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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진시황)

진시황은 조고(趙高)의 손에 죽었는가?

by 중은우시 2008. 7. 3.

글: 유조흥(劉照興)

 

진시황의 죽음에 대하여 <<사기>>는 여러 곳에 기술하고 있다. 각각 <<진시황본기>>, <<이사열전>>, <<몽염열전>>등에 나타난다. 진시황은 제5차 출순(出巡) 때, 평원진(平原津)에 이르러 병을 얻고, 억지로 사구평대(沙丘平臺, 오늘날의 하북성 광종 서북쪽)에 이르렀을 때, 마침내 사망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진시황이 종욕무도(縱慾無度)하였고, 체약다병(體弱多病)한데다가, 출순기간동안의 여행에 피로가 겹치고, 다시 병을 얻다보니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필자가 여러 전적을 뒤져보니, 진시황의 죽음은 의심스러운 곳이 많다. 아마도 비명에 죽었을 것이고, 아마도 조고의 손에 죽었을 가능성이 많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하나, 진시황은 역사상 일부 봉건제왕들처럼 몸이 약하고 병이 많지 않았다. 역사전적을 살펴보면, 그가 어떤 질병을 앓았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그의 몸은 건강했던 것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서는, 진왕정20년(기원전227년)에 형가(荊軻)가 그를 암살할 때, 그는 놀란 와중에서도, 소매를 떨치고 기둥을 돌아서 도망쳤는데, 형가가 그를 결국 따라잡지 못했다. 진시황이 제5차출순때 나이 오십세였으므로 그다지 늙었다고 볼 수는 없다. 평원진에서 병을 얻고 다시 140여리를 가사 사구에 이르렀다; 사구평대에서 병을 치료할 때도 구술로 조서를 내려 공자부소에게 보내라고 하였다. 이는 당시까지도 사고능력이 평상시와 다름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치명적인 병으로 누워있는 사람의 모습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진시황의 체질이나 당시의 상황으로 봐서, 사구에서 병사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주의할 점은, 사구는 사방이 황량하고, 궁실은 텅비어 있으며 아주 넓었다는 것이다. 전해지는 바로는 이곳은 원래 은나라 주왕이 금수를 기르던 곳이라고 한다. 전국시대 조나라 무령왕이 반란을 비호한 장남 장(章)으로 인하여 공자성과 이태에게 이곳에서 포위되었는데,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또한 먹을 것도 없어서 사구의 궁안에서 그냥 굶어죽었다고 한다. 이로써 볼 때, 이곳은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환경하에서 예측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큰 것이다.

 

둘, 여러가지 종적으로 추측하면, 환관 조고가 시해하였을 가능성이 비교적 크다. 저명한 사학가인 곽말약이 이미 역사소설 <<진시황제의 죽음>>을 쓴 적이 있는데, 거기에는 진시황이 평원진에서 황하를 건널 때, 간질병이 발작하여 뒷머리를 청동빙감(靑銅氷鑒)에 부딪쳐, 뇌막염이 가중되어, 혼미상태에 빠진다고 하였다; 마차가 사구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 말, 조고, 이사는 진시황이 이미 죽은 것을 발견한다, 오른쪽 귀에서 검은 피가 흐르고, 오른쪽 귓구멍안에는 1촌정도 길이의 쇠못이 박혀 있었다. 이 소설은 일찌감치 진시황의 죽음이 비정상적인 사망이라는 의심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누가 죽였을까? 소설에서는 호해(胡亥)라고 보고 있다. 사실, 조고가 주군을 시해하였을 가능성은 호해가 부황을 시해하였을 가능성보다 크다. 왜냐하면 조서, 옥새가 모두 조고의 수중에 있었고, 왕위계승의 결정권은 그와 이사의 수중에 쥐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해는 설사 부황을 시해한다고 하더라도, 조고와 이사의 협조를 받지 못하면, 황제위를 차지할 수가 없고, 오히려 살신지화를 당할 수도 있다. 조고는 항상 황제의 곁에 따라다니기 때문에 기회를 엿보아 시해하더라도 흔적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므로 호해보다는 훨씬 편리한 조건이다.

 

그렇다면, 왜 환관 조고가 주군을 시해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가?

 

첫째, 조고는 환관(宦官)이다. 그의 부모는 모두 진나라의 죄인이다. 일설에 의하면 진나라의 통일전쟁에서 조나라를 멸망시킬 때 포로가 되었다고 한다. 조고의 부친은 진나라로부터 궁형을 받고, 모친은 관노가 된다. 조고의 모친은 진나라궁중에서 조고의 형제 몇 명을 낳는데,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노비였다. 나중에 진시황이 조고의 몸이 건장하다는 말을 듣고, 또한 '옥법(獄法)'을 좀 안다는 말을 듣고는 그를 뽑아서 중거부령(中車府令)으로 삼는다. 이는 궁중의 마차과 가마 및 도장, 문서를 관장하는 환관의 우두머리였다. 진시황은 또한 조교로 하여금 자기의 어린 아들 호해에게 법률을 가르치게 한다. 진시황의 이번 출순에서, 자연히 중거부령이 빠질 수는 없다. 그리고 나중에 조고는 "행부새사(行符璽事)", 즉 황제의 명령을 전달하고 병력을 이동시키는 증빙인 '부'와 '새'를 관장하게 된다. 조고의 진시황의 병이 위독할 때 그리고 사후의 여러가지 행적으로 보면, 진시황의 죽음이 조고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둘째, 일찌기 몽염, 몽의 형제와 숙원이 있었다. 전해지는 바로는, 조고는 일찌기 큰 죄를 범하였는데, 몽의가 법대로 처리하여 사형을 내렸다. 나중에 진시황이 물어본 후에야 사면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몽염은 흉노들에게 위엄을 떨치고 있었고, 몽의는 상경(上卿)의 관직에 있었다. 한 사람은 바깥에서 병력을 거느리고 있고, 한 사람은 조정내에서 고위직에 있다. 둘 다 진시황의 신임이 두터웠고, 공자 부소가 존중하는 사람들이었다. 일단 부소가 즉위하면, 몽씨형제의 지위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조고는 몽염형제를 미워하면서도 두려워했다. 몽씨형제로부터의 위협을 해소하려면 반드시 부소의 즉위를 막아야 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그는 기회를 잡아 부소, 몽씨형제를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기원전210년, 진시황의 제5차출순은 주로 운몽, 회계등지을 순유하는 것이었고, 이사, 호해, 조고등이 따랐다. 상경 몽의도 수행인원에 포함되었다. 몽의는 몽염의 친동생이고, 황제의 심복이다. 그런데, 진시황의 병이 위중할 때, 몽의는 '산천에 기도하도록 보내어졌다' 이는 아마도 조고등의 음모일지 모른다. 몽염은 30만의 병력을 이끌고 공자부소와 함께 변방을 지키고 있는데, 진시황의 신변에서 몽의를 쫓아내는 것은 바로 부소의 눈귀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고, 나중에 음모를 실행하는데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이기도 하다.

 

셋째, 조고는 내심으로 부소가 황위를 승계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부소는 사람됨이 바르고, 아예 아부를 잘하는 조고를 무시했다. 진시황의 어린아들 호해는 멍청하였다. 그리고 조고는 일찌기 호해에게 법률을 교육시킨 바 있다. 두 사람은 죽이 잘 맞았다. 조고는 호해를 황제에 앉히고 싶었다. 그래야 자기가 권력을 마음대로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진시황의 명령을 어기고 부소에게 보내는 조서를 발송하지 않는다. 호해를 설득하고 이사를 위협하는 수법으로,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상의한 후, 진시황의 조서를 위조하여, 호해로 하여금 황위를 계승하게 한다. 동시에 진시황의 명의로 부소가 아들로서 불효하다는 질책을 하고, 몽염이 신하로서 불충하다는 질책을 하며, 그들에게 즉시 자결하도록 명한다. 조서를 받은 후 부소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결한다. 몽염은 이처럼 멍청하게 죽고 싶지는 않았고, 감옥에 들어간 후 처분을 기다린다. 호해, 조고, 이사는 부소가 이미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제서야 사람들에게 명하여 길을 떠나 밤낮으로 함양을 향하게 한다. 계속 신하들과 백성들을 속이기 위하여 직접 함양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순유하는 모습을 유지하기 위하여, 사구에서 정형(井?)으로 간 다음에 다시 태원(太原)으로 가고, 거기서 직도를 따라 함양으로 돌아간다. 3,4천리를 돌아간 것이다. 여름에 날씨가 더워, 시신에서 썩는 냄새가 났다. 사람들의 이목을 가리기 위하여 많은 물고기를 사서 가마에 실음으로써 시신에서 나는 악취를 속였다. 함양에 도착한 후, 그들은 즉시 진시황이 죽었다는 소식을 반포하고, 장례를 치른다. 곧이어, 호해는 황제로 등극하니 그가 바로 진이세(秦二世)이다. 조고는 낭중령(郎中令)으로 승진한다. 이사는 여전히 승상을 맡는다. 조고는 음모가 성공한 후, 기세등등하여 다른 사람을 압도했고, 일세를 풍미한다. 그는 진이세에게 참언을 고하여, 몽씨형제를 해하고, 여러 공자를 죽인다; 함정을 파서 이사를 죽음의 길로 내몬다. 이사가 조고의 음모를 발각한 후에 조고의 음모를 까발렸지만, 진이세는 조고의 편을 든다. 그리하여 이사는 감옥에 갇혀 죄를 받는다. 결국 이사는 함양에서 요참(腰斬)에 처해진다.

 

넷째, 진시황이 사구에서 병치료할 때, 조고에게는 시해의 기회가 되었다. 진시황의 병이 위급할 때 부소에서 조서를 내려, "죽게 되면 함양으로 와서 장례를 치러달라"고 한다. 이는 분명히 부소에게 황제위를 넘겨주겠다는 말이다. 조고는 잘 알았다. 이 일은 자기의 생사영욕에 관계되는 일이다. 그로서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진시황의 신변에는 승상 이사뿐이었다. 그리고 이사도 사심이 커서 쉽게 통제할 수 있었다. 다른 시종들은 조고가 심은 자들이었다. 그리고, 조고의 당시 처지에서 보면, 이 방법밖에 없었고,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진시황이 구두로 부소에게 조서를 내릴 때, 조고가 그 일에 참여했다. 조서를 다 만든 후에, 조고는 발송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회를 봐서 호해와 이사를 설득해서, 허위조서를 내려 부소를 죽이고자 한다. 다만, 조서를 계속 내려보내지 않다가, 만일 진시황의 병세가 호전되기라도 하면, 그리하여 조서를 내려보내지 않은 것을 알게 되면, 조고는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만일 진시황이 죽지 않고 이사가 설득되지 않고 오히려 시황제에게 고발이라도 하게 되면, 조고는 죽는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이사를 설득하기 전에 진시황을 죽여놓는 것이 만전의 대책이었다. 진시황만 죽으면, 이사가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을 우려할 일은 없고, 누구도 조서를 내려보내지 않은 일을 추궁하지 않을 것이다. 이로써볼 때, 조고가 조서를 내려보내지 않은 때로부터 이미 화살은 활시위에 당겨져 있던 것이다. 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진시황은 평상시에 깊은 궁전에 틀어박혀 있고, 경비가 삼엄했다. 그리하여 손을 쓰기가 불가능했다. 지금은 여행중에 병으로 쓰러지니, 이는 하늘이 내린 좋은 기회이다. 바로 조고가 호해에게 말한 것처럼: '망설이고 결정하지 못하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과감하게 결정해서 행동하면 귀신도 피할 것이며, 성공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는 과감하게 병중의 진시황에게 손을 써서 목숨을 빨리 거둬간 것이다. 이 가능성은 아주 많다.

 

다섯째, 조고의 언행이 가장 좋은 답변이다. 그는 호해에게 "신이 듣기로 탕무가 그의 주군을 시해하였는데도 그것은 의롭다고 하지 불충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위군이 그의 부친을 죽였음에도..공자는 그를 적으면서 불효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조고는 이처럼 군주를 시해한 것을 가지고 얘기했을 뿐아니라, 나중에는 시해의 행동에도 착수했다. 젠이세가 조고를 중승상으로 명한 후 얼마되지 않아, 대택향의 진승 오광이 난을 일으킨다. 이때 조고는 천하가 이미 어지러워졌다고 보고는 시기가 성숙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스스로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대신들이 따르지 않을 것을 우려하여, 시험을 해보게 된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자들이 자신을 따르는지를 알아보려 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지록위마'의 일막을 연출하게 된다. 이날 조고는 사슴을 한마리 끌고 함양궁으로 들어와서 진이세에게 바친다. 그러면서 말한마리라고 말한다. 진이세는 그 말을 듣고는 크게 웃으며 승상이 잘못아셨다고 말한다. 어떻게 사슴을 가지고 말이라고 하느냐고 말한다. 말하면서 좌우의 관리들에게 도대체 사슴인지 말인지 물어본다. 그들중 어떤 사람은 조고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 무서워,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그저 침묵했다; 어떤 사람은 조고에게 잘봉기 위하여 그를 따라 거짓말을 한다. 즉, 확실히 말이라고 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사실대로 이것은 사슴이고 말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를 통하여 조고는 사슴이라고 직언한 자들은 모두 자신을 반대하는 것으로 보아 하나하나 제거해버린다. 그리고, 사실앞에서 침묵한 자들, 특히 일부러 거짓말로 자신에게 아부한 자들은 조고가 회유하는 대상으로 삼았다. 조고는 여론의 동향을 살펴본 후에, 그의 사위인 함양령 염락으로 하여금 사병 천여명을 이끌고 도적이라고 칭하면서 망이궁으로 쳐들으간다. 진이세는 깜짝 놀라서 어쩔 줄은 모른다. 염락은 진이세의 죄상을 낱낱이 열거한 후 자살하도록 명한다. 호해는 울며불며 목숨을 구걸하나, 염락은 잘라서 말한다: "신은 승상의 명을 받았으며, 천하를 위하여 족하를 없애고자 한다" 말하면서 사병들로 하여금 호해에게 몰려가게 하니, 호해는 어쩔 수 없이 자결하고 만다. 이때, 조고는 옥새를 자기의 몸에 달고, 대전으로 가서 스스로 황제에 오르고자 한다. 그러나, 여러 신하들이 따르지 않자 그는 어쩔 수 없이, 호해의 형의 아들인 자영(子)을 왕으로 삼는다. 이 쿠데타의 과정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조고는 아주 마음과 손속이 악독하여 주군을 시해하였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나쁜 짓을 한 조고도 결국 스스로 그 벌을 받는다. 자영에 의하여 피살되는 운명에 처한 것이다.

 

이로써 볼 때, 진시황의 죽음은 실제로 일종의 궁중쿠데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정변의 핵심은 조고였다. 그는 모든 운명을 장악하고 다른 사람을 지배했다. 부소, 몽염, 몽의, 이사, 호해등은 그의 희생물이었따. 다만, 조고가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면, 우선 진시황을 지배해야 했고, 진시황을 통해서만 실현이 가능했다. 살아있는 진시황은 지배할 수가 없다. 그저 죽여서 유조를 위조할 수밖에 없었다. 정리상으로 분석하자면, 조고가 군주를 시해할 가능성과 필연성이 모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