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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중국의 전설

장령(張靈)과 최소경(崔素瓊)의 사랑이야기

by 중은우시 2008. 6. 23.

글: 허휘(許暉)

 

장령(張靈)은 자가 몽진(夢晋)으로, 명나라 강남사대재자(江南四大才子)의 하나로 일컬어진다. 사대재자에는 그를 제외하고, 당백호(唐伯虎), 축윤명(祝允明)과 문징명(文徵明)을 꼽는데, 모두 대명이 자자한 인물들이다.(* 강남사대재자 혹은 吳門四才子가 누구인지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우선 당백호, 축윤명과 문징명에 대하여는 이론이 없으나, 네번째로 들어가는 사람이 서정경(徐禎卿)인지 아니면 주문빈(周文賓)인지에 대하여 이견이 있고, 주문빈은 원래 소설상의 허구인물이고 실제로는 장몽진이 그의 원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장령이 어른이 된 후, 결혼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축윤명이 그에게 왜 마누라를 얻어서 밥짓고 빨래하게 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장령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네가 알고 있는 여자들 중에서 나 장령에 어울리는 여자가 있다고 보는가? 수천년이래로 재자가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이태백과 최앵앵(崔鶯鶯, 서상기의 여주인공)뿐이다. 나는 비록 재자는 자처할 수는 없지만, 이태백을 제외하고는 아무에게도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앵앵은 이미 죽었지 않느냐?"

 

이 말로서 장령이라는 자가 얼마나 포부가 큰지, 그리고 얼마나 광망(狂妄)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루는, 장령이 홀로 앉아서 유령전(劉伶傳 유령은 죽림칠현의 하나임)을 읽으면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무릎을 치면서 감탄을 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술이 떨어졌다. 동자가 와서는 오늘 당백호와 축윤명이 호구(虎丘)에서 연회를 연다고 전했다. 장령은 그 말을 듣고 아주 기뻐하면서, 거지로 분장하고, 맨발에 봉두난발을 하고, 더럽고 다 떨어진 옷을 걸치고, 왼손에는 <<유령전>>을 들고, 오른 손에는 나무지팡이를 쥐고 주연에 나타나서 밥을 달라고 구걸하고자 했다.

 

호구에 도착하니, 명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귀빈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장령은 모든 탁자마다 가서 "유령이 마시겠습니다"라고 하고는 술을 얻어 마셨다. 당백호와 축윤명이 앉아 있는 가중정(可中亭)의 주석(酒席)에 나타나서, 책을 흔들면서 술을 내놓으라고 했다. 당백호는 일찌감치 이 자가 장령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웃으면서 그에게 "너는 거지가 되어서 책을 들고 구걸하니, 시도 읊을 수 있겠구나. 오석헌(悟石軒)의 절구를 한 수 지어봐라. 만일 잘 지으면, 술을 상으로 내리겠다. 만일 잘 못지으면, 다라몽뎅이를 때려주겠다"

 

장령은 즉시 붓을 들고는 시를 하나 썼다:

 

승적천성설호구(勝迹天成說虎丘)

가중정반족감유(可中亭畔足遊)

음시기양생공법(吟詩豈讓生公法)

완석여하부점두(頑石如何不點頭)

 

하늘이 내린 멋진 경관은 호구라고 부르네.

가중정가는 술마시고 놀기에 딱이구나.

시를 짓는데 왜 처벌한다는 말이 나오는가

단단한 돌이 어찌 머리를 끄덕일 것인가?

 

(완석이 고개를 끄덕인다는 말은 진나라의 도생법사가 경을 강의하자 곁에 있던 돌맹이까지도 고개를 끄덕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다 쓴 다음에 장령은 붓을 땅바닥에 집어던지고, "좋은 시야 좋은 시. 바닥에 떨어지면서도 금석(金石)의 소리를 내는구나!" 당백호가 한번 보고는 웃음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는 장령에게 자리에 동석하여 술을 마시도록 해주었다. 장령은 대취하고는 옷깃을 떨치고 책을 끼고는 가버렸다. "유령이 감사히 마셨습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작별인사방식도 달랐다.

 

당백호는 축윤명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늘 우리가 한 이 것은 진나라사람들의 풍류에 못지 않네. 아예 내가 <<장령행걸도>>(장령이 구걸하는 그림)를 하나 그릴 테니, 네가 발제를 써라. 그것도 천고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당금 양대 명가가 합작하여, 명작을 한 폭 남기게 된다.

 

여러 사람들이 이를 보고 감상하고 있을 때, 홀연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와 있던 최문박(崔文博)이라는 사람이 앞으로 나와서 그림 속에서 구걸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물어본다. 그리고, 이 그림을 가지고 돌아가서 천천히 감상하겠다고 한다. 당백호와 축윤명도 바로 응락한다.

 

최문박이 배를 세워 둔 곳으로 돌아오니, 배가 보이지 않았다. 몇번을 부르니 배가 나타났다. 원래 최문박에게는 딸이 하나 있는데 최소경(崔素瓊)이라고 했는데, 재색을 겸비한 여인이었다. 부친이 배에서 내린 후에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는, 호기심에 창을 열고 내다보았다. 마침 용모가 비범한 거지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친 후 한참을 서로 쳐다보았다. 거지는 돌연 배 위로 뛰어올라오더니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으면서, "장령이 만나뵙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여러번 가라고 해도 가지 않고 버텼다. 나중에 장령의 동자가 와서 그를 끌고 내려갔다. 그리하여 최소경은 배를 옮겨서 피해 있었던 것이었다. 부친이 돌아온 후, 그림을 꺼내서 부녀가 함께 자세히 감상했다. 최소경은 그제서야 비로소 방금 보았던 거지가 바로 장령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탄식하면서: "정말 풍류재자로구나!"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그림을 자기의 행낭에 깊이 보관했다.

 

다음 날, 최문박은 원래 당백호, 축윤명과 장령을 방문하고자 했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아파져서 할 수 없이 배를 몰아 고향으로 되돌아간다.

 

장령은 최소경의 화용월태를 본 후에,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를 만날 수가 없었다. 하루는 당백호의 집에 왔는데, 마침 남창의 영왕(寧王) 주신호(朱宸濠)가 당백호에게 영왕부로 와서 머물도록 청했다. 장령은 바로 당백호에게 말했다: "마침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그날 내가 호구에서 만났던 절세미녀가 바로 남창 사람이다. 나를 대신해서 그녀를 좀 찾아봐 달라. 이건 개천벽지의 중요한 일이다.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당백호는 흔쾌히 응락했다.

 

사실 주신호는 일찌기 조정에 반란을 일으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 당백호를 부른 것은 첫째는 인재를 모으기 위한 것이었고, 둘째는 당백호로 하여금 <<십미도(十美圖)>>를 그리게 하여 황상에게 보내어 황상의 환심을 사두기 위한 것이었다. 영왕부에는 이미 9명의 미인을 구해놓았는데, 1명이 부족했다. 당백호는 먼저 아홉명의 미인을 그렸다. 주신호가 보고는 아주 기뻐해서,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주석에서 부하 계생(季生)이 아홉미인을 그린 그림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십미에서 하나가 부족하니, 제가 한 사람을 추천하겠습니다. 그러면 열명을 채울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가지고 있던 그림을 바쳤다. 그림의 여인은 바로 최소경이었다. 원래 최씨부녀가 남창에 돌아온 후, 마침 계생은 상처를 하여, 최소경이 재색을 겸비했다는 말을 듣고는 사람을 시켜 청혼을 했다. 그러나, 최소경은 이미 장령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상황이라 당연히 거절했다. 계생은 마음 속에 원한을 품고, 화가로 하여금 최소경의 화상을 그리게 한 후 영왕부에 바쳐 영왕의 손을 빌어 보복하고자 한 것이다.

 

주신호는 한번 보고는 바로 감탄했다: "정말 국색이로고" 즉시 계생으로 하여금 최씨부녀를 설득하게 시킨다. 최씨부녀는 극력 사양했지만, 주신호의 세력에 어쩔 수 없었다. 최소경은 자살도 할 수 없어 길게 탄식하고는: "운명이로다. 뭐라고 말하겠는가?" 하고는 <<장령행걸도>>를 꺼내서 그 위에 시를 한 수 써넣었다:

 

재자풍류제일인(才子風流第一人)

원수행걸낙청빈(願隨行乞樂淸貧)

입궁지공무홍엽(入宮祗恐無紅葉)

임별제시당회진(臨別題詩當會眞)

(홍엽은 당선종때의 궁녀 한씨가 <<제홍엽>>이라는 시를 홍엽에 써서 물에 띄웠는데, 시인 노악이 황궁근처에서 그 홍엽을 주워서 간직한다. 나중에 한씨가 출궁하여 노악과 맺어지는데, 노악이 그 홍엽을 보관하고 있는 것을 보고 감탄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는 부친에게는 "장령을 만나게 되시면, 이 그림을 주십시오, 그에게 세상에 최소경이라는 사랑에 미친 여자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세요" 그리고 ,부친과 헤어져서 영왕부에 들어간다.

 

주신호는 최소경을 보고는 선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를 십미의 우두머리로 삼고, 당백호에게 <<십미도>>를 완성하게 한다. 그림을 다 그린 후, 최소경은 당백호가 영왕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기회를 보아 그에게 서신을 보내어, 사정을 전한다.  당백호는 서신을 받은 후 깜짝 놀란다. 그리고 그제서야 바로 이 여인이 장령이 말한 자기가 찾아야 하는 여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황급히 최문박을 만나러 가고, 자기가 그린 <<장령행걸도>>를 찾아서, 영왕부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기회를 보아 최소경을 구해주고자 한다. 그러나, 이미 열명의 미인은 길을 떠났다. 당백호는 회한이 교차한다: "사정이 만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구나. 내가 그림까지 그려서 바쳤으니, 천고의 죄인이 아닌가. 무슨 면목으로 친구를 만난단 말인가" 거기에 주신호는 이때 이미 반란을 일으키려는 조짐이 보였다. 당백호는 그리하여 미친척하였다. 주신호도 할 수 없이 그를 돌려보낸다.

 

돌아온 후, 장령은 이미 중병에 걸려 병석에 누운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당백호가 돌아왔다고 하자, 병든 몸을 이끌고 침상에서 내려와, 당백호에게 최소경에 관한 일을 물어본다. 당백호는 자기가 그린 최소경의 화상을 건네준다. 장령은 보자마자, 바로 향을 사르고 기도를 한다. 이는 천상의 여인이다라고 말하면서. 최소경이 이미 입궁했다는 말을 듣자, 그림을 붙들고 통곡한다. 당백호는 다시, <<장령행걸도>>를 거내서, 최소경이 쓴 시를 보여주자, 장령은 크게 소리치며, "가인 최소경"이라고 하고는 피를 토한다. 3일후, 장령은 이미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상태가 되었는데, 죽기 전에 당백호에게 부탁한다. "내가 죽은 후 이 그림을 같이 묻어달라". 그리고 마지막 유언을 남긴다: "장령. 자 몽진. 풍류적이고 황당한 사람이다. 사랑때문에 죽다" 그리고는 죽는다.

 

주신호는 반란을 일으킨 후 얼마되지 않아 전패하여 생포된다. 황상은 조서를 내려, 열명의 미인은 역적이 헌상하였으니, 모조리 원적으로 되돌려보내라고 하게 된다. 최소경은 남창으로 돌아와보니, 부친은 이미 돌아가셨다. 부친의 장례를 치른 후에, 소주로 당백호를 만나러 간다. 당백호는 전후사정을 하나하나 그녀에게 말해준다. 최소경은 한차례 통곡을 한 후, 다음 날 함께 장령의 묘에 가서 제사를 지내기로 약속한다.

 

다음 날, 장령의 묘 앞에서, 최소경은 한편으로는 장령의 유고를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술을 마신다. 시 한수를 읽고는 술 한잔을 마셨다. 그리고는 "장령은 재자이다"라고 소리친다. 한번 소리치면 한번 울고, 울기를 마치면 다시 시를 읽었다. 이렇게 계속 반복하였다. 이 비극을 당백호는 더 이상 보고 들을 수가 없어서, 눈물을 감추면서 배로 돌아갔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당백호가 다시 묘앞으로 갔는데, 최소경이 묘앞에서 목을 매어 자결한 것을 보았다. 당백호는 깜짝 놀라서 무릎을 꿇고는 절을 했다: "어려운 일이로고, 어려운 일이로고, 나 당백호가 오늘 기이한 사람들의 기이한 일을 목격했구나" 그리고는 두 사람을 함께 묻어준다. 그리고 묘비에는 "명재자장몽진, 가인최소경합장지묘(明才子張夢晋, 가인최소경합장지묘)"라고 쓴다.

 

이후 조문하는 사람들이 끊이지를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