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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명)

관중대지진(關中大地震) : 83만명이상이 사망한 중국최대의 지진

by 중은우시 2008. 5. 13.

 

역사기록에 남아있는 지진기록중에서 20만명이상이 사망한 경우는 모두 6번이다. 그런데, 그중 4번이 중국에서 발생하였다. 중국에서 발생한 지진중 가장 피해가 컸던 경우는 명나라때 일어난 것으로 "관중대지진" 혹은 "화현대지진(華縣大地震)" 혹은 "가정대지진(嘉靖大地震)"으로 불리우는 것으로 기록상 나타난 사망자가 최소 83만명이다.

 

지진발생일시: 1556년 1월 23일(명나라 가정34년 12월 12일 자시)

 

진앙지: 섬서성 화현(華縣) (북위 34.5도, 동경 109.7도)

 

진도: 현대 과학자가 역사기록에 근거하여 추정한 바에 의하면, 진도 8.0 내지 8.3, 진중열도는 11도로 보고 있다.

 

재해상황: 역사기록상

 

- "강과 들판이 갈라지고, 교외의 땅이 옮겨가고, 단애가 생기고, 구덩이가 물길이 되며, 산이 울고 골짜기가 울리며, 물이 넘치고 모래가 넘쳐나며, 성벽, 사묘, 관아, 민가중 무너진 것이 절반이며, 압사, 익사, 아사, 병사, 분사(焚死)한  관리, 민간인, 군인이 부지기수이며, 그 중 이름을 신고한 사람만 83만여이며, 이름을 모르는 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이 인원수에 대하여 중국과 외국의 학자들은 연구를 통하여 의문을 표시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다만, 당시 피해정도가 극심했다는 것은 알 수있다)

 

- 방원2천리(800킬로미터) 이내의 인구중 60%가 사망했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섬서 황토고원의 요동(동굴)에 살았는데, 지진으로 요동이 무너지면서 압사했다.

 

- 지진의 여파는 97개현에 미쳤는데, 산서, 섬서, 하남, 감숙, 하북, 산동, 호북, 호남, 강소 및 안휘의 수십개성도 영향을 받았다.

 

- 여진은 반년동안 매달 3-5차례 있었고, 이후에도 계속되어 5년이 지나서야 기본적으로 지진활동이 멈추었다.

 

- 관중대지진으로 소안탑은 원래 15층높이였는데, 지진후에 탑정이 무너져서 13층으로 되었다.

 

피해가 컸던 이유

 

첫째, 진앙지가 인구가 조밀하였고, 건물들은 지진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둘째, 지진이 한밤중에 일어났고, 지진전에 지진의 징조가 보이지 않아서, 사람들이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

셋째, 수재, 화재, 질병등 지진에 이어지는 재해가 극심했다.

넷째, 사회치안이 혼란하고, 유언비어가 사방에서 일어나서 재해를 입은 주민들의 생활이 불안했다.

다섯째, 당시 섬서성은 오랜 가뭄으로 양식이 부족하여 사람들이 굶주리고 잠잘 곳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