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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사마의)

사마의(司馬懿) 가족은 어떻게 조위(曹魏)정권을 잠식했는가?

by 중은우시 2007. 10. 16.

글: qinghuajijiao

 

삼국시대에 조조(曹操)와 조비(曹丕) 부자는 강권정치의 대표자들이었다. 조조는 이름없던 정객에서 점차 실력을 확보하여, 먼저 "협천자이령제후(挾天子以令諸侯, 천자를 끼고 제후에 명을 내리다)"를 통해 한헌제(漢獻帝)를 자기 수중의 허수아비로 만들고, 나중에 승상의 지위에 올라 구천세에 구석(九錫)을 더하여 비록 친히 등극하여 황제를 칭하지는 않아, 황제의 이름은 없어도, 황제의 실권을 가졌다. 그는 여러해동안의 전쟁을 통하여 황하유역의 실력이 강대한 제후들을 모두 물리치고, 북방을 기본적으로 통일했다. 그의 아들인 조비는 부친의 기업을 물려받아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마침내 한헌제를 핍박하여 "선위(禪位)"하게 하여 스스로 황제에 올라 위나라가 한나라를 대체하게 된다.

 

그러나, 조씨부자가 만든 조위정권은 2대를 전승해 내려가다가 위명제(魏明帝) 조예(曹睿)의 사후에 조위정권은 쇠퇴기미를 보이게 된다. 조씨정권은 점차 사마씨(司馬氏)에 의해 장악되었고, 명제이후 몇명의 어린 황제들은 모두 사마씨의 허수아비가 되었다. 결국, 사마염(司馬炎)은 조비가 했던 방식을 그대로 써서 조환(曹奐)으로 하여금 "선위"하게 하여 진(晋)나라를 세우게 된다.

 

사마씨가 조씨정권을 장악한 것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이는 사마의의 노모심산(老謀深算), 주밀포치(周密布置), 교설기관(巧設機關)을 거쳐 한차례의 피바람을 거쳐 자기의 정적인 조상(曹爽)을 제거한 후에 비로소 확립되었다.

 

사마의는 촉한(蜀漢)전쟁과정에서 점차 성장한 장수이다. 그는 지혜가 풍부하고 계책을 잘 썼다. 제갈량과의 수년간에 걸친 대진에서 그는 자기의 군사적인 재능을 충분히 발휘했고, 제갈량과의 여러차례에 걸친 대결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이리하여 위나라정권이 촉의 진공을 막아내는데 최대의 공로를 세웠고, 이로 인하여 그는 위나라정권의 중요인물로 성장할 수 있었다.

 

239년, 위명졔 조예의 병이 위중할 때, 그는 조상을 대장군에 봉하여 조정을 통할하게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전방의 사마의를 불러들여, 8살짜리 어린 아들 조방(曹芳)을 부탁했다. 위명제의 의도는 분명했다. 정치적인 일은 조상이 책임지고, 군사적인 일 특히 대외전쟁은 사마의가 책임지라는 것이었다. 이들 둘이 서로 견제하면서 조위정권이 안정적으로 과도기를 넘기기를 바란 것이다. 누가 알았으랴. 그의 이런 고심이 화근을 심게 될 줄은. 조상과 사마의가 동심협력하여 8살된 소년천자를 보좌할 것인가?

 

조예가 죽은 후, 조상과 사마의는 공동으로 조방을 황제에 앉힌다. 그러나, 조상과 사마의의 정치적인 쟁탈전은 이때부터 개시되게 된다.

 

조상은 어쨌든 조씨황족 혈통을 지닌 인물이므로, 투쟁의 초기에는 기선을 제압했고, 큰 우세를 점하였다. 조상은 먼저 손을 써서 황제 조방에게 글을 올려, 사마의를 태부(太傅)에 봉하도록 하였고, 조방이 동의했다. 이리하여 정권과 병권은 모두 조상이 홀로 장악하게 된다. 대권을 독차지한 후 조상은 자기의 심복과 형제들을 조정과 군부에 많이 심어두었다. 조상의 권력은 하늘을 뒤덮을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불리한 상황하에서 사마의는 조상과 조급하게 싸우려고 하지 않았고, 퇴진하는 책략을 썼다. 그는 병이 들어 더 이상 조정에 남아 있기 힘들다는 핑계를 대고 두 아들 사마소(司馬昭), 사마사(司馬師)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 은거하게 된다. 이리하여 조상의 날카로운 칼끝을 피하고, 참을성있게 기회를 기다렸다.

 

조상이 대권을 장악한 후 매일 술을 마시고 여자를 가까이 했으며, 아주 사치했다. 그는 자기의 주요한 정적을 이미 무너뜨렸다고 생각하여 경계심도 풀었다. 자주 심복들과 성을 나가 사냥을 했다. 그의 동생은 성밖으로 나가 사냥하다가 다른 사람의 암습을 받을 수 있으니 삼가하라고 권유받았지만. 듣지 않았다. 사농인 환범도 조상에게 권했지만, 역시 듣지 않았다.

 

조상은 조정의 권력을 장악한 후 사마의가 어떻게 지내는지 몰랐다. 그리하여, 마침 심복인 이승(李勝)을 형주자사(荊州刺史)로 임명하면서, 사마의의 집에 인사를 가서 상황을 알아오라고 시킨다. 이승이 사마의의 집으로 가자, 사마의는 그가 왜 왔는지 금방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즉시 모자를 벗고, 머리칼을 풀어헤치고, 침대위에 이불을 둘러쓰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두 명의 시녀들에게 부축하라고 시켰다. 마치 병이 심하게 들어서 골골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 후에야 이승을 집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이승은 침대앞으로 다가가서 사마의에게 말했다: "태부를 오랫동안 뵙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병이 깊으실 줄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천자가 저를 형주자사로 임명해서 부임하는 길에 인사차 들렀습니다" 그러자 사마의는 일부러 웃으면서 "병주(幷州)는 삭주(朔州, 변경)에서 멀지 않으니 잘 방어해야 할 걸세.."라고 하였다. 이승은 "형주자사입니다. 병주가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사마의는 "네가 금방 병주에서 왔다고?" 그러자, 이승은 "형주로 가는 중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사마의는 다시 크게 웃으면서 "네가 형주에서 왔단 말이구나."라고 하였다. 이승은 "태부의 병세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사마의의 집안 사람들은 "태부의 귀가 멀어서 잘 안들립니다" 그러자 이승은 "종이를 가져오라"고 하여, 글로 써서 사마의에게 보게 하였다. 그러자 사마의는 웃으면서 "내가 병이 들어 귀가 잘 안들린다. 이번에 가면 몸조심 해라." 그리고는 손으로 입을 가리키는 시늉을 하였다. 그러자 시녀가 탕약을 대령했다. 사마의는 입을 갖다 대었는데, 약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옷에 대부분 흘렸다. 사마의는 우물거리면서 말한다: "내가 이제 병이 깊이 들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겠다. 두 아들이 불초하니, 그대가 잘 가르쳐 달라. 그대가 대장군을 만나게 되면, 잘 보살펴 달라고 말씀드려달라. 부탁한다." 말을 마치고는 침대위에 쓰러져서 헉헉 거렸다. 이승은 사마의의 집을 나와서 조상에게 갔고, 자기가 본 상황을 자세히 보고했다. 조상은 아주 기뻐하면서, "이 늙은이만 죽어준다면, 내가 걱정이 없겠다"라고 한다.

 

이승이 떠난 후, 사마의는 몸을 일으켜, 두 아들에게 당부한다: "이승이 돌아가면, 보고할 것이다. 그러면 조상은 나를 더 이상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그가 성밖으로 사냥을 나왔을 때, 우리가 손을 쓰면 될 것이다"

 

며칠 후, 조상은 조방을 모시고 선제를 제사지내게 된다. 대소관료들도 모두 황제의 가마를 따라 성을 나섰다. 조상은 큰 말을 타고 좌우의 호위군을 거느리고 보무당당하게 대오의 중간에서 나아갔다. 사농인환범은 말 머리를 막으면서 권했다. "대장군은 금군을 장악하고 있는데, 형제가 모두 나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만일 성안에 변고라도 생기면 어쩌시렵니까?" 이 충신의 말도 조상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째찍을 환범에게 들이대면서 질책했다: "누가 감히 변고를 일으킨단 말인가? 함부로 헛소리 하지 말라" 이같은 맹목적인 자신감은 사마의에게 천고일우의 좋은 기회를 부여하게 된다.

 

사마의는 조상이 무리를 이끌고 성을 나간 것을 보고는 마음 속으로 크게 기뻐한다. 즉시 일어나서 종전에 자신을 따라 무수히 전쟁에 나섰던 수하들을 부르고, 자기의 가병을 데리고 두 아들과 함께 즉시 행동에 나선다.

 

사마의는 먼저 다른 조상에게 불만을 가진 관리들에게 연락하고, 다른 한편 사병으로 하여금 조상의 군영을 점령하게 한다. 그 후에 여러 관리를 데리고 곽태후(郭太后)를 만나러 간다. 거기서 조상의 죄상을 고하고, 조상의 병권을 박탈할 것을 요청한다. 이같은 갑작스런 변고에 곽태후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어쩔 수 없이 사마의의 요청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마의는 즉시 병사를 파견하여 성으로 들어오는 길목의 부교(浮橋)를 철거한다.

 

병권을 장악한 후, 사마의는 다시 영을 내려 허윤(許允), 진태(陳泰)를 성밖으로 내보내 조상을 만나게 한다. 그리고는 그는 다른 욕심은 없고 그저 병권만 가지면 된다고 말한다. 이어서 장제(蔣濟)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 후, 윤대목으로 하여금 글을 들고 조상을 만나러 가게 한다. 사마의는 윤대목에게 분부하기를 "네가 조상과의 관계가 좋으니, 조상을 만나면, 나와 장제는 낙수의 물로써 맹세하니 그저 병권을 위한 것이고 다른 뜻은 없다는 것을 알려달라"고 한다. 사마의의 이런 조치는 조상으로 하여금 정신을 못차리게 만들었다.

 

조상이 한창 달려가고 있을 때, 성에서 변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는 사마의가 조상에게 보낸 글을 받아들게 된다. 글에는 먼저 선제가 병중에 그에게 부탁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곽태후의 뜻이라고 하며 조상의 병권을 박탈할 것을 요청하는 글이었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환범은 다시 조상에게 권한다. "천자를 모시고 허도(許都, 허창)로 가시고, 바깥의 군대를 모아 사마의를 토벌하십시오". 그리고, "허도에는 양초가 충족하여 수년은 버틸 수 있고, 대장군이 병마를 모집한다면 어렵지 않습니다. 대사마의 인장은 내가 가지고 있으니 빨리 가시지요. 만일 늦으면 안됩니다"라고 한다.

 

조상은 하룻밤을 생각하다가 스스로 병권을 포기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성으로 들어가겠다고 한다. 환범은 통곡을 하면서 말했다. "조자단(曹子丹, 조상의 부친)은 지모로 유명했는데, 이제 형제 세 사람은 모두 돼지새끼들이구나"라고 한탄한다. 조상은 스스로 장군인을 내놓으니, 사병들이 흩어지게 된다. 조상은 사마의에게 투항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고, 마지막으로 항거할 기회마저 놓쳐버렸다.

 

조상이 성으로 들어간 후, 사마의는 즉시 그의 집을 포귀하였고, 그의 형제 3사람과 나머지 동료들을 모두 참살하였다.

 

이후, 사마의는 조위의 대권을 장악한다. 이후 여러해 동안 나라를 운영한 끝에 그의 손자인 사마염(司馬炎)이 비로소 조위를 대체하는 진나라를 세우고, 국가통일의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