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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한국/한중관계

한국계투자기업의 철수

by 중은우시 2008. 4. 21.

글: 중국경영보 2008. 4. 21.자 정도(程濤), 장서광(張曙光), 이국화(李國華)

 

한때 연태시정부에 의하여 스타기업으로 인정받았던 한국계투자기업인 세강섬유유한회사의 30여명 한국적 관리직원들이 집단으로 한국에 도망친 후, 이 한국계투자기업의 "야반도주"를 조성한 원인에 대하여 여론은 중국노동력, 토지 및 생산원가의 인상 및 인민폐절상등의 요소를 꼽고 있다.

 

그러나, 본보 기자가 보는 바에 의하면, 혁신이 부족하고 오염이 심각한 노동집약형기업이 중국의 현재 산업업그레이드라는 시대의 수요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한국계기업이 철수할 수밖에 없는 근본원인이다.

 

사실상, 한국 주청도영사관 및 본보기자가 조사한 데이타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산동성에서만 206개 한국계기업이 비정상적으로 철수했다. 이들 "비정상철수"는 중국의 지방정부가 장기간동안 "업적위주'의 대외투자유치정책에 경종을 울리고, 우리의 정책방향에 대한 재고를 요하고 있다.

 

"4년전에 공장을 연 때로부터 내 주변에서 사업하던 고객인 한국계기업은 연이어서 '실종'되고 있습니다" 4월 16일, 산동성 교주시 이가장진 고가촌의 전도공업원에 문을 연, "청도강우공예품공장"(이하 "강우"라 함)에서 사업을 하는 전원군의 말이다. 그는 도망친 한국고객으로부터 미수채권을 회수하려고 노력한 바 있지만, 결과는 그다지 이상적이지 못했다.

 

기자는 조사과정에서 더 많은 "한국계기업의 철수"가 현재 교주, 청도, 연태등의 지방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한국계기업이 밀집되어 있는 청도시 성양구와 교주시는 더욱 폐해가 크다.

 

유치된 한국계기업들은 왕왕 규모가 아주 작고, 환경오염이 아주 엄중하다. 현재 환경보호요건이 날로 강화되는 시대에 한국계기업들은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게 된 것이다.

 

한 한국공예품협회의 인사는 이렇게 말한다: "2008년 5월부터 한국계기업이 중국에서 철수하는 붐이 곧 올 것이다"

 

이는 중국 관련기업에 경제적 손실을 가져올 뿐아니라, 지방정부의 외자유치업무와 지방경제발전도 곤경에 빠지게 할 것이다.

 

금년 31세인 전원군은 교주시 이가장진 고가촌의 토박이이다. 2004년, 고가촌은 한국계기업의 투자를 적극 유치하기 시작했다. 전원군등은 이리저리 130만위안을 모아서, "청도강우공예품공장"을 만들었고, 한국계기업을 위하여 위탁가공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했다. 노력을 거듭하여, 강우의 사업은 점차 본궤도에 올랐고, 매월의 오더는 80만위안 심지어 더 많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전원군등이 막 기뻐할 때, 그들이 생각도 못했던 일이 발생한다. "왕왕 결제할 때가 되면, 한국측이 우리가 가공한 제품이 국외로 보낼 때 퇴색등 불합격현상이 있다고 말하고는 가공비를 깍았다. 일단 쌍방이 협상을 시작하면, 시간은 어쩔 수 없이 미루어지고, 다음달의 지급에도 영향을 미친다"

 

2006년 7월 10일, 한국기업이 약정한 매월 결제시간에 전원군은 3개월의 청구서를 가지고 한국계기업인 "청도개특공예품공사("개특")"의 사장을 찾아갔다. 개특의 사장은 당시 전원군에게 구매대금을 지급할 돈을 어레인지하고 있으니 오후에 다시 오면 결제하겠다고 하였다. 전원군은 한국계기업은 비교적 신용을 잘 지키므로, 쌍방은 한번도 정식계약을 체결하지도 않고 거래했었으며, 구두약정만 있었다.

 

전원군이 오후에 개특에 갔을 때는, 한국 사장이 이미 돈을 챙겨서 도망친 후였다. "당시 미수채권은 9만여위안이었는데, 나중에 기업을 찾아가서 일부 손실을 만회했습니다" 개특은 지금도 강우에 43,.349위안의 채무를 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처음에는 아주 신의를 잘 지킵니다. 나도 그들과 정식계약을 체결해야한다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안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한국계 고객인 "청도풍광공예품공사"는 2006년 9월부터 2007년 2월까지, 누계로 미지급 제품대금이 누적으로 68만여위안에 달하였다. 현재, 전원군의 고객중에서 이미 4개의 한국기업이 소리소문없이 철수해버렸다.

 

미수채권은 전원군의 마음을 짓누르는 돌맹이와 같다. 한번은, 전원군이 한국계기업의 고객과 그가 우려하고 있는 미수채권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다. 어떤 한국인은 그에게 "그들(악의적으로 미수를 남기고 야반도주한 한국기업인)은 한국인들의 체면을 다버리고 있다"고 말한 적도 있다.

 

"나는 한국계기업을 사랑하면서도 미워합니다" 전원군은 그렇지만, 여전히 한국계기업과 협력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한국계기업이 오더를 많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리적 원인도 있다. 그들이 사는 곳은 한국계기업이 밀집되어 있다. 현재 그의 공장은 매월 80만위안가량의 주문을 받고 있는데, 그중 80%이상은 한국계기업으로부터 받는다. 어떤 때는 주문비율이 더 높은 적도 있다.

 

전원군은 그가 취한 자구수단이라는 것이 한국계기업이 약정한 기간내에 결제해주지 않으면, 즉시 상대방에 대한 제품가공을 중단하고, 상대방에 가공한 제품을 담보물로 활용하는 것이다. 전원군의 한 친구는 2007년에 공장을 문연지 반년만에 4개의 한국기업이 돈을 떼먹고 도망쳤다. 그의 친구는 일찌기 청도시의 '시장공개전화'에 그의 처지를 호소한 적도 있다. 그러나 상대방은 상황을 기록할 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답변을 주지는 않았다. 현재 그의 이 친구는 스스로 한국의 조폭두목이라는 사람에게 한국으로 가서 돈을 받아오라고 위탁할까말까를 고민하고 있다.

 

"한국계기업과 정식계약이 없으므로, 우리는 그들을 제소할 수 없으며, 설사 제소하더라도, 회수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전원군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음을 느끼고 있다.

 

한국중소기업진흥공단 청도대표처의 중소기업서비스센터 이병직 과장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7년까지, 비정상적으로 청도를 떠난 한국계기업이 206개라고 하며, 평균 매년 25개였다. 그중 2007년이 가장 많아서 80여개기업에 이른다. 산동성 대외경제무역부문이 제공한 데이터와 거의 비슷하다. 청도시는 2003년이래 모두 206개의 한국계기업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철수했다고 했고, 연태시는 2007년에 3개이지만 최근의 숫자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매일 한국계기업이 철수하고 있으며, 청도시 성양구에서 야반도주한 한국계기업만 206개는 넘는다. 이 숫자는 계속 새로운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공업원구의 한 기업책임자는 사실은 공포된 수치보다 훨씬 엄중할 것이라고 한다.

 

현재, 많ㅇ느 한국기업은 공장을 산동성보다 더 내륙지역으로 이전하거나, 안휘, 강서, 하남등의 중부성지역으로 옮기고자 하며, 심지어 일부분 한국계기업은 이미 월남, 라오스등의 국가로 가서 살펴보고 있다.

 

"다른 곳은 한국계기업에게 우대정책을 교주시보다 훨씬 많이 주고 있고, 인건비도 이곳보다 낮다. 안휘, 하남등지에서는 이곳의 절반의 급여만 주면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고, 노동자를 모집하는데도 걱정이 없다고 한다" 전원군이 기운빠지는 것은 한국계기업이 주변에서 계속 떠나고 있어, 잠재적인 미수채권리스크가 갈수록 심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미수채권기록에서도 신기록을 갱신할까봐 걱정이다.

 

"일반노동자는 2,3년 일한 후, 모두 이 공업원을 떠납니다. 왜나하면 이곳은 오염이 심하고, 자주쓰는 원료는 시안화나트륨(청산가리)으로 노동자의 신체에 미치는 해가 큰 편이다"

 

공업원구에는 어디서나 직원모집공고가 붙어있다. 심지어 4월 3일, 청도시 하투출구가공구의 한국기업의 직공모집전단 1장은 심지어 촌위원회의 정문앞에 붙어 있었다.

 

"전도(전기도금)공업원의 인건비는 이미 2년전의 두 배입니다. 이런 가격으로도 충분한 수량의 적합한 인원을 뽑지못하고 있습니다" 공업원안에서 미수채권을 가장 많이 안고있는 것으로 공인된 장직업의 말이다. 장의 회사는 주로 한국전기도금기업에 원재료를 납품한다.

 

2007년이래의 원재료원가는 모두 2005년의 두배이상이다. 시안화은, 황산구리와 니켈의 재료가격은 거의 3배에 근접했다.

 

"여기는 악성경쟁도 문제입니다" 전원군에 따르면 고객을 빼앗아오기 위하여, 중국기업간의 경쟁은 아주 치열하고, 이것은 한국계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현지의 중국기업주들이 약간 희망을 가지는 것은 청도시가 금년 여름에 개최하는 공예품박람회이다.

 

"이전에 박람회에 오는 상인들은 유럽과 미국회사가 위주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한국기업에게서 주문을 받는 리스크, 공장의 이윤을 압박하는 것을 회피할 수 있습니다. 나는 현재 국면의 추세를 관찰하고 있고, 이미 한국기업과는 거래를 줄여가고 있습니다" 고가촌 전기도금공업원안에 거의 모든 중국기업은 한국기업의 변동에 따라 정도는 다르지만 손실을 입고 있다.

 

"어떤 조치를 취해야 중국기업이 더 큰 손실을 입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규모도 적고 오염은 심한 공업원이 어떻게 산업업그레이드를 시킬 수 있을까?"등의 문제는 지금까지 해법이 없다.

 

"현재까지, 전기도금공업원에서 단 1개의 한국기업만이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2006년에 발생한 일입니다." 고가촌의 손모 촌지부서기의 말이다. "만일 촌위원회가 한국기업들을 유치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촌에 있는 공장을 누구에게 임대주어 이익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2007년 4월, 환경보호부문에서 생산중단하라는 통지가 촌에 내려왔다. 2007년 9월, 교주시 환경보호부문은 공업원구내의 26개기업에게 문을 닫으라고 명령했다.

 

"이것은 촌민들이 찾아갔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국가환보총국에 고발했습니다. 촌민들의 생활이 말이 아니라고." 당시 국가환보총국은 문건을 보내어 산동성에게 오염관련 문제를 처리하도록 시켰고, 폐쇄명령은 산동성에서 청도시, 교주시를 거쳐 촌위원회까지 왔다.

 

촌위원회는 환보국에 개선문건을 보냈다. 오수처리장은 이미 오수처리능력을 확장했고, 수백만위안을 들여 도입한 신 설비는 이미 최후의 시운전단계에 들어갔고, 곧 사용할 예정이다. 기업을 폐쇄시킨 후, 촌위원회는 오수처리역량을 확대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오수처리장은 곧 개시됩니다. 폐쇄된 기업도 생산상태로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손모의 말이다. 촌위원회는 규정위반기업에 상응한 처벌을 했다. 촌위원회의 관련문건에서는 폐쇄기업이 26개, 12개기업은 벌금을 받고 재정비하도록 했다. 벌금은 5000위안에서 10000위안까지 서로 다르고, 그중 보원실업은 벌금을 1만위안 받았다.

 

"기업폐쇄는 현재 촌의 제3산업에 이미 중대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식당과 소매업은 이미 수입이 많이 감소했습니다" 한국에서 유치한 기업은 소규모인 환경오염기업이 많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환경보호부문을 찾아간 것입니다. 우리는 오염에 목숨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한 농민의 말이다.

 

손모는 철수하지 않은 한국계기업, 예를 들어 "보원실업"은 촌과 합자한 계약기간이 30년이고, 정규절차에 따라, 토지증을 가지고, 공장의 가공설비도 모두 비싼 정밀기기이고, 모두 임차한 것이 아니라 오너가 자기돈으로 구입한 것이다. "바로 보원실업이 있기 때문에, 이곳에 온 한국계기업과 협력업체인 민간기업이 점차 많아질 수 있었습니다" 손모에 따르면, 1992년, 첫번째 한국계자금이 고가촌에 들어온 후, 현재까지 모두 12개의 한국기업이 고가촌의 전기도금공업원에 자리잡았다.

 

1999년에, 촌민들이 양식하던 물고기와 새우가 '수원오염이 되었다'고 지적받았고, 전문가를 불러 검역부문에서 화학검사를 했다. 결과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물고기와 새우는 더 이상 계속 양식할 수 없었고, 촌민들의 수입이 문제로 되었다. 이후, 촌위원회는 물고기와 새우를 양식하던 못을 메워서, 전기도금공업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촌위원회의 문건을 보면 현재까지 전기도금공업원에 전기도금업체가 61개이고 점유면적은 28.8만평방미터이다. 주로 공예품생산과 금속(플라스틱)표면도금, 은도금, 구리도금, 니켈도금을 하고 있다.

 

"우리 촌은 진에서 외자유치를 가장 많이한 촌입니다. 촌에 있는 사람들도 공업원이 있어서 수입이 괜찮은 편입니다. 현재 촌은 70세이상의 노인에게 매월 80위안의 생활보조금을 주고 있고, 보험이 없는 어린아이에게도 매월 50위안의 보조금을 준다. 2003년부터, 촌은 일부촌민을 보험에 들게 하였는데, 매년 비용이 약 40여만위안에 이른다.

 

손모가 보기에 바로 한국계기업이 고가촌에 들어와싸기 때문에, 촌에는 지금처럼 공업원도 있고, 노인과 아이들이 경제적으로 보장도 받는 것이다. "주변에서 가장 상황이 좋은 곳도 한국계기업 2-3개를 유치한 곳이며, 고가촌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고가촌의 매년 외자를 도입하는 임무는 300만-400만위안이다" 촌위원회도 방법이 없습니다. 촌간부가 만일 재직기간동안 외자도입임무를 완성하지 못하면, 만3년이 되면 자동으로 자리를 떠나게 됩니다." 고가촌의 전기도금공업원은 이가장진의 5개촌중 외자유치를 가장 잘한 곳이다. 다른 촌은 모두 제대로 못했고, 외자유치를 잘해서 승진한 사람도 없다. 외자유치를 못해서 면직된 사람은 수두록하다. 그러나, 지금은 오염기업은 이 촌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손모에 따르면, 공업원에 제일 많을 때는 5000-6000명의 노동자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많은 기업들이 산동성의 서부지역, 하남, 강소 및 동북지역으로 이전했다. 공장의 임대가격도 올라서, 예전에는 년20만위안이면 되었지만, 지금은 매년 50만-60만위안은 내야 한다.

 

2008년 구정때, 촌위원회는 이 문제때문에 회의를 여러차례 개최하였고, 계속하여 투자유치를 하기로 결정했다. 2008년에는 한, 두개의 비도금업종으로 환경오염이 심하지 않은 기업을 유치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조건이 좋은 기업이 이런 곳을 마음에 두겠는가?

 

"촌에는 이미 외자유치 계획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토지도 이미 삼평일통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공업원에는 다른 산업의 기초가 없어서, 외자유치업무는 아직 별다른 진전이 없다.

 

삼통일평을 마친 텅빈 땅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일부 쓰레기가 천천히 이 희망을 건 토지위에 쌓여가고 바람이 불면 하늘로 날아오른다.

 

청도는 교주반도 남쪽에 위치하고 있고 경치가 좋기로 천하에 이름을 날린다. "청도제조"는 이 도시의 명함이다. 그런데, 현재는 재난이 닥쳐왔다. "한국계기업의 야반도주" 소문이 전국에 퍼지면서 청도는 '도주의 도시'라는 별명이 하나 더 붙었다.

 

2008년 1월 28일, 한국 관방시찰단이 청도에 이틀간의 조사연구를 마쳤다.

 

"시찰단은 한편으로는 관련기업을 시찰하고, 현지 한국계기업대표들에게 상황을 파악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현지정부조직의 관련부서와 좌담회를 개최하고 의견을 교환했다. 참가한 부서는 상무, 세무, 공상, 노동보장, 해관등등이었다. 한국중소기업진흥공단의 청도대표처 이병직 과장은 한국수출입은행이 2월 12일에 <<청도지구투자기업의 불법철수현상>>보고서를 발표했다고 말했다.

 

2008년 구정기간에 청도시 성양구의 몇개 기업주는 단체로 한국으로 가서 채권회수하고자 시도했다. 관련인사에 따르면, 그들은 그중 한 채무자를 찾았는데, 돈을 받아내는데 실패하자 화가나서 한 채권자가 한국인을 때렸다. 결과적으로 한국인은 경찰에 고발하여, 사람을 때린 기업주는 한국경찰에 의하여 출국금지조치를 당했다. 주한중국대사관의 도움하에 비로소 귀국할 수 있었다.

 

2008년 구정이후, 청도시정부는 여러번 회의를 개최하여 한국계기업철수속도를 늦추게 하고, 철수로 인하여 청도시에 초래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려고 애썼다.

 

"청도시정부는 이 일을 떠들고 다니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국기업의 철수에 적극적으로 간여했습니다" 청도시정부가 간여한 조치는, 청도시대외경제무역국에서 이미 지방경무국에 시달하여, 소속기관에서 현지한국계기업을 잘 관리하고, 그들의 동향을 파악하여, 다시는 '도주'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각지의 상무부서에게 있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정부는 정책을 이행하고 효율을 발휘할 법적근거가 없었다. 이를 위하여 청도시정부 정책연구실은 2008년 4월, 한국계기업도주에 대한 과제조를 만들었다. 사실 유사한 과제조가 2006년과 2007년에 청도시정부에 조사연구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정책건의의 집행력이 약했다.

 

사실상, 불법철수한 한국계기업은 주로 악세사리가공, 방직과 피혁생산등 기술수준이 낮고, 오염도가 높으며, 에너지소모가 많은 전통적인 노동집약적산업이었다. 인민폐가 절상되고, 신노동계약법이 시행되어 많게 적게 기업의 인건비부담을 증가시켰고, 세제개혁으로 외국기업에 대한 우대조치가 사라졌고, 환경오염에 대한 통제가 엄격해졌으며, 생산원자재의 가격이 인상되는 등의 요소로 인해 기업의 생산원가가 대대적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상술한 노동집약적기업은 원가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업종이다.

 

"생산원가상승으로 인한 대규모의 국제적산업이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외자철수를 기회로 하여 산업을 업그레이드시키고 개방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 이는 청도시만 부닥친 문제가 아니다. 전국도시가 부닥칠 문제이다." 청도과기대학 동북아경제연구센터 부주임 원효리의 말이다.

 

원효리는 청도시정부 정책연구실의 전문가자문단의 일원이다. 그녀는 2006년 10월, 일찌기 시정부에 <<청도시대외외자유치의 질을 끌어올리는 대책연구>>라는 보고서를 올렸다.

 

이 보고서에서 원효리는 "프로젝트비준, 자금도입수량을 심사하는 동시에, 점진적으로 사회효율, 투자효율, 세수기여도, 특히 지방세수기여도를 심사기준으로 삼아야 하고, 투자의 적합성을 중시하고 투자프로젝트의 질을 제고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2006년의 조사연구에서 원효리는 더욱 정확한 결론을 내리기 위하여 산동성의 각 시현을 돌아다녔을 뿐아니라, 상해와 소주등 외자기업이 집중된 도시도 조사했다.

 

2004년부터, 청도시는 실제이용외자측면에서 15개 부성급도시중 첫째가 되었다. 다만, 외자의 질은 확실히 북경, 상해, 소주등의 도시와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많은 외자는 청도에 투자하여 공장을 건설하는 이유는 우대정책, 염가노동력과 우수한지리교통위치등의 요소로 인한 것이다. 최초의 목표는 생산원가절감과 제품의 국제시장경쟁력제고이다"

 

10차5개년계획기간동안, 청도시의 제2차산업에서 실제로 이용한 외자는 31.74억달러이며, 청도시실제이용외자총액의 86.8%이다. 다만 청도시의 산업구조업그레이드, 현대서비스업의 발전등 지방경제의 발전을 가속화시키는 의미가 있는 외자프로젝트는 아주 적었다. 이는 상대적으로 청도시사업구조의 업그레이드 발걸음을 느리게 하였다.

 

당시, 원효리는 문제를 발견했다: 청도시의 최대외자도입국은 한국인데, 한국계기업은 비교적 규모가 작은 노동집약적 제조가공업을 위주로 하였고, 무단철수, 노동문제가 많았다. 한국기업은 청도시의 세수에 기여하는 바도 아주 적었다.

 

청도시의 성양구와 교주시는 이번 "한국기업도주"의 재해를 입은 지역이다. 청도강우공예품공사의 미수채권도 전부 청도시 성양구에 있는 한국계기업이었다.

 

1989년, 산동성의 첫번째 한국투자기업인 청도 Toptone전기유한공사가 성양구에 자리잡았다. 2007년말까지 성양구의 한국계기업누계비준수는 2820여개에 달한다. 한국기업은 주로 전자기계, 방직의류, 공예품완구등 업종에 집중되어 있다. 상주한국인은 3만명이다. 2003년부터, 성양구는 날로 완비되어가는 투자환경을 통하여 한국에서 투자유치하는 새로운 절정기를 맞이한다. 5년간 1825개의 한국계기업을 유치했다.

 

한국기업위주의 여러개의 소규모 노동집약형제조업은 한편으로 청도시토지자원의 낭비를 초래하여 정부의 투자유치원가를 상승시켰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규모외자기업에 '철새기업'의 현상이 비교적 심각했다.

 

"이들 외자기업은 모지역 공업원구에 들어오면서, 스스로 공장을 짓지 않고, 주로 임차한다. 나중에 이전하기 간편하게 하기 위하여서이다. 우대기간이 지나면, 폐쇄하고, 공장을 또다른 도시로 옮겨서 우대혜택을 받는다. 심지어 성양, 즉묵에서와 같이 무단철수의 현상까지 나타나고, 노동자의 불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외에, 원효리는 청도시의 외자유치에 숨은 비용이 너무 많다는 것도 발견했다. 외자유치때 "악성경쟁, 우대조치남발"의 현상이 있었다. 이리하여 구, 시정부간에 방휼지쟁을 벌여, 외자기업이 어부지리를 보았다.

 

한번은 청도시의 두 구정부가 LG의 투자프로젝트를 유치하기 위하여, 쌍방은 우대가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승리한 측은 토지사용료를 면제해주겠다고 한 구정부였다.

 

구간 시간의 악성경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당시 청도시정부의 업적심사체계에 있었다. 당해년도의 외자유치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청도시 구, 시간에 과도하게 외상에 토지, 세수측면의 우대조치를 부여하였고, 단위토지당 외자의 투자율이 저하되고, 유치비용이 너무 많이 들며, 심지어 자원낭비, 오염기업도 끌어들였으며, '철새외자'를 조장하였고, 청도시의 이익에도 손해를 주고, 청도시의 향후 외자유치에도 불리한 영향을 주었다.

 

한 해는 청도시 황도구가 상급이 지시한 외자유치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아직 300만위안이 모자랐다. 이때, 황도구의 책임자는 모 외자기업을 찾아가서, 그들에게 황도구에 자본투자하도록 요청했다. 그러나, 외국투자자는 그렇게 하고 싶어하지 않았으나, 정부로부터의 압력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여야 했다. 구의 지도자가 직접 은행과 관련부서에 전화를 걸어 심사절차를 간략하게 하라고 요구하여 절차는 순풍에 돛단 듯이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여기에 무슨 환경보호가 나설 수가 없고, 노동집약형의 소기업인지 여부도 따지지 않았다"

 

이외에 외자유치 조사과정에서 그녀는 상해, 소주, 곤산등의 도시는 이런 문제를 회피하기 위하여, 이미 외자유치의 문턱을 높여버렸다. 오염이 엄중하거나 규모가 작거나 기술수준이 낮은 외자는 도입하지 않았다. 곤산시정부는 "삼불정책"을 제정했는데, 즉, 노동력수요량이 8000명이 넘는 노동집약적산업, 수출환급세액이 지나치게 많은 산업, 및 고오염산업을 일률적으로 지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