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미상
위연(魏延)의 죽음은 촉(蜀)의 가장 큰 원안(寃案, 원통한 사건)이다. 이 원안은 바로 제갈량의 유언에서 비롯된다.
<<삼국지>>에 따르면, "(제갈)량의 병이 중해지자, 장사 양의, 사마 비위, 호군 강유등과 그가 죽은 후에 군대를 퇴각하고 통제하는 것에 대하여 비밀리에 논의하여, (위)연으로 하여금 후방을 끊도록 하고, 강유가 그 다음으로 하도록 하며, 만일 위연이 명을 따르지 않으면 군대를 스스로 일으켜라고 했다(軍便自發)" 이는 제갈량이 유언으로 위연을 포기한 것을 말해준다. 이로 인하여 원래부터 갈등이 있던 양의와 위연의 관계가 공개적으로 결렬되고, 서로 상대방을 모반으로 주장하여, 결국 양패구상에 이른다.
제갈량의 유언은 이처럼 위연과 양의 두 사람의 갈등을 격화시켰을 뿐이다. 위연이 어떻게 말했는지를 보자: "승상이 비록 죽었지만, 나는 아직 여기 건재하다. 승상부의 친척과 소속관리들은 장례를 위하여 돌아가라. 나는 군대를 이끌고 적을 치겠다. 어찌 한 사람이 죽었다고 하여 천하의 일을 그만둘 수 있겠는가? 그리고 나 위연이 어떤 사람인데, 양위따위를 위하여 후방을 차단하는 일을 한단 말인가?" 이 말로 볼 때, 위연은 첫째, 제갈량이 죽은 후에 대군의 지휘권은 당연히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위연은 북벌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셋째, 양의의 지휘를 받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양의의 군대의 후방을 끊는 일을 하는 것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동시에 '군대를 스스로 일으켜도 좋다(軍便自發)'이라는 것은 결국 위연을 포기한다는 말이다. 위연이 조급해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이로써 볼 때, 제갈량의 유언은 몇 가지 중대한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제갈량의 병이 중할 때, 왜 위연을 병상으로 부르지 않았는가? 최소한 이렇게 하여 명령을 내림으로써 군내의 의견을 통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둘째, 왜 지휘권을 양의에게 넘기고 위연에게 넘기지 않았는가? 위연은 무장이고, 관직도 제갈량 바로 다음이었다. 이치대로라면 그에게 지휘권을 넘겨야 하는 것이지, 그와 원수관계에 있는 양의에게 넘겨서는 안되었다. 셋째, 왜 위연으로 하여금 후방을 끊는 일을 하도록 시켰는가?
제갈량의 이런 안배에 대하여, 일부 역사학자들 예를 들면 장작요 선생은 제갈량과 위연의 군사노선이 달랐다는 점을 지적했다. 품삼국으로 이름높은 이중천 선생도 제갈량의 생각은 대군을 하루빨리 성도로 되돌리는 것이었고, 위연에 대하여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더 심하게 지적하는 경우는 제갈량은 위연을 제거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외에, 사면등은 하나의 가설을 내세운다. 즉, 제갈량은 이런 유언을 내린 바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중천 선생이 얘기한 것처럼 '그러나 증거가 없다'
위에서 얘기한 내용은 모두 알고 있는 바이다. 아래의 내용은 또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에 접근한 것이다. 어떤 각도인가? 의학(醫學)의 각도이다. 우리는 아래에서 제갈량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분석해보도록 하자.
삼국지의 기록에 따르면, "그해 8월, 제갈량이 질병(疾病)으로 군에서 죽었다. 그 때 나이 오십사이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질병(疾病)'이라는 두 글자이다. 이 두 글자는 고대한어에서 하나의 단어가 아니라 두 개의 단어이다. '질'은 작은 병이고, '병'은 큰 병을 가리킨다. 다만, 이렇게 이해한다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필자의 생각으로, '질'은 여기서 '빠르다(快速)'는 의미로 새겨야 한다고 본다. 즉, '돌연 중병을 얻어서...'라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외에 '그해 8월'이라는 네 글자를 보더라도,이 네글자는 시간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 말이 가리키는 것은 뒤의 모든 문장이다. 이는 '질병'뿐아니라. '군에서 죽었다'도 표시한다. 그러므로, 이 글을 분석해보면, 우리는 제갈량이 병이 들어서 병으로 죽을 때까지의 시간이 아주 짧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최대 1개월이상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인(死因)에 대하여, 공인된 견해는 제갈량은 피로가 누적되어 병으로 발전해서 죽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제갈량이 과로로 인하여 만년에 폐결핵과 간경화등의 질병을 얻었다고 본다. 폐의 질병은 각혈을 하고 간경화후기에는 정맥파열현상이 나타나서 죽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런 주장은 믿을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첫째, 폐병과 간은 발병에서 사망까지의 기간이 그리 짧지가 않다. 둘째, 이 주장은 '제갈량이 우려로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삼국지에는 제갈량이 피를 토했다는 내용이 없다. 각혈을 문학작품에나 나오는 것이므로 믿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제갈량은 어떻게 죽은 것일까? 그가 피로가 누적되어 죽었다고 모두 얘기하니, 모두가 잘 알고 있는 하나의 명사를 떠올리는 것이 좋겠다. 과로사. 왜 과로사라고 하는가? '과로사'는 일본에서 나타난 현대병의 하나이다. 업무시간이 너무 길고, 노동강도가 너무 세고, 심리적 스트레스가 과대하고, 힘과 정력을 고갈시킨 정신상태가 존재하는데, 돌연 신체에 잠재된 질병이 급속히 악화되어 치료하지 못하고 죽는 것을 가리킨다. 어떤 사람은 과로사의 정의를 장기간의 만성피로가 유발한 급사라고 한다. 현재 의학연구에 따르면, 과로사의 직접사인으로 가장 많은 다섯가지는 각각, 관상동맥질환, 주동맥류, 심장판막증, 심근병 및 뇌출혈이다. 그런데, 이 병은 한번 발작하면 즉시 사망할 뿐아니라, 의식이 없어진다. 무슨 유언이라는 것을 남길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위연을 부를 수도 없었던 것이다.
좋다. 이제야 진상을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제갈량은 북벌도중에 심장병 또는 뇌일혈이 발작하여 사망했다. 양의등은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어쩔 수 없이 승상의 유언이라는 명목으로 군대를 철수시키며, 기회를 보아 위연을 제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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