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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북경의 오늘

북경에 사는 사람들

by 중은우시 2007. 3. 21.

글: 황애화(黃艾禾)

 

원소절(元宵節, 정월대보름)이 지났다. 북경의 거리는 다시 예전처럼 차량과 사람으로 붐비고 있다. 십여일간 썰렁했던 북경의 거리는 다시 사람으로 가득찼다. 나는 한 택시운전기사가 초8일에 탄식하며 했던 말이 기억난다: "오늘 손님은 어째 초7일보다 적습니다" 그런데, 13일날 택시를 탔을때, 그 기사는 이렇게 말했다: "보세요. 보세요. 사람이 다시 많아졌어요. 또 차가 막히겠네요!"

 

아마도 북경에서 태어나고, 북경에서 자란 "토착북경인"들은 매년 1번씩 북경을 떠나는 '외지인'들을 대할 때, 이렇게 모순된 심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산문대가인 화이트는 유명한 수필 <<여기가 바로 뉴욕이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화이트는 뉴욕사람을 세 종류로 나누었다. 제1종은 뉴욕에서 태어나고 뉴욕에서 자라고 도시안에 살고 있는 뉴욕인; 제2종은 교외지역에 집을 사고, 매일 지하철이나 기차를 타고 낮에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밤에는 교외지역의 베드타운에서 잠을 자는 사람; 제3종은 미국 전국각지, 심지어 전세계 각지에서 뉴욕으로 와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내 생각에, 북경사람도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을 것같다. 제1종은 바로 '토착'의 원래 북경사람들이다. 북경의 정식 호구를 가지고 있고, 북경말을 유창하게 얘기한다. 제2종과 제3종은 모두 외지에서 와서 북경에서 생활하고 일하는 사람들이다. 제2종은 화이트칼라라고 할 수 있겠다. 그들은 대학졸업후 북경에서 일자리를 잡은 대학졸업생이다. 이미 정식 북경호구를 가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은 직장에서 주택도 분배받았으며, 매번 구정이 되면, 그들은 회오이바람에 휩쓸려가는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향으로 가는 길을 나선다. 그리고 많은 사람은 비록 대학졸업장은 가졌지만, 북경호구는 아직 취득하지 못했다. 그들은 북경에 와서 자기발전을 꾀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외지에 떠돈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그래서 구정만 되면, 당연히 집으로 돌아간다. 제3종은 졸업장도 없고 호구도 없고 그저 몸뚱아리 하나밖에 없는 외지 농민공이다. 그들은 평소에는 이 도시의 구석구석에 몰려 있다가 흩어지곤 한다. 공사장, 작은 식당, 노점시장등에 있다.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서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들의 수량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느끼게 된다. 1년에 한번 있는 전세계에서 아주 독특한 구정의 교통행렬은 그들이 주체가 되어 구성하고 있다.

 

구정연휴의 나날동안, 북경은 모두 조용하다. 직장에 아무도 출근하지 않을 뿐아니라, 사무실은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거리에는 최소한 절반이상의 식당, 이발소가 문을 닫는다. 농무시장은 황량하다. 신발고치는 사람도, 옷을 파는 사람도, 사진을 현상하는 사람도....그리고 불법VCD를 파는 사람도, 가짜 증명서를 만들어주는 사람도 모두 종적을 감춘다. 내가 알고 있는 많은 집의 보모들도 모두 떠나버린다. 그저 스스로 움직여서 요리를 하고, 아이를 달래고, 어르신을 돌보아야 한다. 듣기로, 어떤 동네는 보안까지도 모두 고향으로 떠나서 일하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북경에는 얼마나 많은 외지인이 있는가? 정부측 통계에 따르면 북경의 상주호구는 1100만이고, 유동인구는 300만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300만은 훨씬 넘을 것같다. 아마도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저 300만의 외지인뿐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작용은 이것보다 훨씬 많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만일 북경 "토착"인들만 통계잡는다면 이 도시는 일찌감치 노령사회로 들어섰어야 한다. 통계데이타를 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직감적으로 느낄 것이다. 동네안에, 길 가에, 공원안에, 곳곳마다 노인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북경사람들이다. 그러나, 외지에서 북경으로 와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젊고 힘있는 사람들이다. 바로 일생중 가장 아름다운 시기인 것이다. 즉, 외지인은 북경에 활력을 가지고 온다. 만일 그들이 없다면, 북경은 황혼분위기의 칙칙한 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상황은 국가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왜 선진국, 예를 들어 프랑스에는 외국이민으로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데도, 제3세계로부터의 이민이 끊기지 않는 것일까? 그들의 국가도 노화하고 있고, 그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생명력이 왕성한 젊은 노동력이 유입이 국가가 활력을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고귀한 자원이라는 것을. 그들은 이민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통계를 내본 적이 없다. 외지인이 북경의 화이트칼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를. 그러나, 개인적인 접촉을 기준으로 한다면, 가장 활력이 넘치고, 사회발전의 최전선에 위치하는 곳에는 회사도 좋고, 사업단위도 좋고, 반드시 북경토착인들은 소수이고, 외지인들이 다수를 점한다. 그들은 북경인들처럼 타성에 젖어있지 않고, 북경인들처럼 어르신성깔도 부리지 않으며,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만 알 뿐이다. 1년내내 연장근무를 하면서 거의 개인생활은 없이 보낸다. 이런 업무상황은 북경에 와 있는 외지인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다. 거기에 집도 북경에 없으므로, 가정생활도 없다. 이런 사람이 1년이 시작하는 때에, 자기의 고향집에 가서 새해를 맞이하겠다는데, 어느 사장이 그를 가지 못하게 말릴 수 있겠는가. 그래서 알다시피, 중관촌의 IT회사는 평소에는 일요일에도 나와서 일하지만, 구정만 되면, 음력 1월 15일까지 문을 아예 걸어닫아버리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상상태라면, 하나의 도시가 활력이 충만한 이민도시가 되려면, 이런 사람들이 최종적으로는 이 도시와 융합하여야 한다. 최종적으로 그들의 자아도 인식에 있어서, 자신이 이미 이 도시의 사람이라고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북경에서 일하는 외지의 화이트칼라들은 그들은 스스로 북경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같다. 그리고 북경의 농민공들은 더더욱 자기가 북경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자인 오사(吳思)는 일찌기 이런 글을 쓴 바 있다. 왜 대도시에서 일하는 민공들이 새로 온 사람이건 온지 여러 해가 지난 사람이건, 기본적으로 모두 자기는 농촌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하여 검토했다. 그들은 여러해동안 도시에서 일하였다. 그러나, 4,50세이후에 그들은 농촌으로 돌아가 자기의 말년은 농촌에서 보낼 것이다. 그리고, 원래 이런 상태는 그저 한 세대의 일디고, 그들의 아이들은 도시에서 자라고, 도시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제1대 민공들은 이미 나이가 들어 고향인 농촌으로 돌아갔다. 제2대도 역시 그들의 부친대의 전철을 밟을 것같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오사는 이렇게 분석했다. 네가 누구인가라는 것은 네가 어떤 신분으로 인생을 편안히 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즉, 도시수입>도시지출. 즉, 소위 수입과 지출로 전체 인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수입'은 인생의 총수입이고, '지출'은 인생의 총지출이다. 가정을 꾸미고, 자녀를 기르고, 나이들어 생활하는 것을 포함한다.

 

문제는 뒷쪽의 몇 가지 항목, '인생총지출'안에서 '가정을 꾸미고, 자녀를 기르고, 나이들어 생활하는 것'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기본적인 지출이 수반된다. 주택, 자녀교육, 의료비, 양로금. 그리고 곤란할 때 얼마나 사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이다. 이것이 바로 완전한 인생의 총지출이다.

 

그러나, 이런 인생의 비용에서, 민공들은 도대체 얼마나 이를 누리는가? 거의 없다. 그들은 그저 현금을 벌 뿐이고, 기껏해야 아이를 도시내의 학교에서 공부하게 할 뿐이다. 그들은 집도 없고, 의료도 없고, 양로도 없다. 그들을 어떻게 도시인이라고 부를 수 있단 말인가. 비록 도시내에서 일하는 화이트칼라라고 하더라도, 얼마정도나 이런 것들이 보장되어 있을까. 내 근처의 친구들은 이것들에 대하여 현재는 돌아볼 여지가 없다고 한다. 만일 내가 늙어서 여기서 죽을 것이다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만일 네가 여기에서 집이 없다면, 네가 여기서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면, 네가 여기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이 도시의 사람으로 만들 생각이 없다면, 어떻게 너 자신이 이 도시사람이라고 인식할 수 있겠는가.

 

나의 친구들은, 이 나라의 여러 성에서 왔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북경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 희생이 적지 않다. 원래의 도시에서라면 그들은 원래 가업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충심으로 북경을 사랑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북경은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 이것은 그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점이다. 북경은 사업에서 성공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이 곳에서 제대로 자리잡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중국이 계획경제이던 그 시절에, 북경으로 온 외지인이 적지 않았다. 그 중에는 나의 부모도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1950년대에 북경에 왔다. 북경인들은 그들에게 어떻게 벌집같은데서 살아가는지, 만두를 빚는지를 가르쳐주었다. 그들의 후대, 즉 바로 우리들은 완전히 북경에 융합되었다. "조직적"으로도 북경호구를 정식으로 가졌고, 직장에서 집과 다른 보장을 해주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모두 정부가 자원을 집중하여 도시생활을 보장해주는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형적인 계획경제이다.

 

오늘 날, 이 국가가 시장경제로 변화하는 때에 더욱 공평한 제도는 모든 사람이 이 도시에 공헌을 하고, 세금을 낸다면, 모두 이 도시의 복지를 향유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어떤 세금을 낸다면, 당연히 어떤 복지를 받아야 하고, 국가는 그들에게 어떤 대우를 해줄 것인가에 대하여도 자세히 검토해야 한다. 예를 들어, 농민공들의 아디들도 국가가 제공하는 무상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북경시의 교육경비는, 이치상으로 말하자면 북경시민이 낸 세금이다. 농민공의 아이들의 교육비는 이론적으로는 원래 성이 부담해야 한다. 여기서 어떻게 이런 돈을 내는 것이 더욱 공평하고 합리적인가? 여기에 관하여 토론할 이슈는 너무 많다. 그러나, 반드시 하나하나 토론해서, 하나하나 건립해야 한다. 왜냐하면 원래의 계획경제에서는 이런 것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각지에서 북경으로 온 친구들은 북경에 대한 감정이 나처럼 깊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북경을 그들의 집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우리의 북경고향사람으로 본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이미 이 도시를 떠날 수 없다. 이 도시가 그들을 떠날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은 북경에 뿌리를 내리고, 그들의 다음 세대는 완벽한 북경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