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우슈전은 타이난현(臺南縣) 마더우진(麻豆鎭)의 한 부유한 의사집안에서 태어났다. 4살때부터, 그녀는 발레를 배웠고, 6살때는 피아노를 배웠다. 마더우지역에서 처음 수입해 들여온 피아노는 바로 그녀의 부친이 그녀를 위하여 사준 것이었다. 그 가격은 보통의 집 한 채 값이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의 예상과는 달리, 바로 이런 부잣집딸이 나중에 '삼급빈농'의 아들인 천수이볜(陳水扁)과 결혼한다. 대학 1학년때, 천수이볜은 행사에 참가했다가 고향사람인 우슈전을 만난다. 1975년, 우슈전은 부친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시집간다. 그리고 천수이볜을 정치의 길로 끌어들인다.
1979년 "미려도사건"이 발생한 후, 어떤 사람이 천수이볜을 찾아와서 변호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천수이볜은 조금 망설였다. 그런데, 우슈전이 그를 독려했다: "만일 이런 사건도 맡지 않는다면, 변호사를 왜 하느냐?" 이때부터 천수이볜은 "미려도군법대심변호사단"에 들어가고 정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1985년 9월, 천수이볜은 타이난현의 현장선거에 나섰지만 낙선한다. 낙선후에 낙선사례인사를 하는 도중에 우슈전은 큰 트럭에 치어서, 반신불수가 된다. 1986년 6월, 천수이볜이 "봉래도사건"으로 8개월간 감옥에 들어간다. 그가 출옥한 후에 계속 정치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하여, 당시 홀로서 두 아들을 데리고 우슈전은 "남편을 대신하여 출정"한다. 그리고 몸은 장애인이지만 의지가 굳건하며, 자강불식하는 이미지를 심어주어 일거에 당시 아주 인기있던 셰창팅(謝長廷)을 물리치고 "입법위원"(우리나라의 '국회의원'에 상당함)에 당선된다. 1998년, 천수이볜이 타이페이시장 연임에서 마잉주(馬英九)에게 패배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우슈전을 그를 위로했다: "괜찮다. 시장을 못하면 우리 총통선거에 나가자. 무서울게 뭐냐"
2000년의 총통선거기간동안 민진당은 선거광고를 하나 찍었는데, 그 내용은 "낮에 그는 철한(鐵漢), 밤에 그는 유정(柔情)"이었다. 그리고 그 선거광고에는 천수이볜이 처에 대하여 10여년간 일편단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준 것을 나타냈고, 많은 사람들의 동정을 샀다. 사실, 우슈전이 장애자가 된 후에 천수이볜은 스스로 그녀에게 미안하게 생각했고, 그녀의 말이라면 다 들어주었다. 당연히 우슈전은 성깔도 있어서, 천수이볜이 그녀를 무서워한 것도 사실이다.
리아오(李敖)는 이렇게 폭로한 바 있다: 천수이볜도 처를 때린 적이 있다. 그러나 왕왕 처가 반격하는데 당해내지를 못하고 맞는다. 대만매체에서는 이렇게 두 사람의 관계를 보도한 적이 있다: 두 사람이 싸운 후에, 우슈전은 사진을 땅바닥에 내팽개친다. 마지막에 고개를 숙이고 마무리하는 것은 천수이볜이다. 한번은 천수이볜이 얘기를 하다가 말이 길어졌다. 곁에 있던 우슈전이 차갑게 말했다: "1분내에 앉아." 천수이볜은 곱게 자리에 앉았다.
바로 이러하기 때문에, 대만내의 정상계의 인사들은 모두 '부인노선'을 걷는 것이 일은 적게 하고 효과는 더 좋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매체가 폭로한 바에 의하면, 당국에서 여하한 작은 관직이라도, 우슈전이 고개만 끄덕이면, 반드시 그대로 된다고 했다. 민진당내의 인사도 이렇게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잘되도 아전(阿珍), 못되도 아전. 아마 이것이 천수이볜의 숙명인가보다"
중요한 일마다 그녀가 끼어들었던 것이 우슈전에 대한 계속적인 추문을 양산시켰다면, 성격이 탐욕스러웠다는 점은 그녀가 감옥에 들어갈 지경에 처한 근본적인 원인이다. 2004년, 대만매체는 우슈전이 자녀의 구좌를 이용하여 주식투기를 했다는 점을 폭로했다. 그녀 투자기금의 주식선택은 100% 정확했다. 매년 3000여만대만달러가 들어왔다(개략 1대만달러=35원). 그리하여 내부자거래의 혐의를 받았다. 그녀의 경영하에, 부부 두 사람의 주식시가는 최초의 55만대만달러에서 3억대만달러로 늘어났다.
대만 <<연합만보>>에 실은 글에 따르면, 일찌기 삼급빈농의 아들인 천수이볜은 6년의 집권기간동안 진정한 제일가정, 주식투기제일, 쇼핑제일, 재산관리제일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 많은 제일의 기록은 모두 우슈전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모두 '돈'과 관련이 있다.
우슈전이 "국무기요비"사건에서 상품권을 이용하여 공금을 빼돌린 과정은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조사부서에서는 태평양소고백화점이 우슈전에게 1000만대만달러의 상품권을 선물했다는 것을 밝혔다. 우슈전은 이것을 받은 후에, 상품권의 총금액이 인쇄된 겉표지를 떼어낸 다음, 그것 하나하나를 장정해서 영수증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비밀외교"의 명의로 영수정발급이 필요없이 비용처리할 수 있는 '국무기요비'로 썼다. 즉, 1000만위안현금으로 썼다.
바로 우슈전이 기소될 때, 그녀의 건강문제가 다시 드러났다. 3일, 그녀의 사촌언니는 우슈전이 다시 쓰러졌다고 말했다. "상황이 아주 안좋다" 천수이볜도 곁에 있는 사람에게 그는 법률문제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슈전의 몸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금년 년말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연합만보>>의 글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우슈전이 정말 연말을 넘기지 못한다면, 그녀와 천수이볜에게 있어서는 당연히 '가장 좋은 결말'이 될 것이다. 죽으면 법적인 제재를 벗어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대만에 있어서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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