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의 정치/중국의 대외관계

헝가리 총리의 성(姓)은 여진(女眞)

by 중은우시 2008. 2. 20.

글: 주학연(朱學淵)

 

필자는 헝가리민족의 원류가 여진족이라고 쓴 적이 있다. 헝가리의 민족은 Margyar(마쟈르)라고 하는데, 이것은 중국고대의 "말갈(靺鞨, Moge)", "물길(勿吉, Moji)", 혹은 청나라때 여진족의 성씨인 "마가(馬佳, Maghia)"를 의미한다. 직접적인 언어적 증거이외에도 대량의 헝가리 성씨는 중국북방민족의 족명을 쓰고 있다. 다만, 당시에는 거기에 "여진(女眞)"이라는 성씨까지 있을 줄은 몰랐었다.

 

"여진/여직(女眞/女直)"의 의미는 "돌궐(투르크)"나 "몽고(몽골)"보다 그 의미가 깊다. 이는 여진족이 여러차례 중원을 통치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중원민족과의 혈연관계가 깊기 때문이다. 삼황오제의 성씨는 '공손(公孫)' '고신(高辛)' '우순(虞舜)'인데, '우순'은 바로 민족명인 '오손(烏孫)'이고, 이는 여진의 핵심민족인 '애신(愛新)"이다. 여진족들은 자칭 "금족(金族)"이라고 하였는데, 현대적인 학명인 '퉁구스'는 돌궐어의 '구성(九姓)'에 해당한다.

 

'여진'은 '여직+n'이고, '여진/여직'의 발음은 '주아차/주리진(主兒/朱里眞, 발음은 주르처, 주리쩐)'이다. 서방학자들의 '여진/여직'에 대한 이해는 깊지 못하다. 다만, <<대영백과사전>>과 <<캠브리지중국사>>등의 서양저작에서는 '여진'을 모두 Jurchen(쥐르첸)으로 번역했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여진/여직'의 '여'를 발음하면서 여인의 여와 같은 발음을 쓰고 있으니, 서방학자들만 못한 편이다.

 

우연한 기회에 TV뉴스를 보다가, 헝가리의 총리 이름이 "Gyurcsany Ferenc'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헝가리사람들의 성명은 동양적인 전통에 따라 성이 앞에 오고 이름이 뒤에 온다. 그의 성은 'Gyurcsany'이고 이름이 'Ferenc'이다. 헝가리어에서 'cs'는 'ch'의 발음이 나고, 'gy'는 'j'의 발음이 난다. 그러므로, Gyurcsany는 쥐르차니(Jurchani)가 되는 것이고, 중국어로 옮긴다면, 主兒扯尼/朱里眞乙이 되는 것이다. 즉, 여진니(女眞尼)로 번역가능한 것이다. 헝가리총리의 성이 '여진'이라는 것은 헝가리민족의 선조가 동방에서 왔다는 것을 더욱 명백히 보여준다 할 것이다.

 

알바니아에도 성이 "여진"인 사람이 있다. 그는 Koci Xoxe라는 사람인데, 그 나라의 주요한 지도자였다. 1949년 6월전에 국방과 내부장관을 지냈다. 알바니아어의 x는 dz의 발음이므로 그의 이름은 '고치.조제'가 된다. 북방의 민족명으로 옮긴다면 "고차.여직(高車.女直)"이 된다.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알바니아인들은 많은 사람들이 오스만투르크제국의 군인후예이다. 그들의 가운데, '여직' 씨족은 돌궐민족을 따라 유럽으로 건너온 사람들이다.

 

Margyar족은 9세기말에 현재의 지역으로 이주했고, 나중에 기독교에 귀의한다. 지금까지도 헝가리는 천주교국가이다. 2세기후, 돌궐민족의 오스만투르크제국이 강성해지고, 이슬람교는 중근동과 발칸반도에서 급격히 확장한다. 이로 인하여 로마교황청과 유럽국가는 두려움에 떨게 되고, 십자군운동도 이로 인하여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헝가리는 십자군의 주요한 참전국이다. 동방에서 온 헝가리와 투르크민족은 각각 양대종교에 편입되어 서로 죽이는 형국이 된 것이다.

 

한자는 1음에 여러 글자, 1글자에 여러 음이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중국역사는 많은 언어적인 단서를 상실해버렸다. "여(女)"의 Ju/Qu발음은 이미 쓰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구(句)의 Ju음은 속음처럼 되어, 지금은 구천(句踐)을 모두 구천(勾踐)으로 읽고 있다. 여기에 '여진/여직'은 비교적 늦게 나타났으므로, 자고로 아무도 족명인 '규기/타근(冀/墜斤)', 인명인 '귤극/구천(橘極/句踐)', 지명인 "제기/구장(諸/句章)'이 모두 '여진/여직'의 동음별자(同音別字)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여진/여직'은 세계로 퍼져갔다. <<원사.지리지>>에 따르면, 테헤란의 동북쪽에 있는 Gorgan성 주변에, '주리장(朱里章)'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한서. 서역전>>에서 기록한 "조지국(條支國, Joji 혹은 Juji)"이 소재한 곳이다. 이곳의 서쪽이 바로 '서해' 즉 '이해(耳海)'인데, 중세기 아랍의 지리서에서는 Jurjan해라고 불렀다. '조지' '주리장'과 Jurjan은 모두 페르시아에 온 '여진/여직'민족이 남긴 흔적이다.

 

비록 Gyurcsany가 헝가리의 대성은 아니지만, 모든 작은 도시에 몇몇의 Gyurcsany성을 가진 집이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있는 Gyurka, Gyurki, Gyurko, Gyuricza, Gyurkovics등도 자주 보인다. 그중 Gyurko은 <<요사>>에 나오는 씨족명인 "여고(女古)"이고, Gyuricza는 <<몽고비사>>에 나오는 "주아차"이고, Gyurkovics는 슬라브화된 "여고유기(女古維奇)'이다. 필자의 생각으로 '여고'는 바로 중국전설에 나오는 '여와/여왜(女)'일 것이다.

 

<<요사.국어해>>를 보면 '여고는 금(金)을 말한다'고 한다. 북방민족의 언어는 '알타이어'로 귀납되는데, 그들의 '금(金)'이라는 글자는 모두 일치한다. 몽골어의 '안타이/알타이', 돌궐어의 '아르텅/아르등' 여진어의 '아이신/안신/안추' 멀리 유럽에 있는 헝가리어의 arany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여고'라는 것은 거란어의 '금(金)'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여진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역사상 당나라에 진압된 말갈은 여진족이다. 나중에 거란민족이 요나라를 건국하면서 정복당한다. 거란은 몽골계민족이다. 요나라는 많은 다른 민족을 통치하였는데, 여진의 완안부 추장인 아구타가 요나라를 무너뜨린다. <<요사>>에 기재된 족명이 아주 많은데, 소위 '여고는 금을 말한다'고 되었으므로 스스로 금족으로 칭하고 '금나라'를 세우게 되는 것이 여진족이다.

 

몽골어의 족명에는 자주 '고/골/흘(古/骨/紇, gu 혹은 ghu)'라는 꼬리가 붙는데, 한자의 "국(國, gu)"도 아마 여기서 나왔을 것이다. 상고시대에는 부락이 즉 국가였다. '몽고(蒙古)'는 바로 '몽국(蒙國)'이었을 것이고, '회흘(回紇)'도 '회국(回國)'이었을 것이다. 서아시아사이 기재된 남아시아초원의 Kurtrighur은 바로 고차국(高車國)이고, Utrighur는 바로 '올자국(兀者國)'이다. 그러므로, <<요사>>에서 '여진'을 '여고'라고 한 것은 바로 '여고/여왜'이고 자연히 '여국(女國)'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직/여진'은 어디에서 왔는가? 씨족의 씨(氏)의 옛날 발음은 '직/지/길(直/支/吉, Ji/dji/dzi)'이다. 퉁구스씨족명에서 '여직', '월지(月氏)', '물길(勿吉)'등은 모두 이 음을 꼬리로 한다. 사실 '여직'은 바로 '여씨'이고, '여진'은 바로 '여씨+n'이다. 상나라의 황족은 '자(子)씨' 이고, 주나라의 황제는 '희(姬, ji)'씨인데, 아마도 그들은 모두 퉁구스씨족의 '씨'를 딴 것이고, 선비-몽골혈족의 '국'을 따르지 않은 것일 것이다.

 

'여진/여직'의 몽골식 족명인 '여왜'는 전설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반대로 '몽고'민족의 퉁구스식 이름은 '맹고자(萌古子)'이다. <<후한서. 서역전>>에는  한 족명이 있는데, "몽기(蒙奇)'이다. 헝거리의 성씨에는 '여진(Gyurcsany)'와 '여고(Gyuko)'가 있을 뿐아니라, 몽고어의 '여진'인 '주아차(Gyuicza)'도 있다. 이는 동방민족의 음이 변천해간 것을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다.

 

투르크어(돌궐어)의 '구(九)'는 tughuz이다. 돌궐어로 '여직/여고'민족이 '퉁구스'이고 '구성지족(九姓之族)'이 된다. <<당서. 서역전>>에서는 "세상에 구성이 있는데 모두 씨를 조무(照武)로 한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조무'는 'Ju-ghu'로 '여고'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구성이 있는데,모두 여고이다'라는 말이다. 중국역사상 한자족명은 여러가지로 쓰이지만, 만일 한자의 언어장애를 돌파하지 못한다면, 동방인류의 역사도 단서를 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필자는 '희(姬)성'이 '퉁구스/구성'혈연의 성씨라는 것을 논증한 바 있다. 그러므로' 희성'의 주나라부락은 '모두 조무씨이다' 이런 추측은 강남의 '오(吳)'나라 국명에서도 논증된다. <<사기. 오태백세가>>에서는 오태백과 동생인 중용이 모두 주태왕의 아들이고, 계력의 형인데, 계력의 아들인 창이 현명하므로, 왕위를 형만의 땅을 버리고 강남으로 가서 '구오(句吳)'를 건립했다고 되어 있다. 사실 '구오'는 바로 '소무'이고, '여고'인 것이다. 주나라와 '구/소/녀'는 '오'의 '무/왜/고'와 모두 같은 음이나 가까운 음이다. '주'와 '오'는 모두 단음절화된 '여고/여왜/소무/구오'인 것이다.

 

필자는 '구(句)'의 음이 Ju라고 본다. 현재 강소성의 '구용현(句容縣)'도 '구'를 'Ju'로 읽는다. 흉노열전에는 족명인 '구주(句注)'를 '저거(沮渠)'라고 하였는데, 이로써 보더라도 '구'의 발음이 Ju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진/여직'과 '여고/소무'가 모두 '구성의 나라'이고, '여'와 '구'가 같은 음을 나타낸 서로 다른 한자이므로, '여직'은 '구씨(九氏)'가 되고, '여고'는 '구국(九國)'이 된다. <<예기. 문왕세자>>에서는 '서방에 구국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새로 출토된 전국시대의 초간(楚簡) <<용성씨>>에서도 문왕이 '구방(九邦)을 평정하였다는 것이 나온다. 필자는 '구국/구방'은 바로 섬서/감숙일대의 '구성'부락이지, '9개의 나라'는 아니라고 본다.

 

고대 중원인들의 이름은 북방의 족명을 많이 따왔다. <<사기. 은본기>>에 기재된 사람이름인 '여구/여방(女鳩/女房)'은 바로 '여진/여와+n'인 것이다. 또 다른 인명인 '구후(九侯)'는 바로 '여와/소무/구오'인 것이다. '구후'에 관하여, <<사기집해>>에서는 '귀후(鬼侯)라고도 한다'라고 되어 있는데, '귀'의 옛 발음은 Ju이므로(현재 강소지방의 발음도 동일하다), '구(九)'도 또 다른 대체어이다. '구/녀/귀'는 동음이다. 이렇게 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구국/구방/구후'와 '여진/여고/여와'이외에, 중국역사에 기재된 "저거(沮渠)", "구주(句注)", 조지(條支)", "구지(仇池)", "규기", "구자(龜玆)", "귀외(鬼)", "귀방(鬼方)", "귀곡자(鬼谷子)", "귀력적(鬼力赤)"등등도 면모를 일신한 씨족명이나 인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상고시대의 족명에 대한 의미는 점차 상실하면서, 한자의 뜻만 사람들에게 남겨지게 된 것이고, 그 뜻으로 해석하게 된 것이다.

 

<<위서. 토혼곡전>>에서 얘기하는 "북에는 여왕국(女王國)이 있는데, 여(女)가 위주이다"라는 것들이 그러한 예이다. 사서를 편찬하는 사람들까지도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뒤에다가 "사람들이 알지는 못하고 그저 전해들은 것이다"라고 썼다.

 

티벳어의 강방언지역은 옛날에 "소비/상웅(蘇毗/象雄)"이라고 불렀는ㄷ, "손파/양동(孫波/羊同)"이라고도 불렀다. 소비는 티벳동부와 북부의 창도, 나곡지구를 포함하고, 상웅은 일찌기 소비의 치소가 있던 곳이다. 나중에 자립한 후, 티벳서부의 아리지구로 가게 되었다. 강파장족은 서강민족이 원류이고, 그들은 퉁구스의 혈통을 지니고 있다. 그곳에서 유행하는 번교는 퉁구스민족의 샤먼교이다. 그리하여, <<신당서. 서역전>>에는 "동여국(東女國)"에 대한 기재가 있는데, 그들은 퉁구스조상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동녀는 소벌자라구저라라고도 하는데, 강족의 별종이다. 서해에 여인이 있어 스스로 왕이라 하였으므로 구별하기 위하여 '동녀'라고 하였따. 동여는 토번, 당항, 무주와 접하였고, 서로는 삼파하, 북으로 우전과 마주하며, 동남은 아주나녀만, 백랑이와 접한다. 동서로 걸어서 9일이 걸리고, 남북으로는 20일이 걸린다. 80개성이 있고, 여자가 군왕이며, 강연천에 거주한다. 바위가 험하고, 남으로 약수가 흐러며 가죽을 짜서 배로 만들었다."

 

'삼파하'는 당시 '손파국'이고, '북으로 우전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은 아리의 카시미르지방이고, '무주'는 사천 아바강족장족자치주의 옛이름이다. '백랑이는 대소금천일대에 스스로 '루랑'이라고 칭하던 고대부락이고, '아주나녀만'이라 함은 오늘날 이족인 '과과'이다. 소위 '루랑/과과'는 바로 북방의 씨족명인 '유연(柔然)/유유'이다. <<신당서>>에서는 '여진/여고'를 여자들이 사는 나라로 뒤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이렇게 쓴 것은 근본적으로 근거가 없다. 사람들이 장족의 '일처다부' 혹은 운남지역의 '주혼(走婚)'제도를 가지고, 그 흔적이라고 설명하나 이는 정확하지 않은 견해이다.

 

'서해'는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이해'를 말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 주변의 '안식(파르티아)', '조지' '대진(大秦)'은 모두 퉁구스계열이다. 중세기에 아랍인들이 이해를 '여진해'로 부른 것도 이해가 간다. '서해에도 여자가 스스로 왕이라 하였다'는 것은 바로 '이해' 부근의 여진들이 나라를 세운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역사상 '인도'는 현대의 인도와는 다르다. 아프간 경내의 힌두쿠시산 이북에 몽골인들이 우세한 중앙아시아를 말한다. 힌두쿠시이남의 캐시미르를 포함한 지방은 고대에도 인도에 속하였지만, 지금은 지리적으로 남아시아로 부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몽골인종은 아주 오래 전부터 남아시아지역을 침입하였다.

 

동서방 역사에 모두 나오는 '새종(塞種)'민족은 파미르고원 이남에도 약간의 정보를 남기고 있다. 그들은 중앙아시아에서 일찌기 월지, 오손민족과 투쟁하였다. 그런데, '새종'이 어느 족속에 속하는지에 대하여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사람은 몽고인종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인도유럽인종이라고 한다. <<수서. 여국전>>에는 캐시미르지구의 '여국(女國)'에 대하여 적고 있다. 이는 적어도 '새종'중 일부분은 퉁구스-여진부락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여국(女國)은 파미르고원이남에 있다. 그 나라는 대대로 여자가 왕이다. 왕의 성은 소비(蘇毗)이고, 자는 말갈(末鞨)이며, 20년간 재위했다. 여왕의 남편은 금취(金聚)라고 하는데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 국내의 남자는 오로지 정벌을 업으로 삼는다."

 

여기의 '여국'은 옛이름이 '발률(勃律, Baltistan)'이고 오늘날에도 소티벳이라는 별명이 있는 곳이다. 당나라때 발률이 토번에 정복되었으므로 현지주민은 토번화해서 지금은 티벳족이다. 사람이름인 '소비' '말갈' '금취'는 북방민족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

 

서장의 아리지구와 인도가 점령한 캐시미르지역은 서로 붙어 있다. 지금  그곳에는 사람이 적게 살고 있는데, 고대에는 아주 번성하였다. 곳곳에 동굴이 많다. 그곳의 고대주민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나중에 어디로 갔을까? 고증할 수가 없는 일이다. 도로를 닦으면서 점차 대량의 암각화를 발견하게 되는데, 대부분이 북방민족의 특색을 보여준다.

 

네팔에는 Bhotiya, Marcha, Magar(白狄, 馬佳, 靺鞨)등의 족속이 있는데, 오늘날 Magar는 인구가 170만으로 네팔에서 가장 큰 소수민족이다. 이들의 퉁구스족명으로 볼 때, 현지를 '여고/여국'으로 불렀던 것도 이해가 간다.

 

1620년대이후, 유럽천주교의 전도사들은 히말라야산을 통하여 아리지역에서 전도활동을 했다. 그들은 티벳의 언어, 역사, 종교, 민속을 배웠는데, 이것이 유럽에서 티벳학의 시초이다. 1830년대, 고향이 루마니아의 트랜스바니아인 헝가리학자 Alexander Csoma, 1784-1842)는 아리로 왔고, 라다크의 어느 라마교사원에서 4년간 거주했다. 그리고 평생을 인도에서 티벳문화연구에 바쳤다. 1834년에 캘커타에서 <<티벳-영어사전>>과 <<티벳어문법>>을 편찬했다.

 

Csoma의 연구를 촉진했던 원인은, 그가 헝가리민족의 조상이 동방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티벳에서 조상을 찾고자 했다. 헝가리와 여진민족은 혈연과 언어에서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다. 티벳족도 북방민족의 피를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