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굉(張?)
상해는 이전부터 상업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농후한 도시였다. 이 점은 항상 일부 사람들 특히 일부 인문학 지식인들로부터 상해문화의 가장 중요한 죄상으로 공격받는 부분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상업문명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상업문명도 인류문명의 하나이고, 선천적으로 도덕적인 결함을 지닌 것은 아니다. 인류는 상업행위를 하면서 나타내는 총명함, 신축성, 성실성, 근면성과 창조성등의 지혜는 바로 인류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여기에 상업계약에서는 현대시민사회와 정치제도의 배아를 찾아볼 수 있다. 개체간의 평등에 기초한 계약관계가 그것이다. 바로 이러하기 때문에, 상해는 일찌기 중국현대문화와 초기시민사회의 발원지였다. 상해를 기지로 한 현대물질문명이 없었다면 중국의 현대문화는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상해의 현대상업문명을 과도하게 공격하는 것은 심하게 말하자면 장기간 형성되어온 소농의식(小農意識)과 보수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오늘날의 상해문화의 주요한 증세는 필자가 보기에 상해의 발달한 물질문명이나 상업문명에 있지 않다. 오히려 경제와 문화간의 부조화와 기형적인 발전형태에 있다. 상업도 상업문화가 있다. 상업도 인간화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허구의 시장경제가 가져온 물질버블은 "인간본위"에서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고, 국가주의의식형태의 이미지광고로 나타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자기부상열차는 순전히 교통공룡이다. 돈먹는 하마이다. 그 속도의 혜택을 보는 사람은 별로 없고, 그저 많은 돈을 들여서 세계에 고속열차가 있다는 것을 자랑할 뿐이다. 육가취의 건출물의 높이나 자기부상열차의 속도는 모드 제3세계국가들의 소위 "현대화"강박증이 빚어낸 병적인 욕망의 외관적 증세이다.
물질문화와 상업문화의 범람은 도시발전에 또 하나의 문제를 불러온다. 이는 "사회공정"의 측면의 문제이다. 사람들은 풍부한 물질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사회공정과 건전한 법제가 전제되지 않은 사회번영은 일부분 사람의 이익을 희생하는 수밖에 없다. 자본의 축적은 약세군중으로부터의 과격한 약탈을 초리하지 않을 수 없다. 완전한 시장경제에서는 공정과 법제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만일 사회공정문제를 간단하게 상업문화에 책임지운다면, 이것도 병적인 사고방식이다. 일부 인문학 지식인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 더욱 엄중한 정신분열증을 보인다. 언론에 공개적으로, 아주 순결하고 아주 청빈한 학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상품과 금전을 뒤로 한다. 그러나 한번 몸을 돌리면, 바로 서둘러 물질에 집착한다. 그들은 높은 곳에 거주하면서 아래에 사는 사람들에 관심을 가지면서, 스스로 자신의 고상함에 감복하곤 한다. 필자는 믿는다. 우리는 자주 우리의 물욕에 고통받고 있고, 탐욕의 죄책감에 빠지게 되며, "하층에 관심을 가지는" "고상함"을 나타냄으로써 스스로 감동받는다. 이것은 일종의 보상심리적인 심리적인 자위이다.
비록 현재의 상해문화가 활력이 결핍되어 있지만, 도시지위의 전통으로 인하여, 상해의 문화영향력은 여전히 적지 않다. 최근들어, 중국대륙의 새로운 발전의 풍조속에서, 상해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거의 도식화되었다. 경제건설과 문화건설은 모두 다른 도시와 성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상해에 와이탄(外灘)이 있는데, 다른 도시들도 속속들이 와이탄을 만들었다. 도시 안에 조그마한 물가만 있으면 이름을 와이탄으로 붙여버리게 된다. 상해에는 '동방명주'가 있는데, 그래서 각지에서는 '서방명주' '남방명주' '북방명주'가 나타났다. 상해의 건축고도와 조명공사에 대한 추구도 역시 많은 해를 미치고 있다. 계속되는 네온사인으로 전력은 부족해 졌다. 귀신불빛같은 등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이로써 볼 때 상해의 발전에서 나타난 폐단들은 다른 지방에서도 역시 나타났거나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점점 더 악화될 것이다. 그래서 상해에 대한 비판은 어느 정도 중국에 대한 비판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건설은 물질생산과 다르다. 기업을 경영하는 것처럼 문화를 경영할 수는 없다. 문화건설이 낙후되었다고 하여, 사람들이 문화당국의 관리능력이 부족하거나 중시하지 않아서, 관심을 두지 않아서라고 문제삼아서는 안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오히려 정반대이다. 문화생산은 일반적으로 문화인이 개인적으로 종사하는 사업이다. 예를 들면 작가가 글을 쓰는 것과 같다. 글을 쓰는 것에 대하여 너무 많이 간섭하게 되면 안되는 것이다. 항상 누가 옆에서 이런 걸 쓰라고 하거나, 뭘 쓰는지 관심을 가지거나, 잘 썼는지 아닌지를 살펴보거나 하게 되면, 네가 계속 써나갈 수 있겠는가? 문화관련 공무원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스스로 이렇게 해야한다 저렇게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다닌다. 이는 도시문화에 오히려 창작정신을 위축시키고 있다. 문화의 몰락은 아마도 너무 간섭을 많이하는데서 일어날 것이다. 최소한 상해의 상황은 그렇다고 본다.
이런 문화생태에서, 문화인의 정신상황에도 중대한 "뇌위축증"이 나타나고 있다. 노신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경파문인근관, 해파문인근상(京派文人近官, 海派文人近商, 북경의 문인은 관료에 가깝고, 상해의 문인은 상인에 가깝다)" 그러나, 반세기 이래, 상해의 문화국면과 품격은 이미 철저히 개조되었다. 상해의 문화인은 자연적으로 본능적으로 상인기질을 나타냈다. 그러나, 동시에 농후한 관료기질도 보유하게 되었다. 상인에 가까울 뿐아니라, 관리에도 가까워졌다. 심지어 갈수록 더 관료화하고 있다. 이런 중국특색의 시장경제시대에, 권력과 가까워지는 것은 권력욕을 단순히 만족시키는 것만이 아니다. 그는 동시에 돈버는 더욱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만일 단순히 상인에 가깝게 되면 그에게 의지하던 가깝기만 하건, 이것은 모두 이해할 만하다. 성숙된 시장이라면 공평한 교환규칙이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관료와 상인이 결합하는 상태가 되면, 실제로 상업규칙에 일종의 권력규칙이 개입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22조군대규칙"이 되어 사람들이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권력권과 시장에 모두 잘 접근할 수 있는 사람만이, 물만난 고기처럼 활발하게 활동할 것이다. 사실상 상해의 문화인들은 많은 사람들이 이런 두 가지 능력을 겸비한 사람들이다. 한편으로 상해의 관상합일의 문화는 상해문화인의 이러한 이중인격을 낳았고, 다른 한편으로, 상해인의 총명함과 변신을 잘하고, 타협을 잘하는 이중성을 낳았으며, 이런 병적인 상해문화를 탄생시켰다. 대학의 학술측면에서 본다면, 고도의 국가계획에 따른 학술이 이루어진다. 대학이 국가학술생산의 공장으로 변모했고, 지식조립하는 공장이 되었다.국가문화기관은 학원에 학술을 주문하고, 학자는 주문을 받으며, 국가관념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가장 빠른 속도로 제품을 교부하게 된다. 이렇게 고속팽창하는 학술은 실제로는 일종의 지식버블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구문화체계와 대학의 쓰레기문화에 기생하게 되어 버렸다. 그리고 기생충처럼 문화의 정수와 자원을 빨아먹고 있으며, 상해도시문화는 중대한 "껍데기화"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문화는 생명이 있는 것이다. 문화는 광활한 생존공간과 자유로운 정신공간이 필요하다. 상해는 이런 분위기가 결핍되어 있다. 이 도시는 매우 큰데, 문화의 생존공간은 아주 좁다. 이 도시의 규모와 맞지 않는다. 상해는 "경제의 거인"이면서 "문화의 난장이"이다. 상해의 몸집은 매우 크나, 대뇌는 위축되어 있다. 모습이 아주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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