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사람들이 악비를 민족영웅으로 떠받드는 데에는 그가 분명히 금나라를 물리치고 승리를 가져다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이것은 웃기는 이야기이다. 전쟁은 생명을 건 도박이다. 그가 승리할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매우 적었을 것이다. 만일 그가 불행하게도 한택주와 같이 북벌에 실패하였다면, 아마도 남송조정은 그의 머리도 금나라에 보내어 정전의 예물로 삼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영웅이라는 말도 듣지 못했을 것이고, 아무도 그를 동정하거나 떠받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매우 적절한 때에 죽었다. 송고종이 그를 그렇게 만들어 준 것이고, 그에게 후세인들로부터 영웅으로 추앙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던 것이다.
앞에서 이미 얘기했지만, 악비는 그가 생활하던 시기에는 평가가 그다지 높지 않았다. 나중에 부풀려져 현재의 이런 정도에 이른 것이다. 그의 "악가군"이라는 칭호는 군기가 엄정하고, 굶어죽더라도 노략질을 하지 않으며, 얼어죽더라도 집을 철거자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승진하기 전에 종택의 수하에서 통제라는 직을 가진 적이 있는데, 그가 이끄는 부대는 다른 부대와 마찬가지로 백성을 노략했다. 악비가 죽었을 때, 아무도 그를 위해서 나서서 말해주지 않았따. 반대로 그의 수 많은 동료들은 모두 진회의 편에 붙어서 그를 모함했다. 단지 한세충만이 옛 정을 생각해서 한마디 했을 뿐이다. 이로써 볼 때 당시 그의 지위는 그다지 숭고한 것이 아니었고, 이러한 상황은 한택주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다른 것은 그는 아직 전쟁터에서 머리가 터지도록 싸워서 피를 철철 흘리기 전에 적절한 시기에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교적 완벽한 이미지를 남길 수 있었고, 후세인들이 그를 억울함을 풀고 조작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는 것이다. 그가 죽은 지 수십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정치적인 필요에 의하여 남송왕조는 그의 억울함을 풀어줬다. (그 당시에는 주전파가 득세를 하여, 장준의 북벌선전을 강화하기 위하여 그의 억울함을 풀어줬는데, 우스운 것은 그 북벌은 실패한다는 것이다)
남송때 소위 "애국시인"(그냥 입으로 떠들기만 좋아하지, 아무런 진짜 재주는 없는 사람들)은 부지기수였고, 그들의 시에는 남송 장수와 군사상의 승리에 대한 찬송과 서술이 많았다. 채석기대첩등 전투에 대한 것, 장준, 한택주등의 북벌에 관한 것, 그러나, 악비에 대하여 언급한 사람은 별로 없다. 특히 유명한 신기질(辛棄疾)의 경우가 그렇다. 그가 남쪽으로 갔을 때 악비는 이미 명예회복되었다. 이치로 말하자만 이 대스타를 몰랐을 리는 없다. 그러나, 신기질의 시가에서 조조, 유비, 손권, 염포를 들어 이렇게 저렇게 떠받들었지만, 악비에 대하여 언급한 것은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 이것은 무엇을 얘기하는가? 악비는 그가 살던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중시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단지 보통의 무장에 불과했다는 것이며, 나중에 후세인들이 정치적인 필요에 의하여 부풀려지고 조작된 것이라는 것이다.
몽고인들이 중원을 침입하였을 때, 유목부락의 반원시적인 사회형태로 인하여 충정이라는 성숙된 봉건사회의 사상관념은 가지고 있지 않았고, 금나라와 송나라등의 나라를 멸망시키는 과정에서 대량의 피정복국가의 문무관리들이 순국하는 것을 보고는 매우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즉시, 이러한 사상관념은 천하를 얻은 후에 봉건국가정권을 공고히 하는데 필수불가결한 통치수단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그래서, 원나라때부터 의식적으로 악비, 문천상을 부풀리고 조작하여 황제에 충성하고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을 칭송하기 시작한다. 이건 비교적 성공했다, 원나라가 멸망한 후, 마찬가지로 많은 몽고인과 한인 관리들은 죽음으로써 보답을 한다. 충열을 따지자면, 문천상과 같은 유형과 비교하여 더욱 강열하고 충의로운 경우가 많았었다. 유명한 것은 코고티무르(왕보보), 채자영, 진우정, 바자와라미등의 사람이다. 주원장도 코고티무르의 불굴의 모습에는 찬탄을 금치 못하였다. 그래서 그를 상우춘도 비교할 수 없는 천하무쌍의 기남자라고 부른다. 채자영은 주원장이 계속 그의 마음을 잡고자 하나 결국 죽을 지언정 굽히지 않겠다는 정신에 설복당하여, 그를 몽고로 보내주게 된다. 그리고 진우정, 윤극인등의 사람은 명나라에 항복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영웅적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많은 사람들은 온 집안이 자살하기도 하였따. 문천상의 모습에 비하여는 훨씬 강렬하다. 이런 사람들을 민족영웅으로 부를 수는 없는가? 당연히 현재의 사람들은 이들을 민족영웅으로 부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족정권을 위하여 충성을 다해 죽은 것이 아니지 않은가? 비록 원나라가 한화된 정권이기는 하였지만, 현재의 한족들은 원나라를 중화민족역사의 일부분으로 넣기는 원하지 않고 있다.
이런 것은 사실 무슨 민족대의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 이런 죽음으로 얻은 "충의지사"라는 이름은 뼛속까지 모드 충군보국이라는 봉건적인 사상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악비도 좋고, 문천상도 좋고, 코고티무르도 좋고, 진우정, 채자영도 좋다. 본질은 모두 같은 것이다.
만일 악비를 억지로 민족영웅이라고 한다면, 그렀다면 문천상은 어떤가? 솔직히 말하면 정치적인 피에로에 불과하고, 명성이나 얻고자 하는 거짓군자에 불과하다. 더 말하지 않겠다. 많은 사람이 알 고 있을 것이다. 그가 한편으로 "충의지사"의 역할을 하면서 원나라에 항복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을 때, 한편으로는 그의 동생으로 하여금 원나라의 관리가 되도록 하였으며, 전집안의 후손이 끊이지 않도록 안배했다. 왜그런가? 왜냐하면 그의 동생은 송나라의 관리를 지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무슨 "기개" "대의"와 같은 꺼리는 사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송나라 관리였고, 충신은 불사이군이므로, "죽어도 굽히지 않는" 역할을 하여야 했던 것이다. 이것은 민족대의류의 쓸데없는 헛소리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완전히 충군의 사상이라는 것은 시골 아낙네가 "닭에게 시집가면 닭을 따르고, 개에게 시집가면 개에 따르라"는 것과 비교해서 별로 더 고상하지도 않은 것이다. 그는 쇼를 아주 잘 하는 사람이었다. 만일 진짜 견결하게 죽음으로써 순국할 결심을 하였다면, 벽에 머리를 박든지, 굶어죽든지 했으면 되는 것이다. 하필 원나라 조정의 감옥속에서 수년간이나 지내면서 시를 읊고, 글을 지었다. 그가 썼다는 유명한 문구
인생자고수무사(人生自古誰無死) 사람이 살아 그 누가 죽지 않으리
유취단심조한청(留取丹心照汗靑) 붉은 마음을 남겨 역사에 빛내리
이것은 분명히 후세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쓴 것이고, 공연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원나라 조정이 계속 그와 같이 놀아줄 인내력이 없어졌을 때, 그를 죽여버릴 수밖에 없었다. 역사는 그에게 이름을 날릴 기회를 주었고, 그는 그 기회를 잘 잡았던 것이다.
원나라는 한족이 처음으로 북방유목민족에게 철저하게 정복된 때였고, 한족들의 심리에 주는 충격은 매우 컸다. 그 이후 한족은 외족의 침략에 대한 두려움이 예전에 볼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자신감을 크게 잃어버렸으며, 갈수록 자신이 없어지자, 갈수록 스스로를 과대포장하는데 익숙해졌다. 그래서 악비, 문천상을 민족영웅으로 포장해서 선전하는 것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금사>>와 <<송사>>는 모두 원나라때의 탈탈(脫脫)이 편찬한 것이고, 원래는 객관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자세히 두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는 것이, 두 역사의 품격이 다르고, 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니다. 명백하게 송나라에 치우쳐있고, 송나라의 금나라에 대한 항거는 미화하고, 근마라의 전적은 그저 언급만 하고 지나간다. 왜냐하면 금나라가 송나라보다 먼저 멸망했으므로, 원나라때 사서를 편찬한 사람은 대부분이 한족이었고, 그래서 송나라가 금나라에 항거한 것은 미화하고 과장하는 것이 많았다. 종필이 "악비가 500의 기마병으로 우리의 10만대군을 쳐부셨다"고 말했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은 전부 날조이다. 머리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허황된 말을 믿을 리가 없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당당하게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송사에서 송나라 군대는 일당십으로 싸우고, 수백수천명으로 적 수만을 쳐부셨다는 것들이 있는데, 전부 거짓말이다. 북방유목민족의 군대의 전투력은 모두 중원한족의 군대보다 훨씬 강했다. 여진인은 사람수가 한족보다 훨씬 적었었는데, 어떻게 이런 전투결과가 나올 수 있었겠는가? 명나라에 이르러, 다시 소설들이 나오면서 다시 한번 과장되었다. 한번 부풀려 조작하면, 사람들이 모두 우리는 천하무적이고 싸우면 다 이기고, 한번 북벌을 했으면 그냥 천하를 통일시켰을텐데라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소위 악비정신은 사실 좌경모험주의이다. 그가 북진을 할 능력이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가 소수의 군대를 이끌고 깊이 들어간다면 결국 소멸될 수밖에 없었다. 여진인은 이미 북방에 공고한 통치기반을 건립하였고, 중원에는 아직 여진인들이 도와주는 한족정권이 있었다. 송나라와 금나라의 중원에서의 승부는 이미 났고, 이제는 밀고당기는 자잘한 전투만이 남았다. 누구도 쉽게 상대방을 소멸시킬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 때 악비와 같이 이름을 날린 한세충이 있다. 사람들은 그의 황천탕대첩음 잘 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황천탕대첩후에 종필에게 패전하여 겨우 몸만 빠져나왔다는 것은 잘 모른다. 악비는 패전을 한 적인 있는지는 잘 모른다. 부풀리고 조작하기 위하여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마지막으로 머리가 깨져서 피를 흘리기 전에 적절하게 죽음으로써,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남겼다. 이것도 그의 행운이다.
대한족주의를 출발점으로 하는 역사선전은 단지 한족들이 거두었던 역사의 빛나는 기록들이고, 한족이 패배한 기록은 언급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계속 생각하게 만들고, 단지 운이 좋지 않은 적이 있었을 뿐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사실 이것은 원래 쉽게 간파될 수 있는 것이다. 정말 대단하다면 다른 사람에 의하여 나라가 망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스스로 다른 나라를 정복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유리하면 싸우고, 불리하면 화해하는 것이 정상적인 전쟁의 전략이다. 소위 악비정신이 조작되기 전에는 중국의 병법에서는 강화를 무슨 치욕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고, 승패는 병가지상사로 보았던 것이다. 소위 악비정신이 조작된 이후에는 누구라고 강화를 주장하면, 바로 매국노로 취급받게 되었고, 대역무도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한족을 더욱 강성하게 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한족의 몇차례에 걸친 망국을 이끌었다. 명나라의 멸망은 상당한 정도에서는 악비정신의 해악으로 인한 것이다. 원래 전투를 하면서 강화를 하는 것이 정확한 노선이었다. 최고통치자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일련의 우민들은 강화를 한다는 말이 나오면 바로 매국으로 생각했고, 황제로 하여금 원숭환을 죽이도록 핍박하였다. 중국인이 숭배하는 민족영웅은 단지 섭공호룡(葉公好龍, 춘추시대 초나라 섭현의 심저량이라는 현령이 있었고 모두 섭공이라고 불렀는데, 섭공은 용에 관한 것을 좋아햐여 장식품등에 용을 그렸다. 그런데, 진짜 용을 보자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고 한다. 섭공호룡은 표면적으로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 좋아하는 것은 아님을 형용할 때 쓰는 말이다)일 뿐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숭배하는 것은 조작된 쇼를 잘하던 스타급의 인물, 예를 들어 악비, 문천상과 같은 사람들이지, 진정한 민족영웅은 그들이 죽여버렸던 것이다.
만일 민족영웅을 정확하게 정의한다면, 당연히 중화민족이 발전하는데 중대한 역사적인 공헌을 한 사람이아고 해야한다. 이렇게 볼 때, 중국역사에서 민족영웅은 단지 네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진시황 영정, 한무제 유철, 당태종 이세민, 원세조 쿠빌라이. 그들은 국토를 넓혔고, 변법혁신을 하였으며, 현재 중국의 기초를 세웠다. 그러므로 중화민족의 진정한 영웅들이다. 다른 사람은 자격이 없다. 이 네 사람중에서 엄격히 말하면 유철 한 사람이 순수한 한족이다. 그들을 민족영웅으로 선전한다면, 민족단결에도 도움이 되고, 민족정신을 드높이는데도 도움이 된다. 이렇게 해야 맞는 것이다.
그러나, 악비 문천상과 같은 류의 포장된 민족영웅은 다른 소수민족에 대하여 존중하지 않는 것일뿐아니라, 역사상의 진정한 영웅들에게도 공평하지 못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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