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의 지방/북경의 어제

경유자(京油子), 위취자(衛嘴子), 보정부(保定府)의 구퇴자(狗腿子)

by 중은우시 2008. 3. 28.

글: 퇴사당(退思堂)

 

경유자(京油子),

위취자(衛嘴子),

보정부(保定府)의 구퇴자(狗腿子)

 

북경 뺀질이

천진 주둥아리

보정부의 개다리

 

북경토박이들에게는 이런 속담이 전해져 온다. 화북지역의 가장 대표적인 세 도시의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을 함축해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경(京)"은 북경성을 말한다. 명,청시대의 북경성은 북경의 성벽이내(지금의 2환로이내)를 말하는 것이다. 성밖을 나가면 각각의 지명이 있고, 더 이상 북경성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명청시대에 북경에는 행정구역을 따로 두지 않았다. 주부도현(州府道縣)의 편제가 없었다. 소송을 하려면 완평현(宛平縣)으로 가야 했다. 이리하여, 북경이라고 하면 북경성내만을 가리킨다.

 

"위(衛)"는 천진위(天津衛)를 가리킨다. 명성조 영락제가 북경으로 천도한 후, 안휘의 고향에서 북경을 보위(保衛)할 친병(親兵)을 데려와서, 천진위를 두었다. 현재의 용어로 말하자면 위수(衛戍)지구라는 정도의 의미이고, 병영이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다보니 천진의 지명에는 군대용어가 많다. 예를 들면, 군량성(軍糧城), 북대창(北大倉), 소참(小站), 남영방(南營房)등이 그것이다.

 

"구퇴자"의 "보정부(保定府)"를 보자면, 북경은 황제의 집이고, 천진은 북경의 동대문이라면, 보정은 북경의 남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화북평원상의 세 개 도시는 서로간의 왕래도 아주 빈번하였다.

 

[경유자]

 

"경유자"는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다. 글자 그대로 북경인들은 기름바른 것처렴 매끄럽다는 뜻이다.

 

북경은 수도이고, 황제, 왕공, 대신들이 사는 곳이다. 백성들에 있어서는 그들은 물론이고 그들 집의 일꾼들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재상집의 일꾼은 칠품관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위로부터 보자면, 황제는 말한마디로 사람을 살릴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황제를 위하여 일하는 것은 리스크가 있는 것이다.

 

관리의 집에서 일하는 경우를 보면, 관리가 가산몰수를 당하면, 왕왕 그 집안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같이 가산을 몰수당한다. 심지어 주인과 같이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래서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주인에게도 잘 보여야 하지만, 동시에 주인과 어느 정도 거리도 두어야 한다.

 

아래로부터 보자면, 누구의 주인은 그의 뒷배경이 된다. 속담에도 개를 때리려면 그 주인을 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어느 날 이웃집 사람이 권세가의 집안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그 이웃집사람과 원수진 일이 있다면, 주인의 세력을 이용하여 반드시 보복을 하려들 것이다. 그러므로, 북경에 사는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지나치게 하여 다른 사람과 원수지는 일은 피하는 편이다.

 

사회적으로 보자면, 거지라 하더라도, 개방에 들어가면 조직이 뒤를 받쳐준다. 기녀라고 하더라도, 언제 왕공의 총애를 받아서 배경을 가질지 모르는 일이다. 어제의 알거지가 오늘을 떨쳐일어나서 세력을 가질 수도 있다. 어제의 귀족이 오늘은 밥을 구걸할 수도 있는 것이다. 변화무쌍한 북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심계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누구와도 거리를 두고, 누구와도 지나치게 가깝게 지내지 않는다. 누구와도 원수지지 않는다. 줄을 잘못 잡았다고 생각되면 바로 바꿔 잡는다.

 

북경인의 매끄러움은 언어에서도 잘 나타난다. 북경의 언어는 세 가지 특색이 있다. 첫째는 문아(文雅). 북경토박이들은 욕이나 험한 말을 하지 않고, 구어도 잘 쓰지 않는다. 이것은 그들의 자질이 뛰어나서도 아니고, 그저 습관화된 것이다. 그래서 옛날 북경어에는 욕이 없고, 다른 사람을 비꼬는 말이 있을 뿐이다. 둘째는 말이 많다. 오해를 피하고, 말을 앞뒤가 맞게 하려다보니, 열정적으로 하여야 하고, 기운빠지게 말해서는 안된다. 그러다보니 말이 많아지는 것이다. 셋째는 다른 사람을 띄워주는 말이 많다. 다른 사람과 원수를 지지 않으려면, 북경사람들은 말하면서 항상 자기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올려준다. 북경에서 "닌(?)" 혹은 "탄(?)"과 같은 존칭도 북경인들이 만들어냈다.

 

북경사람들이 말하는데는 두 가지 특색이 있다. 첫째는 말을 우물거리면서 분명하게 하지 않는다. 외지인들은 북경말을 잘 못알아듣는 편이다. 그 원인은 '말하는 것같기는 한데, 분명하게 말하지 않기'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말을 바꾸기가 쉽다. "금방 내가 한 말은..."이라고 하면서 전에 했던 말을 설명하면 원래의 말은 이미 뒤바뀌어 버린 뒤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상대방이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빠진 것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둘째는 다른 사람을 욕할 때에도 더러운 말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욕하는 것인지 농담하는 것인지는 당시의 분위기를 봐서 이해하여야 한다.

 

설명이 필요한 것은 첫째, 모든 북경인이 뺀질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북경뺀질이는 북경사람들이 천변만화하는 환경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자연스럽게 형성된 특징이라는 것이다. 북경뺀질이의 언동이 역겨울 수도 있고, 멸시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북경사람중에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다른 측면으로 보자면, 진정한 북경토박이라면 큰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크게 사기당하는 사람도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의식적으로 평안한 것, 무사한 것, 안전한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의 생활습관에서 자기보호의식이 너무 강해져 버렸다. 무슨 일을 하든 앞뒤를 반드시 재어보고서야 한다.

 

[위취자]

 

천진은 북방의 중요한 상업부두이다. 여기서 발달한 것도 상업도시와 부두문화이다.

 

상업도시문화를 보자면, 거래를 하기 위하여, 짐나르는 일을 맡기 위하여, 고객을 설득해야 한다. 오랫동안 이러다보니, "천진사람들은 말을 잘한다"는 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게 되었다. 사람들은 과장하여, "천진사람들은 죽은 사람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한다. "위취자"라는 말은 이렇게하여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부두문화를 보면, 부두를 빼앗고 부두를 점령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는 종종 유혈과 무력이 필요하다. 구시대를 반영하는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많다. 한 사람이 자기 팔을 펄펄 끓는 기름에 넣고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그를 보고 졌다고 인정하고 도망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그 곳은 그의 것이 된다. 이것이 바로, "부드러운 사람은 강한 자를 무서워하고, 강한 자는 막무가내인 자를 무서워하고, 막무가내인 자는 죽음을 겁내지 않는 자를 무서워한다"는 원리이다. 그러나, 목숨을 거는 것은 댓가가 적지 않다. 누구도 목숨이 아깝지 않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주둥아리로 싸우게 된다. 그리하여, "천진 주둥아리"의 두번째 의미는 말싸움을 잘한다는 것이 있다. 가장 전형적인 것은 "집에 가서 형을 불러오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 원래 그는 형도 없고 외동아들인 것이다.

 

말장난을 잘하는 것은 천진말의 특징이다. 천진의 상성(相聲)이 유명한 것도 이런 이유이다. 천진사람들은 평소에 말을 할 때도 유머스럽고, 해학적이고, 웃긴다. 그래서 천진사람들이 상성으로 전국을 누비는 것이다.

 

[보정부의 구퇴자]

 

"보정부의 개다리"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구퇴자(개다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개다리"를 매국노로 해석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일본점령시기에 화북지구의 친일정부총사령부가 보정에 있었고, 보정사람들은 친일군, 특무등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보정사람들은 이 말을 듣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사실, "구퇴자"는 원래 "구퇴자(勾腿子, 다리걸기)"였다고 한다. 보정사람들이 씨름을 할 때 다리걸기를 아주 잘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술은 아주 무서웠던가보다. 그리하여 "보정부의 다리걸기(보정부의 구퇴자)"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출발해서 그 다음 말이 이렇게 이어지기도 한다: "보정부의 다리걸기도 백양전(白羊澱)의 수귀자(水鬼子)를 이기지 못한다"

 

그리고, 원래 보정부에는 무술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렇게 보정부에서 무술을 배운 후에 북경성으로 가면, (1) 황궁시위, (2) 무술교관, (3) 표국무사, (4) 길거리무술공연으로 약파는 사람, (5) 고관대작의 경비등을 하게 된다.

 

북경에는 왕공대신이 많아서, 집안을 지키는 경비가 많이 필요하다. 그때 경비들은 대부분 보정에서 왔다. 첫째, 보정에는 무술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 쉽게 구할 수 있었고, 둘째, 왕공대신의 경비가 모두 보정사람이면 서로간에 갈등이 생길 일이 적었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보기에, 주인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개다리"였다. 그리고 이들 "개다리"들은 스스로를 보정부에서 왔다고 하였으니, "보정부의 개다리"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보정부의 사람은 억울하게 친일파, 매국노로 욕을 먹어온 것이 된다.

 

사실, "경유자, 위취자, 보정부의 구퇴자"의 뒤에 이어지는 말이 중요하다. 그 말을 바로,

 

"열명의 경유자가 한명의 위취자를 당해내지 못하고,

열명의 위취자가 한명의 구퇴자를 당해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