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왕성응(王成應)
탐관오리가 낙마하여, 감옥에 들어간 후, 대부분 참회록을 쓰는 것이 거의 습관화 되었다. 진심으로 쓰는 것이건, 아니건 간에 그 안에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철리(哲理)가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2007년도의 부패사건을 되돌아보면, 필자는 놀랍게도 이들 탐관오리들의 참회록에는 각각 개성이 뚜렷이 드러나고, 읽다보면 그 맛이 다름을 느낄 수 있다.
첫번째, 전형적인 말: "부동득법률(不董得法律)": 법률을 몰랐다.
대표인물: 영하회족자치주 국토자원청 부청장 왕영복, 남창철로국 노동조합주석 심장생.
왕영복은 영하회족자치주 토지국장과 국토자원청 부청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직무를 이용하여 270여만위안의 뇌물을 받고, 이외에 천만여위안의 거액재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내력이 불분명했다. 2007년 1월 19일 법원에 의하여 뇌물죄, 거액재산내력불명죄로 무기징역을 받았다. 왕영복은 참회록에서 이렇게 썼다: "이는 내가 열심히 법을 배우지 않고, 엄격히 법을 지키지 않은 악과이다"
심장생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직무를 이용하여 불법으로 200만위안의 뇌물을 받았다. 금년 11월 8일, 강서 무주시 중급법원에서 뇌물죄로 유기징역 14년의 형을 받았다. 심장생은 형을 받은 후, "자기는 법률지식이 아주 적었다고 말하면서, "법을 모르는 지도자 간부가 얼마나 쉽게 법을 어기고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지"를 얘기했다.
두번째, 전형적인 말: "자기변성귀(自己變成鬼)": 스스로를 귀신으로 만들다.
대표인물: 강소성 숙천시 체육국국장, 당서기 왕유주
2001년에서 2006년까지, 왕유주는 직무를 이용하여 9명으로부터 22.3만위안의 뇌물을 받았다. 2007년 6월 15일 숙천시 중급법원에서 뇌물죄로 유기징역 6년의 형을 받았다. 왕유주는 감옥에 들어가면서, "당은 나를 사람으로 길렀는데, 나는 스스로를 귀신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세번째, 전형적인 말: "친인조죄얼(親人造罪孼)": 친척들이 잘못한 것이다.
대표인물: 안휘성 동릉시 상임위원, 조직부장 오광춘
합비시 원교구의 구장, 서기등의 요직에 있을 때, 직무편의를 이용하여 144.7만위안, 3000달러의 뇌물을 받았다. 이외에 근 200만위안의 재산이 내력이 불명했다. 2007년 10월 25일, 뇌물, 거액재산내력불명죄로 안경시중급법원의 재판을 받았다. 실제 오모의 손을 거친 것은 겨우 13만위안이었고, 거의 130여만위안은 그의 처인 포진화 및 그의 자녀들이 받은 것이었다. 사건발생후, 오광춘은 후회막급이었다: "나는 나 스스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을 뿐아니라, 나의 가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디...90%의 돈은 그들이 내 처에게 보낸 것이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한걸음 한걸음 나를 법정으로 보냈다"
네번째, 전형적인 말: "수회매작탄(收賄埋炸彈)": 뇌물수수는 폭약을 매설하는 것과 같다
대표인물: 정주항공관리학원 부원장 유안굉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부원장 겸 공정지휘부 부지휘장을 오랫동안 맡으면서, 직무편의를 이용하여, 불법으로 건축상 13명으로부터 24회에 걸쳐 46.5만위안의 뇌물을 받았다. 2007년 9월 19일, 하남 안양현 인민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참회서에서 이렇게 썼다: "다른 사람을 모르게 하려면, 자기가 안하는 수밖에 없다. 사실상 다른 사람의 재물을 받는 것은 동시에 시한폭탄을 매설하는 것과 같다"
다섯째, 전형적인 말: "매만난입수(每晩難入睡)": 매일 밤 잠을 잘 들지 못했다.
대표인물: 중석화판매공사 광주분공사 부경리 왕회분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왕회분은 직무를 이용하여 여러차례에 걸쳐 불법뇌물 200여만위안을 받았다. 2008년 12월 24일, 뇌물죄로 광주중급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공소에 대하여, 왕회분은 자기의 행위를 아주 후회했다: "구치소에서 있었던 364일간, 나는 하루도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다. 매일 저녁, 나는 깊은 참회속에서 잠들지 못하였다"
여섯째, 전형적인 말: "심정여도할(心情如刀割)": 심장을 칼로 도려내는 것같다.
대표인물: 절강 태주시 발개위 산업발전처 처장 태주시중점공정영도소조판공실 주임 양만리
2002년 8월, 양만리는 직무를 이용하여 20만위안을 받았다. 2008년 12월 12일, 태주시 황암구 법원에서 뇌물죄로 유기징역 9년을 받았다. 형을 받은 후, 피고석에 선 양만리는 후회막급이었다. "내가 집문을 나설 때, 딸이 달려나와 내 다리를 붙잡고 물었다: '아빠, 언제 돌아오세요' 이 말을 들으니 내 심장을 칼로 도려내는 것같았다"
일곱째, 전형적인 말: "권재희생품(權財犧牲品)": 권력과 재물의 희생물이다
대표인물: 호남성 천주시 상임위원, 선전부장 번갑생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번갑생은 요직을 맡은 것을 이용하여, 처인 반려예와 공동으로 70만위안의 뇌물을 받았다. 번갑생 개인은 단독으로 117만위안과 5만달러를 받았다. 그리고 9번에 걸쳐 천주시 서기인 이대륜에게 63만위안을 뇌물로 바쳤다. 이외에, 여전히 400여만위안이 내력불명인 재산이었다. 2008년 7월 12일, 천주시중급법원은 뇌물수령, 뇌물제공, 거액재산내력불명죄로 재판을 하였고, 번갑생 부부는 함께 법정에 섰다. 번갑생은 이렇게 말했다: "당과 인민이 나에게 권력을 주었는데, 나는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고, 결국 권력과 돈거래의 희생품이 되었다"
여덟째, 전형적인 말: "외국무천당(外國無天堂)": 외국이라고 천국은 아니다.
대표인물: 흑룡강성 경제체제개혁위원회 주임, 당조서기 송사합
1994년 6월 13일, 부패로 송사합은 흑룡강성 검찰원의 입건조사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입건당일, 송사합은 도망쳐서, 카나다에서 4년간 생활했다. 그리고 1998년 미국으로 도망가서 미국적의 중국계여인과 결혼했다. 그리고 2007년 5월, 미국에서 관련기관에 체포되어, 7월에 중국으로 이송되었다. 12월 15일, 치치하얼시 철봉구 인민법원에서 부패죄, 뇌물죄로 유기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재판후, 10년간의 해외도피경력을 언급하면서, 송사합은 이국타향에 도망가서 다른 사람밑에서 생활하는 고통을 얘기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인 고통이라고 하였다. "미국은 천국이 아니다"
아홉째, 전형적인 말: "경행비극형(慶幸非極刑)": 극형에 처해지지 않아 다행이다.
대표인물: 안휘성투자집단공사 부총경리 동소환
1997년에서 2006년까지, 동소환은 회사요직을 맡고 있는 틈을 타서, 뇌물 339.2만위안고, 7만달러를 받았다. 2007년 7월 9일, 합비시 중급인민법원의 1심에서 뇌물죄로 무기징역을 받았는데, 동소환은 불복하여 상소했다. 9월 28일, 상소는 기각되었고, 원판결이 유지되게 되었다. 이 개성이 뚜렷한 탐관은 그의 불법소득을 모두 자신의 애인에게 썼고, 그의 참회록은 남다른 바가 있었다. 무기징역을 받고도 '다행'이라고 적었다: "나는 관련기관이 나를 적시에 조사처벌해주고, 적시에 나를 구해준데, 감사합니다. 만일 조사처벌되지 않고, 몇년이 더 지났더라면 나는 아마도 뇌물을 천만위안을 받았을 것이고, 아마도 극형에 처해졌을 것입니다."
열번째, 전형적인 말: "자유다가귀(自由多可貴)": 자유는 얼마나 귀한 것인가
대표인물: 북경화성문화전파공사 부총경리 사효동
1994년, 사효동은 직무를 이용하여 회사자금 5.5만위안을 횡령했다. 1995년부터 1996년까지, 그는 불법으로 회사자금 28만위안을 횡령했다. 사건발생후 7년간 숨겨져 있다가 마침내 사건화 되었다. 2005년 북경제1중급인민법원은 직무침점죄와 자금횡령죄로 유기징역 6년에 처하였다. 사효동은 후회하면서 말했다: "감옥에서 나는 묵묵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현재 나는 비로소 자유가 얼마나고귀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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