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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영화

<<적벽>> 후유증

by 중은우시 2008. 7. 14.

글: 이립(李立), 동연(董娟)

 

1957년, 11살된 남자아이는 자주 유리 위에 붓으로 '삼국'의 인물을 그렸다. 그리고는 손전등을 비춰 유리를 투과하여 벽에 비치게 하여, 광선이 변화함에 따라, 삼국의 인물이 영화처럼 움직이는 것을 즐겼다. 이 장면은 이후 오우삼(吳宇森)이 여러번 언급했던 말이다. 오우삼의 주장에 따르면, 삼국연의를 찍는 것은 이미 18년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적벽>>은 오우삼이 자기 자신에게 바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측면으로, <<적벽>>은 투자자에게 도박이었다. 촬영개시시점이 연기되고, 자금이 모자라서, 제작자인 장가진(張家振)은 계속 사람들을 쫓아다녀야 했다. 7000만달러를 투자하였다고 말하여지는 <<적벽>>은 지금까지 중국어로 만든 영화중 가장 비싼 영화의 하나이다. 중영(中影)의 동사장인 한삼평(韓三平)이 생각하는 박스오피스는 6억위안 인민폐이다. 감독 오우삼은 아무렇게나 영화 하나를 내놓는다고 다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아마도 처음부터, 이것은 감성과 상업의 결투로 운명지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중국영화산업이 더욱 발전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영화에서 '프로젝트관리'모델을 개발해내야 한다.

 

비록 오우삼이 헐리우드에서 국내로 다시 돌아온 진정한 원인을 공개적이고 진지하게 토로한 적은 거의 없지만, 한 가지 사실을 회피할 수 없다. <<Windtalkers>>, <<Paycheck>>이후, 그는 한동안 침묵했다. 두 영화의 매표수입은 예상한 것만큼 좋지 않았다. 아주 현실적인 헐리우드는 완전히 매표수입기준에 따름에 따라 오우삼은 어느 정도 영화를 콘트롤하는 발언권을 상실해 버렸다.

 

그러나, 국내로 돌아온다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다.

 

영화팬들은 계속 연기되기만 하는 <<적벽>>에 대하여 의론이 분분할 때, 영화를 상,하 두편으로 나누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런 분리에 대하여 외부에는 두 가지 소문이 돌았다. 하나는 투자자의 신뢰와 기대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적벽>>을 베를린영화제에서 구매자들의 호평을 얻어 전망이 밝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것은 모두 투자자들이 뿌린 연막탄에 불과했다. 오우삼의 처인 우춘룡(牛春龍)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영화를 찍기전부터 극본은 이미 여러번 수정되어 두꺼워졌다. 촬영개시일정이 계속하여 연기되자, 제작자인 장가진은 오우삼에게 삼강구전투부분을 삭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오우삼은 눈을 부릅뜨고, 장가진에게 돈을 더 모아오라고 하였다. 장가진은 당시에 이미 중영으로부터 최후통첩을 받았었다. 영화는 반드시 올림픽 이전에 상영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급한 마음에 생각해낸 마지막 방법이 바로 상 하 두편으로 나누어 찍는 것이며, 나중에 다시 자금을 모집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처음부터, <<적벽>>의 사고빈발은 복선이 깔려있었던 것같다. 또 다른 중대한 도전은 배역을 맡을 연기자의 진용을 짜는데서 나타났다. 양조위(梁朝偉)와 주윤발(周潤發)이 연이어 그만둔 것은 오우삼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양조위는 나중에 다시 돌아왔다). 그는 원래 두 사람과의 교분을 생각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보았었다. 생각도 못하게 가장 큰 문제는 그와 교분이 가장 두터운 주윤발에게서 나타났다. 이러한 설계의 파괴에 대하여 우춘룡은 '천진(天眞)'이라는 말로 남편을 표현했다.  천진하게 감정이 계약보다 더욱 구속력이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는 것이다.

 

자금조달이나 연기자들이 떠난 것에 비하면, 영화를 찍고나서 발생한 여러가지 곤란함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일끼기 한 호사가가 <<적벽>>의 사건들을 정리해 보았다. 찍고나서 거의 1달에 한번씩 문제가 발생했다. 심지어 원래 예정한 영화완성일자에 아직 촬영도 다 끝나지 않았다. 오우삼은 부득이 스스로 100만달러를 마련해서, 보탤 수밖에 없었다. 오우삼이 이처럼 자기 주머니를 턴 것은 처음있는 일은 아니다. 예전에 Windtalkers를 찍을 때에도, 한 장면을 회사에서 찍는데 동의하지 않아서, 오우삼은 찍자고 고집했고, 결국 매일 자신의 주머니에서 40여만달러씩 내서 찍었었다.

 

국내의 영화팬잡지사의 노련한 기자 한 사람은 전반기에 영화팀을 살펴본 후에 탄식한 바 있다. "인원 안배에 있어서 감정적으로 처리하는 오우삼이 이처럼 좋은 기회를 어찌 놓치려고 하겠는가? 그리하여 임지령이 연기한 소교에 다시 한번 애정장면을 추가시켰다"  생각해보라. 이처럼 내번 감정적으로 일처리를 하고, 생각나면 임시로 장면을 추가시키는데, 투자자측과 제작자들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적벽>>을 찍는 중간에 오우삼은 기분이 아주 나쁘다고 스스로를 형용한 바 있다. 이때 그는 헐리우드가 좋았다고 그리워했다.

 

"헐리우드에서는 이랬다. 모두 이 극본을 통과시키면, 모든 예산, 스케줄은 극본에 따른다. 1000만달러면 1000만달러이다. 어떤때는 100만달러 정도 초과되면, 그들은 회계를 보내어 감독하고, 사람들은 다시 계약을 쓴다. 감독, 제작자, 헐리우드의 모든 부문은 전문화되어 있다" 다만, 국내에서 대작을 찍는데에는, 감독에게 더 많은 권리가 부여되었는데, 이는 더 많이 신경을 써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감독과 제작자의 권리균형과 조종관리는 아주 미묘하였다. 역대로 시장을 우선시하는 헐리우드는 자신의 독특한 산업프로세스가 있다. 이렇게 가정해볼 수 있다. 파라마운트회사가 만일 2009년의 성탄절에는 쿵후영화가 잘나갈 것이라고 보고 이런 영화를 찍기로 결정하면, 사전에 반드시 엄밀한 조사와 고민을 거쳐, 출자비율을 정한 후, 파라마운트사는 숙련된 관리자를 파견하여 제작자로서 전체 프로젝트를 관리하도록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체 프로젝트의 조작은 하나의 회사와 같다. 모든 기업과 마찬가지로 CEO와 동사장은 양호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동사장은 전략방향을 잡고, CEO는 창조적인 집행을 책임진다.

 

영화가 정식 촬영된 후, 제작자와 감독의 관계도 이러하다. 분업으로 담당하는 업무가 다른 두 사람은 감독이 예술창작에 있어서 최대한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고, 제작자는 실제적인 자금지출, 촬영스케줄 및 인원관리등의 측면에서 감독을 최대한 지원해주어야 한다. 제작자는 혼자서 전투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배후에는 방대한 업무팀이 있다. 대작영화일수록, 제작자의 팀은 더욱 완비되어야 한다. 자격있는 회계사, 변호사, 세무신고를 담당하는 업무인원등등이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 그들과 제작자는 함께 프로세스와 자금에서 감독을 통제해야 하고, 이로 인하여 영화가 목표된 시간내에 나올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비록 국내에서라도, 영화업계는 계속 헐리우드에게 배운다고 말해왔다. 실제로는 중국적인 상황에 따라, 감독이 왕왕 큰 발언권을 행사했었다. 업계내의 추진모델은 바로 헐리우드와 반대로 갔던 것이다. 감독은 좋은 극본이 있고, 심지어 출연진과 어떻게 찍을 것인지를 다 생각해놓고, 그 뒤에 능력있는 제작자를 찾아가서 자금을 대어줄 것을 설득해야 한다. 제작자가 돈을 내는 것은 처음에는 감독을 보고 낼 것이다. 그러나 제작자와 감독은 왕왕 친구관계일 것이어서, 서로간에 감독견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진정 영화를 알고 시장을 아는 투자자는 국내에서도 극소수이다. 그리하여 투자자는 자주 속거나 투자가 물거품이 될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헐리우드를 보면, 상업적이 작품은 왕왕 예술파에 의하여 지적을 받는다. 그래도 매표수입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 단기간내에 밀집하여 대량의 인력, 물자와 재력을 투입하고, 이런 투입에 대하여 강력한 협력, 관리 및 통제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영화작품이 성공할지아닐지의 관건적인 요소가 된다.

 

헐리우드의 모든 영화는 프로젝트관리절차에 따라 생산된 것이다. 스필버그의 제작자는 바로 프로젝트관리를 연구한 사람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프로젝트관리는 바로 각종 시스템, 방법과 인원을 하나로 결합하는 것이다. 규정한 시간, 예산과 품질�표범위내에서 프로젝트의 각종업무를 완성하는 것이다.

 

"영화를 찍는 것은 프로젝트관리의 과정이고, 제작자는 프로젝트책임자이다" 홍콩의 유명한 감독인 장견정(張堅庭)은 이렇게 영화제작의 프로젝트관리를 정의한다. 그는 만일 중국의 영화업계가 이런 '프로젝트관리'의 모델을 관철한다면, 중국영화상업화의 진전이 훨씬 앞당겨질 것이라고 말한다.

 

헐리우드의 엄격하게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제도는 일련의 우수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일부 감독을 몰아냈다. 모든 프로젝트관리의 가이드라인과 마찬가지로, 헐리우드에서 영화를 제작할 때 프로젝트관리서는 적어도 수십페이지이고, 많으면 수백 수천페이지에 이른다. 상세하기는 칼 하나, 의자 하나의 예산까지 포함한다.

 

일부 중국인 감독은 이런 세세한 예산을 보면 아마도 놀라서 도망칠 것이다. 가장 먼저 도망쳐 온 것은 서극(徐克)이다. 성룡은 두 곳의 업무방법이 서로 다른 점을 얘기할 때 속박받는다는 점을 들었다. 비록 미국인은 자유를 추구하고, 개성을 숭상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헐리우드 영화제작현장은 모든 것이 미리 정의된 프로세스, 업무스케줄에 따라 진행된다.

 

핵심적인 문제는, 감독들이 되돌아온 후에, 자주 과학적인 관리와 상업적인 이성적 사고를 잊어버린다는 점이다. 걷다가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서 걸어온 <<적벽>>은 신기하게도 상 하 양편으로 찢겨졌고, 이미 "미완성작품"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

 

헐리우드에서 가장 뛰어난 속편은 <<스타워즈>>의 제작아이디어인데, 바로 영화를 시스템프로젝트로 하여 마케팅한 것이다. 매 부가 나올 때마다 관중들을 묶어놓을 수 있었다. 더욱 주의할 것은 영화경영을 통하여 스타워즈문화를 만들었고, 제작자는 스타워즈문화가 관중들에게 장기적으로 배양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스타워즈. 에피소드3>>는 실제로 2,3년전부터 관중을 배양했었다. 관중은 다시 스타워즈의 관련제품에도 영향을 미쳤따. 이런 영향은 다시 자금모집에 영향을 주었고, 아주 순조로운 눈덩어리굴리기효과를 보인 것이다.

 

당연히 매표수입과 예술을 모두 얻는 것이 감독과 투자자가 가장 바라는 결과이다. 그러나, 이것은 상업적으로는 패러독스이다. 현재 중국영화업계의 현상은 제작자는 계속 배워서 점점 강해지고 있고, 감독들은 점차 프로젝트관리의 필요성을 깨달아가고 있다. 다만, 가장 현저한 <<적벽>>이 이미 바람앞에 섰다. 우리는 물론 오우삼이 예전의 <<영웅본색>>에서의 소마가(小馬哥)와 마찬가지로 끝까지 버텨주기를 바란다: "내가 바로 신이다.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으면, 바로 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