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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과거

장원급제한 사람중 얼마나 인재로 성장했는가?

by 중은우시 2007. 7. 17.

글: 양동평(楊東平)

 

대학입시가 막 끝났다. 각성시의 새로운 "장원"이 속속 나타나서 다시 핫뉴스가 되고 있다. "동방화촉야, 금방괘명시(洞房花燭夜, 金榜掛名時, 인생에서 가장 기쁠 때가 동방화촉을 밝히는 밤과 과거급제자로 방에 이름이 오를 때라는 말)" 중국과 같은 시험대국에서, "금방제명"은 인생의 큰 기쁨이다. 장원은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게 되고, 스스로 이름을 드러내고 싶지 안하도 그럴 수 없게 된다. 북경의 문과이과 장원은 모두 여자이다.  그리고 최근들어 각지에서 여장원의 비율이 계속 높다. 이것은 재미있는 교육현상이다. 홍콩이 경쟁에 끼어들면서, 북경의 이과 여장원이 북대와 홍콩대학을 놓고 배회하하는 것도 또 다른 교육이슈이다.

 

그러나, 진정 생각해봐야 할 것은 아마도 "얼마나 많은 장원급제자가 인재로 성장했는가"라는 힐문이다. 과거제도의 흥망성쇠를 겪으면서 이런 질문은 계속되었다. 데이터에 의하면, 당나라 무덕5년(622년)에 정식으로 과거를 시작한 이래로 청나라 광서31년(1905년)에 과거를 폐지할 때까지 1300여년간, 조사가능하고 이름이 남아있는 장원은 모두 552명(일설에는 649명, 674명이라고도 한다)이다. 그러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은 몇 사람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유명하다고 인정해주는 사람은 두 사람밖에 없다. 당나라때의 무장원(武狀元)인 곽자의(郭子儀), 그리고 송나라때의 문장원인 문천상(文天祥)이 그들이다. 물론, 당나라말기에도 이름을 남긴 일부 장원들이 있다. 황제의 스승이었던 옹동화(翁同), 경사대학당의 관학대신인 손가내(孫家), "장원자본가"인 장건(張)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장원들은 역사의 긴강 속에 이름을 전혀 남기지 못했다. 송나라부터 청나라때까지 모두 19명의 장원을 배출했다는 안휘성의 휴녕현은 중국의 "제일장원현"이다. 이 현은 얼마전에 웅대한 '장원루"를 만들고, 현지의 "장원문화"를 널리 알리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19명의 장원은 모두 누군지 이름도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저 "장원급제"했다는 몇 개의 건물만 남기고 있을 뿐이다.

 

걸출한 역사인물을 기본적으로 장원이 아니다. 진사(과거급제자)도 드물다. 대다수는 시험성적이 높은 사람이 아니었다. 중국과 외국이 모두 그렇다. 뉴튼, 에디슨, 아인슈타인등이 모두 소년시절에는 우둔했으나 대기만성한 유형이다. 모택동, 노신, 호적, 곽말약등등도 인재로 성장하는데 힘든 길을 걸어왔고, 어려서부터 총명하기로 이름난 사람들은 아니었다. 노신이 1905년 일본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서 공부할 때 춘계승급시험의 성적표를 보면, 해부 59.3점, 조직 72.7점, 생리 63.3점, 윤리 83점, 독어 60점, 화학 60점, 평균점수 65.5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위대한 작가가 되는데 이것이 문제되지는 않았다. 미국의 국가자료보관소는 최근 자료를 공개했는데, 여러 대통령들이 청소년시대에 학교성적은 평범했다는 것이다. 케네디는 8학년의 언어시험성적이 겨우 55점이었고, 존슨은 3학년의 문법시험성적인 D였으며, 아버지 부시의 시험성적은 6,70점인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대다수가 공립학교를 다녔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케네니, 아버지 부시등이 값비싼 사립학교를 다녔을 뿐이다. 그들은 아동시절에 개성을 뚜렷이 드러냈고, 뜻이 원대했고, 일을 독특하게 하는 특징은 있었다.

 

그렇다면, 현대의 과학기술인재도 이런 규칙을 따르는가? 샘플이 많이 않아서 여기서는 부분적인 데이터만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상해남양모범중학은 일찌기 그 학교를 졸업한 23명의 원사들의 성적자료를 분석해본 적이 있는데, 그들의 고3졸업성적이 10등내에 들었던 사람은 5명뿐이었다. 전체의 앞에서 30%이내에 들었던 사람이 15명이었고, 중간 40%에 있던 사람이 2명, 뒤에서 30%에 들어있던 사람이 6명이었다. 만일,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들중 대다수는 분명히 아주 우수했던 학생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우리가 고등학교를 떠난지 1,20년후에 되돌아보면, 당시 학교에서 가장 뛰어났던 최우수학생들이 평범한 사람이 되어 있고,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은 대부분 당시는 평범하거나 전혀 출중하지 않았던 학생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10등현상"이라는 말을 쓴다. 나중에 성과를 거두는 사람은 당시 가장 뛰어났던 사람이 아니라, 중상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례의 교육적인 의미는 당연히 모택동이 말했던, "고귀한 자는 멍청하다" "지식이 많을 수록 반동이다"라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한 측면에서는 교육과 인재, 시험과 인재간의 복잡한 관계를 암시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중고등학교때의 학업성적은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인재가 되거나 성공을 하는 것은 사회역사환경의 복잡한 요소가 결부된 것이고,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능력으로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특정한 시대에 성과를 이루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들은 시험으로 측정한 학습능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지적요소와 비교하자면, 더욱 중요한 것은 포부, 흉금, 용기, 의지, 견인(堅靭)등의 기본품성이다.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알며, 시대의 흐름을 읽는 깨달음이다. 종합자질이며, EQ이다.

 

그렇다면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장원은 멍청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규정을 잘 따르는 모범생 인재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업무성격이 비교적 단순한 학술연구영역에서도 "어려서는 평범하던 인재가 커서는 큰 성과를 거두는" 현상이 나타나는가? "제10등현상"은 이를 설명해준다. 최우등생들은 좋은 시험성적을 위하여 너무나 많은 것을 희생했다. 그리고 일부 중요한 자질을 희생하게 된다. 마라톤경기에서 먼저 뛰어나가서 선두로 나서면 왕왕 최종우승자가 되지는 못하는 것과 같다.

 

인생은 바로 길고긴 마라톤과 같다. "교육공황"에 빠벼서 출발선에서 서로 앞서가려고 경쟁하는 삭생들에게 "잠시만"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눈을 들어 넓게 보고, 세속의 공리라는 기준을 버리고, 장원과 1류대학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공하는 교육은 모든 사람이 자아를 발견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다. 진정 중요한 것은 인생의 행복과 원만이고, 가장 좋은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