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미상
중국의 5천년역사를 되돌아보면, 농민의 난이 아주 많았다. 진승, 오광으로부터 황건적까지, 양산박에서 이자성, 홍수전에 이르기까지, 사회하층의 인민들은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어느 한 왕조도 농민의 난으로 개창된 적이 없다. 비록 이자성이 이끄는 농민군이 명나라를 대체하기는 했지만, 일시적이었고, 결국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엄격한 의미에서 본다면 실패한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때문에 농민의 난은 결과를 얻지 못하였는가? 아마도 아래의 몇 가지 이유때문이 아닐까 한다.
첫째, 망본축리, 소부즉안(忘本逐利, 小富卽安)
근본을 잃고 이익을 쫓으며, 조그마한 부를 쌓으면 안주한다.
농민의 난의 원래 의미는 조정의 잔혹한 압박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고, 하층인민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형세가 조금만 좋아지면, 농민군의 지도자들은 근본을 잊어버리고, 천하창생을 위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백성의 고혈을 짜내고, 부호들의 재산을 빼앗는다. 나중에는 백성들이 농민군을 관군보다 더 무서워하게 되니, 농민군이 인심을 잃고 실패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태평천국이 실패한 주요한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양산박에서 반란을 일으킨 경우에도 이고을 저 마을에서 무수한 돈과 양식을 거두어들이는데, 그 이후에 백성들을 구휼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고, 그저 '사나이'들이 술을 마시고 돈을 나눠가졌다는 얘기밖에 없다. 엄격한 의미에서 본다면 양산박은 농민의 난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그러다가 결국 흐리멍텅하게 혼군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사업미경, 내부분열(事業未竟, 內部分裂)
사업을 다 이루기도 전에, 내부가 분열한다.
농민군의 내부는 아주 복잡한 인간관계로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두령들의 세력강약, 능력고저 및 외부의 이간책에 의하여 내부의 단결력이 약화되고, 농민군의 칼끝이 무뎌지게 되거나, 직접적으로 농민반란의 실패로 귀결한다. 진승오광이 그 예이고, 홍수전과 양수청의 갈등이 그 예이다.
셋째, 맹목지휘, 의기용사(盲目指揮, 義氣用事)
맹목적으로 지휘하고, 기분에 따라 일처리를 한다.
농민반란이므로 지도자들도 농민출신이며, 여하한 지휘능력에 대한 교육이나 훈련을 받은 바가 없다. 그들의 적수는 전과가 확대됨에 따라 계속 바뀌게 되고, 계속 승급된다. 마지막에 나타나는 것은 고위관료이거나 당대의 명장이 된다. 이런 노장들은 병법에 달통하고, 오랫동안 전장터를 누빈 사람들이다. 한편으로 싸우면서 한편으로 배워나가는 수련의같은 농민군의 상대가 아닌 것이다. 이런 상황하에서 농민군의 지도자들은 분을 참지 못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로 명령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이런 반란은 처음에는 순조롭다가 나중에 돌연 막혀버리게 되는 것이다.
넷째, 실력현수, 고계부족(實力懸殊, 估計不足)
실력차이가 뚜렷하고, 계책이 부족하다.
일반적으로 관병은 평상시에도 적지 않게 훈련을 하게 되고, 가끔은 비적토벌등을 하게 되어 개인능력과 전술에서 일정한 기초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반란부대는 그저 용(勇)감함 하나로 버티는 것이다. 동시에 관병은 물자조달이나 장비에서도 그들보다 한단계 위이다. 심리적으로 반란군은 비록 숭고한 이상이 있으나, 그들 자신도 잘 알고 있듯이 자기는 무명소졸이므로 혁명이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큰 기쁨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관병들은 상금이나 승진을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천자를 보위하는 것은 정의의 편이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농민군이 보기에는 많지만, 전투력에서는 정규군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다섯째, 지구작전, 결핍규획(持久作戰, 缺乏規劃)
지구전을 펼치게 되면 계획이 없다.
통상적으로 반란군은 처음에는 거리 멀리 생각하지 못한다. 그저 도저히 참을 수 없기 때문에 깃발을 들고 일어선 것일 뿐이다. 계속 변화하는 형세에, 농민군의 두령들은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들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란은 성공해야 하고 실패해서는 안되는 것이고, 대체해야만 성공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죽는 길 뿐이다. 왜냐하면 정부는 절대 반란을 일으킨 백성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조를 뒤엎는 목적을 달성하려면 장기간의 전투를 거쳐야만 가능한 것이다. 이는 전체 과정에 정교한 계획과 안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병사의 모집부터 정치공작까지, 제도의 건립에서 상벌의 기준까지 물자의 조달에서 전략의 수립까지 훈련에서 전투까지...아주 방대한 업무이다. 하나의 단계라도 잘 처리하지 못하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하여 많은 반란은 조정에 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에게 패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으로 성공한 반란사건을 보자, 이연이 수나라를 멸망시킨 것이든, 조광윤이 송나라를 건립한 것이든, 영락제가 나라를 빼앗은 것이든 모두 각측면에서 유리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었고, 여기에 정확한 판단과 예견으로 황제보좌에 오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주변의 많은 기업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같은 업종에서, 같은 지역에서, 같은 환경에서 있지만, 발전의 길은 서로 천양지차이다. 그 중에 실패자들에게서 위에서 든 몇 가지 요소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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