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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강청)

<<강청일기>> 유실사건

by 중은우시 2007. 6. 20.

1985년 5월, 정보가 빠르기로 소문난 <>는 눈에 잘 띄는 위치에 폭발력이 있는 뉴스를 실었다. 그 신문사가 거액을 들여, 중국대륙에서 "강청일기(江淸日記)"의 원고를 구매했는데, 전문가들의 감정을 받은 결과 진품이 확실하다고 했다고 했다. 그리고 일기의 한 페이지의 사진을 공개했는데, 모두 376자였다. 원본도 조만간 차례로 공개할 예정이라고 했다.

 

<<워싱턴스타>>가 이 소식을 전하자 서방각국의 신문사, 방송국들도 속속 이 소식을 전했고, 국제적이로 빅뉴스가 되었다. 오래지 않아, 중국국가안전부는 대변인을 통하여: <<워싱턴스타>>가 "강청일기"를 싣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이고, "강청일기"는 외부에 유출된 바 없다고 발표했다. 비록 이렇게 발표했지만, 그렇다면 <<워싱턴스타>>의 "강청일기"는 도대체 어디서 난 것인가? 중국국가안전부는 각지에 통보하여, 단서를 찾으라고 지시했고, 단서를 찾으면 즉시 보고하도록 했다.

 

경찰들이 곤혹해 하고 있을 때, 북경에서 수백킬로미터 떨어진 산서성 태원시에서 중요한 단서가 발견되었다. 태원시 영택파출소(迎澤派出所)의 민경인 후경삼(侯慶森)이 친구와 만났는데, 한 산서 모대학 경제관리학과의 졸업생인 장청화가 그에게 외국신문 하나와, 그 안에 메모를 끼워넣어서 건네주었다. 메모에는 "오늘 9시반에 영택공원 칠공교 옆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시공안국은 즉시 직접 장청화와 비밀리에 접촉했고, 그 경위를 파악했다.

 

장청화는 기업경제관리를 전공했고, 일본어를 좋아했다. 특히 일본의 기업관리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주 이 학교의 일본인 교사인 28세의 야마쿠치(山口道子)에게 배우곤 했다. 두 사람은 점차 가까워졌고, 밤을 자기도 했다. 한번은 야마쿠치가 장청화에게 이렇게 자랑했다: "강청일기는 내가 미국으로 보낸 것이다. 신문에 공개된 한 페이지만 가격이 1만달러이다" 그녀는 장청화에게 또한 그 다음 날 저녁에 그녀는 다시 영택공원 칠공교로 가서 계속 "강청일기"를 구매할 것이라고 했다.

 

정청화는 "간첩", "범죄"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온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장청화는 "강청일기"가 국외로 유출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불안감을 느꼈다. 그러나, 야마쿠치와의 자랑스럽지 못한 관계때문에 경찰에 신고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장청화는 공안기관에 근무하는 친구인 후경삼을 생각해냈고, 그를 만났을 때, 장청화는 고의로 외국어신문을 그에게 건네주면서 소식을 전한 것이다.

 

전문수사팀이 장청화를 찾아서 얘기한 후, 그에게 예전처럼 하고  야마쿠치와의 접촉을 유지하도록 시켰다. 가장 좋은 것은 그녀의 집에서 단서와 증거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정청화는 마침내 모 화공공장의 엔지니어인 곽강과 야마쿠치가 밀접하게 접촉하는 단서를 찾아냈다.

 

바로 이때 영택빈관의 여종업원도 하나의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두 명의 미국인이 있는데, 뭐하는지는 모르겠고, 식사하면서 영어로 "강청"의 이름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여종업원이 영어를 알아듣는다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므로,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경찰이 신속히 조사해본 결과 이 두 명의 미국인은 한 명은 올튼, 한 명을 보리스로 서방 모대기업의 대표였으며, 산서성 경제무역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투자시찰명목으로 입국했고, 영택빈관 803호에 투숙하고 있었다. 전문수사팀은 경찰병력을 동원해서 배치했다. 야마쿠치, 곽강이  미국인인 올튼과 진사(晋祠)에서 만나고 택시안에서 거래하는 것을 모두 감시하고 있었다. 야마쿠치가 막 기숙사에 들어갔을 때, 경찰이 바로 들이닥쳐서 수색영장을 내보였다. 곽강과 야마쿠치는 경황이 없었으나, 이미 숨을 곳이 없었다. 막 교환한 검은색 서류가방을 열자 안에는 돈이 가득했다. 헤아려보니 인민폐 3만위안과 외환권25만위안이었다. 야마쿠치는 할 수 없이 경찰에 사실대로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 날, 공항에서 경찰은 올튼의 가방을 수색해서, 7권의 크기가 서로 다른 일기장을 찾아냈다. 소위 "강청일기"였다.

 

소위 "강청일기"는 화공공장의 엔지니어인 곽강이 만든 것이었다. 그는 돈을 벌려고 했으나 방법이 없었다. 바로 이 때, 그는 야마쿠치와 알게 되었고,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히 발전했으며, 연인사이로 발전했다.

 

하루는 곽강이 <<참고소식>>을 통하여 히틀러의 일기를 위조한 사건을 보았다. 이에 아이디어를 얻어서, 강청일기를 위조해서 해외로 팔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게 하면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것같았다. 곽강은 "문혁"기간에 나온 노트와 "문혁"기간의 전단, 신문, "사인방"이 타도된 이후의 각종 비판자료와 소설, 다큐멘터리문학을 구해서 정리했고, 비교적 상세하게 강청의 매시기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녀의 심리상태, 사고의 변화과정을 연구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면서 비교적 정확한 강청편년사를 작성했고, 이에 근거하여 "강청일기"를 조작할 수 있었다.

 

강청의 필적을 모방하는 것이 "강청일기"를 조작하는 핵심이었다. 곽강은 강청의 일생동안의 서명과 준 글들을 모으려고 했다. 일정한 수량의 강청의 친필을 모으면 이를 모방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곽강은 개인적으로 모 감옥관리처의 인감을 위조하고, 자기의 이름을 "왕경생"이라는 가명으로 썼다. 그리고는 강청과 접촉한 바 있는 유명인사, 연기자를 만나서, 강청이 다른 사람에게 준 친필글자를 모았다. 그후에 그는 '강청글씨체"에 집중했고, 열심히 연구하고 모방했다. 한동안의 노력을 거쳐 마침내 거의 진품에 가까운 글씨체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일기장의 산화정도는 전문가들이 연대감정할 때 중요하게 보는 것이고, 강청일기위조의 난점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 점은 화학공업의 지식을 가진 곽강에게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투명한 쾌속산화제를 만들었다. 이 산화제를 일기장에 뿌리자, 글자체는 금방 퇴화되었고, 많이 뿌릴 수록 그 효과는 더욱 분명해졌다. 일기는 오래 된 것처럼 보였다. 뿌리는 양을 콘트롤 하면 서로 다른 시대의 일기장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내용적으로, 곽강은 가능한 한 강청의 생각을 알고자 했고, 믿을 수 있는 것에 근거하려 했다. 적게 쓰면 적게 쓰지 절대 넘치게는 쓰지 않는 원칙에 따라서, 며칠분을 빼먹으면 빼먹었지, 절대 아무렇게나 끼워넣지는 않았다. 만일 이렇게 해서 마각이 드러나면, 그동안의 공로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기상의 지문도 가짜 일기를 만드는데 난점의 하나였다. 곽강은 고심끝에, 전훈법을 사용하여, 얻은 자료에서 지문을 찾았다. 몇개의 "모택동선집"과 글을 쓴 종이에서 서로 같은 지문을 찾아냈다. 서명과의 거리를 계산한 후, 그것이 강청의 지문임을 확인했다. 그리하여 곽강은 이화접목의 수법으로 이 지문도 위조한 강청일기에 삽입시켰다.

 

<<워싱턴스타>>가 공개한 그 "강청일기"는 곽강이 내놓은 첫페이지 위조일기였다. 미국의 지문전문가가 감정한 후 내린 결론은 "위의 지문은 강청의 것임, 글자체도 그녀 본인의 것임" 그래서, <<워싱턴스타>>는 1만달러를 들여 야마쿠치에게서 이 일기를 구매한 것이고, 먼저 발표한 것이다. 이리하여 그들으 올튼과 보리스를 파견하여 나머지 일기를 모두 구매하려 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