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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강청)

강청(江靑)과 진계정(秦桂貞)

by 중은우시 2007. 4. 4.

글: 섭영렬(葉英烈)

 

그녀는 진계정이다.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은 모두 그녀를 아계(阿桂)라고 부른다.

원래 그녀의 일생은 아주 평범하고 보통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21살때, 한 아주 우연한 기회에 그녀는 같은 나이의 "남소저(藍小姐)"를 알게 된다.

진계정은 당시 상해 환룡로(지금의 남창로)의 허씨집안에서 일하고 있었다. 하루는, 한 젊은 산동아가씨가 검은가죽가방과 덮개를 끌고 2층의 방 한칸을 임차했다. 그녀가 바로 남평(藍)이었다.

남소저가 영화를 찍고, 연극을 하느라 바쁜 것을 보고, 진계정은 그녀를 도와 바닥을 닦고, 끓는 물을 가져다주고, 옷을 빨아주면서도 그녀로부터 돈한푼 받지 않았다.

진계정은 어느 때인가 남소저가 과일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상해서 물었다. "돈이 없어서."라고 남소저는 대답했다. 그래서 진계정은 감을 깨끗이 씻어서 그녀에게 찔러넣어주었다.

어떤 때에는 남평이 자주 집에 돌아오면 그저 침대에 누워있곤 했다. "저녁은 먹었어요"라고 진계정이 물으면 "식권이 없어요"라고 남평이 대답했다.

그 당시, 남소저는 하비로(霞飛路, 지금의 회해로)의 나송반점(러시아인이 연 호텔)에서 식사를 했는데 1인당 3각(角)이었다. 진계정은 주인집의 주방에서 계란볶음밥을 볶아서 몰래 남소저에게 가져다주곤 했다.

나중에 당납(唐納)도 이사들어왔고, 신문에는 남소저와 당납이 결혼한 뉴스가 실렸다. 당납은 말을 아주 부드럽게 했고, 약간 '여자말투'였다. 남소저는 말하는 것이 활달했고, 웃으면 크게 소리냈다. 그저 그녀의 성격이 기쁘고 슬픈 것이 무상하였다. 두 사람은 같이 살면서 자주 싸웠다. 진계정은 자주 남소저와 당선생을 화해시켜주곤 했다. 놀라운 것은 항상 무력을 먼저 쓰는 것은 남소저였다는 점이다.

하루 아침은, 남소저가 방안에서 짐을 싸고 있었다. "아계, 나는 아주 멀고 먼 곳으로 떠납니다. 만일 누가 물으면 남소저는 산동고향으로 돌아갔다고 전해줘요."

진계정은 남소저에게 선물을 사서 기념으로 삼고자 했다. 그녀는 금방 월급(매월 2위안)을 받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 2위안을 써서, 괜찮은 사진첩을 사주었다. 그녀가 사진첩을 남소저에게 주자, 남소저는 기뻐서 진계정을 꽉 껴안았다. 그러면서 연신 말했다. "아계, 너 정말 좋아. 정말 좋아. 나중에 내가 잘되면, 반드시 잘 보답할 거야" 남소저는 자기의 사진을 진계정에게 주어서 기념으로 삼았다.

1946년 2월, 진계정은 돌연 편지를 하나 받았다. 안에는 남소저의 사진이 있었는데, 남소저가 딸아이를 안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녀는 글자를 몰라서, 주인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그제서야 남소저가 이름을 바꾸어 강청(江靑)이라고 하게 된 것을 알았고, 그 아이는 이눌(李訥)인 것도 알았다. 편지는 남소저가 연안에서 중경으로 치과에 들렀을 때, 중경에서 부친 것이었다.

주인은 편지를 다 읽고 당부를 했다. 절대 이것을 떠들고 다니지 말라고. 그러나, 남소저는 서로 헤어진지 오래 되었는데도, 여전히 아계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것은 진계정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1950년, 주인의 아이가 천식에 걸려서, 그녀는 따라서 북경으로 병을 보러갔다. 그녀는 바로 북경대학의 주인의 친척집에 머물렀다. 그녀는 남소저가 북경에 있는 것을 알고 한번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글을 써달라고 해서 남소저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녀는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몰라서, 그저 "모택동주석 전(轉) 강청동지 수(收)"라고만 적었다.

1달후, 한 해방군이 지프차를 타고 북경대학으로 그녀를 찾아왔다. 강청동지의 명을 받아 그녀를 마중온 것이라고 했다. 진계정은 지프차를 보자 감히 올라타지 못했다. 그런데 주인의 친척이 안가면 안좋겠다고 해서, 그녀는 겨우 차에 올라탔다.

차는 중남해로 갔다. 그녀는 마침내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남소저를 만나게 된 것이다.

남소저는 그녀를 아주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그녀는 아계에게 무슨 부탁이 있으면 그녀가 도와서 해결해주겠다고 했다. 오래지 않아, 북경의 북해유아원에서 사람을 보내 그녀를 찾았다. 이것은 남소저가 특별히 그녀를 위해서 마련한 일자리였다. 이때부터 그녀는 북경북해유아원의 보육원이 되었다. 이 유아원은 보통이 아니었다. 많은 중공고위간부들은 자녀를 이 유아원에 보냈다. 북해유아원에서 진계정은 많은 중공고위간부의 부인을 알게 되었다. 유소기의 부인 왕광미, 진운의 부인 우약목, 팽진의 부인 장결청등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진계정은 어쨌든 남방사람이다. 북방의 생활이 영 불편하였고, 관절염에 걸렸다. 1958년부터 상해로 돌아가 일을 했다. 여전히 유아원의 보육원이었다.

그러나, 1968년 2월, 장춘교는 강청에게 비밀보고를 보낸다: "상해의 홍위병이 한 보모를 찾아서 당신의 과거상황을 알아보고 있다..."

강청은 금방 홍위병이 찾은 그 보모가 바로 진계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강청은 오법헌에게 중요한 임무를 부여했다.

진계정은 이미 1967년에 퇴직했고, 혼자서 남경서로의 한 작은 2층집의 윗층에 살고 있었다.

1968년 3월 2일, 밤, 한대의 작은 승용차가 진계정을 데려갔다. 그녀의 앞발이 막 집문을 나설때, 집안을 수색하는 사람은 작은 방안의 모든 사진과 글자가 있는 모든 종이는 깨끗이 쓸어갔다.

북경에 도착해서, 진계정이 기억하는 것은 3월 6일 몇명의 군인이 왔다. 말은 "수장"이 청해서라고 했다. 이번에는 그녀를 맞이한 것은 작은 승용차가 아니라, 하나의 군용트럭이었다. 트럭은 북경성을 나섰고, 교외의 도로를 한참 달려갔다. 높은 담장과 철문이 있고 곳곳에 초소가 있었다. 여기가 어디인가? 진계정이 들어간 후에,  그녀의 혁대, 신발은 모두 몰수당했고, 검은색의 보기싫은 옷으로 갈아입혀졌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삭발당했고, 머리위에 약간만 남겨두었다. 나중에야 그녀는 알 수 있었다. 머리꼭대기에 머리카락을 조금 남겨둔 것이, 언제든지 그녀의 머리를 휘어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조그만 시멘트집안에 혼자 갇혀있었고, 창문에도 쇠창살이 박혀 있었다. 그녀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녀는 붙잡혀 감옥에 갇힌 것이다. 그녀를 가둔 곳은 바로 진성감옥(秦城監獄)이었고, 그녀의 죄명은 "간첩"이었다.

진계정은 지금도 핏자국이 있는 상의를 보관하고 있다. 그녀의 두 팔은 오랫동안 수갑이 남긴 오목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진성감옥에서 매일 그저 두 잔의 물을 가지고, 얼굴을 씻고, 이빨을 닦고, 전부 마셨다. 그녀는 옷을 세탁할 때에도 화장실물통에서 꺼내서 씻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진성감옥에서 하얗게 바뀌었다.

하루는, 그녀가 힘이 빠져 땅바닥에 혼절해 쓰러졌다.

1975년 5월 7일, 출옥할 때, 그녀는 이미 정신이 혼미했고, 고혈압, 당뇨병, 백내장, 부종이 심했다. 그녀는 걸음을 걷는 것도 어려웠다. 그녀는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상해로 돌아왔다. 그녀는 가족도 없고, 아이도 없었다. 혼자서 힘들게 상해에서 생활했다.

그녀가 두번째로 북경을 간 것은 1980년 11월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최고인민법원 특별법정은 이 보통부녀를 불러서 피해자로 법정에 출석하여 강청의 죄행을 고소하게 하는 것이었다. 법관은 그녀에게 물었다. "진계정 동지, 강청을 심판하기 전에, 우리는 당신에게 한 가지 임무를 완성하도록 부탁하겠습니다. 당신이 잔혹하게 박해받은 것에 관하여 오법헌은 인정하고 진술했습니다. 그러나, 강청은 부인하고 있으며, 태도가 아주 좋지 않습니다. 우리 생각에, 그녀는 당신이 일찌기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버티는 것같습니다."

진계정은 다시 진성감옥으로 갔다. 한 여인이 남색의 솜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았다.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고, 그 곳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진계정이 자세히 보니 바로 남소저였다, "남소저!"

남소저는 일어나서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계" 남소저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하였다.

진계정이 말했다. "나는 너에게 그렇게 잘해주었는데, 너는 나에게 왜 이렇게 악독하게 대하였느냐. 너는 한마리의 독사이다"

남소저는 금방 얼굴색이 하얗게 변했다.

진계정은 고개를 돌리고, 본척도 않고, 걸어갔다.

진계정이 개략 십여걸음을 갔을 때, 돌연 뒤에서 찢어지는 소리로 부르는 것을 들었다: "아계...."

만년의 진계정은 온몸에 병이 들어 있었다. 규정대로라면, 그녀는 지정된 노동보호의원에서 병을 치료해야 했고, 의원은 매우 멀었다. 그녀의 많은 의약비는 직장에서 처리되지 않는 것이었다. 오래지 않아, 진운 부인인 우약목의 여동생 우로림이 그녀를 도와 의료문제를 해결해주었다. 그녀는 북경의 북해유아원에서 보모를 할 때, 우로림을 알았었다.

그녀의 만년에, 그녀에게 가장 잘 대해준 사람은 허씨들이었다.

한번은 진계정이 가든식 서양집의 아랫층 남향방으로 이사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살기가 아주 좋아졌다. 이곳은 옛 주인집의 허모정 소저의 집이었다. 무상으로 그녀를 살게 해준 것이다. 매월 그녀에게 생활비도 주었고, 그녀를 위하여 보모도 구해주었다. 보모의 월급도 주인집에서 내주었다. 그녀가 병이 들면, 그들은 돈을 부쳐주었다. 그녀는 주인집 딸을 어릴 때부터 클 때까지 봐주었었는데, 그 딸은 지금 미국에 있었고, 가전제품을 가져와서 그녀에게 주기도 했다. 그들은 "진계정은 13살때 우리 집으로 왔다. 그녀는 이미 우리 가족이다. 그녀가 지금 나이가 들어 일은 할 수 없으므로, 우리가 당연히 그녀를 돌봐주어야 한다"

진계정이 죽었을 때, 멀리 워싱턴에 있는 주인집 딸은 다시 한번 멀리 상해까지 왔다. 지금 그녀도 머리가 흑백이 반반일 정도였다. 이번에 그녀는 부모와 그녀 자신을 대표하여 진계정 아줌마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