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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서태후)

한 서방기자가 목격한 서태후의 장례식

by 중은우시 2007. 9. 14.

 

 

글: 헨리 보렐

 

자희태후(慈禧太后, 서태후)의 방대한 영구(靈柩)가 가마꾼들에 의하여 보렐이 서 있는 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금황색의 비단이 영구를 덮고 있는데, 거기에는 푸른색 봉황과 붉은색 구름무늬와 꽃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영구의 윗부분에는 금색 원구가 상감되어 있었다. 도로의 건너편에서는 외국공사관의 경비들이 영구가 지나갈 때 차렷자세로 경례를 하였다.

 

1908년 11월, 경성에는 의론이 분분했다. 황제와 태후가 둘 다 죽었다는 것만 알았고, 죽기 전에 수천년간 내려온 전통에 따라, 만조의 문무백관들이 보는 가운데 고독하게 죽어갔다. 아무도 손을 내밀어 위로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죽기 전의 황제와 태후의 성체에는 손을 댈 수 없는 전통 때문이다. 어쨌든 자금성의 높은 담장은 이처럼 견고하고, 신비는 바깥에서 알 수가 없는 일이다.

 

몇 개월전, 광서황제는 북경에서 4일 걸리는 거리에 있는 청서릉(淸西陵)에 묻혔다. 그곳에는 옹정황제, 가경황제, 도광황제등 청나라 황제가 잠들어 있다. 지금은 서태후의 장례에 관한 보도가 넘쳐나고 있다.

 

자희태후는 현대과학문명이 이미 중국에 들어온 시대에 살았다. 그러나, 그녀가 죽은 후의 장례식에서 연출되는 것은 여전히 수천년 역사를 지닌 고래의 의식이다. 일찌기 8월에 이미 대량의 종이로 만든 명재(冥財)를 불사른 바 있다.이런 것들은 그녀가 좋아하던 재물을 상징하는데, 아주 정교하고 진짜처럼 만들었다. 여기에는 시계, 화장대, 담뱃대 및 종이로 만든 사람까지 포함되어 있다. 종이로 만든 사람은 사후에 자희태후를 모시기 위한 것이다.

 

종이로 만든 현대적 군복을 입은 군인들도 열을 지어 만들었다. 이는 장례가 거행되기 이틀전에 자금성에서 궁문중의 어느 한 곳에서 불태워졌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모두 먼저 저승에 가서 준비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문의 어느 보도에서 의문을 제기한 것처럼, 만일 공자와 맹자가 저승에서 이런 현대적인 복장의 군인들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또 그들이 부장품으로 불태워진 것이 조상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던 가마가 아니라, 우아한 유럽식 브로엄차를 보았을 때 무엇을 생각할 까. 자동차바퀴와 유럽식 차등을 보면 얼마나 놀랄까.

 

금황색베로 뒤덥힌 태후의 영구는 천천히 그리고 장엄하게 북경의 회색토지위를 지나고 있다. 그안에는 자희태후의 시신이 누워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면서도 숭배하던 여인이며, 가장 위대한 여황제이며, 생활과 권력의 단맛 쓴맛을 다 본 여인이다. 그녀가 영구에 숨어 내 곁을 지나갈 때, 나는 모자를 벗어 예를 표했다. 나는 이 날을 잊을 수 없다. 1908년 11월 9일. 바로 음습한 겨울이었다.

 

새벽 6시, 하늘에서는 뼈를 에이는 삭풍이 불었다. 나는 가죽옷을 걸치고, 구형 황포차를 차고 넓다란 거리를 달려, 동직문으로 갔다. 동직문 바깥의 한 언덕위에는 외무부 관리들이 각국 공사관의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의 지붕이 있는 관람대를 만들었다. 동직문내에는 정자도 있었는데, 이곳은 각국 외교관, 고귀한 귀족 그리고 신문기자들을 위하여 마련한 곳이었다. 나는 원래 암스테르담 텔리그라프의 기자로서 그 곳에 자리가 마련되었으나, 동직문내에서는 일반 백성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성밖에서는 일반백성들을 모두 내쫓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북경에서 청동릉(淸東陵)까지는 75마일의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벽이므로 북경의 거의 모든 주민들은 계속하여 동직문으로 몰려들었다. 나는 동직문밖에서 장례를 보내는 행렬을 보는 것이 더욱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면 물론 장례식에 참석한 외국대표들과 섭정왕을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동직문내의 정자에 있을 것이지 더 나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례가 거행되기 몇개월전에, 청동릉으로 가는 길은 이미 수리가 완료되었다. 청동릉안에는 순치황제, 강희황제, 건륭황제, 함풍황제와 동치황제등 청나라 황제들이 잠들어 있다. 서태후의 능묘는 광서황제가 묻힌 청서릉이 아닌데, 이것이 절대 우연은 아니다. 도로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증기압로기가 동원되었고, 친왕과 고관들도 도로상황을 순시했다. 사람들은 모든 노력을 다하여 자희태후를 위하여 이 길을 마련했고, 금색으로 뒤덮힌 금황색 영구가 장엄하고 순조롭게 이 길을 지나가도록 배려했다.

 

내가 거주하는 대사관구역에서 황포차를 타고 동직문으로 오는데에는 1시간이 걸렸다. 앞의 반시간은 합달문(哈達門, 지금의 숭문문임)의 길을 따라 달렸는데, 거리에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동직문 오른쪽의 작은 거리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전체 거리는 무장한 군인과 보병으로 꽉 차 있었다. 일본군인복장을 모방한 중국군인들은 기운차 보였고, 질서정연하게 행동했다. 마차, 당나귀차, 말, 황포차가 서쪽과 북쪽에서 계속 몰려들었다.

 

동직문 부근에서 나는 아주 밀집되어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만일 유럽이었다면, 나는 아주 무서웠을 것이지만, 이 때는 아주 태연자약할 수 있었다. 쿠리(苦力), 차부(車夫)와 기자(騎者)의 고함소리와 말과 당나귀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황포차안에 조용히 앉아서, 편안하게 시가를 하나 꺼내 물었다. 폭력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있다가 나의 목 근처에 말 머리가 하나 나타났다. 좀 있다가 온순한 작은 당나귀를 거의 껴안을 뻔하기도 했다. 이렇게 한걸음 한걸음 동직문의 문루로 다가간 것이다. 4방형의 옹성(瓮城)에 도착했더니 중국군인들로 꽉 차 있었다. 전루(箭樓)를 통하여 성문바깥의 넓은 공터로 갔다. 그곳에는 수백수천의 당나귀차가 성바깥의 사람들을 싣고 산넘고 물건너 이 곳으로 오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과 고비사막의 모래속에서 반시간을 걸어올라서, 마침내 장례행렬을 구경할 수 있는 관람대에 올랐다. 외무부의 입구에는 아주 엄숙하고 영어를 할 줄 아는 관리가 손님을 맞이하고 초대권을 받고 있었다. 공사관에서 발급한 입장권이 없이는 들어가서 볼 수가 없는 곳이었다.

 

정자의 앞에 있는 도로에도 사람이 꽉 들어찼다. 그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그렇다고 무례하지는 않게 자기들이 "번귀(番鬼)"라고 부르는 서양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장례행렬이 나중에 이 곳을 어떻게 통과할 지도 큰 문제로 보였다. 왜냐하면 도로는 벌서 꽉 막혔기 때문이다. 7시 늦어도 7시반이 되기 전에, 모든 손님은 다 도착해야 했다. 그 시간이 지나면 도로를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7시15분이 되자 장례행렬은 자금성을 출발했다. 그런데 10시반이 되도록 정자안의 관람대에서는 여전히 장례행렬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순식간에 이 도로를 정리할 것인가? 그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로 보였다. 현대군복을 입고 몽고말을 탄 병사들이 이 곳으로 왔다. 그리고는 마법을 시전한 것처럼, 도로의 수천수만의 구경꾼들은 언덕위로 밀려났다. 무슨 다툼이나 몸싸움은 없었다. 유럽같으면 아마도 최소 반시간은 소요되었을 것인데, 이곳에서는 순식간에 해결했다. 경찰들은 작은 말을 타고, 도로위를 편안하게 달렸으며,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도로를 깨끗이 정리했다고, 모든 사람을 언덕위로 몰아냈다.

 

성에서 출발하면 장례행렬이 지나는 길은 대부분 내리막길이고, 도로 양쪽은 모두 얕은 언덕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정자에서는 장례행렬을 아주 잘 볼 수 있었다. 제일 앞에는 현대군복을 입고 긴창을 든 경기병들이었다. 복장도 깔끔하고 동작도 절도있었다. 이어서, 시종들이 손으로 일렬종대의 작은 말들을 끌고 나타났다. 그 뒤에는 바로 홍색비단옷을 입고, 모자에도 노란색 깃털을 단 시종들이었는데, 개략 수백명이었고, 이들이 돌아가며 영구를 맸다.

 

이어서 또 한 무리의 긴창을 든 경기병이 나타났다. 그들의 긴창에는 붉은 색의 긴 깃발이 나부꼈다. 뒤에는 마창기병(馬槍騎兵)이 나타났다. 그들은 황실금위군이었다. 몸에는 붉은 색을 새긴 회색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 뒤에는 다시 붉은 옷을 입은 시종들이었다. 녹색, 홍색, 자색, 황색등 각종 색깔의 만장과 낮게 드리운 비단폭을 들고 있었다. 이들 선명한 만장과 시종들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마치 그들이 황궁안의 깃발은 모두 들고 나와서 태후를 보내는 것같았다.

 

이어지는 것은 고비사막에서 온 키큰 낙타였다. 온 몸에 털이 가득하고 몸이 건장했다. 마치 고대시대에서 온 괴물과 같았다. 그들은 2열종대로 도로의 양쪽으로 진행했다. 그들의 등에는 황색비단으로 싼 장막을 건설하는데 쓰이는 물건들을 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장례행렬이 청동릉까지 가려면 꼬박 5일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 행렬은 얼마나 동방적인 색채를 띄고 있는가? 먼저 노란비단으로 덮히고 색깔이 선명한 가마가 있고, 나중에 흰색의 키작은 말이 나온다. 그러더니 지금은 키크고 위엄있는 낙타가 나온다. 이런 광경은 우리의 시대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던 시대의 일인가.

 

일시간에 장례행렬에 빈틈이 생겼다. 그러더니 다시 홍색옷을 입은 시종들이 나타나더니, 질서없게 우리 앞을 지났다. 길 중앙에는 모양이 이상한 녀석이 입에 큰 빵을 씹고 있었다. 검은색의 옷을 입은 관리들이 지나간 이후에 다시 빈틈이 생겼다. 이후에도 역시 질서없는 시종무리들이 지나갔다. 이어서 돌연 두 개의 금황색 비단장식이 나타나고, 가마꾼들이 든 가마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상당히 유럽적인 현대장례에서의 화환이 지나갔다. 그 다음에는 또 빈틈이 생겼다.

 

막 지나간 말과 낙타의 똥으로 더럽혀진 길은 지금 시종들이 깨끗이 청소했다. 앞에 지나간 모든 것들은 거저 길을 여는 선발대인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아직도 뒤쪽 행렬은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멀리 언덕위에서 내리막길로 보일듯 말듯한 깃발들이 나타났다. 붉은 깃발이 하늘을 뒤덮었다. 기병들이 한줄한줄 우리 앞으로 향해 왔다. 더 많은 황색가마가 내리막길을 내려왔다. 이 가마의 뒤에는 눈부신 금황색 화염이 있었는데, 덩치가 커서 놀랄 정도였다. 그리고 지면에서 아주 높이 있었다. 자희태후의 영구는 아주 천천히 앞으로 움직였다. 네모난 영구의 위에는 커다란 황금색 구슬이 있었다. 그리고 폭이 넓은 천으로 싸여 있었다. 영구는 1백여명의 가마꾼들이 길다란 대나무장대를 이용하여 들고 갔다. 머리위로 높이 들어서 아주 위엄있고 장중하게 앞으로 이동했다. 일찌기 30분전에 태양은 이미 솟아올랐고, 영구의 황금주단은 하늘에서 불타는 화염이 금색의 강물로 흘러내리는 것같았다.

 

나는 평생 처음으로 이 황금색이 황제를 대표하는 색깔이라는 것을 알았다. 금색의 영구의 앞에는 수백개의 흰바탕에 황금색 깃발이 선도하고 있었는데, 이 깃발은 붉은색과 금색의 깃대에 높이 걸려 있었다.

 

이어서 가벼운 장포를 입고 모자에 황금색 깃털을 꽂은 시종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뒤에는 자홍색 장포를 입고, 위에는 장수를 비는 금색실로 자수를 놓은 "수(壽)"자가 지나갔다. 이 사람들은 손에 황금깃발을 들었다. 도처가 황금색의 물결이었다. 무수한 네모나거나 둥근 것들에는 용과 봉황이 수놓아져 있었고, 황금색, 녹색, 홍색, 남색등 각종 깃발이 나타났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가마, 작은 말, 깃발, 만장의 뒤에는 다시 황금색 가사를 걸친 라마승려들이 뒤따랐다. 이들은 몽고와 티벳에서 왔다.

 

마지막에는 청나라의 고관들이었다. 그들은 검은색 상복을 입고 있었다. 그들의 관모에는 관직을 나타내는 장식물이 있었다. 즉 홍산호와 남보석으로 된 정자(頂子), 공작우모(孔雀羽毛)였다. 그들은 청나라의 최고위 관리들이었다. 여기에는 친왕, 어사와 대신이 포함되어 있다. 모든 사람은 애도의 표정을 지으며 우리의 앞을 지나갔다. 의복은 질박하였으며 일반백성들처럼 신변에 시종이 따르지 않았다.

 

방대한 영구는 현재 이미 우리에게서 멀어져 갔다. 지면에서 매우 높게 떨어져 있었으므로, 황색천으로 둘러싼 큰 물건은 마치 불이 붙는 것처럼 빛났고 선명한 황금색을 나타냈다. 이것은 우리가 일찌기 보지 못하던 것이었다. 중국황족을 대표하고 황제만이 입을 수 있는 노란색이었다. 누구든이 이를 어기면 반란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녀의 영구는 1백여명의 가마꾼들이 들고 천천히 앞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앞으로 나가는 길이 이처럼 어렵고 복잡하여, 황금색 영구는 마치 순금덩어리인 것처럼 느껴졌고, 영구를 덮은 천들도 금속을 사용한 것같았다. 그러나 사실은 천으로 만든 것들이다. 햇볕아래에서 이것은 황금색 폭포를 연상시켰다. 길가의 사병들은 모두 총을 들고 경의를 표했고, 외국공사의 경비들도 모두 영구를 향하여 경례했다.

 

현장은 고요했다. 언덕위의 수천수만의 사람들도 개미소리하나 내지 않았다. 마치 한 여신이 그들의 앞을 지나가는 것같았다. 영구는 흔들리면서 장엄하게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한 라마가 작은 나무북을 두드려서 가마꾼들의 발걸음을 맞추었다. 나무로 양가죽을 두드리는데 사람들로 하여금 음울한 정적중에 흘러나오는 차갑고 음침한 소리처럼 느껴지게 하였다.

 

관망대위의 모든 서양내빈들은 일어섰고, 모자를 벗었다. 방대한 영구는 이렇게 우리의 앞을 지나갔다. 남색의 봉황은 영구천위에서 날개짓하고 있었다. 붉은 꽃은 선명한 금황색을 비단위에서 내뿜고 있었다. 영구의 위에 이쓴 황금구슬에서는 태양처름 빛을 내고 있었고, 황금색의 주단은 아주 빛나서 눈이 부실 정도였다.

 

자희태후라는 기묘하고 무서운 여황제는 이처럼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그녀의 나이든 영혼은 현대세계와 비극적인 결전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새로운 시대를 열 용기는 있었다. 바로 그녀가 1900년 감숙의 장군인 동복상에게 유럽의 주북경공사관을 공격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이 여인이 눈썹만 찌푸려도 총독들은 깜짝 놀라곤 했고, 한번 미소지으면 그들에게 영광과 재부가 따라왔고, 한번 화를 내면 바로 목숨을 잃어버렸었다.

 

사람들이 그녀의 시신을 들고 북경의 성문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회색의 언덕을 지났다. 일생동안 전설적이며,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들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가 바로 법률이었던 여인이 이제는 차갑고 메마른 시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신성하고 오래된 관념을 대표하였다. 새로운 여명이 도래하였고, 장래 세계의 일부분이 될 이 기묘한 왕국에서 그녀는 낡은 관념들과 함께 죽어버린 것이다.

 

신성한 황권은 하늘로부터 받았다고 믿어왔다. 그리하여 만백성이 이 반신반인의 황제를 존경한 것이다. 비록 나는 신성한 황권의 꿈이 깨진데 대하여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있지만, 다른 한편 현대의 새로운 사상이 바로 이 수억인민에게 전파되면서 그들이 내심으로 모든 사람이 하늘이 될 수 있다고 믿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나의 입술에는 미소가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