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송)

아구타의 요나라에 대한 3대대첩

중은우시 2008. 6. 21. 20:47

 

 

출하점대첩(出河店大捷) : 여진군 3700명, 요나라 10만명

 

완안아구타가 비병한 후, 녕강주전투를 거쳐 여진병력은 2500명에서 3700명으로 늘어났다. 1114년, 출하점(지금의 길림성 전곽기 팔랑향 탑호성_에 요나라는 10만명의 병사를 결집시켜, 여진을 멸망시키려고 하였다. 당시 양군의 병력은 1:27이었다.

 

아구타는 강적을 앞에 두고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적들이 완전히 결집하기 전에 의표를 찔러 공격하여야 겠다고 생각했다. 당시는 한겨울이었고, 매우 추었다. 아구타는 여진인들이 사만교의 꿈해몽으로 군인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사기를 북돋웠다. 아구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막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 내 머리를 흔들었다. 이렇게 세번을 흔들었다. 그래서 나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 그는 우리가 밤을 틈타 출병하면 반드시 대승을 거둘 것이라고 하였고, 그렇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의 말을 듣자, 사병들의 사기는 진작되었고, 3천여명의 철기는 바람을 맞으며, 눈길을 달려 출하점으로 갔다. 다음 날 새벽, 출하점 근방의 압자하 북안에 도착했다. 그리고 정예병사를 파견해서 막 얼음을 깨고 있던 요나라병사를 친다. 요나라병사는 아구타의 군대가 이렇게 빨리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속속 패퇴한다. 이 전투에서 여진병들이 포로로 잡은 요나라병사와 차량 말 양초가 수도 없이 많았다.

 

이는 중국전쟁사상 소수로 다수를 이긴 전형적인 사례중 하나이다. 출하점대첩이후 여러 여진부락의 병사들이 속속 아구타에 복속하여, 여진병은 만명을 넘어선다.

 

황룡부전투: "위점타원(圍點打援)"

 

황룡부(黃龍府)는 요나라의 중요한 국고의 소재지였고, 요나라의 경제명맥이었다. 아구타는 건국한 후 첫번째로 한 일이 바로 황룡부를 점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황룡부는 외성은 방어가 완벽하고, 내성은 수비가 견고했다. 만일 강공방식으로는 취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일단 요나라의 구원병이 오면 앞뒤로 적을 맞이해야 했다. 상의를 거쳐, 아구타는 상승장군 완안누실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즉, "위점타원"이었다. 황룡부를 포위한 후, 주위를 깨끗이 청소한 후, 구원부대를 섬멸시키는 것이었다.

 

황룡부의 주위를 장악한 후, 아구타는 병사를 이끌고 바로 황룡부로 쳐들어갔다(直搗黃龍府). 당시의 황룡부는 이미 수개월간 포위되어 있어서, 수비장수인 야율녕은 성안에는 양식과 풀이 없고, 바깥에서는 지원군이 오지 않는 상황하에서 하루하루를 겨우 보내고 있었다. 아구타의 명령하에, 금나라군대가 밀물처럼 밀려들어오고, 각종 공성기계가 성아래로 밀려오고, 병사들이 하나같이 용감무쌍하자, 요나라병사는 바로 궤멸한다. 야율녕도 대세가 기운 것을 보고는 성을 버리고 도망친다.

 

이번 전투에서는 여진인들의 용감과 지혜를 특징을 잘 보여준다.

 

호보답강(護步答岡) 전투: 금나라 2만명, 요나라 70만명

 

황롱부를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요나라의 천조제(天祚帝)는 70만대군을 이끌고 나선다. 이는 요나라의 전병력을 이끌고 나온 것이다. 일거에 이 신생정권을 섬멸하고자 한 것이다. 당시 금태조 아구타는 겨우 2만명밖에 없었다. 양군의 병력수는 1:35였다. 이는 인류역사상 불가사의한 대항전이다.

 

아구타는 비록 요나라의 병사가 자신들보다 수십배 많고, 기세도 대단하지만, 오합지중이라고 보았다. 장군은 용장이고 병사는 겁장이여서 겁낼 것이 없다고 보았다. 만일 적극적으로 공격한다면, 성공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사기를 올리기 위하여, 여러 병사들 앞에서 하늘을 향해 방성통곡을 했다: "당초, 내가 너희를 데리고 거병했을 때는, 우리가 더 이상 요나라의 핍박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고, 여진인들이 자기의 국가를 가지게 하기 위함이었다. 생각도 못하게, 천조제는 나를 용납하지 않고, 친히 토벌하러 나왔다. 우리는 지금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죽어라 싸워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너희가 나 하나를 붙잡아서 천조제에게 바치는 것이다. 우리 일족을 죽이고 거란에 투항한다면 아마도 화는 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장군들은 그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리고 요나라군대와 결사적으로 싸우기로 결정한다.

 

양군이 교전한 후, 금나라병사들은 하나같이 선봉에 서서 혈로를 뚫었다. 요나라병사는 밀물썰불처럼 밀려다녔다. 양쪽 군대가 한창 싸울 때, 요나라의 내부에 정치적인 투쟁이 벌어져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다. 천조제는 금나라군대를 소멸시킬 천재일우의 기회를 벌이고, 군대를 몰아서 되돌아간다. 아구타는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고, 맹렬히 추격한다. 마침내 호보답강에서 요나라군대를 따라잡아, 요나라군대와 근접전을 벌인다. 좌우에서 밀고 들어가자 요나라군대는 대패한다.

 

이 전투는 아구타의 뛰어난 담략과 군사적 재능을 보여준다. 그리고 세계군사역사상 소수로 다수를 이긴 기적을 남긴다. 이 전투이후, 북중국에서 일세를 풍미했던 요나라는 더 이상 힘을 내지 못하고 멸망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