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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악비)

악비(岳飛)의 가정생활

by 중은우시 2007. 12. 6.

 

악비는 중국에서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민족영웅이다. 그의 혼인가정생활에 관하여 <<악비전>>에서 약간의 소개가 있지는 하지만 많은 부분들이 역사적인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근거없이 소설적인 이야기를 가미한 것이다. 사학자들은 20세기에 악비의 혼인가정생활에 대한 연구를 한 바 있으며, 악비의 진실한 가정생활에 단면을 보여주었다.

 

악비는 1103년에 출생하였다. 송휘종 숭녕2년이었다. 이해의 2월 15일 저녁, 그는 지금의 하남성 안양시, 당시는 하북서로 상주 탕음현 영화향 효제리의 농가에서 고고의 성을 울리면서 태어났다. 어릴 때 이름은 오랑(五郞)이었고, 나중에 악비로 이름하면서 자를 붕거(鵬擧)라 하였다.

 

악비의 부친은 악화(岳和)라는 사람이다. 모친은 요씨(姚氏)이다. 요씨는 악비를 낳을 때 이미 36,7살었으므로,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나이든 임산부였다. 악비는 개략 4명의 형이 있었던 것같다. 그러나 모두 요절했다. 이로 인하여 그의 부친과 모친이 받았을 타격은 짐작할 만 할 것이다. 그 이후에 요씨는 악비와 악비의 동생인 악번(岳)을 연이어 낳았다. 이로써 오랫동안 아들을 잃고 후손을 두지 못한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악비는 최소한 누나가 한 명 있었던 것같다. 그러나 역사서에 악비의 여형제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악비의 첫번째 결혼은 16세때 이루어졌다. 당시의 규정에 따르면 막 결혼연령에 도달하자마자 결혼한 것이다. 처는 유(劉)씨성의 여자였다. 악비의 가정환경이 빈한하였으므로, 아마도 유씨도 일반적은 농민의 딸이었을 것이다. 결혼한 다음 해에 이들 어린 부부는 첫번째 아들인 악운(岳雲)을 낳는다. 다시 7년이 지나서 그들은 두번째 아들인 악뢰(岳雷)를 낳는다. 악비와 유씨의 혼인은 개략 8년간 지속되었던 것같다. 나중에 악비가 장기간 외지에서 병역에 종사하고, 집안이 가난한데다, 탕음현이 금나라군대에 점령되면서, 유씨는 최종적으로 두 어린 아들을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개가했다. 당당한 민족영웅이 이처럼 비참한 때도 있었던 것이다.

 

악비의 두번째 결혼은 26세 내지 27세때 이루어졌다. 신부는 그보다 2,3살이 많은 여인이었는데, 이름은 이왜(李娃)였다. 이왜는 전형적인 현모양처였으며, 그녀는 위로는 시어머니인 요씨를 모시고, 아래로는 유씨소생의 악운, 악뢰를 잘 길러서, 악비가 전장터에서 싸우는데 집안걱정은 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었다. 이외에 그녀는 악비와의 사이에 악림(岳霖), 악진(岳震), 악애(岳靄, 나중에 악정-岳霆-으로 개명)등을 차례로 낳았다. 이리하여 악비의 악씨집안은 후손이 풍성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악비는 나중에 금나라와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되는데, 이왜의 후방에서의 지원이 큰 역할을 했을 것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이왜는 75세까지 살았고, 1175년 강주에서 병으로 사망한다.

 

악비는 두 차례의 혼인을 겪었지만, 그의 일생을 살펴보면, 혼인생활측면에서는 매우 엄격했었다. 그의 시대에 권세가 있는 사람이라면 처첩을 많이 두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와 동시대의 장수들인 한세충, 유광세, 장준, 오개등이 모두 그러했다. 특히 오개는 주색을 좋아하여 결국은 목숨까지 잃는다. 유일하게 악비만이, 가장 중요한 장수가 된 이후에도 농민자제의 본색을 살려, 생활상으로 아주 검박하였고, 첩을 들이거나 하는 방종한 생활을 하지 아니하였다. 한번은, 오개가 특별히 악비를 위하여 예쁜 여자 하나를 보내주었다. 그러나, 악비는 쳐다보지도 않고 돌려보냈다. 그는 "국가의 치욕을 아직 씻지 못하였고, 성상은 잠도 편안히 자지 못하는데, 어찌 대장으로서 편안함과 즐거움을 추구할 것인가?"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악비가 권력을 잡은 이후에도 이러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은 아주 감탄할만한 점이 있다.

 

악비는 39세까지 살았다. 1141년, 즉, 송고종 소흥11년 12월에 악비는 송나라정부에 의하여 막수유(莫須有,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의미로, 당시 재상 진회가 악비의 죄에 대하여 반드시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이라고 하였다는데서 유래함)의 죄명으로 죽음을 받는다. 임종때, 악비는 몸에 옥패를 하나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사학자인 왕증유 선생의 주장에 따르면, 이 옥패는 바로 이왜가 그에게 준 기념품이라는 것이다. 이는 처의 남편에 대한 일관된 사랑과 남편의 처에 대한 죽을때까지 이어지는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점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