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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북경 올림픽

올림픽이 끝난 후 냐오차오(鳥巢)를 어떻게 할 것인가?

by 중은우시 2008. 9. 19.

글: 섭영렬(葉永烈)

 

"냐오차오"는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휘황함을 지나고 지금은 비어 있다.

일찌기 관중으로 가득찼던 "냐오차오"는 텅비어 버린 것이다.

비어버린 "냐오차오"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필자는 지금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에 와서 텅비어버린 올림픽경기장을 방문했다. 올림픽 이후에 어떻게 경기장을 관리하면 좋을지에 대하여 깊이 느낀 바가 있다. 이것은 세계각국이 공동으로 검토해야할 문제이다.

 

1993년, 북경은 단 2표의 차이로 시드니에게 2000년 올림픽개최권을 빼앗겼다. 아마도 이 사건이 나에게 남겨준 인상이 너무 깊어서인지, 나는 시드니에 도착한 후 어찌되었던 시드니가 2000년올림픽을 개최한 장소를 꼭 가보고 싶었다. 비록 현지의 친구들이 나에게, 그 곳은 지금은 아무런 스포츠경기도 열리지 않고, 사람도 없는데, 뭐 볼 게 있느냐고 말했지만, 그래도 나는 갔다.

 

나와 처는 아침식사를 한 후에, 애시필드를 출발하여, 기차를 타고 2000년에 올림픽을 개최했던 장소로 갔다. 지금 그곳은 "시드니 올림픽 파크"로 불리우고 있으며, Homebush Bay에 위치하고 있다.

 

내가 기차표를 살 때, 시드시 올림픽 파크로 간다고 하자, 매표원은 나에게 차표를 주었다. 기차를 타고나서 물어보니, 기차를 타고 먼저 Lidcombe역에 먼저 도착해서, 그 곳에서 육교를 건너, 다시 다른 노선의 기차로 갈아타고 1 정거장을 가면 시드니 올림픽 파크라는 것이다. 들어보니, 2000년 시드니에서 올림픽을 개최할 때, 많은 외국 관중들은 기차를 잘못타서, 올림픽 경기장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고 한다. 아마도 Lidcombe역에서 갈아타야한다는 것을 몰라서 그렇지 않았을까. 나중에 나와 처는 올림픽 공원에서 돌아올 때, 하마터면 기차를 잘못 타고 올 뻔 했다. Lidcombe역에서 갈아타야 한다는 것을 깜박했던 것이다.

 

올림픽 파크는 시드니 시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기차는 모두 지상으로 달린다. 그런데, 올림픽 파크 역에 들어설 때는 지하로 들어간다. 이곳의 지하역은 규모가 방대했다. 2000년 올림픽을 개최할 때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역을 설계한 것같다. 그런데, 나와 처가 기차에서 내릴 때, 같이 내리는 사람은 십여명에 불과했다.

 

우리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왔다. 지상의 기차역도 크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기차역을 빠져나가자, 나와 처는 그 십여명과 갈라졌다. 그들은 아마도 이 곳에 있는 회사에 출근하는 사람들인 것같았다. 오른쪽으로 갔다 그러나, 나와 처는 올림픽 파그에 관광을 온 것이므로, 왼쪽으로 갔다.

 

기차역에서 올림픽 파크까지는 불과 5,6백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올림픽 파크에 도착한 다음 당시 설계사들에게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길고 곧게 뻗은 메인 도로를 바라보니 양쪽에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주요한 경기장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이들 경기장의 설계는 간결하고, 색채는 주로 회색과 백색의 두 가지여서 아주 정제되고 기세가 있었다.

 

시드니 올림픽 파크의 전신인 Homebush Bay는 1894년부터 1993년까지 꼭 100년간,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매립장과 도축장이었다. 시드니 시정부는 1993년 2000년 올림픽 개최권을 획득한 후, 이 곳에 천지개벽하는 개조작업을 시작한다. 나의 눈앞에 있는 이 많은 현대적인 운동경기장은 바로 쓰레기장과 도축장에 세운 것이다.

 

먼저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메인도로 왼쪽이다. 첫번째로 보이는 것이 주경기장이었다. 2000년 올림픽의 기세가 대단했던 개막식, 폐막식 및 축구경기가 모두 이 곳에서 진행되었다. 전세계의 관중은 모두 텔레비전으로 그 웅장한 모습을 보았다. 7년이 지났는데, 이 주경기장의 원호형의 지붕은 여전히 독특한 멋이 있었다. 정중앙에는 "TELSTRA STADIUM"이라는 큰 간판이 걸려 있었다. TELSTRA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첫손에 꼽히는 전화회사이다. 이 주경기장은 바로 이 회사가 투자하여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이 회사의 이름을 가지고 주경기장을 명명했다.

 

나는 주경기장으로 들아가서 보고 싶었다. 걸어가는 앞쪽에 수십개의 매표창구가 모두 문이 닫혀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다시 정문쪽으로 걸어갔다. 정문도 굳게 잠겨 있었다. 나는 유리창을 통해서 안을 들여다 보았는데, 큰지붕의 아래는 이미 쇼핑몰로 바뀐 것같았다. 이들 쇼핑몰에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이때 나는 돌연 발견했다. 이렇게 거대한 올림픽 파크에, 햇볕도 이렇게 찬란한데, 그렇게 텅비어있고, 참관자는 겨우 나와 처 딱 두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의 이 2인관광단은 적막한 가운데, 기나긴 메인도로를 따라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메인도로 우측의 분수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통상적인 분수는 아래에서 위로 물을 내뿜는데, 이곳의 분수는 금속으로 된 둥근 원반에서 사방으로 물을 뿌린다. 그리하여 원주형의 물안개가 형성되어 햇볕아래에서 무지개가 나타난다.

 

나와 처는 할 수없이 서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우리는 사람을 찾아서 이 보기드문 분수 앞에서 함께 사진찍고 싶었다. 나는 사방을 휘둘러 보았지만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적막은 사람에게 피로감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이처럼 광활한 올림픽공원에서는 더욱 텅빈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하여 더욱 고독해 지는 것이다. 이러한 적막은 나의 즐거움을 감쇄시켰다. 원래 나는 경기장을 하나하나 보고 싶었다. 수영경기장, 테니스경기장, 농구경기장 등등, 분명히 그 곳들도 꽉 잠겨 있을 것이므로, 다시 거절당하러 가기는 싫었다.

 

우리는 메인도로를 따라 천천히 되돌아갔다. 주경기장의 앞에, 길고 짧은 색깔이 서로 다른 둥근기둥모양의 금속기둥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이들 금속기둥은 굵은 것은 전봇대만했고, 가는 것도 밥그릇정도의 크기는 되었다. 이들 금속기둥은 모두 400여개이다. 위에는 영문의 자모순서로 4만여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원래, 이것은 당시 자원봉사로 시드니 올림픽 경기장건설에 참여한 사람들의 성명이었다. 그들의 공덕을 기리는 기둥이었던 것이다.

 

바로 나와 처가 약간 피곤하다고 느낄 때, '공덕기둥'의 곁에 있는 금속으로 된 원형의 정자가 나타났다. 정자 안에는 몇 개의 원통형의 의자가 있었다. 그래서 들어가 앉아 쉬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은지 얼마되지 않아, 돌연 열렬한 환호성이 일어 나는 깜짝 놀라버렸다.

 

아무도 없는 이 곳에 어디서 이처럼 커다란 환호성이 들린단 말인가?

 

나는 소리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원래 내가 앉아 있던 이 금속정자 안에서 나는 소리였다. 열렬한 환호성 속에는 금속정자 원형의 윗부분이 점차 밝아지면서, 관중들이 환호하는 장면이 나타났다.

 

원래, 이 원형의 꼭대기에는 모니터를 설치해 둔 것이다. 내가 정자에 들어갔을 때, 이들 모니터는 모두 검은 색이었는데, 바깥의 햇볕이 너무 강해서 나는 주의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마도 이 정자안에는 감응장치가 되어 있었나 보다. 그래서 누군가 정자 안으로 들어오면, 자동으로 녹음화면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고, 모니터도 점차 밝아지게 되는 것이고, 스피커에서는 소리가 나는 것이다.

 

모든 모니터가 충분히 밝아졌을 때야 나는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원래 보여주는 것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의 선수입장식이었다. 하나하나의 모니터에서 보여주는 것은 입장식의 일부분씩이었고, 그 모니터들은 360도를 회전하여 하나의 통일된 화면을 이룬다. 나는 마치 주경기장의 중앙에 있는 것같이, 서로 다른 국기를 높이 든 운동선수들이 하나하나 입장하는 것을 보았다. 뒤에는 환호작약하는 수만의 관중이 있다.

 

내가 이 금속정자를 떠난 후, 녹음화면은 자동적으로 정지되었다. 관중의 환호성도 돌연 그쳤다. 내가 있는 주위는 다시 조용해졌다. 이번의 조용한 느낌은 녹음화면을 보기 전보다도 훨씬 강렬했다. 나는 금방 모니터에서 본 시드니 올림픽의 성대하기 그지없는 개막식에 대하여, 눈앞에 지나가는 안개같이 느껴졌다.

 

나와 처는 이 광막하고 조용한 가운데 묵묵히 웅장한 시드니 올림픽 파크 경기장을 떠났다.

 

바로 이때, 한 거대한 의문이 나의 머리에 떠올랐다. 올림픽은 휘황한데, 휘황함이 지나가면, 그 방대하게 놀려지는 경기장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시드니 올림픽 조직위원회의 Sandy Hollway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1984년 이전의 올림픽은 이익이 아주 적었다. 1976년의 몬트리올 올림픽은 20억달러(미화)라는 거액의 손실을 보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3억달러의 이익을 나타내서, 올림픽으로 이익을 나타낸 기록을 세웠다. 시드니 올림픽은 역사상 가장 돈을 많이 번 올림픽이다. 시드니올림픽은 스폰서, 텔레비전방영권과 입장권등 모두 17.56억달러의 수익을 얻었다. 이는 개최권을 따낼 때의 예상보다 80%나 늘어난 것이었다. 이외에 올림픽은 시드니에 대량의 관광객을 불러모았다. 올림픽이 열린 16일동안, 시드니에 온 국내외관광객은 100여만에 달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관광산업에 8.8억달러의 수익을 내게 했다. 만일 1997년부터 계산한다면, 4년동안 올림픽이 오스트레일리아에 가져다준 관광총수입은 42.7억달러에 달하는 것이다. 동시에, 올림픽은 시드니에 대한 해외투자가 87억달러에 달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15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바로 시드니 올림픽이 큰 돈을 벌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이렇게 감탄하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돈을 많이버는 사업은 스포츠이고, 그 다음이 컴퓨터이다"

 

그러나, 휘황이 지나간 시드니 올림픽 경기장은 아무도 찾는 이가 없다. 그냥 놀려지고 있는 올림픽 경기장은 무거운 부담이 되었고, 시드니에 골치덩이로 남았다. 그 원인은 시드니의 시민은 시드니 올림픽의 휘황한 순간을 목도했으므로, 아무도 텅비어있는 이들 경기장을 가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외국의 관광단은 차갑게 버려진 경기장에 흥미를 잃고 있다. 그럴 시간이면 차라리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와 달링 하버(Darling Harbour)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시드니 올림픽의 경기장을 놀리는 것으로 4억호주달러의 손실이 났다고 보기도 한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Sandy Hollway는 이렇게 회고한다. 가장 심각한 것은 바로 올림픽 이후에 경기장을 놀리는 문제이다. 올림픽이 끝난 후, 경기장은 남는다. 이들 대형 건설프로젝트는 올림픽후에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경기장을 놀리는 것은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문제이다. 어느 대형 경기대회에서도 모두 나타날 수 있다. 시드니 올림픽 경기장의 실패는 주로 이들 경기장을 시중심에서 너무 먼 곳에 건설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시중심에도 유사한 시설이 있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11만석을 가진 주경기장인 오스트레일리아 체육관은 좌석을 8만개로 줄이긴 했지만, 역시 찾는 사람이 드물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 납세자들은 매년 3200만달러를 들여 올림픽 경기장을 보수하고 있다. 그리고 시드니시정부는 할수없어 2002년부터 10년동안 일부 올림픽 경기장을 철거하고 있다.

 

사실, 2004년 올림픽의 개최지인 아테네도 같은 난제를 떠안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아테네올림픽경기장이 장기간 버려지고 사용되지 않으므로 인하여 관리혼란이 오고 결국 폐허로 변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구공항위에 건설한 올림픽경기장은 아테네올림픽이 끝난 후, 아마도 굴삭기로 밀어버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유럽최대의 오락장을 이 곳에 짓기로 했기 때문이다.

 

시드시올림픽경기장의 현재 난감한 처지는, 2008년 북경올림픽에 귀감이 되어, 올림픽을 기획할 때, 올림픽을 개최할 때의 휘황뿐아니라, 그 후의 충분한 이용까지 고려에 넣게 되었다.

 

다행히 북경은 이미 시드니의 교훈을 알아서, 많은 2008년 올림픽경기장을 북경의 각 대학교 캠퍼스에 분산하여 건설하였다. 이는 이들 체육시설이 올림픽이후에도 계속 충분히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방대한 "냐오차오"와 눈에 띄는 "워터큐브"는 북경올림픽이후, 관광지가 될 것이다. 그곳에 대형 쇼핑몰을 개설할 것이라는 말이 들려온다. 그러나, 거대한 "냐오차오"는 어쨌던 텅비어 있게 될 것이다. 텅빈 냐오차오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도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