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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삼국)

삼국시대의 명검(名劍)

by 중은우시 2008. 6. 18.

작자: 미상

 

첫째: 의천검(倚天劍)

 

근거: 삼국연의 제41회를 보면, "원래 그 장수는 바로 조조의 곁에서 검을 메고 있던 하후은입니다. 조조에게는 보검이 2개 있는데, 하나가 의천이고 다른 하나가 청공(靑)인데, 의천은 조조 자신이 차고, 천공은 하후은에게 주어서 차게 합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의천'이라는 명칭은 송옥(宋玉)의 대언부(大言賦)에 나오는 구절인 "발장검혜의장천(拔長劍兮倚長天, 긴 칼을 뽑아서 긴 하늘에 기대어 서다)"는 것에서 따온 것으로 기백과 기개를 나타낸다.

 

둘째: 청공검(靑)

 

근거: 의천검과 동일한 곳에 이름이 나옴. 조자룡은 하후은을 죽인 후 이 검을 취한다. 그리고는 "청강검을 뽑아서 어지럽게 휘두르니...갑옷도 그냥 뚫고 지나고, 피가 샘처럼 솟았다. 여러 장수를 물리치고, 포위를 뚫었다."

청공검에 대하여는 "의천을 뽑지 않는다면, 누가 감히 상대할 수 있으리오"라는 말이 나온다.

 

셋째, 진산검(鎭山劍)

 

근거: 양나라 도홍경의 <<고금도검록>>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후주 유선이 연희2년에 큰 검을 만드니, 길이가 1장2척이었다. 진검구산(鎭劍口山, 검구산을 진압하다). 왕왕 사람들은 그 빛을 보았는데, 후세인들은 이를 얻고자 해도 얻을 수가 없었다.

 

이 검은 1척이 33.3센티미터이고 1장은 10척이라고 계산하면, 1장2척은 399.6센티미터 즉, 4미터에 달하는 장검인 것이다. 아마도 천하제일의 장검일 것이다.

 

넷째, 비경검(飛景劍), 조비삼검(曹丕三劍)의 하나

 

근거: 조비의 <<전론(典論)>>에 이런 기록이 있다: "나는 격검을 좋아하고, 짧은 것으로 긴 것을 이기는데 능하다. 좋은 금속을 모아, 국가의 장인에게 명하여 정련하게 하였다. 백번을 두드려 이루어졌다. 오색이 화로에 충만하고, 큰 가마가 스스로 울렸다. 영물과 같았고, 나르는 새가 춤추는 것같았다. 보배로운 무기를 9개 만들었는데, 그 중에 검이 3개이다: 하나가 비경이오, 둘이 유채(流采)이며, 셋이 화정(華鋌)이다. 모두 길이는 4척2촌이며, 무게는 1근15량이다.

<<조비집. 검명>>에도 이런 기록이 있다: "위나라 태자 조비가 백벽보검을 3개 만드니, 길이가 4척2촌, 무게가 1근15량이다. 빛이 유성과도 같아서 하나는 비경이라고 부르고, 두번째는 유채인데, 색이 무지개와 같았다. 셋째는 화정이라고 하였다"

비경은 일명 비경(蜚景)이라고도 부른다. 원창자는 "비경의 검은 위엄이 백일을 빼앗고 기운은 자하를 이룬다"고 하였다.

 

조비는 보도 3개, 비수 3개만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보검 3개까지 만든 것이다.

 

다섯째, 유채검(流采劍), 조비삼검(曹丕三劍)의 하나

 

근거: 비경검 참조

 

여섯째, 화정검(華鋌劍), 조비삼검(曹丕三劍)의 하나

 

근거: 비경검 참조

 

일곱째, 맹덕검(孟德劍)

 

근거: 양나라 도홍경의 <<고금도검록>>에 따르면, "위무제 조조는 건안20년, 유곡(幽谷)에서 검을 하나 얻었는데, 길이가 3척6촌이고 위에는 금으로 글자가 쓰여 있었는데, '맹덕(孟德)'이라는 글이었다. 왕은 자주 이를 가지고 다녔다"

 

건안20년은 조조에게는 아주 수확이 많았던 해였다. 이 해에 장로가 투항해오고, 한중의 땅을 얻는다. 권위가 합비를 공격하나 장료가 격파한다. 파국의 7성 이족왕이 모두 땅과 백성과 함께 귀의하니 파군의 땅을 얻는다. 이 검은 바로 이런 해에 얻었으니 금상첨화이고,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해서 상징적인 의미가 큰 검이다.

 

여덟째, 양수검(楊修劍)

 

근거: <<문사전>>에 따르면, "위문제는 양수의 재주를 아꼈다. 양수가 주살된 후, 양수를 그리워했다. 양수는 보검을 문제에게 바쳤었는데, 문제는 이를 차고는 좌우에 '이것이 양수검이다'라고 하곤 했다"

<<자검지남>>에 따르면, "검의 형식은 아주 옛날 식이었고, 은연중에 전서(篆書)로 '양수'라는 글자가 드러났다. 검의 길이는 1척6촌8푼이고 자루(柄)의 길이는 8촌이며, 무게는 14량이다. 호수(護手)와 검병, 검초(劍)는 모두 나무로 되었다. 탄구(呑口)는 자동(紫銅)으로 만들었다"

 

양수는 원래 재주는 뛰어났으나 정치적으로 줄을 잘못 섰다. 그는 조식의 편에 서서 계책을 냈는데, 적수인 조비와도 관계가 괜찮았다. 죽기 전에 그는 자기가 아끼는 검을 조비에게 선물한다. 조비도 이를 아주 좋아했다. 드나들 때 자주 이를 차고 다녔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것이 양수의 검이다'라고 자랑했다. 아마도 조비는 적수인 동생 조식의 편에 선 양수가 미웠을 것이다. 그가 주살되자, 아주 기뻤을 것이고, 그의 검을 가져와서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이것이 바로 양수의 검이다. 나의 반대편에 서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똑똑히 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홉째, 유광검(流光劍)

 

근거: 양나라 도홍경의 <<고금도검록>>에 따르면, "손량(孫亮)은 건흥2년에 검을 하나 주조하니, 이름을 '유광'이라고 하고, 소전(小篆)으로 새겼다"

 

열째, 황제오왕검(皇帝吳王劍)

 

근거: 양나라 도홍경의 <<고금도검록>>에 따르면, "손호(孫皓)가 건형원년에 검을 하나 주조하니, 이름을 '황제오왕'이라고 하고, 소전으로 새겼다"

 

기타 후보들

 

조조대봉리인(曹操對鋒利刃)

 

이 검은 도식(刀式)의 고검이다.  1918년 산동성 제녕 서관고묘에서 출도되었다. 검의 호수 부분에 "조조대봉리인"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서 이 이름을 얻는다. 길이는 3척2촌4푼이고 너비는 1촌2푼, 무게는 1근7량이다. 호수에는 세 송이의 꽃을 새겼다. 사서에는 이 검에 대하여 전혀 기록이 없다.

 

손권육검(孫權六劍)

 

진나라 최표가 지은 <<고금주>>에 따르면, "삼국의 오나라 대제 손권은 6자루의 보검이 있었다. 하나는 백홍(白虹)이고, 둘은 자전(紫電)이며, 셋은 피사(邪)이며, 넷은 유성(流星), 다섯은 청명(靑冥), 여섯은 백리(百里)이다.

 

손권고검(孫權古劍)

 

양나라 도홍경의 <<고금도검록>>에 다르면, "오왕 손권은 황무5년에 무창의 동철을 채취하여, 천고검(千古劍), 만고도(萬古刀)를 만드니, 각각 길이가 3척9촌이고 '대오(大吳)'라고 소전으로 새겼다."

여기서 말하는 천고검, 만고도는 이름이 아니라, 고대의 검과 칼의 제작방식을 말한다.

 

촉팔검(蜀八劍)

 

양나라 도홍경의 <<고금도검록>>에 따르면, "촉의 주인 유비는 장무원년에 신축일에 금우산의 철을 캐서, 8자루의 검을 만든다. 각각 3척6촌인데, 1개는 유비가 스스로 쓰고, 1개는 태자 유선에게 주고, 1개는 양왕 유리에게 주고,  1개는 노왕 유영에게 주었으며, 1개는 제갈량에게, 1개는 관우에게, 1개는 장비에게, 1개는 조자룡에게 주었다."

 

그런데, 장무원년이면 관우는 이미 건안24년에 죽은지 2년이 지난 후였는데, 관우의 시신에게 주었다는 말일까?

 

위제왕패검(魏齊王佩劍)

 

양나라 도홍경의 <<고금도검록>>에 따르면, "제왕 방은 정시6년, 검을 1개 만들어 자주 차고 다녔다. 그런데 아무 이유없이 잃어버리고, 빈 갑만 남았다. 나중에 황제위를 선양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그 조짐이 여기서 나타났고, 사마씨에 의하여 폐위된다"

 

쌍고검(雙股劍)

 

<<삼국연의>> 제1회를 보면, 유현덕이 좋은 장인을 시켜서 '쌍고검'을 만들게 한다. 이것은 자웅검이다. 유비는 이를 드물게 사용했다. 삼형제가 여포를 상대할 때 한번 칼집에서 나온다.

 

칠성검(七星劍)

 

제갈량이 동풍을 빌릴 때 썼던 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