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손융기(孫隆基) 대만중정대학 역사과 교수
<<The Untouchables>>는 1959년 미국의 텔레비전드라마이다. 1987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야기는 1920-1930년대의 재정부 특파원 Eliot Ness가 시카고의 밀주집단을 물리치는 경력을 가지고 만들었다. 그런데, 배후에 숨어있는 것은 이민정책의 정보이다. 1920년대 미국에는 비북유럽이민제한정책이 실시되었다. Ness는 바로 노르웨이이민의 후손이다. 그의 적수는 이탈리아 마피아의 두목인 Al Capone이다. 전자는 신조국의 법률과 질서의 수호자가 되었고, 후자는 미국문화에 흡수되지 못한 자들의 상징이 되었다.
라틴민족의 남유럽과 노르만의 북유럽은 모두 기독교문명에 속한다. 이렇게 나뉜 것은 종교개혁때문이다. 미국이라는 '용광로'에서 비기독교민족들은 어떻게 용화시킬 것인가? 미국에서 남유럽이민문제가 불거지기 이전에 이미 1882-1884년에 "배화법안(排華法案)"이 나타났다. 도화선은 엘도라도의 쇠퇴와 횡단철도의 완공이었다. 중국계가 대량으로 도시에 밀려들면서, 저가노동력을 공급하게 되어 백인실업문제가 심각해졌다. 다만, 배화선전은 부정적인 전형적인 이미지에 집중되었다: 중국남자는 변발을 기르고, 여자는 전족을 한다. 그들은 위생관념이 없어서, 차이나타운은 질병의 원천이고, 죄악의 소굴이다. 도박장과 아편굴이 집중되어 있으며, 인신매매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것들은 사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의 문제가 아니었다: 차이나타운은 기본적으로 미국사회의 밖에 놓여진 지하세계였던 것이다.
서방인들이 처음으로 '지하중국'과 마주친 것은 19세기 네덜란드령 동인도와 영국령 말레이반도에서였다. 정부에서 중국계의 법죄활동과 부족간 싸움을 조사하던 중에 "삼합회(三合會, 트라이어드)"의 존재를 발견했다. 삼합회의 전신은 정성공이 실패한 후 설립된 반청복명조직인 천지회(天地會)였다. 홍문(洪門)이라고도 했다. 나중에 해외화교는 손중산이 청나라정부를 무너뜨리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다만 해외화교사회의 모습은 확실히 중국사회의 천백년이래의 형태를 보여준다. 시민사회가 형성되지 못하고, 머리위를 짓누르는 전제정권에 대한 대응은 그것을 무시하고, 암중으로 다른 방식을 강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현대서방사회에서도 나타난다. 그리하여 현지사회에 융화되지 못하고,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필요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지하중국"도 그 구체적인 모습이 있다. 필자는 일찌기 미국 아리조나주의 Tombstone 시에 가본 적이 있다. 그곳에 옛 차이나타운 유적지가 있었다. 그런데, 한 군데 집중된 것이 아니라, 몇개의 도로에 분포되어 있었고, 서로간에는 지하통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19세기에 이 도시의 인구는 5000명이고, 중국계는 300-500명가량이었다. 공공연히 백인지역을 지나가다가는 유린을 당하므로, 할 수 없이 지하로 스며들었다. 이 시대의 아리조나에서 중국계들은 인구조사와 결혼등기에서도 배제되었다. 범죄를 저질러야 비로소 공식기록에 올랐다.
다만, 현지사회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지하중국'은 사람들에게 많은 상상의 여지를 남겨주었다. 그리고 많은 경우는 망상적인 색채를 띄고 있다. 1908년의 황화론(黃禍論)소설인 <<Banzai!>>는 일본이 미국을 몰래 공습하는 것을 그렸다. 서해안으로 공격해 들어간다. 다만 사건발생전에 일본군은 이미 사라진다. 위장을 하고 속속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에 섞여들어오고, 지하에 숨어서, 시기를 기다린다. 차이나타운은 일찌감치 지하미궁으로 파여졌고, 평상시에는 악취로 미국경찰이 접근하기 힘들었다. 만일 잘모르는 경찰이 깊이 들어오게 되면, "유일한 결과는 다음날 신문에 경찰실종의 보도가 나오는 것"이다. 이곳에 중국계는 신조국(미국)을 인정하지 않는 제오열(간첩)으로 묘사될 뿐아니라, 차이나타운은 미국의 법률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라고 묘사된다.
미국의 이야기에서 차이나타운은 더러움과 불법의 대명사이다. 1974년의 영화 <<Chinatown>>은 중국인과 관련있다. 여기에서는 샌프란시스코의 사립탐정 Jake가 혼외정사사건을 조사한다. 점차 이 도시의 검은세력인 Noah가 전도시의 상수도공급을 장악하여 스스로의 배를 불리고, 딸 Evelyn과 난륜으로 딸을 하나 낳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지막으로, Evelyn은 딸과 함께 도망쳐서, 운명을 벗어나고자 한다, 부친이 '장악한' 샌프란시스코 경찰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다. 이 사건이 발생하는 장소가 바로 차이나타운이다. Jake는 원래 지방검찰청에서 차이나타운에 보낸 조사관이었는데, 가급전 관여하지말라는 지시를 받고는 화가나서 사립탐정으로 전업한 사람이다. Evelyn은 그를 보고는 그가 예전에 차이나타운에서 있었던 한 여인의 피살사건을 잊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Evelyn이 도망갈 때 Jake에게 만나는 장소를 말해주는데, 차이나타운이라는 말을 듣고는 멍해진다. 결국 Evenlyn은 총을 맞아 죽고, 옛날의 상처는 다시 되살아난다. 경찰이 Jake를 붙잡아 현장을 떠날 때 그에게 위로의 말을 던진다: "잊었냐? Jake, 이곳은 차이나타운이야!" 주인공이 패배하는 것은 개인영웅주의를 지향하는 헐리우드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이다. 영화내용과 상관없는 중국인은 마지막 장면에서 거리에 아무런 표정이 없는 군중의 신분으로 등장할 뿐이다.
상급에서 가급적 관여하지 말라는 지시를 하급에 내린다는 이야기는 1985년의 <<Year of Dragon>>에서도 나타난다. 이야기는 2차대전후에 홍콩에서 미국으로 이민온 새로운 신흑방인 '화청(華靑)"이 차이나타운의 구흑방을 대체하는 과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극에서 기관총을 난사하여 바를 벌집으로 만드는 장면은 1977년 9월 4일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발생한 '금룡주가대도살'사건에서 따왔다. 이 사건으로 5명이 죽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망자중에는 2명의 관광객이 포함되어 있다. 영화는 장면을 뉴욕의 차이나타운으로 옮겨간다. 극중에서 중국계방파는 공공질서에 위해를 가할 뿐아니라, 마약밀매도 한다. 백인경찰인 남자주인공은 상사의 권고를 듣지 않고, 수단을 동원하여 흑방이 우두머리를 소멸시킨다. 영화의 남자주인공은 폴란드후예이고, 감독인 Michael Cimino는 이탈이라후예인데, 미국에서 민족간 갈등을 소재로 하기를 즐기는 인물이다. 이 영화를 간단하게 '중국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혹은 또 다른 애매한 점이 있을까? 영화의 주인공은 중국흑방의 두목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기는 미국이다. 네가 까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마치 또다른 신이민이 미국에 동화되기 위하여 지나치게 열중하는 듯하다. 그리고 남자주인공은 월남전참전용사이고, 황인종을 싫어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성이 White라는 것이다.
최근들어, 미국은 이미 다원문화주의시대에 접어들었다. 공공연히 '중국을 모욕하는' 이야기는 거의 없어졌다. 그래도 여진히 여음(餘音)은 남아있다. 2000년의 <<Coyote Ugly>>에서 스타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지닌 여자가 뉴욕의 차이나타운을 걷는데, 돌연 한 점포주인이 쓰레기더미를 그녀의 발앞에 던진다. 유사한 일막은 <<In Good Company>>(2004)에서도 나타난다: 한 중국계노인이 쓰레기를 차이나타운을 걸어가는 남녀주인공의 발앞에 내버린다. 그리고 죽은 생선머리를 크게 클로즈업했다. 21세기에 접어들어서도, 중국계가 공중도덕이 결핍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벌금은 두려워할 것이 아닌가? 이 두 가지는 모두 중국계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런 장면을 끼워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그것은 필자가 오랫동안 관찰해온 것을 증명해준다: 미국의 "다원문화주의"는 거의 흑인에게 잘보이기 위한 것이고, 여권주의자, 동성애자, 트레스젠더에게 잘보이기 위한 단계에 불과하고, 더 이상 범위가 넓어지지는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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