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여화가 Kate Carl이 그린 융유황후
작자: 나근정(那根正)
청나라역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면 모두 알고 있겠지만, 무술정변후에 광서제는 서태후에 의하여 영대(瀛臺)에 연금된다. 그리고 근비와 유비가 문제를 일으켰으므로, 융유(隆裕)황후가 어쩔 수 없이 영대로 가서 광서제와 함께 지내게 된다. 이 시기가 처음이자 유일하게 광서제와 융유가 장기간 함께 살았던 시기라고 말하더라도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니다.
융유황후가 광서제에게로 갔을 때, 광서제는 아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융유황후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병세도 점점 악화되어갔다. 당시, 광서제는 자주 짜증내고 귀찮아했고, 곧잘 융유에게 화풀이를 했다. 한번은 융유가 광서제의 욕을 듣다가 너무 심해지자 한두마디 끼어들었다. 그런데, 생각도 못하게, 병약했고, 몸이 좋지 않았던 광서제가 폭발한 것이다. 그는 융유를 땅바닥에 쓰러뜨리고, 심하게 때렸다. 그리고 융유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융유의 머리를 땅바닥에 찧으려고 했다. 융유도 병이 있는 상태여서, 광서에 항거할 힘이 없었다. 그저 맞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광서제가 융유의 머리에 꽂힌 비녀들을 하나하나 뽑아서 힘껏 땅바닥에 내던져 버렸다.
이로 인하여 융유는 크게 상심한다. 그 비녀는 건륭제때부터 내려오던 것으로 아주 진귀한 것이었다. 그래도 그게 가장 중요한 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광서제가 자신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전에는 이렇게 자기를 때리지는 않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융유는 마음 속의 억울함을 억누르고, 눈물을 흘리면서 광서제에게 자기의 불행을 호소했고, 하늘이 자기에게 불공평하다고 호소했다. 그날 저녁, 융유는 바로 다른 방으로 옮겨서 거주했고, 광서제는 마음의 평정을 되찾아갔다.
그래도 융유가 광서제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광서제의 곁에 있던 이 기간동안, 융유는 가능한 한 황궁내에서 벌어지는 일을 생각지 않으려 했고, 영대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외하고는 바깥의 어떤 분규도 자기와 관계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매일 아침에, 융유는 법도에 따라 광서제에게 아침마다 문안을 올렸고, 광서제와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 남은 시간에 태감에게 누에알을 가져오게 해서, 스스로 양잠(養蠶)을 했다. 부화부터 시작하여, 뽕잎을 주고, 고치를 틀고, 나중에 물레를 젓는 것까지 날짜는 잘 지나갔다. 다툼에서 벗어나니 융유는 마음이 아주 편안했다.
첫번째 누에가 알을 까자, 융유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광서를 불러서 그가 기른 누에를 보여주기도 했다. 광서제도 영대에서 할 일이 없었고, 자신이 후궁들에게 한 행위를 반성도 했으며, 융유에 대하여도 약간이나마 동정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융유가 광서를 불러 자기가 기른 누에를 보도록 하였을 때, 광서는 아주 놀랐다. 융유에게 이런 재주가 있을 줄은 몰랐고, 그녀에 대한 태도도 점점 좋게 바뀌었다. 나중에 두 사람은 함께 이들 누에를 길렀다. 당연히 광서가 친히 손을 써서 이런 일을 한 것은 아니고, 그저 곁에서 계속 보기만 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광서제에게 있어서는 아주 신선한 일이었다. 동시에 융유가 같이 있어 주는 바람에 적막함도 줄었다.
이전이라면 이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전에 광서는 모든 사랑을 진비에게 쏟았다. 융유는 궁중내에서 그저 생과부였다. 심지어, 광서제는 융유를 폐위해버리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이때 광서는 알게 되었다. 융유는 좋은 처였던 것이다. 자신이 그녀에게 자식을 낳게 해줄 수는 이미 없게 되었지만, 그녀에게 좀 더 잘 대해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때의 광서가 생각하는 것은 무슨 국가대사가 아니었고, 그냥 융유에게 잘해주는 것이 융유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는 것했다. 이때의 융유는 다른 일은 모두 잊어버린 것같았고, 그저 평생 광서와 함께 영대에서 지내려고 하는 것같았다. 입궁해서 황후가 된 첫날로부터, 융유는 한번도 즐거웠던 적이 없고, 그저 이처럼 연금되어 있던 시간만이 융유에게는 일생중 가장 되돌아볼만한 나날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융유에 대한 평가는 그저 아무렇게나 추측해서 말하는 것이다. 진정 융유를 이해하였던 사람이 몇 명일까? 이 일에 대하여 융유도 자기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융유는 일찌기 할아버지(융유의 남동생이자, 작가의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한 바가 있다:
"이 황궁에 들어온 때로부터, 나의 마음은 하루도 안정되지 않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내가 입궁하기 전에는 황궁에 대해 별 관심도 없었다. 나는 세상과 다투는 사람이 아닌데, 황궁안에서는, 마침 무슨 일이든 사람들이 나에게 뭐라고 하는 것이 되었다. 나는 이전에 노태후(서태후)가 그녀를 모함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싸워왔는지를 들어본 적이 있다. 이 측면에서, 노태후는 총명한 사람이고, 그래서 그녀는 성공했다. 후궁들은 행동거지가 단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아주 나쁜 마음을 품고 있다. 이점은 내가 잘 알고 있다. 내 생각으로 나와 같은 성격은 황제가 좋아해준다면 조금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겠지만, 황제가 좋아하지 않는다면, 박복한 것이다. 나는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용모에 대하여 말들이 많다는 것을. 그래도 예전에는 나도 다른 사람에게 지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끼어서 살아간다면 지내기가 아주 힘들 것이다. 어느 누구라고 하더라도 모두 견디기 힘들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황상은 각순황비를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입궁할 때, 진빈 각순은 나이가 어렸다. 겨우 13살이었고, 황상도 겨우 17살이었다. 둘 다 어린아이같은 마음이었다. 같이 논다고 하여 이상할 것도 없었다. 궁안에서 내가 나이가 가장 많았다. 그래서 나는 행동거지를 법도에 맞게 해야 했고, 진빈과 함께 아무렇게나 뛰어다니면서 놀 수는 없었다. 이것은 나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었다. 진빈은 남자옷을 입고 황상을 기쁘게 해줄 수 있었지만, 내가 남장을 하고 황상과 같이 놀아버린다면, 황궁이 어떤 꼴이 되겠는가? 어쨌든 나에게는 위치가 있고, 자신의 존엄을 지켜야 했다. 이것이 아마도 황상이 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주요 원인일 것이다"
"그 때의 황상은, 많은 사람들은 그가 국가를 다스릴 큰 뜻을 품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정말 그렇게 보지 않는다. 당시에 막 친정을 시작했을 때, 황상의 열정은 아주 컸다. 다만 어찌되었던 아직 나이가 어렸다. 놀기 좋아하는 성격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국가를 다스리려는 거창한 뜻도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는 점차 놀기를 탐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그와 진빈이 놀던 방법은 여러가지였다. 나도 태감들이 몰래 말하는 것을 들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당시에는 그런 말을 듣고 싶지도 않았다. 궁내의 크고 작은 일 들로 나는 머리가 복잡했으니까. 그런데, 수시로 귀에 들려오기 때문에, 듣고 싶지 않아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또 일이 하나 벌어진다. 이 황궁에서 '소란'이라는 말로밖에는 말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황상이 놀기좋아하고, 진빈도 놀기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놀기만 해서는 황가의 체통을 잃을 뿐아니라 수하 관리들조차 우습게 보지 않겠는가"
"진빈은 잘 놀줄 알았다. 그래서 황제는 무슨 일이든 그녀의 말을 따랐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나중에 매관매직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정이 그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진빈의 편을 들었고, 내가 일러바쳤다고 말했다. 황상까지도 노태후가 진빈의 일을 알고는 처벌을 내렸는데,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노려봤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당시에 정말 그 일을 몰랐다. 만일 내가 알았더라면, 분명히 먼저 황상과 진빈에게 말했을 것이지, 노태후에게 먼저 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일러바쳤다고 하는데, 내가 억울하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변명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잘 생각해보면, 내가 처한 곤란한 입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매관매직은 이미 도대(道臺)에 이르렀다. 심지어 진빈의 당형까지도 진빈을 통하여 4품의 관직을 얻었으니까. 일은 이렇게 커져버린 것이다. 노태후가 이 일을 알고싶어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그녀에게 말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까지 차례가 돌아오겠는가? 그렇지만 못된 황상이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내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의 고심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는 내가 견디기 어려웠다.
"나는 중국역사를 잘 알고 있다. 중국역사상 적지 않은 황상이 후궁에 탐닉하고, 나중에 후궁이 정치에 간여하는 일이 벌어져서, 많은 화를 불러왔다는 것을 잘 안다. 내 생각에는 노태후도 알고, 황상도 알고, 황상의 스승과 진빈의 스승도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신에게 닥치면 왜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사회상의 유언비어는 내가 모른 척하면 된다. 그러나 황상과 진빈의 이런 행동은 백해무익하지 않은가? 당연히 나도 알고 있다. 당시 그들 둘 다 나이가 어렸고, 모두 그들 스승이 잘못한 것이라는 것을."
"나는 바깥에서 내가 얼마나 속이 좁고, 얼마나 못생겼는지 얘기한다는 걸 알고 있다. 이 점은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얘기해 주었다. 심지어 내가 황상의 총애를 얻기 위하여 노태후에게 울면서 호소하였다고까지 하는 것도 알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차라리 평생 생과부로 지낼 지언정 나는 절대 다른 사람에게 이런 걸 가지고 울면서 호소하지 않는다. 남녀간의 일을 어떻게 남에게 얘기하느냐? 특히 자기의 웃어른에게. 그러면 내 얼굴(체면)은 어디에 놓아야 하는가? 그런데 못된 황상은 자주 악동짓을 했다. 내가 착실하고, 궁중의 각종 예의에 얽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어떤 때는 나를 갖고 놀았다. 하루 저녁에는, 내가 궁내에 돌아와 잠을 자려고 준비하는데, 이불을 젖히니, 가죽을 벗긴 죽은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다. 그 자리에서 혼절했지. 그 때는 여러 날을 악몽에 시달렸다. 심지어 침대로 가서 자지도 못했다. 궁녀들이 먼저 침상을 깨끗이 청소하고, 아무런 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비로소 침대에 누울 수가 있었다. 나중에야 내가 알게 되었는데, 이것은 황상과 진빈이 생각해낸 악동짓이었다. 나는 참았다. 왜냐하면 내가 그들보다 나이가 많았으니까. 그리고 황후는 황후의 존엄이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나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어린아이들이 노는 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해버렸다. 이런 일은 이전 황조에서, 심지어 중국역사에 모두 없었던 일이다. 이건 심한 짓이 아닌가?"
매번 융유는 나의 할아버지에게 이런 일을 얘기할 때마다, 아주 강한 모습을 보였다. 융유는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고 한다. 나의할아버지는, "아마도 눈물을 모두 뱃속으로 삼켜버렸나 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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