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동방삭(東方朔)에 관하여

by 중은우시 2008. 9. 2.

 

 

 

글: 곽찬금(郭燦金)

 

동방삭은 여러가지 개인기록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처음으로 "동방(東方)"을 성(姓)으로 쓴 인물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동방삭의 부친은 장(張)씨이다. 그런데, 부친은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다. 모친도 그를 낳은지 3일만에 죽었다. 그가 태어났을 때 동방에 해가 떠올라서 밝기 시작했으므로, 그의 형수는 그를 동방삭(東方朔)이라고 이름을 지어준다. 그리하여 그는 '동방'이라는 성을 쓴 첫번째 인물이 된다.

 

"대은은어조(大隱隱於朝)". 이 말은 후세인들이 입에 자주 달고 다니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완벽하게 가진 사람도 바로 동방삭이다. 당시 그는 다른 사람과 논쟁을 벌이면서, 무심결에 이 천고에 전할 명언을 내뱉었다. 후세인들도 이 말을 숭상했고, 특히 겸연쩍은 듯이 녹봉을 받아가면서도 스스로는 고상한 사람이라고 자위하던 사람들이 그랬다. 후세인들은 심지어 이 말에서 더욱 늘여서 다음과 같은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대은은어조, 중은은어시, 소은은어산(大隱隱於朝, 中隱隱於市, 小隱隱於山)(큰 은자는 조정에 숨어있고, 중간 은자는 시장에 숨어 있고, 작은 은자는 산에 숨어있다)"

 

"적선(謫仙)"(귀양온 신선이라는 뜻으로, 하늘나라에서 쫓겨나서 인간세상으로 귀양온 신선이라는 정도의 의미임)이라는 이름도 처음에는 그에게 속한 것이었다. 나중에 이백(李白)이 나타나면서 그의 전용어로 독점해버렸지만...

 

동방삭은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황제가 그를 기억하도록 한 사람이다.

 

그는 원래는 제(齊)나라 사람이고, 글읽기를 즐겼으며, 큰 발전이 있었다. 그리하여, 자신감을 가지고 장안으로 간다. 장안에 도착한 후에야 그는 깨닫게 된다. 장안에는 인재가 넘치고, 다른 사람들보다 두드러지게 자신을 드러내려면 뭔가 '장난'을 쳐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직접 황제에게 글을 써서 올린다. 당시 국가최고지도자는 한무제(漢武帝)였다. 한무제는 선비들로 하여금 직접 글을 써서 황제에게 자신을 뜻을 전달하도록 격려했었다. 그런 점에서 황제에게 직접 글을 올린다는 것이 그다지 창의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동방삭이 위대한 점이라면 바로 황제에게 이 서신을 하나 쓰고는 황제가 그를 영원히 기억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가 채택한 방식은 우리가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장난'이 분명하다.

 

동방삭이 장안에 막 도착했을 때, 공거부(公車府)로 가서 황제에게 글을 썼다. 이 서신은 대단히 길었다. 한꺼번에 3천개의 목간(木簡)을 다 채워싸. 삼천개의 목간은 장정 2사람이 겨우 들고 옮길 정도였다.

 

그리하여, 한무제는 동방삭이 올린 글을 다 읽는데만 2달이 걸렸다. 우리는 현재 한무제가 2달에 걸쳐 다 읽은 글의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어쨌든 한무제는 글을 다 읽은 후에, 동방삭을 낭관(郎官)에 임명하여, 항상 한무제의 곁에서 머물도록 한다. 동방삭은 기지가 뛰어났고, 자주 한무제를 기쁘게 해주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아래의 두 가지에서 엿볼 수 있다.

 

감천궁(甘泉宮)으로 가는 길에 한무제는 붉은 색의 벌레를 보았다. 머리, 눈, 이빨, 코, 귀가 다 있었다. 따르는 사람들중에는 무슨 벌레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무제는 동방삭에게 뭔지 알아보라고 했다. 동방삭은 말했다. "이 벌레의 이름은 '괴재(怪哉, 괴재는 괴상하도다라는 정도의 뜻임)'입니다. 옛날에 진나라때 단속이 너무 심해서 평민백성들이 모두 원망을 했고, 하늘을 우러러, '괴재, 괴재'라고 외쳤습니다. 백성들의 탄식에 하늘이 감동하여 하늘이 분노했고, 바로 이 벌레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괴재'라고 했습니다. 이 땅은 분명히 진나라때 감옥이 있던 곳일 것입니다" 그래서 한무제가 사람을 시켜서 조사를 해보니 과연 진나라때 감옥자리였다. 한무제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이 벌레는 어떻게 없애는가?" 그러자, 동방삭은 "우울한 것은 모두 술로 풀어야 합니다. 술에 이 벌레를 넣어두면 없어집니다" 한무제는 사람을 시켜 그 벌레를 술에 넣게 하였더니, 과연 그 벌레는 없어졌다.

 

한무제가 한번은 상림원(上林苑)으로 가서 놀았다. 거기서 좋은 나무를 한 그루 보았다. 동방삭에게 무슨 나무인지 물어보았다. 동방삭은 "이 나무의 이름은 '선재(善哉, 착하도다라는 정도의 의미)'입니다." 한무제는 다른 사람을 시켜서 나무 이름을 알아보게 했다. 몇년 후에 한무제는 다시 동방삭에게 이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동방삭이 이렇게 대답했다: "이 나무의 이름은 구소(瞿所)입니다" 한무제는 즉시 말했다: "동방삭 네가 나를 오래도 속였구나. 나무이름이 예전과 다르니 어찌 된 것이냐?" 그러자 동방삭이 말했다: "큰 것은 말이라고 하지만, 작은 것은 망아지라고 하지 않습니까. 큰 것은 닭이라고 하지만 작은 것은 병아리라고 하지 않습니까. 큰 것은 소라고 하지만 작은 것은 송아지라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도 어릴 때는 아이라고 부르지만 나이가 들면 노인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이 나무의 이름도 과거에는 선재였는데, 지금은 구소입니다. 나이든 것도 있고 젊은 것도 있고,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고, 만물이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데 어찌 고정된 이름이 있겠습니까"

 

동방삭은 자기의 기괴한 생활방식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을 즐겼다. 한무제가 자주 그에게 어용식사를 하사하였는데, 식사후, 그는 남은 고기를 모두 가슴에 넣어서 가지고 갔다. 그리하여 옷이 더러워졌다. 황상은 여러번 그에게 비단을 내렸는데, 그는 비단을 어깨에 매고 손을 끌고서 가져갔다. 그 후 그는 이렇게 하사받은 비단과 돈으로 장안성에서 젊고 예쁜 어린 여자를 들여서 처로 삼았다. 그러나, 그는 새 것을 좋아하고 헌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데려온 미녀에 대한 흥미가 1년정도 지나서 식게 되면 또 다른 여자를 취했다. 그리하여 그의 돈과 재물과 정력은 모두 소미녀를 물색하고, 대미녀와 결혼하고, 노미녀와 헤어지는데 다 써버렸다. 동료들은 반은 시기로 반은 놀리는 것으로 그를 미치광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비웃었다: "바보들. 너희는 나같은 사람이 조정안에 은거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그는 웃사람에게 잘보였다. 특히 한무제의 배후에서 그에게 예쁘게 보이는 행동을 많이 했다. 하루는 동방삭이 자기의 뛰어난 재주를 자화자찬하고 있었고, 공개적으로 대한왕조에서 학문이 가장 뛰어난 세사람은 동방, 동방, 동방이라고 하였다. 곁에 있던 동료들이 다 함께 들고 일어났다: "네가 만일 소진, 장의의 수준이 높다고 말한다면 우리가 인정하겠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국의 군주를 만나서, 경, 상의 지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라면 우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이미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넌 조정에서 수십년을 굴러다녔지만, 관직이 겨우 시랑에 불과하지 않느냐. 너 자신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자 동방삭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무슨 장의, 소진의 옛날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 시대가 다르다. 높낮이도 다르다. 주나라는 아주 쇠퇴하였는데, 제후와 왕들은 사대부의 도움을 받아 아주 강대했다. 그러다가 사대부의 도움을 잃으면 멸망하게 된다. 그래서 사대부의 지위가 높은 것이고, 자손들이 부귀영화를 누렸던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비정상적인 시대의 비정상적인 사건이었다. 지금은 정상적인 시대이다. 현명하고 현명하지 않은 것을 무엇으로 구별하는가? 옛책에 쓰여 있다. '천하에 해로운 재난이 없으면 비록 성인이 있더라도 그 재주를 펼칠 기회가 없는 것이고, 아래위가 화합하면 비록 현명한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공을 세울 기회가 없는 것이다' 내가 관직이 낮은 것은 아주 평범한 일이다. 왜 이해를 못한단 말인가?"

 

이 말은 정말 찔러도 피한방울 나오지 않을 정도이다. 다른 사람을 타격하면서, 스스로를 끌어올린다. 동시에 조정에 아부도 한다. 이런 아첨방법은 전무후무하다. 자신의 지혜에 의지하여, 동방삭은 조정에 은거한 아첨파의 교주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한무제는 하루라도 그를 보지 않으면, 편안하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눈 앞에서 아첨하는 사람이 없어지면, 강산이 빈 것같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한무제는 계속하여 동방삭이 공연할 무대를 마련해 주었다.

 

하루는 건장궁의 후전의 2중난간에서 한 동물이 뛰어나왔다. 모양인 사슴과 비슷했다. 소문은 금방 궁중에 퍼졌다. 한무제는 친히 그 곳으로 가서 보았는데, 경학에 뛰어난 신하들에게 무엇인지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답을 하지 못했다. 한무제는 바로 동방삭을 불러오도록 시켰다.

 

동방삭은 과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즉석에서 아첨을 멋있게 했다: "나처럼 박학한 사람이 어찌이 물건의 이름을 모르겠나이까. 그러나 내가 맛있는 것을 먹고 맛있는 것은 마신 다음에 이름을 말하겠습니다." 그리고 맛있게 먹고 마신 후에, 다시 한 마디 했다: "어느 어느 곳에 밭과 연못 몇 경이 되는데, 폐하께서 그 땅을 저에게 주시면 제가 이름을 말하겠습니다" 한무제가 그렇게 하겠다고 응락하자, 동방삭은 갑자기 크게 소리쳤다: "경하드립니다. 황상. 경하드립니다. 황상. 저는 이 동물의 이름은 추아(騶牙)입니다. 이 동물이 나타났다는 것은 머지 않은 장래에 반드시 누가 와서 투항할 것이라는 것을 예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과연 흉노의 혼사왕이 사람을 데리고 한나라에 투항해왔다. 동방삭은 귀신같이 미래를 예측한 것이다.

 

동방삭은 이번에 잘 예언한 덕분에 상을 듬뿍 받았다. 이번 하사품에는 몇몇 미녀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이가 들어, 동방삭이 임종할 때, 한무제에게 이렇게 권했다: "시경에 말하기를 날아오고 날아가는 파리가 바구니 위에 앉네. 자상하고 선량한 군자여 참언을 듣지 마소서라는 말이 있고, 참언은 끝이 없나니, 사방의 이웃나라들이 편안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말잘하고 아첨하는 무리를 멀리하시고, 그들의 참언을 물리치소서" 한무제는 "지금 동방삭을 다시 생각해보니, 그저 말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던가?"라고 생각하고 놀란다. 얼마되지 않아. 동방삭이 병사한다. 옛책에서 "새도 죽을 때가 되면 울음소리가 슬프고,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말이 진실하다"는 말이 있다. 그것이 바로 이런 뜻이다.

 

동방삭은 걸출한 인재였다. 위대한 전제정권시대에 그는 개인과 사회의 긴장관계를 어떻게 하면 해소할 수 있는지를 잘 알았따. 어떻게 하면 자기의 지식으로 물질적인 이익을 최대한 얻어낼 수 있는지도 잘 알았다 그리고 이런 물질을 가지고 다른 측면에서의 향락을 누렸다. 그러므로, 그는 관료사회의 허망함을 꿰뚫어 보았고, 금전의 허망함도 꿰뚫어 보았고, 인생의 허망함도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허망한 지식을 이용하여, 허망한 관직을 얻고, 허망한 금전으로 바꾼 다음에, 그 금전을 이용하여 실재하는 육체의 향락으로 바꾸었다. 이렇게 허망한 인생을 보낸 것이다.

 

지식은 힘이다. 이 말은 우리를 속이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