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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선진)

범려(范蠡)에 대한 또 다른 해석

by 중은우시 2008. 6. 29.

글: 백매월하객(白梅月下客)

 

오월(吳越)간의 전쟁에서, 월왕 구천의 와신상담 이야기는 오늘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월나라가 오나나라를 멸망시킨 후에 범려가 대부 문종(文種)에 했다는 말, 즉, "새를 다 잡으면 활은 창고로 들어가고, 토끼가 다 죽으면 사냥개는 삶아 먹는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범려는 명리를 가볍게 여기는 지혜로운 인물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기>>를 자세히 읽어보면 범려는 불인(不仁), 불의(不義), 불충(不忠)하고 편협한 소인의 이미지로 보이고, 반대로 구천이 군자같이 보인다.

 

범려가 월왕 구천에게 부차를 용서하지 말고 죽여버리라고 하는데, 그 내용은 개인의 복수를 하려는데 중점이 있는 것같고, 예전에 오나라에 인질로 잡혀가서 부차에게 굴욕을 당한데 대한 체면을 회복하려는데 중점이 있는 것같다. 그리고, 법려가 구천에게 권하는 방식은 오자서가 부차에게 직간했던 방식과도 전혀 다르다.

 

범려의 불인(不仁)

 

<<사기>> <<권41. 월왕구천세가 제11>> 1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구천이 월왕이 된후 3년이 지나서, 오월이 싸웠다. 오왕부차에 의해 월왕구천은 회계에 갇힌다. 범려는 계책을 내서 오나라에 거짓항복을 하도록 하며, 구천은 문종을 보내어 투항하겠다고 한다. 첫번째는 오왕이 막 허락하려는데, 오자서가 오왕에게 '하늘이 월나라를 오나라에 주는데, 이를 거절하겠습니까?"라고 하여, 결국 문종은 부차로부터 투항을 받아들인다는 승락을 받지 못하고 돌아온다. 그러나, 이번 길에서 문종은 오나라의 태재(太宰, 승상)인 백비(伯)가 재물을 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그리하여, 월왕구천과 상의한 후 다시 오나라로 같다. 여기서 백비를 통하여 작업을 한 후에 다시 항복을 청하고 두번째에도 오왕 부차가 허락하려 하자, 오자서가 나서서 "오늘 월을 멸하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 구천은 현군이고 문종, 법려도 양신입니다. 만일 반란을 일으키면 반드시 어지러울 것입니다" 아쉽게도, 오왕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월을 사면해주고, 병사를 되돌린다. 투항조건으로 월왕구천은 범려와 대부 자계(稽)를 보내어 오나라의 인질로 삼는다. 2년만에 범려를 월나라로 되돌려 보낸다(* 이 뒷부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 차이가 있지만, 사기를 기준으로 한 것임).

 

범려가 되돌아오게된 연유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대부 자계와 비교하면 그대로 그는 운이 좋았고, 당연히 오나라와 부차에게 감사해야 한다. 만일 오자서가 '문종과 범려가 양신이므로 반란을 일으키면 어지럽게 될 것이다"라고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더라면, 부차가 그 말에 반박을 하지 않고 들었더다면, 그리고 어질지 않고 잔인했더라면, 범려는 월나라로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부차는 범려를 죽이지 않았는데, 범려는 부차를 어떻게 대하였는가?

 

<<사기>> <<권41. 월왕구천세가제11>> 1권에는 "오왕(부차)가 황지에서 제후를 만날 때, 월왕구천의 제1차복수전이 시작된다. 즉, 습류 2천명, 교사 4만명, 군자 6천명, 제어 천명을 이끌고 오나라를 친다. 오나라군대가 패하며, 월은 오나라 태자를 죽인다."

 

"스스로를 살펴보고 오나라를 멸망시킬 수 없다고 보고 오나라와 비긴" 월나라는 다시 "4년후에 다시 오나라를 공격한다. 오나라의 정예는 이미 제나라 진나라에 다 죽었다. 그리하여 월이 오를 대파한다. 오왕은 고소의 산에 갇힌다. 마치 예전에 월왕 구천이 병사 5천을 데리고 회계에 갇혀 있었는데, 오왕이 추격해와서 포위당했던 장면이 다시 반복된 것이다. 다만 사람이 뒤바뀌었을 뿐이다.

 

부차는 자기가 예전에 "월을 용서하고 병사를 되돌렸던 일"을 기억하고, 당시 월왕 구천이 대부 문종을 보내어 무릎으로 기면서 머리를 숙였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하여 오왕은 공손웅을 보내어 웃옷을 벗어 어깨를 드러내고 무릎걸음으로 나아가서 월왕에게 고하게 한다: 신하 부차는 감히 뱃속에 있는 말을 합니다. 예전에 회계에서 죄를 지었는데, 부차는 감히 명을 거스리지 못했고, 군왕과 함께 돌아갔습니다. 이제 군왕께서 고신(孤臣, 부차)을 죽이다면 고신은 명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 회계에서 고신의 죄를 사해주실 수는 없겠는지요?"

 

이때 월왕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이때의 범려는 또 어떻게 오왕의 죽이지 않은 은혜에 보답했는가?

 

"구천은 차마 죽이지 못하고, 요청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러자 범려가 말했다: "회계의 일은 하늘이 월을 오에게 주었는데, 오가 취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오를 월에게 주는데 어찌 다시 하늘의 뜻을 거스리겠습니까? 그리고 군왕께서 지금까지 힘들게 애써오신 것이 오나라때문이 아닙니까. 22년간을 계획한 것을 하루아침에 망치시겠습니까? 하늘이 주는 것을 취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 화를 당합니다. 군왕께서는 회계의 재난를 잊으셨습니까? " 구천이 말한다. "나는 그대의 말을 듣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 사신을 차마 어떡하지 못하겠구나" 범려는 바로 북을 울리면서 병사를 진군시켰다. 그러면서 말했다: 왕께서 이미 정사에 관한 권한을 나에게 위임하셨다. 사자는 돌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죄를 묻겠다. 사신이 울면서 돌아갔다. 구천은 그를 가련하게 여겨 사신에게 오왕에게 전하게 했다: '나는 왕을 용동(甬東)에 안치시키고 100가를 거느리게 하겠다' 오왕 부차는 감사하며 말했다: "나는 늙었으니 군왕을 모실 수 없습니다" 그리고는 자살했다. 얼굴을 가렸는데, "나개 (오)자서를 볼 면목이 없다"라고 하였다. 월왕은 오왕을 장사지내고 태재 백비를 주살했다.

 

월왕 구천은 '차마 어떡하지 못하고", "가련하게 여겨서 오왕을 용동에 안치시켜 100가를 다스리게 하려 한다" 그러나, 범려는 "회계의 재난을 잊었느냐?"고 하면서 북을 쳐서 병사를 진군시키면서, "왕이 이미 나에게 권한을 위임했다. 사자는 돌아가라. 그러지 않으면 죄를 묻겠다"고 소리치는 것은 월왕 구천의 태도와 선명하게 대비된다.

 

구천과 범려의 두 사람을 비교하면 누가 인자하고 누가 불인한지 누가 도량이 넓고 누가 마음이 편협한지를 한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오자서가 간언할 때 명확히 언급한 바와 같이 "구천은 현군이고, 문종과 범려는 양신이므로 반란을 일으키면 장차 어지러워질 것이다"라는 이유는 보면 모두 공정정대하고 개인적인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러나, 범려가 말하는 "군왕께서는 회게의 재난을 잊으셨습니까?"라든지 북을 치며 진군하는 것은 모두 예전의 원한을 복수하겠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범려의 불충(不忠)

 

범려는 일찌기 자기가 모시는 월왕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한 바 있다. "월왕은 '장경오훼(長頸烏喙)의 사람으로 환난을 함께할 수는 있어도, 향락을 함께할 수는 없다." 구천이 과연 그러한 사람이었던가? (범려는 원래부터 월나라 사람도 아니고, 초나라 사람인데, 월왕 구천이 이런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왜 굳이 월나라로 와서 관직을 지내고, 또 이전에 2년씩 오왕에게 인질로 잡혀가 갖은 고생을 다하였을까? 이는 모순이라고 아니하지 않을 수 없다.)

 

<<사기>>의 내용을 아무리 훑어봐도, 월왕 구천이 사람들이 문종이 작란(作亂)한다는 참언을 듣고 대부 문종을 자살하게 한 사례를 제외하고, 월왕이 '향락을 함께 누릴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는 없다.

 

그리고, 문종자살사건은 "주원왕(周元王)이 사신을 보내어 구천을 백(伯)에 봉하고, 구천은 회남을 넘어, 회상의 땅을 초나라에 주고, 오나라가 침범했던 송나라의 땅은 송나라에 돌려주고, 노나라에 사동방백리를 주었으며,  제후들이 모두 와서 경하하고, 패왕으로 호칭되고 난 후"이다. 생각해보라, 초나라에는 초나라의 땅을 돌려주고, 송나라에는 송나라의 땅을 돌려주고, 노나라에는 노나라의 땅을 돌려주는 흉금을 지닌 인물이 어찌 범려, 문종을 용납하지 못하겠는가?

 

범려가 관상을 가지고 월왕을 평한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그리고 자기가 모시는 군왕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가 그다지 월왕에 충성심이 없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는 아마도 월왕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생각을 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월왕 구천이 자기의 마음대로 조종되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자 월나라를 떠난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범려가 떠난 근본원인일 것이다.

 

앞에서 나온 바와 같이 부차의 투항을 받아줄 것인가 말것인가에 대하여 구천이 망설이며 결단을 못내리자, 범려는 자신이 독단으로 북을 치며 진군하고, 구천의 명이 없음에도, '월왕이 나에게 권한을 위임했다'고 말하면서 사신에게 명령을 내린다.

 

이를 보면, 범려는 야심만만할 뿐아니라, 직권남용(僭越)하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자라면 누구든지 방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월왕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려다가 그것이 되지 않자, 거꾸로 다른 대신까지 꼬드겨서 함께 떠나게 하려는 것이 범려이다. 이런 사람이 소인(小人)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바로 범려의 진면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