왕모씨는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거의 웃어자빠질 뻔 했다. 왜냐하면 완화는 민남어(복건어)로는 "맹갑(艋舺)"인데, 영어로 표기하면 바로 Manka가 된다는 것이다. 나중에 나는 알아차렸다. 의란현의 소오와 초계의 두 진에서는 민남어로 전체 시내의 거리표시를 영어표기해두었다는 것을. 그리하여 그곳의 영어표기는 보통화(표준말)로 읽는 지명과 천지차이가 났다. 내 생각에 외국인들만이 타이완에 와서 지명을 놓고 헷갈리는 것이 아니라, 타이완백성들 자신도 길을 잃을 것이다."

 

확실히 타이완사람들은 혼란한 각종 지명표기로 인하여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타이완에 와서 관광을 하거나 일을 하는 외국인들은 타이완내에서 길거리표지판을 보면 더욱 뭐가뭔지 모르게 될 것이다.

 

타이완문제전문가인 부권(富權)은 통용병음은 비록 타이완지역의 일부 방언의 발음을 정확하게 표시할 수 있지만, 사용한 후, 큰 곤혹을 겪게 되었다. "타이완의 지명, 인명을 국제적으로 영문표기할 때, 보통화를 발음표준으로 하는데, 그렇게 하면 한어병음이 완전히 사용된다. 방언의 발음을 더욱 정확하게 표기한 통용병음은 아예 고려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후자는 민남어, 객가어 및 원주민어의 발음을 글자로 표기하는 경우에만 적용할 수 있을 뿐이다."

 

"대만에서 어떤 병음방식을 채택할 것인가는 계속하여 '통일'과 '독립'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정치문제였다. 그러므로 서로 싸우다가, 타이완당국은 아예 지방에서 알아서 결정하도록 일임해버렸다." 신화사의 기자인 진건흥은 타이페이주재시에 병음대전의 곤혹을 깊이 느꼈다. "지하철을 탈 때, '중산(中山)'역의 입구에는 지명표시가 있는데, 동시에 두 가지 서로 다른 병음으로 되어 있다: 이 지명판에 '중산북로'의 '중산'은 Zhong Shan으로 되어 있지만, '중산분국'의 '중산'은 'Chung Shan'으로 되어 있다. '충효부흥'역에 도착하면, 지하철역내의 지명표시로는 'Chung Hsiao Fu Hsing'으로 되어 있는데, 지상으로 올라오면 이 지명의 표시는 "Zhong Xiao Fu Xing"으로 되어 있다.

 

"병음대전"의 유래는 길다

 

비록 타이완 '교육부집행비서'인 진설옥이 9월 16일 매체에 '한어병음'을 채택하는 것은 문화교류와 국제화를 위한 것이지, 남록의식(藍綠意識, 국민당과 민진당을 대표하는 색깔)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다만 타이완내의 병음방안 다툼은 유래가 길다. 평소에 보기에 아무 것도 아닌 병음표기문제의 배후에는 십여년동안 양안이 힘겨루기를 해온 많은 정치적인 이야기가 숨어있다.

 

장제스, 장징궈부자가 정권을 잡았던 시기에, 대만당국은 특수한 역사원인으로, 1918년에 공포한 주음(注音)부호를 고집했다. 비록 컴퓨터의 광범위한 보급과 사용으로 주음부호는 의사소통과 교류의 수요에 부합하지 않게 되었지만, '정통유지(保持正統)' '한적은 세불양립(漢賊不兩立)'등의 정치적 고려로, 타이완당국은 여전히 주음부호의 사용을 고집했다.

 

1996년, 타이완당국은 '아시아태평양경제중심'을 만들겠다고 하면서, 병음시스템을 국제화하게 되고, 중문의 영어표기를 통일화하는 문제가 일정에 들어가게 된다. 1999년 7월, 리덩후이가 정권을 잡았던 시기에, '행정원교육개혁추동소조'는 중문음역에서 '한어병음'을 채택하기로 결의하는데, 10여명의 민진당 현장, 시장의 반대를 불러온다. 원래 '대만독립'에 마음이 기울어 있던 리덩후이는 분위기를 타고 '한어병음'의 시행을 잠정적으로 연기한다.

 

2000년 천수이볜이 총통이 된 후 대거 '문화대만독립' '중국화제거'를 추진했다. 한어병음은 다시 당국의 눈엣가시가 되었다. 그해 10월 7일, 타이완 '교육부국어추동위원회'는 정식으로 '중문역음통일규정' 초안을 발표했고, 대만본토에서 연구제정한 '통용병음'으로 중국대륙에서 통용되고, 유엔이 공인하고, 국제표준으로 모두 인정하는 '한어병음'을 대체한다고 밝혔다.

 

10월 31일, 외부의 강렬한 비판하에, 당시 '교육부장'을 맡고 이썬 증지랑은 언어전문가의 양심에 따라, '한어병음방안을 채택할 것을 건의'했고, 이를 '행정원'에 보냈다. 그러나, 증지랑의 의견은 대만독립을 기조로 하는 주류의 반발에 부닥쳤고, 당시 타이완 행정원은 제안을 부결시켰다. '병음대전'은 다시 격렬한 논쟁을 불러온다. 증지랑은 이로 인하여 2002년초 사직하게 된다.

 

"중앙" "지방"의 논쟁은 끝이 없다

 

2002년 8월, 천수이벤당국은 각당사자의 의견이 통일되지 아니한 상황하에서, '중문역음사용원칙'을 강행하고, 정식으로 타이완지역의 지명, 성명등 주음을 '통용병음'으로 쓰기로 한다. 2007년 10월, 천수이벤당국은 다시 '표준지명번역표기준칙초안'을 반포하여, 타이완의 모든 지명병음을 '통용병음'으로 바꾼다. '대만의 병음대전은 회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 당시 BBC의 보도내용이다.

 

천수이벤당국이 통용병음을 사용하기로 결정하자, 당시 타이페이시의 시장을 맡고 있던 마잉주(馬英九)는 만일 '중앙'이 통용병음을 고집한다면, 타이페이시는 현행의 소학교의 주음교육이외에 '병행교육'을 실시하여 동시에 '통용병음'과 '한어병음'을 가르침으로써, 아이들이 성장한 후 국제적인 고아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마잉주는 "타이페이시는 대만에서 국제화정도가 가장 높고, 국제화수요가 가장 절실한 도시이다. 통용병음을 채용하는 것은 타이페이시에 해롭다" 6년후, 바로 마잉주가 이 오래된 '병음대전'을 끝장내게 된다.

 

배후에 숨은 정치적 힘겨루기

 

한어병음과 통용병음의 다툼은 겉으로 보기에는 언어분야의 논쟁이지만, 실제로는 강렬한 정치색채를 띄고 있다. 해외매체는 최근들어 타이완내의 중문영어표기문제의 논전을 보면서, 한어병음과 통용병음의 다툼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즉, 대만정계의 일부세력들간의 "국제화"와 "본토화", "통일"과 "독립"의 이념다툼의 일부인 것이다.

 

부권도 이런 견해에 동의한다. 그는 "한어병음과 통용병음의 논쟁은 비록 표면적으로는 '학술'논쟁이지만, 숨어있는 것은 '대중화'와 '대만본토'의식, '통일'과 '독립'이념의 다툼이다. 이는 각각 두 가지 서로 다른 병음인사의 성적, 정당, 정치입장등 배경을 살펴보면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왕혜적은 이렇게 평가한다: "어떤 사람이 병음대전에 정치적인 색채를 짙게 씌우고, 그것은 무슨 학술논쟁이 아니라, '독-통'논쟁이라고 보는데, 나도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제 오래 끌어온 '병음대전'이 끝났다. 9월 16일, 타이완 '교육부'의 결의는 전면적으로 통용병음을 포기하고, 대륙에서 통용되는 한어병음을 쓰기로 하였다. 그러나, 타이완 교육부도 인정하듯이, 중문영어표기에서 통용병음을 채택한 정책은 6년이나 실시되었고, 이미 대량의 자원이 투입되었다. 일단 한어병으로 고치게 되면, 방대한 사회변경비용으로 반대가 올 수 있고, 외부에서 의심을 품을 수 있어, 병음국제화의 참뜻이 모호해질 수 있다"

 

그러나, 타이완의 쇼핑천국에서 쇼핑하려는 외부의 관광객에게 있어서, 어쨌든 Zhongxiao E Rd."라고 쓰여진 길표지를 따라 충효동로를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