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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홍루몽

지연재(脂硯齋)의 신분

by 중은우시 2008. 5. 6.

글: 주령(周嶺)

 

<<지연재중평석두기(脂硯齋重評石頭記)>>(홍루몽의 또 다른 판본)에는 대량의 지비(脂批, 지연재가 남긴 비평글)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지비에서는 지연재와 조설근(曹雪芹), 지연재와 홍루몽의 인물,사건간의 관계정보를 알 수 있고, 이들 정보는 홍루몽을 연구함에 있어서 많은 수수께끼를 푸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지연재가 누구인지에 대하여는 역대이래로 여러가지 설이 분분하다.

 

어떤 사람은 지연재가 바로 조설근 자신이라고 말한다. 그가 스스로 자문자답을 한 것이라는 것이다. 책에서 이런 예를 든다. "'後'자는 왜 직접 '西'자를 쓰지 않았는가?" "선생이 눈물을 흘릴까 걱정되어, 감히 '西'자를 쓰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일문일답은 마치 1인극의 문자유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주장이 맞는가? 그러나, 근거가 약하다. 왜냐하면 대량의 비어(批語)는 아주 분명하게 작가가 아닌 사람의 어투이지, 작가의 어투가 아니다. 그리고 자주 작자의 견해에 대하여 자기의 견해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고, 작가의 일부 주장에 대하여 평론을 하거나, 그 사건의 배후에 있는 실제사건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하나의 주장은 이 지연재가 조설근의 형제라는 것이다. 이 주장에도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는 비어중에는 많은 내용이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고, 말만 꺼내면 20년전, 30년전, 손가락을 꼽아보니 35년이라는 것과 같은 말이 나온다. 이는 확실히 조설근보다는 연령이 많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일부 비어에는 조설근을 아랫사람으로 대하는 말투가 나온다. 이런 점에서 그의 형제라고 보기는 부족하다. 특히 조설근이 어떤 일들은 직접 겪거나 직접 본건이 아닐 수도 있다. 혹은 직접 겪거나 보았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기억이 또렷하지 않을 수 있다. 하물며 그의 동생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책안에는 이런 '비어'도 있다. "설근은 옛날에 <<풍월보감>>이라는 책이 있었다" "거기에 동생 당촌(棠村)이 서문을 썼다". 서문을 썼으면, 비어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전체적인 비어로 보면, 동생의 어투는 전혀 아니다.

 

세번째 주장은 지연재는 여자이고 남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아마도 조설근의 후처일 것이라고 한다. 그들 부부는 한 명은 책을 쓰고, 한 명은 비어를 쓰면서, 서로 그림자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조설근이 죽은 이후에도 비서인(批書人) 즉, 미망인은 계속 비어를 썼다. 다만, 우리가 보는 비어중 대부분은 남자의 어투이지, 여성의 어투는 아니다. 예는 너무나 많으므로, 여기서 하나하나 열거하지는 않는다.

 

또 하나의 주장은 조설근의 윗사람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어느 주장이 가장 사실에 접근할 것일까. 유서(裕瑞)라는 사람이 있다. 바로 <<조창한필(棗窓閑筆)>>의 작가이다. 유서는 조설근과 직접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외삼촌이 조설근의 가까운 친구였고, 조설근과 잘 알았다. 그는 그의 외삼촌으로부터 여러가지 조설근에 대한 말을 듣고, 홍루몽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지연재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그의 말대로라면 "전대인척(前代姻戚)"으로부터 말을 들었다는 것인데, 바로 외삼촌을 얘기한다. 그렇다면, 그의 외삼촌은 누구인가? 그의 외삼촌은 모두 부찰씨(富察氏)의 몇몇 형제들이다. 부찰명의(富察明義), 부찰명림(富察明琳), 명인(明仁), 명서(明瑞)등등이다. 이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조설근의 가까운 친구들이었다. 이들중 '명의'는 가장 먼저 홍루몽 전권을 본 사람이다. 즉, 80회이후를 잃어버리기 전의 판본을 읽어본 사람이다. '명림'같은 경우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한번은 '돈민(敦敏)'이 그를 찾아갔다. 돈민은 조설근의 가까운 친구이다. 명림의 양석헌으로 찾아갔는데, 갑자기 건너편에서 어떤 사람이 고담준론을 벌이는 것을 들었고, 목소리를 들으니 조설근이었다. 그는 그때 조설근을 1년가량 만나지 못했으므로 아주 놀라면서도 기뻤다. 바로 건너가서 보니, 과연 조설근이었다. 이 이야기에서 최소한 명림, 명의들이 조설근과 관계가 아주 좋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책한권을 쓰려면, 막 탈고했을 때, 이 책이 아직 외부로 전파되지 않았을 때, 책을 보는 사람들은 아주 좁은 범위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잘 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유서의 외삼촌들은 조설근과 관계가 아주 밀접했었고, 유서가 얻은 소식은 아주 사실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뭐라고 말했는가? 조설근은 성격이 소탈하고 활달했다고 한다. 조설근의 성격은 그의 다른 친구들이 남긴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설근의 모습에 대하여, 조설근이 고담준론을 시작하면, 하루종일 피곤한 줄을 모른다고 적었다. 그리고 조설근은 홍루몽을 쓰면서 쓰면 쓸수록 기이했고, 그는 초기의 <<석두기>>를 보았다고 한다. 그의 말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본 책에는 페이지마다 "기숙지연(其叔脂硯)"의 "비어(批語)"가 있다고 적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가 한 말 그대로이다. "기숙지연"이라는 것은 "그의 숙부 지연"이라는 말이 아닌가? 지연은 바로 지연재이다. 그가 유일하면서도 아주 명백하게, 지연재가 그의 숙부라는 점을 밝혀준 것이다. 그리고 <<석두기>>의 위에 비어를 썼다는 것도 말해준다. 그가 잘못 말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물론 있기는 하다. 왜냐하면 말로 전해지다보면 아마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모든 주장에는 이 정도의 증거도 없고, 모두 그저 추측이거나 그럴지도 모른다는 것일 뿐이다. 직접적인 기록이라면 이것 하나 뿐이다. 나중에 여러가지 말들이 나오지만 이것들은 모두 유서보다도 훨씬 멀리 떨어진 사람들의 말이다. 그러므로 다른 자료가 발견되기 전에는 우리는 유서의 말을 믿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비어의 내용을 살펴보자. 그리고 비어의 말투를 보자. 비서인의 신분을 보자. 느낌으로는 대략 조설근의 윗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연히 어떤 사람은 반드시 그의 숙부가 아니라, 그의 외삼촌일 수도 있다고 본다. 외삼촌도 윗사람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조설근의 외삼촌은 누구인가? 조설근의 외삼촌은 이씨(李氏) 집안이다. 이씨중 그의 외할아버지는 이후(李煦)이며, 소주직조(蘇州織造)를 지낸 인물이다. 소주직조 이후에게는 아들 둘이 있었다. 하나는 이내(李)이고, 하나는 이정(李鼎)이다. 어떤 사람은 이정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연령상으로나, 다재다능하다는 점에서 특히 희곡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모두 지연재로 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한다. 다만, 증거가 있는가? 없다. 모두 추측일 뿐이다. 그리하여 그를 조설근의 형제라고 하기도 하고, 처라고 하기도 하고, 외삼촌이라고 하기도 하고, 본인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 그저 "기숙지연"이라는 문구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지연재는 조설근의 숙부일 가능성이 가장 클 것이다. 당연히 만일 새로운 자료가 나타난다면 유서의 말은 뒤집힐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자료가 나타나기 전에는 억측을 얘기할 수는 없다. 추측은 추측일 뿐이다. 결론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정설이라고 말할 수는 더욱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