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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한국/한중관계

어느 중국인의 농심배결승국(구리-이창호) 관전기

by 중은우시 2007. 2. 14.

글 : bduk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고수들의 바둑시합을 현장에 가서 불 수 있다니, 마음 속의 격동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가는 도중 내내 시합장소가 어떻게 생겼을지, 고수들은 어떤 모습일지, 관중들이나 주변인물들은 어떤 사람들일지를 생각했다. 이 시합을 보기 위하여 본인은 아예 반나절을 휴가냈다. 그만한 가치가 있을지 없을지, 중국팀이 과연 최후에 웃는 자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를 잘 모르겠다. 이렇게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화정빈관(華亭賓館)이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시합장소의 관리는 아주 엄하다고 들어서, 시합장에 들어가지 못할까봐 그리고 중도에 쫓겨날까봐 걱정을 했다. 그래서 양복과 구두를 아주 잘 골라서 입었고, 변명할 말들도 만들어 두었다. 만일 누가 막으면, 나는 당당하게 중국기원에서 왔다고 할 것이다. 아니면 누구누구를 안다고 말할 것이고, 아니면 A의 친구, B의 이웃, C의 친척이라고 할 것이다. 하하. 당연히 또 준비한 방법도 있다. 만일 그래도 못들어가게 한다면, 본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서, 바둑광이라고 얘기하고, 이걸 보기 위해서 휴가까지 받아서 왔으며, 먼 곳에서 이곳으로 중국팀을 응원하기 위하여 왔다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데도 문밖에서 오후내내 기다리게야 설마 하겠는가. 응원하는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나면, 우리 구리(古力)의 승산이나 기세도 조금은 올라갈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말들까지 준비하였는데도 내가 들어가지 못할 것같은가. 헤헤.

 

시합장은 찾기 어렵지 않았다. 화정빈관 2층의 오른손편에는 농심신라면이 작은 산만큼 쌓여 있었다. 이것이 바로 길표지이다. 1시 50분. 나는 미리 시합장에 잠입했다. 이때는 아직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나는 어디가 시합장이고, 연구실이고, 중계실인지를 전혀 몰랐다. 그래서 안에서 그저 아무렇게나 찾아다녔다. 다행히 어떤 사람이 가장 안쪽의 방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는 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생각도 못하게 이 곳이 바로 대국실이었다. 아무도 문을 지키는 사람이 없어서, 나는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안쪽을 보았더니 이미 사람들이 한무리 서 있었다. 작은 대국장은 이미 사람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기자들은 이미 이것저것 가지고 대국장으로 진입했다. 어디가 더 좋은 위치인지 찾는 것같았다. 무서울 것도 없다. 그저 적당한 위치만 잡으면 된다. 평상시에 안경을 쓰지 않던 본인은, 이번에는 아예 안경도 가지고 왔다. 이것을 보다 확실히 보기 위해서이다. 처음에는 대국실을 자세히 관찰했다. 바둑판, 바둑알, 앉는 의자, 차탁자, 배경과 등불, 정말 무엇을 보아도 신기했다. 뭘보아도 즐거웠다. 조금있어면 여기서 결전을 벌일 고수를 생각하니, 마음은 기대로 부풀었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서, 후레쉬는 아마도 기사들의 눈에 자극을 줄 것같아서 끌까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왁자지껄한 소리가 문으로 다가왔고, 후레쉬가 터졌다. 다시 고개를 들어서 보니, 구리가 큰 사내아이처럼 빠른 발로 자기 자리로 가서 조용히 앉고 있었다. 그는 이런 열기있는 국면에 이미 익숙한 것같았다.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 속으로 큰 기사가 되는 것은 정말 쉽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가졌다. 기술이 뛰어나야 할 뿐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안정이 필요했고, 외부의 이런저런 간섭에도 스스로 제어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경기가 시작하면 바로 온몸을 집중해야 하고, 각양각색의 상대방을 상대하면서 자신의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여야 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 것인가. 이 때 한 기자가 한 마디를 내뱉았다. "구리. 화이팅!" 하하, 이것은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닌가. 그러나 구리를 보니, 여전히 아무런 표정없이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속으로 살기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마음 속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외부의 것으로 기뻐하지도 말며, 내부의 것으로 슬퍼하지도 말며, 마음을 고요하게 가지고, 일전을 겨룬다. 좋다. 구리.

 

이어진 하나의 에피소드는 이미 여러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한 중년여자가 바둑돌을 붙잡은 사건이다. 나는 현장에서 아주 자세히 보았다. 아마도 그녀는 이창호가 백을 쥔다고 생각했던 것같다. 구리가 이미 자리를 잡았으므로, 그녀는 구리의 반대편의 백돌을 한웅큼 움켜쥐고는 바둑판위에 쏟았다. 그러나, 그녀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돌을 쥐어서 구리가 백돌을 쥐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때로부터, 나는 일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약간은 불길한 징조가 느껴졌다고 믿는다. 본인을 포함해서. 이창호는 대국장에 들어서면서 마찬가지로 여러 사람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화로(華老, 화씨성의 나이 많은 사람. 여기서는 華以剛)가 대국개시를 선언했다 시작하고나서 사진찍는 것이 10여분간 허용되었고, 두 사람은 몇 수를 놓아갔고, 기자들이 충분히 찍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10분이 지난 후, 화로는 사람들을 대국실에서 나가도록 요청했다. 우리는 모두 연구실로 옮겨갔다.

 

연구실에서 나는 여러번 찾아보았지만, 고수들을 몇 사람 찾지 못했다. 모두 최종국에 관심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구리에 대하여 믿음을 확실히 가지고 있는 것인가? 어쨌든 나는 먼저 익숙한 얼굴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우리의 둔도(鈍刀), 전대(錢大, 전씨성의 첫째라는 뜻인데 錢宇平을 가리킴)였다. 마음 속으로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다. 그는 분명히 가장 먼저온 것같았다. 바둑판에 이미 적지 않은 돌을 놓고 있었다. 이 바둑에 미친 사람의 앞에서 그의 웃는 얼굴과 약간씩 떨리는 손가락을 보면서, 마음속에는 약간의 비애가 스쳐갔다. 나는 앞으로 가서 전우평이 바둑돌을 놓는 것을 보았다. 그의 돌 하나하나는 여전히 정석대로였다. 그는 인터넷과 아마추어기사들과 바둑을 많이 두었지만, 그의 바둑감각은 여전히 날카로왔고, 수법도 그대로였다. 국면에 대한 판단도 명확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가리키는 바둑의 요점은 모두 양대국자들의 실전에서 다투는 것으로도 입증되었다. 전우평은 옷을 아주 평범하게 입었고, 한번 바깥으로 나갔다가(아마도 화장실), 다시 돌아왔는데, 여전히 경비에 의하여 저지당했다. 그러나, 나는 처음 바둑을 보러 왔음에도, 방송실과 연구실을 수시로 드나들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우평은 자기의 자리에 앉아서 움직이지 않았다. 대국이 끝날 때까지.

 

다음으로 써야 할 사람은 마대수(馬大帥, 마씨성의 큰장수라는 뜻인데, 중국바둑팀의 감독을 맡고 있는 馬曉春을 말한다)이다. 처음으로 그를 보았는데, 나에게 준 이미지는 표(飄, 바람처럼 날리는 것)였다. 나는 그가 도대체 언제 연구실에 들어왔는지 보질 못했다. 그저 사람들이 한번 움직인다고 생각했을 때, 한 줄기의 흰 그림자가 사람들의 눈 앞을 스켜갔다. 가볍고 빨라서 자세히 볼 틈이 없었다. 나의 머리속에는 금방 답설무흔(踏雪無痕, 눈을 밟아도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경공의 수법), 수상표(水上飄, 물위를 바람처럼 나는 것), 이형환위(移形換位, 자리와 모양을 바꾸는 것)등 수십개의 단어가 떠올랐다. 마로(馬老, 역시 마효춘을 가리킴)의 국면에 대한 판단은 사람들의 분위기를 좌우했다. 중반에 그가 백돌이 유망하다고 말했을 때, 그 곳에 있던 사람은 듣고서 매우 편안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한국선수단에서 반면10집이라는 말을 듣고서, 마로는 금방 얼굴이 굳어지고, 다시 열심히 집을 세었다. 확인해본 이후 그의 얼굴은 아쉽다는 표정이 넘쳤다. 여러 사람의 분위기도 빙점까지 내려갔다. 승부가 이미 정해진 후, 마로는 가벼운 평상시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리고 완전한 상해말로 주변 사람과 얘기를 나누어었다. 한편으로는 한 친구와 바둑판에서 돌을 놓아보고 있었다. 구리의 죽은 돌을 선수로 살려버리자, 기뻐서 허리가 꺽으면서 웃었다. 마치 이러한 변화가 실제 대국에서도 그대로 벌어진 것처럼.

 

여기서는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나 바둑은 우리가 교류하는 수단이다. 나의 기력은 비록 매우 낮지만, 그래도 친구를 찾을 수는 있었다. 얼마되지 않아, 나는 두 명의 기우와 한편에서 바둑을 놓아보며, 변화를 같이 얘기하곤 했다. 모욱형(毛昱衡)은 언제인지 모르게 우리들의 바둑판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아마도 일찌감치 온 편일 것이다. 우리가 바둑돌을 놓는 것을 보고는 얘기에 끼어들었다. 우리는 함께 흑돌의 우상귀에서 살 수 있는지 없는지를 토론했다. 아무리 놓아보아도 모두 백돌이 죽는 것이어서 우울해하였다. 이 때 마로가 두번째로 연구실로 돌아왔다. 직접 우리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나는 일어서서 그에게 자리를 양보했고, 그가 돌을 놓는 것을 보았다. 모두 귀의 사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그러나, 그도 귀에서 사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백86은 아무래도 좀 늦었나 보다. 마로는 흑87을 보더니 아주 좋은 수라고 했다. 양변을 모두 보완하는 수라고. 이번에 다시 살펴보니 마로의 양복은 백색에서 흑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설마 지금 그는 흑돌을 응원하는 것인가?

 

김인(金寅)과 고토(後藤俊午)도 바둑판 앞에서 오후내내 앉아 있었다. 계속하여 하나 또 하나의 변화를 놓아갔다. 그리고 시종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 나중에 유사명(劉思明) 주임과 화로(화이강)도 토론에 참여했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아쉽게도 모두 일본어와 한국어여서 나는 그저 눈만 뜨고 멀뚱멀뚱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인지 기자석에 한 고인(高人)이 나타났다. 바로 노조(老曺, 나이든 조씨. 조훈현을 가리킴)였다. 나는 마음 속으로 경외심을 일으켰고, 급히 그에게로 다가가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노조의 몇 가닥의 백발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러나, 그는 어쨌든 즐거운 사람이다. 금방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미 몇몇 한국친구들과 내기를 했다. 나는 그들이 무엇으로 내기하는지는 몰랐지만, 그들이 내기에 건 것은 분명히 보았다. 100위안찌리 지폐와 한장의 한국돈이었다. 그들은 노트북 앞에서 둘러서 있었는데, 아마도 다음 한 수를 어디에 놓을 것인가를 놓고 내기하는 것같았다. 정답은 곧 나왔다. 보아하니 노조가 이긴 것같았다. 그는 아주 기쁘게 백위안짜리를 거둬갔다. 곁에 있는 사람은 한국돈을 가져갔다. 나는 노조가 두 팔을 들어 경축하는 것을 보았고, 아주 즐겁게 웃는 것을 보았다. 금방 주위 사람들도 감염되었다. 한 바둑팬으로서 그에게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아주 흔쾌하게 사진을 찍어주었다.

 

위에 든 촛점인물에 비하면, 박영훈(朴英訓), 이영호(李英鎬, 이창호의 동생), 조지림(曹志林, 중국의 바둑평론가)은 모두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적었다. 소박(小朴, 젊은 박씨. 박영훈을 가리킴)은 인상이 괜찮았다. 계속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만일 대이(大李, 큰 이씨. 이창호를 가리킴, 小李는 이세돌을 가리킴)가 졌더라도 계속 그렇게 웃고 있었을 것인지는 모르겠다.

 

대국이 끝났다. 모두 대국실로 벌떼처럼 몰려들어갔다. 구리 이창호 두 사람의 둘러쌌다. 복기는 아주 간단했다. 몇분만에 끝났다. 그 후 이창호가 몸을 일으켜 떠났고, 남은 구리는 기자들에게 겹겹이 포위되었다. 두 여기자는 한 명은 왼쪽, 한 명은 오른쪽에서 자리를 잡고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그 중간에 CCTV의 기자가 끼어들어서 구리가 전화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하였다. 나는 호기심을 가지고 어느 곳이 더 힘이 센지를 눈여겨 보았다. 그러나, 전화 저쪽 사람이 "문동(文棟, 중국 CCTV아나운서 袁文棟), 그럼 그렇게 하지"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니, 누군지 이해가 갔다. 그러니, 그 정도로 대단할 수밖에. 인터뷰를 마치고도 구리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구리는 자기가 조금 일찍 도착했다고 말했다. 시계가 5분정도 빨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왔으니 되돌아갈 수 없어서 그냥 들어왔다고 했다.

 

나는 마음속에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중년여자가 바둑돌을 집은 사건을 구리가 보게 되었는데, 이것이 하늘의 뜻인가. 여러 사람들이 많은 것을 물었다. 내가 원래 묻고 싶었던 문제가 몇 가지 있었는데, 구리가 피로해하고 억지로 웃음을 보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마음이 무거워졌고, 입가에 맴돌던 질문을 삼켜버렸고, 빨리 인터뷰를 끝내고 그가 편하게 쉴 수 있게 되기를 바랬다.

 

대이(이창호)에 대한 인터뷰는 여전히 열기에 넘쳤다. 시상실에서는 기자들로 한 겹을 둘러쌓다. 진정 "이기면 왕이요 지면 도적이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 때의 마로(마효춘)과 구리는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화정빈관을 나서니, 하늘은 이미 어두었다. 약간 차가운 밤바람이 나를 둘러쌌고, 내 생각을 파고들었다. 가슴가득히 기대를 안고 왔는데, 실망하여 홀연히 돌아가고 있다. 나는 무엇을 가져왔는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가져가는지도 모르겠다. 승부세계는 이처럼 잔혹한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사람을 홀리게 한다.

 

내년에 우리 다시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