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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선진)

양주(楊朱)를 위한 변명

by 중은우시 2009. 1. 14.

글: 위빈야객(渭濱野客)

 

"일모불발(一毛不拔, 터럭 하나도 뽑지 않겠다)". 이 말은 아주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를 형용하는 말로 쓰이며, 폄하하는 말로 쓰인다. 이 글의 출처는 전국시대의 양주(楊朱)이다. 그는 일찌기, "터럭 하나를 뽑아서 천하에 이롭다고 하더라도, 하지 않겠다(拔一毛而利天下, 不爲也)"와 같은 말을 했다는 것이다. 수천년동안 사람들은 그의 이 한 마디 말을 기억하여, 그를 극단적 이기주의자의 대표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평가이다.

 

사실, 후세인들은 그를 곡해한 것이다. 그의 본뜻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의 말은 후세인들에 의하여 거두절미되었다. 만일 그의 사상과 주장을 전체적으로 이해한다면, 그의 사상은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중국사회의 병폐를 치료할 수 있는 좋은 약이 될 것이다.

 

양주는 전국시대 위(魏)나라 사람이다(지금의 하남성 개봉시). 자는 자거(子居)이다. 그는 유가, 묵가에 반대하고, 귀생(貴生), 중기(重己)를 주장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을 해치지도 말 것이며, 자신을 희생시키면서 다른 사람을 위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렇게 하면 천하가 평안해진다는 것이다. 다만, 많은 사람들은 그의 뒷말만을 기억허고 앞의 말은 잊어버렸다. 그리하여 그가 아주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그의 사상은 바로 천하대동(天下大同), 만민평등이었다. 그는 중국에서 사람을 근본으로 보고, 착취에 반대하고, 사회평등이상을 실현하고자 한 선구자였다. 아쉽게도 그의 이런 주장은 실현되지를 못했다.

 

선진시대는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시대였다. 중국역사상 문화가 가장 번성하였고, 사상언론이 가장 개방된 시기였따. 유가, 묵가, 도가, 법가의 대표인물인 공자, 맹자, 묵자, 노자, 장자, 한비자등이 모두 각자 자신의 주장을 펼쳤고, 저서를 후세인들에게 남겼다. 양주는 후세인들에게 저작을 남기지 않았다. 그의 언행은 <<열자>>, <<장자>>, <<맹자>>, <<한비자>>등의 책에 흩어져 실려있을 뿐이다.

 

<<열자>>에는 양주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지인, 손일호리천하, 불여야, 실천하봉일신, 불취야. 인인불손일호, 인인불리천하, 천하치야(古之人, 損一毫利天下, 不與也, 悉天下奉一身, 不取也. 人人不損一毫, 人人不利天下, 天下治也)

 

옛날의 사람은, 터럭 하나를 손해보면 천하에 이롭더라도, 하지 않았다.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한 사람을 받드는 것은 하지 않았다. 사람들마다 터럭만큼도 손해보지 않고, 사람들마다 천하에 이롭게 하지 않으면, 천하는 잘 다스려지는 것이다"

 

주의해서 보라. 양주의 이 주장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사람들마다 터럭하나를 손해보고 천하를 이롭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이와 상응하는 것은 두번째이다.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한 사람을 받드는 것은 하지 않는다' 이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양주 사상의 정수이다.(양주의 말에서 '천하'는 '군주'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이해가 빠를 것이다)

 

한비자는 법(法), 술(術), 세(勢)를 가지고 군주의 권력을 공고히 해야한다는 법가학설를 내놓았고, 진시황은 이에 따라 육국을 멸하고, 전제군주국가인 진왕조를 건립한 후, 수천년간 중국에서는 군주를 근본으로 하는 사회구조가 만들어졌다. 군주는 지고무상의 지위에서, 전체 백성의 생사여탈의 대권을 움켜쥐고, 백성을 노예로 삼았으며, 각급 관리도 노비로 만들었다. 마치 모든 별들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바로 그 "천자"라고 불리우는 인물을 모시고 받들었다. 군자는 천하를 개인소유물로 생각했는데, 소위 "하늘아래 왕의 땅이 아닌 것이 없다(普天之下, 莫非王土)"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가천하(家天下, 한 집안의 천하. 즉, 황제집안이 천하를 소유하는 것)"는 중국의 특색이다. 양주가 말한 "실천하봉일신"이라는 것은 바로 이것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다. 전체 천하가 모두 황제의 것이고, 각급관리는 그의 주구가 되어, 인민을 통치하는 것을 도운다. 그리고 그러면서 거기서 약간의 이익을 나눠먹는다. 천하의 백성들은 노비가 되어 착취당하고, 소말과 같이 황제를 우두머리로 한 크고 작은 통치자들을 받들고 모시는데 쓰는 것이다. 권리라고는 터럭만큼도 없다.

 

이러한 사회는 불합리한 사회이다.

 

문제는 이천년이래로, 가련한 백성들은 이미 자신의 이런 노예처럼 착취당하는 운명에 습관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노예가 되고, 순민(順民)이 되는데 익숙해져서, 평등, 자유, 독립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되었다.

 

양주는 사상가로서, 선각자였다. 일찌기 이천여년전에, 그는 평등의 이념을 내놓았다. 그리고 "실천하봉일신"의 불합리성을 꿰뚫어보았다. 이것은 정말 소중한 것이다. 아쉽게도 그의 이런 이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치 맹자의 "백성이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며, 군주가 가장 가볍다"는 민본사상처럼 통치자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였다. 양주의 주장은 역사의 티끌 속에 덮여버렸다. 이것은 중국역사의 비애이다.

 

사회가 발전하더라도, 사상관념은 연속성이 있다. 사회밑바닥에서 신음하는 대중은 조상대대로 노예로 지내는데 익숙해져서, 남의 부림을 당하는 것을 숙명으로 생각했다. 역대의 통치자들은 더더구나 고도로 중앙집권을 하는 동시에 우민정책을 썼다. 자신의 통치지위에 군권신수의 겉옷을 입히고,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백성들을 착취했다.

 

바로 이렇게 착취당하는 백성들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가? 바로, 양주가 말한 그 "拔一毛而利天下, 不爲也"라는 자아보호의식이다. 같은 사람이고 같이 조물주로부터 신성한 생명을 부여받은 사람인데, 왜 자신에 해롭고, 한 사람에게 이로운 일을 해야 하는가? 이 측면에서 보자면, 양주의 사상은 적극적인 의미가 있다. 그의 사상은 유럽 18세기 자산계급 계몽사상가인 볼테르, 루소등의 "천부인권", "자유평등"의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단지 시간이 이천년이나 더 빨랐을 뿐이다.

 

<<열자>>의 <<양주>>편에는 이런 말도 있다: "금자(禽子, 양주의 제자인 禽滑厘)가 양주에게 물었다: 선생님의 몸에서 터럭 하나를 떼어내서, 세상을 구할 수 있다면, 선생님은 그렇게 하시겠는지요? 양주가 대답했다: 세상은 터럭 하나로 구할 수가 없다. 금자는 다시 말한다: 만일 구할 수 있다면, 하시겠는지요? 그러자 양주는 묵묵부답했다. 금자는 이 이야기를 맹손양에게 했다. 그러자, 맹손양은 이렇게 말한다: 그대는 어르신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내가 말할테니 들어보라. 만일 피부를 조금 상하면 만금을 얻을 수 있다면 그대는 하겠는가? 그러자, 금자는 하겠다고 답한다. 이를 이어 맹손양은 말한다: 만일 팔다리를 하나 잘라서, 나라를 얻을 수 있다면 하겠는가? 그러자 금자는 말을 못하고 가만히 있는다. 맹손양이 말했다: 터럭 하나는 피부보다 작다, 피부는 팔다리보다 작다. 그러나, 터럭이 모여서 피부가 되는 것이고, 피부가 모여서 팔다리가 되는 것이다. 터럭 하나라고 하지만 그것은 결국 전체중의 하나인데, 어찌 가벼이 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양의 질로의 전환'의 이치이다. 어떤 사물고 양의 변화는 질의 변화로 발전한다. 양주가 터럭 하나를 뽑아서 천하에 이롭더라도 하지 않겠다고 극언을 한 것은, 과장된 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취지는 사소한 것에서 시작하여 점점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데 있다. 광풍도 처음은 풀끝에서 시작하는 법이다. 모든 사회구성원이 아주 사소한데부터 자신의 권익을 보호하기 시작한다면,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고, 사람이 사람을 억누르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쉽게도, 현재 절대다수의 민중은 이런 개념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분명히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으면서도, 권력이 있는 자가 자기 손안에 있는 원래 그의 것을 힘으로 빼앗아 가더라도, 그들은 그저 묵묵히 참고, 하늘이나 원망하지, 이치를 따져서 싸우고, 반항하여 자신의 합법적인 권익을 보호하려 하질 않는다. 노신이 반세기 전에 그들의 불행을 슬퍼하면서도, 그들의 근성에 화를 냈듯이 이런 현상은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진다.

 

개인의 합법적인 권익을 보호하고, 사회의 공평을 실현하는 점에서 보자면, 양주의 학설과 주장은 확실히 의미가 있다.

 

여기까지 얘기하다보니, 오랫동안 미덕으로 여겨져 왔고, 제창되던, "봉사"이라는 말에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봉사하는 자가 있으면 혜택을 받는 사람이 있다. 혜택을 받는 사람이 장애자처럼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는 별론으로 하고, 현재, 사회에서 자선사업도 있고, 민정부분에서 도와주기도 하고, 정부에서 특정예산을 배정하여 도와주기도 한다. 문제는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한 봉사에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혜택을 보느냐는 것이다. 아마 누구도 확실히 말하지 못할 것이다.

 

현재의 사회는 분배의 불공정으로 인한 양극화 현상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대형 국유기업의 경우에 사장의 연간수입은 수십, 수백 심지어 수천만위안이 되는데, 보통직원의 노동소득은 겨우 생계를 유지할 정도여서, 그 차이기 수십배, 수백배에 이른다. 이런 상황하에서, 기업직원들에게 사회에 봉사하라고 하면, 그것도 웃기는 말이 아닌가? 일부 기업에서는 적지 않은 선량한 노동자들이 8시간외에 보수를 받지 않고 땀을 비옷듯 흘리면서, 망아지경으로 일을 한다. 그런데, 기업의 어떤 경영자는 홍등주록에서 놀면서 취생몽사하고 있다. 양자간에 선명한 대비가 이루어진다. 이럴 바라면, 봉사라는 것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낫지 않을까?

 

잘못된 것을 시정하다보면 반드시 지나치게 되는 법이다. 많은 일반 노동자들에게 모자란 것은 최소한의 자아보호의식이다. 이천년전의 그 지혜로운 양주가 한 말을 생각하면,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