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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북경의 오늘

북경: 잃어버린 촌락생활

by 중은우시 2007. 7. 10.

글: 한양로(韓良露) : 대만 영화평론가, 다큐멘터리제작자.

 

1990년 겨울 나는 북경에 있었다. 금어후통(金魚胡同)에 금방 문을 연 호텔의 고층 스위트룸에서, 큰 눈으로 안개낀 듯한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내려다 보았다. 북경은 큰 촌락같았다. 구불구불하고 미궁같은 수백 개의 작은 후통(골목)은 촌락의 장(腸)과 같았다.

 

눈이 그치고 해가 떠오르자, 나는 자전거를 빌려서, 입에는 뿌옇게 연기를 내뿜는 담배를 물고, 힘들게 후통의 진흙탕인 골목길을 몰았다. 후통의 오후는 아주 조용했다. 마치 최면이 걸린 것같았다. 금방 시간은 과거의 어느 연대로 되돌아간 것같았다. 아마도 내가 북경의 황량한 어느 거리를 걷고 있었던 것같다.

 

이런 북경이 액자에 넣어진 흑백사진처럼 나의 기억속에 각인되어 있다. 비록 90년이후, 나는 몇년마다 한번씩 북경에 발을 디뎠지만, 나중에 추가된 영상은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모두 처음에 받은 인상처럼 진실하지 않았다. 북경을 생각하면, 모든 기억의 카메라는 1990년 겨울의 북경으로 고집스럽게 고정되는 것이다.

 

북경은 나의 고향이 아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내가 북경에 대하여 향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북경의 변화가 너무 크기 때문일까? 나와 같이 겨우 17년전의 북경여행경력밖에 없는 사람도 초고속으로 변화하는 북경을 보면서 창상(滄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내가 심지어 북경토박이처럼 가끔 말을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장안가에 어두운 등을 달고 있던 노점상을 얘기하거나, 크고 작은 후통에 개점한지 얼마되지 않은 작은 가게에 신선도를 잃어버린 과일을 팔고 있었던 것을 얘기하거나, 조양문 바깥이 원래 황량하고 그저 버드나무가 늘어서 있었다는 것을 얘기하곤 하는 것이다.

 

그 시절에, 북경인들은 튼튼한 두 다리만 있으면, 북경성내를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었다. 아무 곳이나 여유롭게 다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가지고 있는 자전거를 타고, 동성, 서성을 한번 달려볼 수도 있었다. 누구도 거리가 멀다고 뭐라하지 않았다. 북경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사람들의 마음 속의 거리로는 북경이 그저 하나의 성이었다. 아무리 커도 천지보다 크지는 않을 것이니, 북경사람이 북경이 크다고 해서 겁먹을 일이 무엇인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북경사람들도 북경이 너무 크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북경인들은 더 이상 돌아다니지 않게 되었고, 알고 있던 많은 사람들과도 잊혀지게 되었다. 동성에 사는 사람들은 동성을 가급적 벗어나지 않으려 하게 되고, 서성에 사는 사람들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서성 바깥으로 나가지 않게 되었다. 서로 다른 곳에 사는 친구는 더 이상 만나기 힘들어 졌다. 분명히 하나의 도시에 살고 있는데, 마치 서로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것처럼 멀어진 것이다. 1환 또 1환 무슨 손오공 머리의 금강권같은 자동차전용도로(環路, 환상도로)가 원래 손오공처럼 재빨랐던 북경을 묶어버리게 되었다. 도시의 쾌속발전이라는 서천취경(西天取經, 서유기에서 삼장법사가 서역에 불교경전을 구하러 가는 것)을 위하여, 원래 장난꾸러기같이 마음대로 뛰어놀던 손오공의 머리에 금강권을 씌워 야성을 통제하게 되면서, 북경 원래의 활력도 압박을 받게되었다.

 

환로는 원래 북경을 더욱 가깝고, 더욱 좁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누가 알았겠는가, 1환 1환 만들어간 후에 북경인들의 심리상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게 될 줄을. 사람들은 환로에 접근하는 것을 꺼리고, 양장구절의 도로를 건너는 것보다 환로를 건너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저 북경에 온 관광객만이 북경의 곳곳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북경은 더 이상 하나의 성(城)이 아니게 되었고, 그저 하나 하나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되었으며, 사람들은 자기의 물과 풀 근처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천년이상의 역사를 지닌 북경이 어찌 백년역사도 지니지 않은 미국의 로스엔젤레스와 같은 도시계획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로스엔젤레스는 원래 사망의 황무지였고, 제2차세계대전후에 공업주의의 주문하에 세계에서 드물게 보는 미국자동차산업에게 서비스하는 도시, 사람은 그저 자기의 오아시스에 서식하는 괴물도시로 바뀌게 되었다.

 

아름다운 도시는 사람에게 서비스하는 도시이다. 사람이 거주하고, 일하고, 창조하고, 노는 것에 대한 고려를 전제로 하여야 하며, 인류의 생활은 전체적으로 보아야지 구역을 나누어서는 안된다. 도시문명의 아름다움은 사람들에게 문명에 대한 귀속감을 갖게 하고, 자기가 어느 시대 어느 도시에 소속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런던, 파리, 뉴욕은 모두 성숙하면서도 전체적인 도시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 몇개의 도시는 얼마나 더 진보하던지간에 모두 촌락의 특질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큰 도시는 수십개 수백개의 촌락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사람들이 스스로 생활하면서 발전시킨 유기체인 것이며, 시간이 축적되면서 이루어진 생명의 두께이다.

 

북경인들은 당연히 환로를 지하도로로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경인들이 이 환상도로에 더 이상 의지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최근들어 슬로우 라이프를 배워가는 로스엔젤레스사람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도심지구의 원래의 크고 작은 도로를 다시 사용해야 하고, 도시의 혈맥이 잘 흐르도록 해야 한다. 당연히 크고 작은 도로에는 수목과 화초를 심어야 하며,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도로에 대한 친근감을 회복시켜주어야 한다.

 

마천루가 가득 들어찬 북경에는 반드시 크고 작은 공원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도시의 각 지역간을 연결시켜야 하고, 모든 지역도 연쇄점들이 동일하게 들어차있는 소외감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서로 다른 지역의 촌락특질을 발휘해야 한다. 뉴욕은 아마도 참고할만한 도시일 것이다. 뉴욕이 도시의 숲으로 바뀌지 않게 된 것은 아마도 아직도 그리니치 빌리지, 이스트 빌리지, 소호, 트리베카등 도시촌락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류의 도시개념은 원래 촌락이 천천히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다만, 어떤 도시는 촌락의 성격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미래도시의 아름다움은 바로 도시에서 사람들이 잃어버린 촌락생활을 되찾는데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