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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진시황)

진시황: 중국관광개발에 최대의 공헌을 한 사람

by 중은우시 2008. 2. 12.

글: 유계흥(劉繼興)

 

진시황은 중국역사상 최초로 통일된, 다민족의, 전제주의 중앙집권국가를 건립하였다. 그의 가장 위대한 역사적 공헌은 중국을 역사상 최초로 정치적통일을 하고, "거동궤, 서동문(車同軌, 書同文)"을 이루어 후대에 통일을 추구하는 기초를 닥았다는 점이다. 진시황의 역사적 공헌은 아주 많다. 여기에서 일일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본문에서는 '천고일제'의 공헌중 사람들이 주의하지 않은 부분을 얘기할까 한다. 그는 역사상 관광개발에 대한 공헌이 가장 큰 사람이다.

 

당시 진시황은 천인공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배척하면서, 과감하게 만리장성을 쌓았다. 그리고 인류역사상 가장 방대한 공사를 완성하여, 후세인들에게 아주 뛰어난 관광지 및 애국주의교육기지를 제공해주었다. 관광업의 각도에서 보자면, 그의 안목은 천년이상을 갔으니, 얼마나 멀리 내다본 것인가. 만리에 이어지는 장성은 단독의 성벽이 아니라, 성장(城墻), 적루(敵樓), 관성(關城), 돈보(墩堡), 영성(營城), 진성봉화대(鎭城烽火臺)등 각종 방어공사로 구성된 완비된 방어공사체계이다. 이 방어공사체계는 각급군사지휘시스템의 단계별 지휘와 통제를 받고 있다. 장성은 후세에 영향을 크게 미친 위대한 공사이다. 군사적 가치는 이미 역사에 매몰되었지만, 관광가치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진시황이 투자개발한 관광지에는 서안의 진시황병마용이 또 있다. 이는 만리장성과 더불어 현재 중국에서 입장료가 가장 높은 양대 관광지이다. 그리고 외환을 가장 많이 벌어들이는 곳이기도 하다. 많은 국가원수가 중국에 오면 반드시 북경의 장성과 서안의 병마용을 가지 않던가. 국내의 다른 어느 곳이 이곳들만큼 명성이 높겠는가.

 

진시황이 개발한 또 하나의 관광지는 삼백리나 이어지는 아방궁이다. 이것은 관광개발의 안목이 전혀 없던 항우에 의하여 불태워졌다. 이 불로 달러, 유로를 포함한 수억의 중국관광수입이 사라진 것이다.

 

진시황릉은 거대한 규모와 풍부한 부장품으로 역대제왕릉중 최고이다. 또한 세계최대의 황제릉이기도 하다. 일찌기 1987년에 세계문화유산목록에 등재되었다. 이것도 진시황이 관광개발측면에서 이룬 한 성과이다. 진시황릉의 전체면적은 56.25평방킬로미터에 달한다. 이 면적은 마카오 3개, 자금성 78개의 넓이에 달한다. <<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진시황이 13세때 진나라왕위를 계승했을 때, 바로 자신의 능원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죽은 후에도 아직 완공되지 않았다고 하니, 이 절세무쌍의 황제능은 건축기간이 38년에 달한다. 공사에 참가한 사람이 72만에 달하니, 당시 전국총인구의 1/10이었다.

 

진시황이 6국을 통일한 후, 일찌기 천하의 병기를 몰수하도록 명을 내리고, 십이동인(十二銅人)을 주조했는데, 각각 34만근에 달했다고 한다. 이는 함양에 세워두었다. 동인은 크기가 크고, 제작이 정교했으니 역사상 드물게 보는 것이었다. 십이동인은 진시황릉이 생전에 좋아하던 것이었으므로, 진시황릉이 완공된 후 이 십이동인과 다른 정교한 물품들은 함께 부장품으로 능묘에 묻혀버렸다. 현재 중국의 문화재보호기술은 아직 충분하지 못하여, 진릉의 지궁은 아직 열지 않고 있다. 진릉지궁은 아주 크고, 대량의 진귀한 보물을 보관하고있으며, 또한 각종 기관이 설치되어 있다. 진릉지궁이 열리면, 진시황이 개발한 또 하나의 경천동지할 관광경관이 나타날 것이다.

 

진시황은 자신이 관광지를 널리 개발했을 뿐아니라, 자주 관광을 다녔다. 여행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는 6번의 대규모 순유(巡遊)를 했는데, 명산경승지에 비석을 세워 그의 사적을 기록했다. 북으로는 진황도에서 남으로는 강소절강호북호남에 이르고, 동으로는 산동연해지방, 서로는 감숙 농서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의 족적이 남아 있다. 그는 추봉산(鄒峰山, 산동 추현), 태산, 지불도(연태시), 낭야산(산동 교남), 회직(절강 소흥), 갈석(하북 창려)등에 모두 그가 돌에 새겨놓은 글이 남아 있어, 이들 자연경관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산동의 영성(榮城)에 있는 성산두(成山頭)는 천진두(天盡頭)라고도 하는데, 이곳은 중국에서 태양이 가장 먼저 뜨는 곳이다. "천진두"는 진시황이 친히 명명한 것이기도 하다. <<사기. 진시황본기>>의 기록에 의하면, "그 때, 진시황은 문무백관을 이끌고 함양에서 나와 동으로 순유하였다. 시황제의 수레와 말이 성산두에 이르렀을 때, 선산이 구름과 안개로 뒤덮이고, 바다에 물안개가 가득한 것을 보호 황제는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마음이 상쾌해져서 이렇게 말했다. "선경이로다. 하늘의 끝이로다(仙境, 天盡頭)" 진시황이 일찌기 유람한 곳은 관광가치가 훨씬 오른다. 당시 진시황이 순유했던 명산경승지는 현재 거의 모두 국가급의 명승지로 지정되었다.

 

진시황이 개발한 관광지의 품격이 높고, 관광수입이 높은 점은 놀랄만한 정도이다. 중국에서 고래로 따라올 사람이 없다. 만일 중국이 수천년의 관광업개발의 공헌을 따져 상을 준다면, 가장 큰 상은 당연히 이 천고일제 진시황에게 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