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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삼국연의의 미녀 초선은 도대체 누구인가?

by 중은우시 2008. 10. 31.

 

 

 

작자: 미상

 

삼국의 이야기는 거의 모든 중국인들이 잘 알고 있다. 소설과 나관중은 그의 작품 "삼국연의"에서, 이미 독자들에게 파란만장한 역사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중에서 제갈량, 관우와 같은 인물은 인구에 회자되어 이미 민간의 신화인물이 되었다.

 

다만, 진실을 추구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반복해서 읽다보면 부지불식간에 여러가지 의문이 들게 된다. 나관중은 장난끼많은 사람과 같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 소설의 스토리에 많은 수수께끼를 담고 있다. 그리하여 후세의 독자들이 추측해보도록 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들 수수께끼는 마치 작자가 주도면밀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아무렇게나 집어넣어서 논리적인 헛점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표면속에 숨어있는 것은 작자가 말하려다가 다 말하지 못하고, 여러가지 사실을 가슴에 묻고, 감히 공공연히 드러내지 못하는 고통소ㄱ에서 사실을 각종방식으로 삼국연의 소설 속에 숨겨두고 있다.

 

그중의 수수께끼를 전부 풀기 위하여는 필자 개인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사실 그저 그 중에 몇 가지 문제를 한번 말해보고자 하는데 불과하다.

 

"삼국연의"의 전체 책에서 두 사람은 나관중이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그중 하나는 장비에게 얻어맞는 독우(督郵)이다. 당연히 그는 중요한 인물이 아니다. 이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또 다른 인물은 전체 삼국연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바로 초선(貂蟬)이다.

 

역사지식이 조금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초선의 원래 의미는 한나라때 시종관리의 모자장식이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비록 정사문헌에는 초선에 대하여 아무런 기록이 없지만, 민간희곡전설에는 그녀에게 이름과 신세내력이 부여되어 있다. 초선의 성은 임(任)이고 이름은 홍창(紅昌)이다. 그녀가 태어난 지방에 대하여는 주장이 여러가지이지만, 일설에는 임조(臨洮), 일설에는 미지(米脂), 일설에는 흔주(忻州)라고 한다.

 

그렇다면, 초선에게 성명이 있다면 이렇게 중요한 인물에 대하여 나관중은 왜 고의로 이를 숨기고 말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백문루사건에서 여포가 조조에게 죽은 후, 초선의 행방은 또 어떻게 되었는가? 나관중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는 나관중의 일관된 태도와 부합하지 않는다. 나관중은 전체 "삼국연의"에서 중요한 인물의 행방에 대하여 거의 전부 명확히 언급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손상향이 동오로 돌아간 후 사실은 이미 전체 삼국의 이야기와 관계가 거의 없는데도, 유비가 패배하여 백제성에서 병사한 후, 나관중은 그래도 일부러 다시 손상향이 그 소식을 듣고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적어서, 독자들에게 완벽하게 설명해준다. 그런데, 초선에 대하여는 나관중이 왜 그렇게 언급하기를 피했을까?

 

이들 문제는 깊이 생각해보도록 만들었다.

 

민간전설에서 우리는 초선의 행방에 대한 몇 가지 버전을 들을 수 있다.

 

한가지 버전은 관우가 초선을 숨기고, 조조가 이를 알고난 후에 사람을 보내어 체포하고자 하였으며, 초선은 검을 뽑아 자결했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버전은 초선이 관우의 안배하에 고향으로 되돌아가서 고향에서 평생을 마쳤다는 것이다(혹은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고, "금운당암정연환침"이라는 저작을 남겼다고도 한다)

 

또 다른 버전에서는 조조가 초선을 관우에게 주겠다고 하면서, 몰래 유비한테도 응락하여, 두 형제간을 이간시키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조조의 이런 음모가 달성될 수 없도록 하기 위하여 관우는 초선을 죽여버렸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원나라때 잡극인 "관공월하참초선"에서는 조조가 초선을 보내어 관우를 유혹하게 하였는데, 관우는 스스로 버틸 수 없을 것을 걱정하여, 칼로 초선의 달아래 그림자를 베고, 초선은 몸을 날려 월궁(月宮)으로 갔다고 한다.

 

이로써 볼 때, 어떤 버전이건 초선의 행방은 모두 관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사실, "삼국연의"에는 나관중이 사실 일종의 다른 것을 빌리는 방법으로 이미 이 사정을 얘기해 두었다. 그는 실제로 허구의 적토마(赤兎馬)로 이 점을 암시하고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두 한 가지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 관우가 여포에게서 적토마를 얻었을 때, 적토마는 이미 어른 말이었다. 그리고 관우는 당시 한창 나이였다. 그런데, 관우가 나중에 맥성으로 패주하여 동오에 피살될 때도 그가 타고 있던 것은 여전히 적토마였다. 당시 그는 이미 오십여세였는데, 이것은 확실한 착각이라고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계산해보면, 당초 여포가 동탁에게서 적토마를 얻었을 때, 적토마는 이미 전쟁터에 나갔다. 그해는 기원후190년이다. 관우가 적토마를 얻었을 대는 이미 개략 10여년을 지났을 때이다. 관우가 맥성으로 도망갈 때는 이미 221년이다. 즉, 당초 동탁이 여포에게 줄 때 이 말이 막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관우가 죽을 때는 적토마가 이미 31살이 되어 있는 것이다.

 

동물학의 각도에서 말하면, 일반적으로 말의 수명은 겨우 30-40년이다. 그리고 체력노동이 많으면 수명은 더욱 짧아진다. 즉, 적토마는 당시에 아직 죽지 않았다고 치더라도, 이미 마굿간에서 노년기를 보낼 고령마인 것이다. 관우가 다시 타고다닌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일 우리가 초선과 적토마의 신세를 자세히 비교해본다면, 너무나 많이 부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의 관계는 모두 동탁에서 여포를 거쳐 관우에게로 간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적토는 사실 초선인 것이다. 양자는 일체이다. 나관중은 적토마로 초선의 백문루이후의 신세를 은유한 것이다.

 

다만, 왜 이렇게 하였는가? 전체 이야기는 도대체 어떠한가?

 

사실, 이름만으로 보면, 초선과 적토의 이름은 대응관계에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초선의 진실한 이름은 임홍창이다. 여기에 "홍(紅)"자가 있다. 적토마의 "적(赤)"자도 일부러 이 홍자와 대응시킨 것이다. 만일 이렇게 얘기한다면 "토(兎)"는 무엇에 대응하는가? 사실상 나관중은 "토"자로 초선의 원래 신분을 표시한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초선과 '토'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나관중이 이렇게 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이것도 해석하자면 좀 복잡하다.

 

명확히 얘기하자면, 우선 고대의 종교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

 

인류역사상, 거의 모든 인류문명은 진화과정에서 모계사회를 거쳤다. 심지어 현재의 일부 원시부족에서도 여전히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바로 모계사회부터 인류는 자연에 대하여 이해하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점차 종교숭배를 지니게 된다. 그리하여, 당시 주도적인 성인 여성은 신의 대표자가 된다. 인류는 만물을 생산하는 자연을 숭배했고, 동시에 생육능력을 지닌 여성신체를 자연신의 상징으로 보아 더욱 숭배했다. 댄 브라운은 자신의 '다빈치 코드'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유럽역사상의 여성숭배에 대하여 어느 정도 묘사해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동방에서도 여신숭배는 일찌기 인류종교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점했다. 중국에서도 여신숭배는 계속 존재했고, 나중에 남성주도의 사회가 되어서도 존속했다.

 

사회가 부계사회로 넘어가면서, 더욱 강한 역량과 지혜를 지닌 남성이 여성을 대체하여 사회의 주도자가 된다. 그 후에 종교도 거대한 변화를 겪는다. 갈수록 많아지는 남성신화인물이 여성신화인물을 대체한다. 다만, 여성숭배는 바로 사라지지 않았고, 계속하여 인류사회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중국고전역사신화속에는 지금까지도 적지 않은 여신의 형상이 보존되어 있다. 예를 들어 여와가 사회역사에 미친 영향은 다른 남성형상의 신들에 전혀 못지 않다.

 

중국역사에서 인류는 음양양의의 소박한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다. 모든 것은 둘로 나누어 음 또는 양의 속성을 부여했다. 남성주도사회에서 여성에게는 음의 속성이 부여되었다. 그리하여 여성숭배는 음신숭배이다. 자연계에서 음의 속성을 지닌 가장 큰 실체는 달(太陰)이다. 자연히 음신숭배의 토템이 된다. 그리하여, 중국의 음신숭배종교는 배월교(拜月敎)라고 부른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우리는 앞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초선은 바로 어느 지하음신숭배종교의 구성원이었고, 신분이 아주 높았다. 중국민간은 계속하여 초선배월(貂蟬拜月)이라는 얘기가 전해오는데, 바로 이를 증명하는 것이다.

 

항아(嫦娥)는 중국민간에서 달을 주관하는 여신이다. 그녀는 자주 배월교의 우상이 된다. 그녀가 데리고 다니는 동물은 바로 옥토끼(玉兎)이다. 이것은 여신에 가장 가까이 있는 생물인 것이다. 교내의 중요인물의 상징이다. 이것이 바로 나관중이 '토'자로서 초선의 신분을 대표한 이론적인 근거이다.

 

이로써 볼 때, 적토는 기실은 초선이다. 나관중은 암호의 방식으로 초선의 이후 행적을 기록했다. 남방의 민간에서는 사람들이 여자를 마자(馬子)라고 부르는데 이것도 여기서 유래한다.

 

그리하여, 사실 초선은 백문루이후 관우와 함께 살았다. 더욱 큰 비밀은, 초선이 사실 관우에 의하여 입교하게 되고, 교직을 맡았다는 것이다. 민간의 전설에 따르면, 관우는 초선을 출가하게 하여 비구니로 만들었다는 것인데, 바로 이것을 얘기하는 것이다. 관우가 초선을 입교시킨 것은 그가 남자이므로, 신분이 아무리 높더라도 교내에서 지위를 더이상 높일 수가 없어서, 초선을 입교시킨 후 그녀를 제사신관으로 만들고, 이를 통하여 이 종교를 통제하는 목적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나관중은 은비(隱秘)의 방식으로 이 모든 것을 기술했을까? 이것도 얘기하자면 길다.

 

먼저 초선과 관우가 서촉에 도착한 이후의 일을 얘기해보자.

 

유비가 서촉을 전부 장악한 후, 관우는 자진해서 형주를 지키는 일을 맡는다. 유비 수하의 최고위 장군으로서 그가 이런 요구를 하니, 유비가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관우도 그 자신의 계산이 있었다. 형주에서 그는 현지의 최고지휘관이 되니, 그는 이러한 조건을 이용하여 그의 종교조직을 확대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에 대한 댓가는 그와 초선이 종교내에서 전무후무하게 높은 지위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후의 시간동안, 형주는 편리한 지리적 위치와 교통조건 그리고 풍부한 물산과 발달한 경제를 가지고, 전체 교단을 도와주고, 신속히 발전한다. 다만 좋은 시절이 길지는 못했다. 교단세력과 재부가 신속히 발전하면서, 원래 종교신앙으로 결합된 조직내부에 균열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인류의 ㅣ익추구본성은 각종 권력의 암투를 가져왔다. 동시에 초선은 자기의 괴뢰지위에 대하여 불만도 갖게 되고, 점차 일부 교도들로 하여금 자기를 숭배하게 하여 세력을 키워갔다. 스스로 실력을 충분히 키웠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때, 점차 공개적으로 관우와 대결구도를 취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자신감에 넘친 관우는 초선의 행위를 눈에 두지도 않았다. 그가 보기에, 초선은 당초 자기의 손아래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계속 무시하던 초선의 세력이 유례없이 강해지고, 그가 이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격렬한 암투가 겉으로는 고요한 형주에서 점차 격화되었다.

 

양파의 사람들은 너죽고 나살자는 식으로 싸워 양패구상을 당했을 때, 더욱 큰 위기가 서서히 다가왔다.

 

형주는 교통이 편리하고 물산이 풍부하여 전체 교단의 발전에 편리를 가져다주는 동시에, 같은 이유로 병가에서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땅이 되었다. 이는 형주가 나중에 함락되는 배경원인이 된다.

 

형주내부권력투쟁에 대한 소식을 탐지한 동오는 형주를 탈취할 좋은 시기가 이미 무르익었다고 생각한다. 이와 동시에, 조조측에서도 이 땅을 노리기 시작한다.

 

관우는 이 때, 여전히 당시의 형세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여전히 조조를 먼저 치는 모험을 한다. 그리하여, 동오는 기회를 잡아 출격하여, 일거에 내부혼란에 빠진 형주를 차지하고 관우와 초선을 죽여버린다.

 

다만, 세력이 방대한 교단은 금방 붕괴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하로 잠입한다. 나중에 위나라가 통일한 이후, 방덕의 후인이 형주에 들어간 후, 관우가족과 그의 일당을 대거 살육할 때, 교단은 분열되고, 철저히 민간에 숨어버린다. 이때부터 모든 정사에서 그 흔적은 사라진다.

 

나중에 오랜 세월속에 이 종교는 때로 흥성하고 때로 쇠퇴했다. 그리고 중국역사에 일정한 영향을 미쳐왔다. 다만 왕왕 신속히 사라지곤 했다. 나중의 발전과정에서, 그들은 점차 하나의 완전한 집단세력으로 성장하고, 여신숭배의 최초교의는 점차 사라진다. 결국, 그들은 관우등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는 형제회조직으로 발전한다. 최초의 여신숭배는 철처히 포기되거나 금지된다. 소수의 원래 교의를 지키려는 자들은 잔인하게 살육된다. 그리하여 초선의 계열은 천여년간 계속 박해받으면서 중국의 역사무대에서 사라진다.

 

나관중은 이 소수파의 잔존세력이다.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또한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하여 부득이 은유의 방식으로 자기의 저작에서 이를 알린 것이다.

 

초선에 대하여 그는 '월'자 '토'자등의 부호를 통하여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관우에 대하여, 그는 역시 관우의 봉호인 "한수정후(漢壽亭侯)"의 "수(壽)"자 상반부와 초선의 월(月)자를 결합한 한자인 "청(靑)"으로 관우를 대표했다. 동시에, 청은 색깔이면서 초선의 이름 속에 있는 '홍'자와 대응된다. 중국민간전설과 희곡에서 관우는 계속 녹색옷을 입는데, 바로 여기서 유래하는 것이다.

 

추가로 사실을 설명하기 위하여 나관중은 후세인들이 그의 뜻을 곡해할 것을 우려하여, 일부러 관우의 유명한 무기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만들어 낸다. "청룡"과 "월"이 각각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필자가 다시 해석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관중이 "도(刀)"를 가지고 관우의 무기로 삼은 것은 후인들이 그 안에서 헛점을 찾아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때에는 군대내에 근본적으로 장병대도와 같은 무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를 덧붙이자면, 이 형제회조직은 나중에 발전을 계속한다. 청나라군대가 중원을 차지한 후, 점차 다른 반청복명조직과 융합하여 "홍문(洪門)"을 이룬다. "홍(洪)"자는 번체안의 "한(漢)"자에서 "토(土)"를 뺀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한족이 땅을 잃었다는 것을 표시했다. 다시 나중에 청나라가 전복된 이후에 그들중의 일부분은 다시 개명하는데, 바로 그 유명한 "청방(靑幇)"이다. "청"자의 근원은 바로 위에서 얘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